이렇게 안내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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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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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14 00:00
주은 중 평안을 구합니다.
사모님 역시 백 목사님께서 가장 가까이 두시고 심부름 시켰던 직원이셨습니다. 목사님 가장 가까웠던 두 분의 결혼, 이른 연세에 결혼까지 순종하심도 모두 기억합니다.
1. 잠깐 다음 설명을 한 번 들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원래 이 글은 김효순 권사님이 백 목사님 사후에 공개석상에서 백 목사님을 마음껏 퍼부었던 비판을 소개한 글로 시작했습니다. 백합화께서 실명으로 비판한 것은 김 권사님이었고, 손 목사님에 대한 글은 사실 본인 외에 알기는 어렵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손 목사님에 대한 글인지조차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첫째,
'자녀 삼사대' 부분은 김 권사님이지 손 목사님에 대한 부분이 아닙니다. 김 권사님은 공회의 공개석상에서 백 목사님을 비판했으니 다른 분이 김 권사님을 비판해도 할 말이 없는 경우입니다. 물론 백 목사님도 공개석상에서 김 권사님을 치리하셨기 때문에 사후에 그 분에게 비판을 받아도 섭섭하다 하실 일은 아닙니다.
둘째,
손 목사님의 성함이 거론 된 것은 사실 손 목사님께서 실명으로 글을 적지 않았더라면 그 글이 누구를 말하는지 알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뻔했습니다. 더 강하게 말한다면 답변자 저 역시도 손 목사님을 말한다고 단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음 내용을 한 번 검토해 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2. '①어릴 때부터 사랑 받은 분, ②공회를 탈퇴한 분, ③건강을 일찍 잃은 분'
① '백 목사님과 어린 시절부터'라는 나이는 백태영 목사님까지 포함 됩니다.
백태영 목사님이 1925년생입니다. 7 세가 되던 1931년에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어릴 때부터 바지에 오줌을 싸고 다녔다는 이야기를 집회 때마다 자주 해서 그 분의 섭섭함과 때로는 분노가 있었습니다. 연구소에 직접 오셔서 그 부분을 지워 달라고 화를 내는 등 그런 부분은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생존했다면 1935년 1941년생의 전성수 재수 목사님 형제분도 그 출생 때부터 백 목사님의 손에서 컸던 분들입니다. 유아 시기에 열이 나서 돌아 가실 정도가 되자 1930년대 당시 밤중에 비포장 산길을 달려 60리가 떨어진 거창읍까지 가서 약을 구해다 살린 이야기가 있습니다. 장종범 장로님도 비슷한 세대입니다.
서부교회 출신 교인들께서는 서부교회 시절만 기억하고 1950년대 출생들부터 주로 백 목사님의 사랑을 어릴 때부터 받고 자랐다고 생각하는데 1920년대 출생으로부터 1980년대들까지가 그렇습니다. 현재 연령으로 30대 초반부터 80대 후반들까지가 백 목사님이 출생할 때 이름을 지어 주시고 그들이 자라면 부부를 중매하고 주례하시고 다시 그 자녀들의 이름을 지어 주시고 내려 온 세대가 우리 공회의 전체 교인들입니다. 답변자 저 역시 그 중에 들어 있습니다. 심지어 서울의 청량리교회 교인들의 자존심은 서부교회보다 앞서고 있습니다. 그 교회도 그런 연유가 있습니다. 이의용 목사님이 1953년생이신데 그 가정도 그 목사님도 그런 경우입니다.
② '공회를 탈퇴'한 인물은, 믿기 어렵겠지만 '이영인' 목사까지 포함을 합니다.
세상에! 저를 총공회에서 탈퇴했다고 말한다면 저나 제 주변 인물들은 미쳐도 보통 미친 것이 아니라 하겠습니다만, 대구공회 100 개 교회 명단은 '총공회 주소록'으로 되어 있고 제 이름과 제가 목회하는 교회 이름이 없습니다. 그냥 말만 그런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1999년 어느 날 장신석 목사님께서 신두범 목사님과 총공회에서 대표가 되어 신풍을 가게 되었다고 전화를 하셨습니다. 이유를 물으니 '총공회는 자신들이 모이는 공회만 총공회이고 신풍과 이영인 목사는 총공회 사람이 아닌데 오히려 신풍에서 총공회 주소록이라는 것을 인터넷에 올려 그 분들의 교회와 교역자 명단 전체를 다 올려 놓고 있으니 법적 조처까지 해야 할 상황이나 우선 대표단을 보내어 이런 뜻을 전하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사모님! 이 것이 현재 공회의 인식입니다. 이해를 정중하게 구합니다. 바로 그 당시 손 목사님은 대구공회의 회원이셨습니다. 물론 손 목사님은 대구공회의 이런 결정에 대해 내부적으로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저를 위해 반대하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문제는 대구공회 100 개 교회 전체의 사고방식은 그 분들만 총공회가 되고 저 이영인은 총공회를 탈퇴한 인물이므로 그 주소록 어디에도 제 이름과 저희 교회는 없습니다. 이런 상황을 두고 비록 손 목사님이 결정하신 것은 아니라 해도, 최소한 손 목사님은 공회 탈퇴라는 표현이 누구를 향하며 어느 쪽을 향하는지 쉽게 단정할 수 없음은 아실 위치입니다. 오랜 세월 서부교회 정문 앞의 양성원 건물에는 공회 탈퇴자에 대한 경고문을 붙여 놓은 적이 있었습니다. 불신자가 보는 대로에서.
그뿐 아니라 대구공회 측이 전화하기 전으로 기억 되는 어느 날 서성교회의 지시를 받고 움직이는 검정 양복 14 명이 007 가방을 들고 무슨 청와대 경호단들처럼 신풍의 사택문을 열고 들어 왔습니다. 제가 총공회 전국 주소록을 인쇄해서 전국 교회에 보냈는데 그 분들은 자기들 20여 개 교회 외에는 총공회를 다 탈퇴했고 이영인과 신풍교회도 탈퇴를 했는데 왜 이런 불법 인쇄를 했느냐고 손을 보러 왔다는 것입니다. 김춘도 목사님, 유정현 목사님이 그 자리에 함께 오셔서 앉으셨던 이야기입니다. 믿으시겠습니까? 믿기 어려울 듯하여 그 분들의 실명을 공개합니다. 14 명이 좁은 방에 무릎을 마주치며 앉아서 아주 잡아 먹을 듯한 기세였습니다. 그 당시 그 분들은 각목을 들고 대구공회로 또는 서영호 목사님 측 공회 교역자들을 향해 난타를 하고 다니던 때이며 한창 잘 나가던 때여서 살기가 아주 등등했습니다. 급보를 받은 교인 3 명 정도가 달려 오셨으나 3-40대 14 명의 건장한 남자들을 이길 수야 있겠습니까? 그 날 저는 죽었다가 살아 난 정도입니다.
여기 이 곳에서만 과거 한 번이라도 공회에 관련 된 분들은 그 분들이 스스로 공회 사람이 아니라 해도 어떤 방식을 써도 총공회 주소록에 제가 이름을 남겨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교회는 10여 개 미만입니다. 나머지는 자기들 외에는 다 탈퇴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기들 외에는 서로 하나님께 저주를 받아 끝이 좋지 않다면 상대 공회의 모든 회원들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에 해당 되지 않은 경우가 있겠습니까? 저 역시 아내가 큰 사고를 당했고 생존이 더 불행이라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복지 계통을 잘 아실 것이니 이 상황을 파악하실 줄 압니다. 부공1은 그들을 반대해서 그렇다 하시고, 부공2도 그렇고, 대구공회도 그렇고, 서울공회도 그렇고, 그들 공회 중에는 저를 위해 교역자회에서 전체 기도를 했다고 하는데 그 기도한 중심을 제가 잘 믿지 못하겠습니다. 제가 그 다른 공회들을 구원하지 못해서 맞은 징계인지 아니면 제 잘못으로 당한 징계인지.
현재 제가 총공회 주소록에 올려 놓은 것조차 총공회 전체 교회들의 90 %는 인정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총공회를 탈퇴한 제가 저희 숫자가 적으니 마치 모든 공회들을 다 아우르고 있는 듯이 연극을 하며 허위 과장 과시를 하기 위해 적어 놓았다는 정도로 보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최근에도 저를 만난 타 공회 중직자께서 '왜 총공회를 탈퇴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어떤 공회라 해도 공회 이름을 전혀 붙이지 않은 쪽이 그래도 적을 듯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백태영 목사님의 서울 공회는 총공회 이름을 교단적으로 포기한다고 결의까지 했습니다. 백영침 목사님께서 제게 직접 전화를 하셔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거창 시절부터 서부교회 시절까지 어린 시절을 겪으며 백 목사님의 극진한 사랑을 받은 분들 중에 일반 교계로 가신 분들의 숫자는 제가 손을 꼽아 보기로는 내부에 있는 목회자 숫자보다 많지 적지를 않습니다.
공회 이야기를 먼저 드린 것은 일반 교계로 가신 분이 적어 설명의 궁색함 때문이 아닙니다. 백 목사님의 친제 백영익 목사님부터 해당 됩니다. 고신 합동 등에는 공회 출신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현재 이 홈을 운영하며 과거 이야기를 들은 것만 해도 적지 않습니다.
③ '건강을 일찍 잃은 분' 역시 적지 않습니다.
장영목 목사님께서 오래 전에 간경화로 치료를 포기하셨다가 기적적으로 회생했다는 말씀을 혹시 들어 보셨습니까? 저도 최근 타 교단 인터넷에서 읽었습니다. 바로 그 시점이 장 목사님께서 총공회를 탈퇴하고 부산에서 개척했던 교회를 타 교단에 넘기고 목회를 포기한 시기였습니다. 김춘도 목사님 역시 치료를 포기했던 분입니다. 더욱 심각했던 경우입니다. 두 분은 워낙 유명하시고 그 병환이 알려 진 것이어서 소개합니다. 저희 나이가 50대입니다. 40대 후반을 거치면서 우리 세대의 남성들은 생사 위기를 한 번씩 거치는 것이 하나의 흐름처럼 되어 있습니다. 위에서 설명했던 분들 중에 건강에 심각한 이상으로 목회를 포기한 분들의 숫자는 적지 않습니다.
목회자의 건강 문제는 여러 원인이 있을 수 있고 백 목사님도 두 차례나 절명하실 위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흔히들 저주를 받아 그렇다는 그런 말을 들을까봐 대개는 극구 감추게 됩니다. 그런데 손 목사님께서는 하나님 앞에 양심에 가책 될 일이 아니라 오히려 개인적으로 미진했던 기도에 힘쓰고 발전적으로 더욱 잘 대처하기 위해 공개를 하고 본인이 적극적으로 결정하신 경우입니다. 거의 없는 경우였습니다. 주변을 둘러 보면 몇 사람 중에 하나 꼴로 어느 공회든 어느 교단이든 어느 가정이든 그렇지 않은 경우가 없습니다. 심지어 백 목사님 가정에 목회하는 사위 두 분의 목회자만 일찍 가셨다 해서 이 문제를 가지고 입에 담을 수 없는 표현을 단체로 떠드는 공회도 있습니다.
알게 모르게 벌써 세월이 수십 년이 흐르고 예전과 달리 60대라 해도 청년 취급을 받는 시대입니다. 서부교회가 속한 부공2는 현재 92 세의 이만기 목사님이 현직 목회와 현직 교학실장 행정실장을 맡고 있습니다. 80 세의 김응도 목사님이나 그 이상의 이진헌 목사님이 여전히 저희보다 더 건강하게 더 강하게 설교를 하며 현직에 계십니다. 백 목사님 생존 마지막 해인 1989년에 우리 나이 55 세가 공회의 노원이었습니다. 지금 제 나이가 56 세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노원으로 총공회의 원로 대접을 받아야 하는데도 23 년이 지난 지금까지 늘 그 당시 33 세처럼 취급 받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40대는 아주 코흘리는 아이들 같고, 지금 60대가 아직도 청년입니다. 60대가 건강을 잃어도 공회에서는 아직 몇십 년은 더 목회할 수 있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공회는 은퇴제도가 없지 않습니까? 손 목사님과 손 닿을 거리에서 목회한 분들 중에 건강 때문에 교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은퇴하시고 가정 예배 정도로 유지하거나 그조차 어려운 분들, 여기서 소개하기 어려운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3. 이렇게 제안하겠습니다.
먼저 손 목사님께서 그 글을 내려 주신다면, 손 목사님 글에는 다른 글이 달리지 않았으므로 손 목사님의 글과 제 글을 함께 내리겠습니다. 그리고 백합화께서 적은 글 중에서 몇 자만 변경하여 백합화께서 하고 싶은 말씀도 살리고 사모님 염려도 해소할 수 있을 듯합니다.
원래의 글 중에 문제가 된 표현은
'백 목사님으로부터 코흘리개, 어릴 적부터 사랑을 받고, 설교 중에 자주 거론하는 분이 있다. 이 분은 목사가 되었으나 요새 소식을 들으니 아직 목회를 몇 십년 더 할 연세인데도 건강이 좋지 못해 목회를 중단한 것으로 들려 온다. 공회를 탈퇴하고 타 교단으로 갔던 분이다. 주님의 징계가 아닌지 의심스럽다.'라는 부분인데
'백 목사님으로부터 코흘리개, 어릴 적부터 사랑을 받고, 설교 중에 자주 거론하는 분이 있다. 이 분은 목사가 되었으나 <요새 소식을 들으니 아직 목회를 몇 십년 더 할 연세인데도> 건강이 좋지 못해 목회를 중단한 것으로 들려 온다. 공회를 탈퇴하고 타 교단으로 갔던 분이다. 주님의 징계가 아닌지 의심스럽다.'라는 정도가 된다면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공회를 나간 분들에 대한 표현은 백 목사님 생전부터 공개적으로 비판해 온 것이 있어 공회 외부에 계신 행위를 두고 비판한 것은 무조건 다 삭제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한 편으로 공회에 계시다가 일반 교단으로 가시는 분들은 비록 한 말씀도 하지 않고 가셨다 해도 그 소속 이동 자체가 공회 내를 타격하는 것은 대단히 클 것으로 생각합니다. 공회에 계시다가 타 교단으로 소속을 옮기게 되는 그 행위 자체가
'공회는 도저히 두고 볼 수 없는 심대한 문제가 있다.'
'그 안에는 그냥 가만히 있는 것조차 곤란하다.'
'하나님 앞에 화를 받을까 해서 나왔다.'
등의 무언의 표현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대구공회로서는 엄청난 격분을 가졌고 전체 총공회로서도 구미 지역의 합동 소속으로 변경한 일은 백 목사님 생전에 사직동교회 사건을 생각할 만큼 되었습니다.
손 목사님 외에 대부분의 경우는 평생 공회 내부를 향해 신랄하게 비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손 목사님이 말씀하신 것은 아니나 공회 내에서 듣기로는 공회 외부에 계신 분들의 말씀은 나간 분들 전체의 말씀처럼 들리게 됩니다. '생겨서 안 될 사생자 교단'이라는 극언까지 하신 분이 구미에서 멀지 않은 곳에 계셨습니다. 구미의 공회 교회 3 개 전부가 동시에 소속을 옮겼다는 사실이 공회 전체 교인들에게 끼친 타격과 어린 신앙들에게 그 과정을 설명해야 하는 입장도 참으로 난감했었습니다.
4. 양해를 구합니다.
백 목사님은 미련한 우리를 기르기 위해 그러하셨겠지만 어떤 목회자 부부에게는 공석에서 부부 잠자리 이야기까지 들며 책망을 하셨습니다. 이 곳에 어떤 분은 답변자를 향해 백 목사님 살인의 배후라고도 적었습니다. 그런데 한두 곳을 손을 대다 보면 사실 이 홈은 백 목사님 설교록 자체를 최우선적으로 내려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책망이나 억울한 일에 대한 교훈도 함께 받았고, 또 상대방과 복음의 다른 면을 위해 해명하거나 조처하는 것도 함께 배웠습니다. 손 목사님께서 이미 백합화님을 향해 공개적으로 하실 말씀을 하셨습니다. 설교자의 강단의 말씀이니 히브리서 4장의 좌우에 날선 검입니다. 백합화님의 잘못을 조목조목 짚었다는 점에서 객관적으로 보는 분들이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을 듯합니다. 백 목사님께 받은 사랑, 그 사랑만큼 그 사랑 때문에 지출하는 비용의 일부로 보시기를 요청합니다.
>> 손목사사모 님이 쓰신 내용 <<
:
: 산곡의 백합화님의 글을 읽고 너무 놀랐습니다.
: 님께서는 자녀가 없습니까? 어떻게 자녀 삼사대까지 저주를 펴붓습니꺼?
: 기가 막힙니다.
: 회개하십시요.
: 이영인 목사님, 저를 잘 아시죠.
: 저는 이 글을 우리 자녀들이 볼까 너무나 두렵습니다.
: 이 글을 반드시 지우시기를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