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선] 세월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가장 확실한 판정 방법이란 말씀이 있습니다.
| 설명 |
|---|
yilee
0
11
2003.01.16 00:00
1.백목사님이 설교 중에 종종하시는 말씀 중에, 세월의 증명이 있습니다.
어떤 수사관도 발견하지 못한 것이라고 해도 세월이 이를 밝힌다고 종종 예를 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현재라는 시간에서는 이 말도 할 수 있고 저 말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 당시 행동이 씨앗이 되고 훗날 결과가 열매가 되어 나타나도록 하나님이 섭리하시기 때문에 결국 모든 것은 드러나게 됩니다. 우리는 뒷날을 보고 신앙생활을 하지 그 당시 주변 여론이나 눈을 의식하지 않습니다.
2.'서부교회 젊은 조사들과 어울려 유익이 되지 않는다'는 말은 처음 듣습니다.
서부교회 젊은 조사들이라는 말은 주일학교 총무 장조사님, 연구소장 이조사님, 중간반 김조사님, 특수반 이조사님, 그리고 답변자 연구부장을 말합니다. 대구공회에서 백목사님이 죽으며 낙동강에 버려진 5개의 오리알이라고 그렇게 돌던 말이 지금도 우습습니다. 대구공회의 당시 노선을 잘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제는 그분들도 백목사님 귀한 면을 일부 인정한다고 공개할 때가 있어 반가운 마음 금치 못합니다.
이 5명은 1980년대 중반 이후 백목사님 밑에서 백목사님 말년 서부교회와 총공회 전체의 핵심 의논에 늘 참여했었습니다. 서부교회 4분의 권사님들도 자기 구역에 직접 관계된 것 외의 교회적이나 공회적 사안에서는 이미 물러나 있었습니다. 1980년대 중반이후의 서부교회와 공회의 모든 대소사 운영과 중요한 사건들을 전반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사람은 그 조사님들 정도였습니다. 물론 그 중심에 답변자가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이런 상태는 답변자가 신풍으로 부임한 이후에도 계속되었기 때문에 백목사님 사후 장례식을 포함한 서부교회의 모든 방향은 자연스럽게 답변자와 조사님들이 중심이 되어 일절 처리하게 되었고 권사님 4분도 백목사님 마지막 순간까지 답변자와 조사님들이 목사님을 모시고 움직인 방향을 전부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중대한 순간의 모든 결정과 처리를 이곳에 일임하고 무조건 따르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보충질문으로 하신 말씀은 전혀 근거없는 말입니다. 오히려 백목사님께서 너무 지나치게 젊은 것들 기를 살려놓아서 잘못되었다는 것이 당시 대구공회의 불평이었습니다.
3.답변자는 목사님 사후 과도기에서 서부교회와 공회의 방향에 분명한 입장을 가졌습니다.
공회와 서부교회의 내부 상황을 모르는 대부분의 교역자들과 일반교인들 장로님들은 공회의 주요직책 전부와 서부교회 장로 16명 중 13명이 대구공회쪽에 있었기 때문에 백목사님 사후 서부교회와 공회는 백태영목사님의 대구공회에 넘어가게 될 줄 알았지만, 막상 백목사님이 없는 상태의 서부교회는 젊은 조사 5명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됩니다.
그 때부터 대구공회의 모든 공격은 소위 '서부교회 젊은 조사들'에게 집중이 되었고 대구공회는 답변자를 중심인물로 취급했고 주일학교 총무조사님이 교회내 행동 중심이라고 지목하게 됩니다. 그러나 서부교회의 대세는 이미 백목사님 생전노선으로 방향을 잡도록 확정이 되었고 이에 따라 공회 분열 때 많은 지교회들이 대구공회로부터 부산공회로 넘어오게 됩니다. 양성원과 목회연구소까지 포함하여 중요한 의미를 가진 것이 목사님 생전으로 방향을 확정하게 되자 대구공회는 총공회 임원진이라는 빈껍데기만 쥐고 이후 겉돌게 됩니다.
만일 젊은 조사들이 답변자와 어울려 잘못된 일을 하고 다닌다는 면이 있었다면 백목사님 사후 전개되는 모든 일은 서부교회 내부 성질상 계속될 수가 없게 됩니다. 백목사님 순교 당일부터 장례 5일간, 그리고 이후 가장 첨예하게 대립될 수 밖에 없는 후임 결정 과정, 그후 모든 중요한 사안 때마다 만일 누가 조금이라도 소리를 내게 된다면 한 순간에 대폭발이 일어날 때였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에서 답변자가 항상 권사님들과 모든 직원들 또 중요 내부 인물들과 모든 일을 결정할 수 있었던 것은, 백목사님 마지막 순간까지 목사님을 모시고 조사님들이 실무를 처리했고 이런 사실을 권사님들과 주변 모든 중요 인물들이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4.답변자의 백목사님 사후 이 모든 행동은, 목사님 사후 한번은 하고 넘어갈 사명이었습니다.
참고로, 답변자는 남정교회가 분리되고 교회가 안정된 1990년 8월, 이제 서부교회는 백목사님 사후 과도기를 무사히 넘겼기 때문에 앞으로는 어떻게 깨지고 잘못 되어도 답변자의 원래 주력할 연구작업에만 전념하고 서부교회와 공회의 모든 실무적인 일에 일절 손을 떼겠다고 이재순목사님과 교역자회 등에 선포하고 이후로는 오늘까지 이곳에서 이 일만 전념하고 있습니다.
답변자는 백목사님 생전 마지막 순간까지 그분을 가장 가까이에서 모셨기 때문에 그분 사후 가장 급박한 순간, 서부교회와 공회가 어떻게 되어야 바른 신앙노선에 서게 되는지를 두고 발언을 했습니다. 또 과도기에 필요한 모든 조처를 적극적으로 하여 교회와 공회의 기본 방향을 안내했습니다. 그러나 답변자의 주임무는 교회나 공회의 정치에 있지 않기 때문에 서부교회가 남정교회 분리 이후 안정이 되고 또 공회도 비록 부산공회 단독으로라도 이 신앙노선에 안정적으로 서게 되는 순간, 연구작업 전념을 위해 일절 대외 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게 됩니다. 1990년 8월말이었습니다.
이후 답변자는 현재 이곳에서 활동하는 것처럼, 백영희신앙노선의 연구에 전념하고 있으며 그 이후에 교회와 공회적 사안에 대하여는 질문이 있으면 현재 이곳에서 발언하는 내용으로 안내했을 뿐이고 서부교회와 공회가 어디로 어떻게 가든지 그 이후에 대하여는 자신들의 책임이지 이곳의 책임이 아님을 분명히 했습니다.
답변자는 조사님과 권사님 등 백목사님과 개인적으로 마주 앉는 분들과 함께 백목사님으로부터 백목사님 사후의 서부교회를 두고 가장 확실하고 분명한 단정을 들었기 때문에 목사님 사후 답변자가 할 일은 너무도 간단하고 명확했습니다. 백목사님은 목사님 사후 서부교회 후임을 아무리 주시라고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끝까지 허락지 않기 때문에 후임을 비워두고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목사님 사후 전개될 일을 환하게 미리 우리에게 주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답변자에게 평생 힘쓰야 할 일로 교리와 이 노선연구를 주셨습니다. 특히 목사님 사후 이 노선을 바로 등질 사람이 2/3라는 말씀은 아주 공개적으로 발표하던 내용이었습니다. 덧붙여 서부교회와 공회가 이 교리와 노선을 등질 것도 미리 말씀하고 그에 대비한 조처라고 하면서 서부교회 신년행사 공동의회 때 재산처리까지 조처하고 계셨습니다.
그렇다면, 서부교회와 공회의 앞날은 환한 것입니다.
3.이곳을 향해 제기되는 모든 욕설에 대하여는 충분히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1989년 8월 백목사님 순교 직후 1년간 이곳이 서부교회와 공회에서 처리했던 활동은 그 반대측인 대구공회로 볼 때는 목이 찢어지도록 욕을 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였다는 점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답변자가 입을 닫았으면 서부교회가 대구공회 범위로 들어갔을 것이고 초대형교회를 중심으로 대구공회는 한껏 대구공회의 수정노선을 펼칠 수 있었을 것입니다.
1991년 서영호목사님이 서부교회 부임을 했을 때, 대구공회의 아쉬움은 정말로 보통 큰 것이 아니었습니다. 서목사님은 부임하자 말자 비디오파라고 이름을 붙인 중간반과 싸우기를 대구공회가 싸운 것처럼 싸웠습니다. 즉, 지금 서목사님측 70% 교인들, 남정교회로 나간 대구공회 성향의 당시 교인들을 다 합하면 서부교회의 약 8-90%가 같은 부류였다는 것이고 그들이 다 대구공회를 지지할 교인이었다는 것입니다.
서부교회를 장악했다면 총공회 전체적으로는 부산공회에 설 교회가 대구공회에서 당시 3-4교회로 보고 있었으니 대구공회가 총공회를 다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을 답변자가 중심이 되어 막았다고 생각하는 대구공회 내부 알만한 사람들 입에서는 답변자를 향해 얼마나 이를 갈겠습니까?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얼마든지 당해도 당하고 남을 짓을 했습니다. 따라서 이후 백목사님 살인범으로 간음범으로 부동산절취범으로 사기범으로 서부교회를 노리는 사람으로 .... 어떤 욕이 와도, 오죽하면 그러겠냐고 충분히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심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백목사님께 귀한 이 신앙노선을 배우고 오늘 그 길을 이렇게 걸어갈 수 있게 된 면을 생각하면 목사님 사후 장례식을 처리해야 했고 또 그후 서부교회와 공회를 과도기 한번만이라도 이 신앙노선 상에서 바로 출발할 수 있도록 외쳐야 했고 또 그렇게 처리를 했어야 했다는 것이 답변자의 양심입니다. 답변자는 가신 백목사님이 해놓은 귀한 복음 사업에 대하여 외적으로 할 일까지 다했고 조금도 후회가 없도록 했기 때문에 그후 서부교회와 공회가 어떻게 탈선하고 타락을 해도 양심의 가책이 없습니다.
그렇게까지 알려드렸고 방향을 잡아드렸는데, 그후 서부교회와 부산공회는 말로만 첫출발 때 공회노선을 지킨다고 하지 행동은 완전히 대구공회를 따라 탈선했다고 이곳은 보고 있습니다. 먼저 배운 것으로 한번은 알려드렸지만, 두번 세번 서부교회와 공회에 개입을 한다면 이는 답변자의 본업무가 아닌 것에 대하여 간섭이 되고 결국 끝없는 교회 정치싸움에 휘말리게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연구작업만 전념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 이곳에 대한 비판은 대구공회가 먼저였지만, 대구공회가 부산공회와 분리된 1990년 이후에는 대구공회로부터는 흘러간 소리를 다시 듣는 정도였고 1991년 서부교회에 서목사님이 부임하게 되자 서목사님을 담임목회자로 청빙한 주도 권사님측에서는 갑자기 신풍을 지목하며 서목사님을 밀어내고 서부교회 교권을 탈취하려 한다는 말들을 내게 됩니다.
개와 사람이 함께 논길을 걸어가면 농부는 자꾸 벼이삭에 눈이 가고 옆에 있는 개는 논두렁 주변에 숨어있는 똥을 찾게 됩니다. 밝은 개눈으로 똥을 감지하게 되면 갑자기 주인을 향해 으러렁거립니다. 제가 먹을 것이니까 손대지 말라는 경고지요. 지금 부산공회에 가입한 교역자 중에서도 자기의 진로를 결정하는 일에 있어 이곳 답변자가 교회나 공회의 교권에 탐을 내고 있다는 말을 권사님측으로부터 듣고 격분하여 이곳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가는 분들도 있습니다.
서부교회 후임의 자리는 백목사님 외에는 누가 가더라도 평생 교권투쟁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진흙탕에서 모든 인분을 다 뒤집어쓰더라도 높은 자리에 잠깐이라도 있고 싶고 또 잠깐 받는 사례와 대접비만 모아도 평생 필요한 경제가 모이기 때문에 그 싸움터로 들어가는 분들도 있지만, 어떤 이들은 그런 교권 경제 지위는 원하는 사람들이 가지라고 피하고, 또 실력도 없고, 또 오랄 사람도 없고, 그대신 이 신앙노선의 연구는 칼빈의 5백년 전을 잇는 신약교회사 교리사의 3대 사건으로 손꼽을 사안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서부교회나 공회 교권에 목표를 두고 있는 분들과는 가는 방향과 가치관이 전혀 다릅니다.
어쨌든 당시는 앞날에 답변자가 걸어갈 목표와 과정이 무엇인지를 증명할래야 증명할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 이곳 홈에서 보여드리고 있는 모든 것은 바로 지난날 이곳이 걸어온 신앙노선의 전부입니다. 이곳의 업무는 작은 시골교회 하나도 제대로 감당할 수 없는 작업량입니다.
4.물론 최근까지 가장 심한 지적을 하고 있는 서부교회 권사님께도 할 말은 없습니다.
온갖 욕을 해도 그만큼 분노할 만한 발언을 했기 때문에 당해도 이의가 없습니다. 1990년 8월 서부교회와 공회일에서 전혀 상관치 않겠다고 했었는데 그해 11월 이재순목사님이 불신임되자 후임문제가 거론되면서 서부교회 내에서는 서목사님을 모셔야 한다는 권사님측의 주장이 잠깐 제기된 적이 있었습니다.
다른 권사님 한분이 저 권사님이 지금 서목사님을 모시려고 하는데 기독교가 민주주의라는 소신을 가진 목사님이고 또 외부 다른 신학교를 다니는 저런 분이 서부교회로 온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가 없는데 자기로서는 막을 힘이 없으니 직접 한번 말해 달라고 했었습니다. 주일학교 총무 조사님이 한번 말한 뒤였으나 공회적으로 일반 목회자들에 대한 사항은 답변자가 더 정확하게 알기 때문에 질문에 답변하는 원칙으로 그때 똑똑히 말씀을 드렸고, 그 권사님은 다시는 서목사님을 거론하지 않겠다고 이쪽 권사님에게 약속하게 됩니다.
이곳은 1990년 이후 서부교회와 공회의 방향이 어찌 되든 1차적인 주업을 교리 연구로 잡고 있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질문이 있으면 아는 대로 안내와 소개를 드리는 것은 이곳의 연구작업의 일부로 보고 있습니다. 그후 그 권사님 측에서 이곳을 향해 비난하는 소리는 끝갈 데 없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곳은 그럴 줄 알고 발언했고 또 그렇게 비난하는 분들에 대하여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 비난의 사실성은 거의 거짓말이기 때문에 사실 여부 문의가 있으면 해명하지만, 그분들의 비난하는 자세와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습니다.
공회 내부인들이 보는 곳이어서 안방에서 오가는 말씀을 주로 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