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백목사님 사후 신풍에서 15년간 계속한 연구작업이 바로 그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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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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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1.11 00:00
1989년 3월 18일, 신풍교회로 부임했습니다.
1989년 8월 27일, 백목사님은 순교하게 됩니다.
1.공회의 여러 내부 사정이 복잡했습니다. 다 말씀드리자면 복잡해집니다.
당시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공회 내부의 복잡한 모든 문제와 결부가 되어 있으므로 언젠가 1989년의 공회와 서부교회 등에 대한 기록 정리가 되어지면 자동적으로 전체 내용이 나오게 될 것입니다. 현재로는 시급하게 정리할 자료로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1989년 이후 오늘까지 지나온 세월들을 두고 뒤돌아보면 결론은 아주 간단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신풍으로 보낼 때 백목사님은 시무투표로 극도의 혼란에 빠진 신풍교회가 시골교회지만 여러 공회적 의미가 있기 때문에 조기 수습할 방향을 찾고 있었습니다. 백목사님의 해법과 백태영목사님을 비롯한 대구공회에 소속될 분들의 해법이 달라서 갈등이 계속되었고 결국 백목사님의 뜻대로 되어졌기 때문에 현 교회로 부임하게 됩니다.
2.질문이 간단하므로 답변도 간단히 요약하겠습니다. 연구작업의 최적지였기 때문입니다.
신풍으로 보낼 때 백목사님의 말씀은 아직도 귀에 생생합니다, '너는 지금 신풍으로 가지 않으면 앞으로 네가 갈 교회도 없을 것이라'. 백목사님는 사후를 급박하게 보고 있었고 백영희신앙노선에 대한 제 연구작업은 목회지를 겸해야 할 필요가 있었는데, 지금까지 세월을 돌이켜 보면 이곳만큼 이 작업에 전념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다 갖춘 곳은 없습니다.
공회적으로 활동할 일이 있으면 움직이면 되고, 조용히 연구작업만 할 때는 공회의 어느 곳으로부터도 영향을 받지 않는 곳이 이곳입니다. 공회 소속 교회는 교인과 지역으로 서로 오가며 매여있기 때문에 어느 한 곳도 그 교회가 원한다고 하여 공회의 투쟁에서 자유롭게 될 곳은 없지만 이곳은 전혀 그런 염려가 없는 곳입니다. 바로 오늘까지 이곳에서 연구작업에 전념하고 있는 지난 세월이 1989년 이곳으로 부임케 한 백목사님의 결정을 말해 주고 있다고 보겠습니다.
아마 제가 서부교회와 가까운 거리에서 목회를 하게 되었다면 제 본업인 연구작업은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현실로 주어지는 상황을 피해 본 적은 없습니다. 서부교회와 가까운 거리였으면 서부교회의 투쟁 방향은 지금과 전혀 다르게 전개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와 백영희신앙노선의 연구작업을 위해서는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3.공회 노선투쟁의 시각에서 발언하고 싶은 분들이 계실 것이지만, 일단 순수한 면만 보셨으면.
질문자께서는 평범하게 질문하셨으나, 이 내용을 두고는 과거 공회 노선 문제로 전해 들은 내용들을 이곳에서 발언하고 싶은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이번 질문은 질문하신 분께서 원하는 답변을 중심으로 일단 요약했습니다. 원하시는 답변으로 들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번 질문에 대하여 다른 시각이 계시면 항상 환영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운영 주체에 대한 비판은 무제한으로 환영하는 편인데, 이번 질문은 이곳 운영을 맡고 있는 답변자의 신상문제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질문자는 평범하게 질문하셨으나 혹시 다른 발언을 하실 분들이 열람하실 수 있다는 점에서 사전에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제가 현재 목회하는 곳으로 부임하던 1989년 3월은, 6개월 후가 되는 시점에 시작되는 총공회 노선 분열을 미리 압축하고 전개되던 때였습니다. 서부교회 내에서 장차 대구공회로 분열될 핵심 지도부의 사전 운동이 극렬했고, 또한 장차 부산공회(2)를 형성하며 서부교회를 주도할 김권사님의 교회 내 전지작업이 활발했던 때였으며, 부산공회(1)과 (3)은 서부교회와 공회의 노선이 목사님 사후에도 그대로 유지되어야 할 문제로 연일 걱정하고 그 대비책을 마련하던 때였습니다.
따라서, 공회의 노선 분립까지 설명해야 하는 부분은 초두에 설명드린 대로 앞으로 공회사에서 자연스럽게 요약하기로 하고 이번 질문에 대하여는 간단하게 답변드립니다. 부산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저의 본업인 연구작업과 목회 병행에 절대적으로 유리할 상황을 고려한 것입니다. 1989년 3월 부임하던 때는 부산 내 가까운 곳에 있어야 좋을 듯 했는데 그해 8월 이후 전개된 상황을 볼 때는 정반대였습니다. 백목사님의 모든 처리는 기도 중 하나님의 뜻을 찾고 결정하기 때문에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의 처리는 더욱 두렵게 느껴지게 되어집니다.
혹 당시와 백목사님 사후 전개된 노선문제에서 저와 반대입장을 가졌던 분들에 의하여 주장되는 다른 의견이 있으면 자유롭게 발언하셔도 상관이 없습니다. 이곳은 이곳 운영주체에 대한 비판은 조건없이 무제한으로 받고 있습니다. 다만 필요한 대목이 있을 때 이곳의 적극적인 반론이 있는 경우는 사전에 양해를 구해 두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