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그분의 이름을 두고는 몇 가지 소개할 내용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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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그분의 이름을 두고는 몇 가지 소개할 내용들이 있습니다.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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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서윤호목사님 말씀에 은혜를 받았다면, 은혜를 바로 받은 것입니다.

①말씀 은혜에 특별한 면을 가진 분입니다.

공회 인물들을 평하자면 기이한 분들도 있고 화려한 분들도 있고 신비한 분들도 있으며 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엉뚱한 분들도 그렇게 많습니다. 숫자는 많지 않으나 면면의 특별한 점을 소개드린다면 인물열전을 엮기에 불편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중에 서윤호목사님도 아주 특별한 면을 가진 분입니다. 우선 그분의 설교에 은혜를 받으셨다면 은혜다운 은혜를 바로 받으셨다고 생각합니다. 감정에 도취된 연극적 설교인들도 있고 과장이 심한 홍보성 설교가들도 있으나, 서목사님의 설교는 말씀이 주는 은혜 그대로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②간단하게 인물소개를 드린다면

경남 통영 출신으로 현 서부교회 담임 서영호목사님의 동생이며 1945년 출생으로 현 59세입니다. 진주에 있던 호주선교부 소속 선교사의 초기 전도로 집안이 일찍 신앙생활을 하여 4대째 믿는 분입니다. 1959. 부민초등학교 졸업, 1962.경남중학교 졸업, 1965. 부산남고를 졸업하고, 1967-71한양대 사학과, 그리고 1975-78 총신대학원 목사과정(M.Div)을 밟았습니다. 1979. 합동교단 서평양노회 강도사 고시를 합격하고, 1981. 동노회 강도사 인허를 받아 그곳에서 목사가 될 수 있었으나 백목사님의 권유로 공회로 다시 소속하게 됩니다.

1983.8.26. 한희숙 사모님과 결혼하고 1984.4. 공회 소속 경남 합천의 봉천교회에 조사님으로 부임하였으며 1993.3. 부산공회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사모님은 한희숙(1955.1.8.생) 전북 정읍 출신이며, 1982.2. 대한신학교 학부를 졸업하고, 1984. 목사과정(M.Div)을 이수한 다음, 1991년 하와이 소재 International신학교에서 목회학박사(D.Min)를 받았습니다. 사모님 역시 진실한 분이며 외부 교단에서 신앙생활을 했으나 공회 노선으로 현재까지 함께 걷고 있습니다.


③시력이 소경에 가까울 정도입니다. 이 점 때문에 특별한 은혜가 있다고 봅니다.

원래 약시여서 어릴 때부터 시력에 지장이 있었으나 장년기를 거치면서 급격하게 시력이 악화되어 지금은 정상 보행이 어려울 정도입니다. 길과 길이 아닌 곳을 구별할 정도여서 항상 사모님이 동행을 해야 합니다. 30대에만 해도 강단용 대형 성경을 굵은 안경으로 보면서 한쪽 눈을 지면에 바짝 대면 글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소경이라고 하셔도 되는 분입니다.

그러나, 일찍부터 성경을 많이 읽었고 또 읽은 성경을 거의 외우다시피 했고 찬송가는 완전히 다 외워두고 있기 때문에 강단에서 나오는 그분의 모든 발음은 전부 머리에서만 나오고 있습니다. 아마 현재 공회 전체를 두고 성경본문을 그대로 외우는 면에서는 그분이 첫째이고 그 다음이 김응도목사님일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일반 목회자들은 백목사님 설교록을 읽고 정리하여 다시 설교 자료로 사용하지만, 그분은 한번 들은 것으로 그대로 다시 설교를 할 수 있는 정도입니다.

더러운 세상을 보지 않도록 해 주신 이 은혜가 얼마나 감사한지 ...
마음으로 하나님만 보고 살도록 해 주신 이 은혜가 참으로 감사해서 ...

이런 감사가 늘 넘쳐 있는 분입니다. 소경이라 불편하고 목회에 불리하다고 말한 것은 아직 들어보지 못했고 오히려 너무 감사가 넘쳐서 교만할까 염려해야 할 정도의 신앙에서 살고 있는 분입니다. 1984년 합천 봉산교회에 부임하면서 하루 3끼 식사 전부를 다 하기에 어려울 정도로 어려움이 많았고 그때 영양부족으로 오늘처럼 시력을 거의 상실하기에 이르렀으니, 주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치고 걸어가는 분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④1979-1980년 기간에 서부교회 4층에서 생활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1948년 서부교회 첫 개척 때 첫 주일학생이었고 백목사님이 부임하던 1952년 7월의 첫 주일 예배를 소상하게 기억하고 있는 유일한 주일학생이기도 합니다. 백목사님이 부임하면서 시작된 서부교회 주일학교 새벽예배 개근출석학생이기도 했으나 1967년 서울로 공부하러 간 후 서울에서 합동교단에서 신학을 하게 되어, 현재 일반 서부교회 교인들이나 공회 목회자들에게는 합동측 교단에서 넘어온 서영호목사님의 동생으로만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공회와 서부교회 교인입니다. 또 동시에 공회와 서부교회의 신앙노선에서는 허락되지 않는 신학과정을 밟고 합동측 소속을 유지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1978년 총신대 목사과정을 마친 후 백목사님 밑으로 다시 와서 배우기를 원했고 1979년 서부교회 4층이 양성원건물로 운영되던 때 4층에는 강의실 숙소 등이 많이 있었으며 그 중에 제일 중앙 부분 백목사님 거처하는 작은 방 바로 옆에 또 작은 방이 하나 있었으며 그곳에서 현재 남정교회 직원으로 있는 유종환선생님, 이민영선생님, 그리고 답변자와 함께 생활한 적이 있었습니다.

모두 백목사님 밑에서 목회를 소망하던 때였고, 한 사람은 목수로 한 사람은 방위로 한 사람은 막노동으로 그곳에서 생활을 했었고 당시 서목사님은 시내에서 신문가판을 하며 서부교회 마지막 청년방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백목사님 밑에서 목회를 준비하려면 일반 사회인으로서 가장 어려운 과정들을 통과해야 하는 것이 기본이었고 그런 과정을 자원함으로 걸었던 분입니다.


⑤1983년 가을로 기억되는 어느날 서부교회 밤예배에서 '구별'에 대하여 설교한 적이 있습니다.

백목사님은 후배 목회자를 기르려고 일부러 서부교회 설교를 부탁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깊이 기억하고 인용하는 설교는 몇 개 되지 않습니다. 서목사님의 그날 설교는 빌라델비아의 거룩에 대한 설교였고 거룩은 구별이니 모든 것을 따지고 나가야 한다는 면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모두 깊이 은혜 받았던 설교였으며 전형적인 공회 설교였기 때문에 그날 설교로 인하여 서목사님이 비록 합동교단에서 마음대로 신학을 하고 소속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신앙내면에 대하여는 공회 소속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했습니다.

이 설교 때문에 1984년 4월 현재 시무하는 공회 소속 봉천교회로 파송을 받기도 했으며 또한 지금까지 공회 목회자로 사역하고 있습니다. 이 설교를 소개하는 본 뜻은, 설교의 중심이 따지고 믿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는데, 대충 넘어가지 않고 따지고 따져서 옳고 바른 길을 찾아 믿어야 한다는 이 면이 바로 서윤호목사님의 신앙특색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흔히 송종섭목사님이라 하면 용서와 사랑이 특별하다 할 수 있고, 서영호목사님이라고 하면 인품과 강의가 남다르다고 하며, 김삼암목사님은 기도와 인내가 특별한 분입니다. 서윤호목사님의 이름은 따지고 구별하는 면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2.앞에서 소개드린 것이 일반적인 내용이라면, 이제 여러 시각에서 살펴보겠습니다.

①이곳 홈과는 특별한 관계였습니다. 이곳을 아낌없이 지원했던 분입니다.

1991년 서영호목사님이 서부교회로 부임하기 전까지는 이곳과 서윤호목사님의 관계는 아주 특별했었습니다. 담임하던 교회가 너무 어려웠기 때문에 경제면으로 도움받아 본 적은 없으나, 그 외 모든 면으로 답변자를 외부에서 가장 아낌없이 지원했던 분은 바로 서윤호목사님이었습니다. 교정, 출간 자문, 전기 작업에 필요한 자료 구술, 설교록 내의 성구 분류를 비롯해서 그 정성과 성의와 중심은 이곳이 감당하기에 벅찰 정도였습니다.

답변자를 비롯한 목회연구소 연구부로서는 그분의 시간, 기억, 노력, 사생활까지도 연구부가 원하면 다 사용할 수 있었으니, 본 연구회 외부인으로서 이만큼 이곳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친 분은 없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공회내에서 연구부 인원과 작업에 너무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서윤호목사님은 서영호목사님과 형제가 아니고 이곳과 형제라고 취급할 정도였습니다.


②이곳과 그렇게 가까웠던 연결은 '백영희신앙노선'에 대한 평가, 단 한 가지였습니다.

연구소 직원들의 최고 연령이 답변자인데 서목사님은 연령적으로도 이곳과 어울릴 수 없는 12년 연배이고, 외부 교단과 신학을 거쳤던 이력도 이곳과 함께 시각을 맞추기에 어려운 점이며, 그 외 거의 모든 면에서 함께 할 수 있는 공통점은 없었습니다. 단지 이곳이 이곳 신앙노선에서 걸어가는 도중, 이곳을 향해 더 빨리 걸어가지 않는다고 바로 비판한 분은 그분 뿐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백목사님 교훈과 교리에는 그 어느 누구의 것이라도 섞는다면 이는 변질 타락된 것이니 쓸모가 없어진다는 질책은 오직 서윤호목사님에게서 받았을 뿐입니다. 이곳은 그분 말을 신봉하지는 않습니다. 백목사님께 받은 작업 지침과 방향을 가지고 있고 또 이곳이 깨닫는 것도 그 방향이 옳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곳의 걸음을 두고 '백영희 우상화'라고 비판하는 분들은 수도 없이 만나 보았으나, 이곳을 향해서 백목사님 교훈과 교리에 답변자의 뜻과 생각이 단 하나라도 들어가면 안된다며 오랜 세월 수도 없이 귀에 못이 박히도록 했던 그 중심, 그 절규에 대하여는 이곳의 중심이 다 기울어지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혹, 그분은 스스로 합동교단으로 나가서 양쪽 소속을 함께 가지고 있고 또 그분과 그분 주변은 백목사님 신앙노선에서 반대방향으로 걷고 있다는 점을 들어 이곳을 아끼는 주변에서 그분과 접촉을 조심하라고 경고한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이곳 역시 그분의 진정한 중심에 대하여는 단정할 정도로 확신을 가져 본 적이 없으며 사실 그 방면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곳이 집중하는 백영희신앙노선의 교리와 교훈 정리 작업에 대하여 송곳을 들고 토씨 하나 표현 하나까지 시비를 하며 진품 여부를 가리고 또 100% 순도를 측정하겠다며 따지고 또 이 작업에 바치는 사람의 내면 세계까지를 조심해야 한다고 잔소리를 해 준 분은 그분 뿐입니다. 이 면 하나 때문에 이곳은 그분과 오랜 세월, 가장 가깝게, 대화를 주고 받고 또 협력과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③현재, 서윤호목사님의 위치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 이상입니다.

목사님은 일찍 서부교회를 떠나 서울에서 생활했고 그후 시력관계와 시골교회에서 20여년 목회하고 있는 관계로 서부교회를 비롯하여 일반 교인들과는 접촉이 거의 없는 편입니다. 그러나 목회자들 세계에서는 숨은 실력자로 정평이 있습니다. 한양대 사학과와 총신대 목사과정을 정통으로 거쳤는데 특히 그분의 기억력과 비판력은 공회 내에서 필적할 분이 현재로는 없었습니다. 즉, 그분이 원하면 그분과 맞서 반론을 펴서 그분을 능가할 목회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 시력이 정상적이고 또 공회 활동을 원했다면 일반 교인들에게도 가장 많이 알려진 목회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목회자들은 그분과 공사석에서 많이 접촉할 수 있었고 그분과 접촉한 분들은 성경, 역사, 교리, 사회상식 등 모든 부분에서 공회 내 최고 수준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모두들 그분이라면 어려워합니다. 공회 최고령 원로목회자들의 젊은 시절을 그분은 자기 유아시절 기억으로 능가하고 있으며, 신학에 기초가 전혀 없는 교역자들에게는 그분의 신학상식으로 능가하고 있으며, 목회자는 무엇보다 성경이고 특히 공회 교역자는 백목사님 설교 자료와 그 인용에 권위가 있는 법인데 이 면으로도 그분은 공회 목회자 중 최고입니다.

이런 숨은 실력을 알기 때문에 서울공회 대구공회 부산공회(2)를 가리지 않고 목회자들은 서윤호목사님을 그렇게 어려워하고, 혹 그분이 발언을 하게 되면 맞서서 반론을 잘 내놓지 않으려 합니다. 생각도 못한 과거 기록과 자료 제시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눈은 감았으나 마음의 눈의 시력은 탁월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대구공회와 부산공회(2)의 최고 지도부를 구성하고 있는 목회자들에게는 고문 지위를 실제로는 가질 수 있는 분입니다. 특히 부산공회(2)는 4명의 김목사님들이 4개의 기둥으로 떠받치고 있을 것인데 그분들에게는 아마 거의 결정권을 가진 정도의 발언권을 행사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부산공회(2)의 성격 규정, 부산공회(1)이나 대구공회를 상대하는 전반적인 자세, 공회간 발생되는 여러 사건들에 대한 분석과 해석 등을 두고는 그분의 발언이 부산공회(2)의 방향이 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다만 교역자들의 상호 활동이나 교인들을 움직이는 방향에는 앞에서 말씀드린 점 때문에 거리가 멀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산공회(2)의 실무 행정 집행부를 4명의 목사님들이라고 한다면 부산공회(2)의 정치적 판단과 전략적 방향은 그분의 역할일 것입니다.


④이곳과는 1991년 서목사님 서부교회 부임 이후, 연락이 끊어졌습니다.

백목사님 생존 마지막 10여년은 앞서 말씀드린 정도의 관계로 이곳과 그분의 관계는 그렇게 가까웠으나 1991년 서부교회에 서영호목사님이 부임하고 이어 부산공회(2)가 출발하게 되면서부터 이곳과는 그동안의 모든 관계가 자연스럽게 정리되었습니다. 한 길로 왔으나 삼거리를 만나게 되었고 이곳과 그분의 가는 걸음이 같을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그 후는 알지 못하므로 전반적인 면을 고려하여 짐작하는 정도에 그칠 뿐입니다.


3.서부교회 중간반 사경회 강사로 모셨다면, 서부교회로서는 좋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①부산공회(2)에 소속한 서부교회로서는 적임 강사를 모셨다고 봅니다.

부산공회(2)에 속한 서부교회로서는 그분만큼 좋은 사경회 강사분을 모시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최근 현황은 잘 모르지만, 아직도 시력이 소경 수준일 것이니 가속도로 더러워지는 세상에서 여전히 2-30여년 전의 맑았던 시대를 봤던 기억만 그 속에 있을 것이고, 세상과 접촉할 일도 또 방법도 별로 없기 때문에 성경과 설교에만 늘 깨어있는 심령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특히 부산공회(2) 서부교회는 타 교단과 교류도 있고 또 외부 신학교로 진학하는 직원들도 있으며 이런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자라나오는 학생들에게 그들이 걸어갈 방향으로 암시가 될 것인데, 이들에게 1970년대에 이미 국내 최대 교단의 중심부를 거쳐 보았던 그분의 경력과 경험은 부산공회(2) 내에서 아마 유일할 것이고 이런 점에서도 여러 면에서 보탬이 될 것입니다.


②마지막 질문 내용에서 '백목사님 교훈에 대한 사랑'이 특히 많았다는 면은 반가운 일입니다.

현재 부산공회(2)에서는 외부 신학교를 기웃거리는 등 가출 심리가 많다는 점이 파악됩니다. 가봐야 별 것도 없는데 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기대심리가 지나치게 되고 이는 약간 취한 사람의 환상같은 심리 효과로 이어지며 자칫 한 순간 발을 잘못 디뎌 평생 사람을 버리는 결과로 나타날 수가 있습니다. 이미 그런 경우를 각 교회 홈을 통해 허다히 보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이곳 답변자와 같은 사람이 백목사님 교훈을 강조하면 반발심으로 갈라져 나간 이스라엘 10지파와 같은 결과를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이 그렇게 강조한다면 너무 좋게 들리고 또 경청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한 무리가 될 때 가지는 가장 큰 장점 중에 하나입니다. 아직도 백목사님 교훈에 대한 사랑이 넘치고 계신다면, 잠시 천재지변 때문에 이곳과 전화선이 끊어진 정도라고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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