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과 역사 연구에 조심할 일 2.- 백목사님 단점 연구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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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30 00:00
1.양해 말씀
①이 홈 개설 5년만에 가장 큰 숙제를 안겨준 문답입니다.
백목사님의 단점에 대하여 오고간 윗글 내용에서 답변자의 답변 내용은 그 분량도 많고 또 다듬어지지 않은 표현이 곳곳에 너무 많았습니다. 특히 내용 자체가 이 홈에서 일반적으로 소개하거나 문답으로 오가는 내용과는 너무 다른 차원의 것이어서, 답변자로서 크게 부담을 느끼고 있습니다. 지적하신 분께는 일반 방문인으로서 순수하게 또 단순하게 한번쯤 발언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이해하지만 답변자로서는 이 홈 운영 5년 동안 답변한 것 중에 가장 어려운 숙제였습니다. 많은 글로 답변을 드려놓고 다시 글을 덧붙이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②지적하신 분께 실례가 된 표현은 양해를 구합니다.
지적을 하시거나 제안하시는 분들이 있을 때 이 홈은 반론을 하거나 토를 다는 것은 최대한 피하려고 조심해 왔습니다. 성경을 아는 사람이라면 가장 조심해야 할 부분이고 이 홈 운영의 기본 자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답변을 드리고 어떻게 처신을 하고 어떻게 이 제안을 반영해야 할지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답변을 두고 근심이 많았습니다. 이 홈을 지적하시는 분께만은 불편을 느낄 수 없도록 해드리고 싶습니다. 이 홈이 집중하는 '연구'가 진정한 '연구'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우선 과제이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이 홈은 이 홈이 연구 대상으로 집중하는 이름이 이 홈을 좋아하는 분들과 답변자에게 담임목회자와 같은 위치에 있기 때문에 교인이 자기 목회자에 대하여 가질 존중과 조심을 크게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윗글의 지적은 본 답변자로서 가장 답변에 어려움이 많았고 윗글의 답변 중 읽는 분들이 마음이 상할 부분이 많을 듯해서 또 한 말씀을 추가해서 올리게 되었습니다. 이 홈의 방향이 너무 일방적이고 편협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분들께는 추가해서 드리는 설명이 위로가 될런지 아니면 공감을 느끼게 하는데 필요할런지 아니면 더욱 불을 지펴놓을런지 모르겠습니다. 추가 설명 중에는 답변자의 개인사가 있어 특별히 홈 전체의 분위기를 고려하여 너그럽게 양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③아무리 생각을 해도, 백목사님에 대한 단점 연구는 너무 많았고 너무 심했습니다.
사람이라면 비록 성경의 성자라 해도 단점이 있고 또 장점도 있기 때문에 우리는 상대방의 장점을 먼저 살펴본 다음 그에게 있는 단점도 살펴 자기 신앙에 좌우와 앞길을 고루 참고해야 할 터이고, 비록 원수라 해도 또 탈선한 롯과 같은 대표적인 인물이라 해도 우리는 그들 속에 있는 장점을 먼저 살피고 그 단점을 연구할 때는 없는 단점을 만들어 덮어씌워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백목사님에 대한 연구는 심해도 너무 심하다고 표현할 만큼 단점 파헤치기 일변도였다고 비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공회 외부에서 나온 비판은 1960년 이후로 지금까지 아직도 이단 이름 주변을 애매하게 맴돌고 있습니다. 그래서 '총공회'나 '백영희'라는 이름 때문에 전국 교회들이 교인 유입과 전도활동에 겪어온 피해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했고 현재 공회 내부에서조차 '총공회' 이름은 밖에다가 내걸지 않는 것이 분명한 현실입니다. 백목사님 생전부터 이 이름 때문에 얼마나 전도가 안 되는지 공회 내분의 첫 주제가 될 정도였고 목사님 사후에는 공회 소속 교회의 4분의 3 이상이 총공회 이름을 떼버리고 있다는 것을 보면 외부에서 백목사님에 대한 단점 연구는 해도 너무 했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최근 백목사님의 장점에 대한 평가가 급격하게 호전되고 이 홈을 통해 전파되는 영향력은 적지 않다고 보고 있으나, 여전히 한국교회 전체를 두고는 과거부터 집적된 악평이 현재 나타나는 호평을 압도하고 남을 정도입니다. 특히 호평은 주일학교로 유명하다더라는 뉴스적 인식에 주로 덕을 보았고 또 최근 설교자료나 교리를 통해 깨달은 사람들은 급격하게 늘고 있지만 현재 시점에서 총량을 비교한다면 아직도 백영희와 총공회라는 이름은 '백파 이단'이라고 귀속말로 주고 받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특히 과거를 아는 사람일수록 더욱 이런 현상은 극심합니다.
이렇게 된 모든 원인이 외부 교계가 백목사님에 대하여 연구할 때는 오로지 단점만을 연구했고 결과의 사실여부를 떠나 그 연구 결과를 공사석을 막론하고 무차별로 살포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없는 단점을 만들어서라도 열거를 한 정도이니 있는 단점이야 얼마나 잘 연구했겠습니까? 이런 단점 연구에 대하여 우리는 속사정도 모른다고 말할 수 없는 치명적인 인물들이 개입되어 있습니다. 즉 이런 운동의 선구자를 자처한 한종희목사님은 서부교회 핵심 교인이며 목회자였고 서부교회 경제와 백목사님 사택 문고리 움직임까지 24시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또 누가 봐도 총공회 2인자라고 할 정도의 인물들도 예외없이 백목사님의 단점을 발견하고 이를 비판하며 탈퇴했으니 1960년대말과 1970년대말의 탈퇴 사건은 그 의미가 이런 정도였습니다. 1980년대 말의 집단 탈퇴 때는 총공회 내부의 각계각층이 너무 많이 망라되어 있었고 또 탈퇴에 동참은 하지 않아도 내부 동조자들의 숫자가 3분의 2에 이를 정도였으므로 백영희라는 이름과 총공회의 비리 단점 모순은 어떤 형태로든지 가려질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반대측에 있었던 분들은 시도 때도 없이 불신자가 보든 말든 상관없이 머리속에서 알고 느끼고 생각했던 것은 모조리 다 토해내고 있었습니다.
④그런데도, 백목사님에 대한 장점 연구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단점이 많다 해도 백영희라는 이름은 그래도 한국교계의 평균수준 지도자 정도는 된다고 해야 객관적인 표현일 것이고 한국교회의 선교백주년 기념사업회 선정 6대교회로 선정된 정도인데, 이렇게 단점에 대하여서는 수십년간 파헤쳐지고 있는 동안, 그에 대한 장점 소개는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공회 내부인으로서는 해도 너무 했고, 심해도 너무 심했습니다.
어느 한 중견 교회 담임목사만 되어도 그를 좋게 소개하고 그를 돋보이게 사진으로 촬영해서 일반 교인들이 그 교회를 다니고 싶은 마음이 생기도록 홍보하는 것은 한국교계에서 없는 경우가 없을 터인데, 백목사님에 대한 소개는 전무하였습니다. 그에 대한 이력을 처음 적어 발표했던 것이 그분 장례식 순서 준비 때문에 답변자가 적었던 것인데, 서부교회와 총공회를 가장 잘 안다는 분들에게 확인해서 기록한 내용이 후에 살펴보니까 거의 다 틀린 내용이었습니다. 그분의 장점 연구는 커녕 그분에 대한 정확한 연혁과 이력조차 살펴본 사람이 없었다면 총공회라는 이 집단은 다른 이유 때문에 이단이 아니고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이단이라고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총공회는 백목사님 신앙노선 때문에 이력을 기록하지 않고 광고나 홍보 활동을 하지 않는다고 반론할 분들도 계시겠지만, 이 신앙노선이 옳다고 생각해서 그 면을 지키는 사람은 답변자 알기에 다섯 손가락 헤아리기가 어렵고, 자기들을 알리고 자기들 가정과 자녀를 위해서는 타 진영처럼 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왜 자신들의 신앙지도자며 자신들에게 있어서는 부모와 같은 입장에 있는 분에 대한 이력 연구와 경력 기록과 장점 살피는 일이 없었느냐고 비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김삼암목사님처럼 이종희목사님처럼 자기 선전이나 자기 이권을 위해서는 아무 것도 조처하지 않고 오로지 말씀으로만 걸어간 분이 백목사님 과거사를 알지 못한다면 논리적으로 맞는 말이고 잘한 행동입니다. 그러나 자기 이력은 철저하게 관리하고 자기 홍보를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타진영에 가서 신학공부를 정식으로 해서 수백년 수천년 전의 인물들이 어떻게 살았으며 언제 어떤 주장을 했으며 그들이 교회사에 끼친 공로가 무엇임을 공부하고 살펴본 교수들과 목회자들이 백목사님의 장점을 살피거나 소개하는 것은 양심에 어긋난다고 말한다면 그 입을 주먹으로 쥐어박아야 할 상대방이지 그런 사람들과 입을 가지고 입을 상대로 말한다는 것은 시간낭비라고 생각합니다.
총공회에 해외 유학출신 교수들이 있고 신학의 모든 종류를 소개하고 강의하는 과목들이 있었으나, 백목사님 생전에도 사후에도 양성원에서 백영희에 대한 장점을 연구하거나 최소한 그 이력의 객관적 소개를 위한 과목은 아직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왜 칼빈은 출생연도에서 사망연도까지 그의 행적을 낱낱이 공부해야 하고 총공회 양성원에서 백영희의 이력과 소개는 하지 않았는지요? 양성원에서 그런 교육과 과목과 강의가 없었다는 것은 백목사님에 대한 단점이 너무 많고 그런 사실을 너무 잘 아는 사람이 많아서 내부에서조차 차마 부끄러워서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총공회 간판 사용이 부끄러워 예배당 건물에서 내려버린 이유이고, 이것이 총공회 교인들과 목회자들이 외부 교계 인물들을 만났을 때 총공회 소속임을 자랑스럽게 밝히지 못한 원인입니다.
이 홈의 답변자 양심에는 그렇게 못났으면 버려야 하고, 버릴 수가 없다면 자랑스러워서 얼마든지 소개할 수 있는 수준이 되도록 마구 개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이 노선이 자랑스럽고 백목사님이 예사로운 인물이 아닌 성자라고 생각한다면, 성자를 성자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다 죽지는 않았다는 표시가 몇 번 있었습니다. 비록 백목사님 사후 세월이 지난 다음에 있었던 일이지만 송종섭목사님께서 연세대학원에서 백목사님 관련 연구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고 그 후계자되는 이병철목사님께서도 대학원에서 관련 논문 한 편을 제출한 것이 이 홈의 /초기화면/보관자료/연구서적/에 소개해 두고 있습니다. 만일 이렇게 나온 몇 편 때문에 백목사님 장점연구가 공회 안에서도 있었다고 한다면 쌀 가마니에 돌 몇 개 나온 것을 가지고 돌 가마니라고 우기는 수준일 것입니다.
⑤아무리 생각해도 총공회 내부인 전부는 미쳤다는 것이 이곳의 내심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리 공회인들은 우리가 다 함께 백목사님에 대하여 할 수 있는 비판은 다 했고 '그렇다 하더라'는 말만 듣고도 백목사님에 대한 비판만 들리면 간단하게 사실 확인을 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부러 모른 척하고 '그렇다'고 단정해버리고 말을 넘기고 넘겼습니다. 백목사님에 대한 단점 비판은 부산공회 교역자회의에서 서부교회 현재 최고 실세 권사님이 공석 발언을 통해 백목사님의 경제 부정을 직접 언급했던 일까지 있었고 이런 말을 하도록 하나님께서 오늘까지 살려주셨다는 첨언까지 했는데도 부산공회 교역자 단 한 사람도 그 말에 대하여 이의제기나 오류의 가능성을 제기하지 않았던 사실이 있습니다.
정상대로 진행된다면 적어도 부산공회 내에서 그것도 서부교회 범위 안에서는 백목사님에 대한 발언이 비록 실수로라도 그 정도가 되었다면 사과 정도에서 그칠 것이 아니고 모든 현직에서 사표를 내야 할 것인데도 발언 당사자는 그후 오늘까지 서부교회 주인이 되어 있고 그 당사자가 지원하는 측이 현재 서부교회를 점령한 상태에서 산하 교인들에게 백목사님 매도에 열을 올리고 입으로 다시 한번 옮기지도 못할 내용으로 세뇌교육을 시켜왔습니다.
무슨 10대 초반에 철이 없어 한번 짖어볼 수 있다고 한다면 이제 20대 들어서 철이 들면 그때를 후회도 하고 할 때입니다. 물론 최근 부산공회(2)나 대구공회 홈에서 백목사님에 대한 이름이 좋은 뜻으로 새로 되새겨지고 있는 현상을 보며 반갑기 그지 없습니다. 그러나 합동측이 신사참배 문제를 두고 고신에게 못할 일을 다 해놓고 한국교회 교권을 공고하게 쥔 다음, 이제 고신으로 인하여 합동측에게 별다른 영향이 없을 세월이 지나고 나니까 신사참배 문제에 대하여 자기들 초창기 선배들이 잘못 처신한 것이 있다고 발언하고 있습니다. 이런 발언은 현재 이권다툼에서 아무 불리한 것이 없다는 판단이 선 뒤에 나오는 것이어서 못된 송아지 엉치에 뿔난다는 모습으로 보이지 양심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과거 대구공회에 속하여 백목사님의 단점을 한도 없이 욕하고 듣고 다시 전달했던 분들은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백목사님 장점 연구에도 균형을 맞추었어야 했던 위치에 있었던 사람들도 회개해야 합니다. 이것이 이 홈의 근본입장입니다.
현재 이 홈이 백영희목사님의 신앙노선 연구에 집중하는 것은 일반 신학적 방법이 아니고 백영희신앙노선적인 시각과 방법에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타 신학교가 어느 인물에 대하여 장단점을 함께 연구한다 해도, 이 홈은 죽은 신학교가 죽은 신학자에 의하여 죽은 신학방법으로 전개하는 방법을 거부합니다. 이 홈이 은혜를 받은 대상에게는 은혜의 기관으로서 상대하는 조심과 존경을 잃지 않고 싶고, 그렇다고 해서 없는 내용을 만들어 미화하는 일은 하나님 두려워서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이미 교계와 공회 내부에 더 이상 재론할 것도 없을 정도로 백목사님의 단점연구가 진행되었다면 이제는 그 지적된 부분 중에서 어떤 면이 잘못 표현되고 잘못 지적되었는지를 연구하면 할 만한 가치가 있을 상황이라고 봅니다. 총공회 분열 과정의 투쟁을 보며 양성원 교수 중 한 분이 표현했듯이 '교회 싸움, 그것 재미있는 것입니다.' 남의 집 불구경하듯 학자로서 교회 전투 현상이 그렇게만 보였다면 그 인간은 불신자가 교회 일을 보듯 본 것입니다. 그 가정 주일학생을 새벽기도 오라고 전화를 했다가 새벽에 전화하는 것은 고차원의 기독교 도덕에 어긋난다는 항의 편지를 받고 백목사님께 누구 집이라고 하지 않고 읽어드린 적이 있었는데 백목사님 표현이 '불신자니까 의례 그렇게 하지 않겠느냐, 불신자 가정에는 다음부터 새벽기도 챙기는 전화하지 말라'고 들은 적이 있어 답변자 머리속에는 지금까지 그 가정을 향해서는 불신자 정도로 상대하고 있습니다.
현재 총공회 내부인으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과 우리에게 주어진 복음의 가치성은 대충 상식적으로 알고 있을 것입니다. 몰랐다면 이번 설명으로 대충 짐작하실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백목사님 단점 연구가 그분 연구의 객관화에 필요하겠는가, 아니면 장점 연구만 집중적으로 노력해야 전체적으로 균형이 잡히겠느냐, 아니면 이리 치우치든 저리 치우치든 상관없이 이 홈은 이 시대에 전달된 이 노선의 기초 자료를 가지고 우리 나갈 길을 배우고 그 연구에 집중하되 그 연구를 위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단점이 나타나고 그기 대한 연구가 필요하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겠는가? 이 홈의 입장은 3번째 입장입니다.
2.아무래도 답변자에 대하여 개인사를 몇 가지 말씀드려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⑴이 답변의 원인이 된 분의 지적이 사실 그 분만의 지적이 아닙니다.
때때로 답변자는 이 홈에서 제공하는 자료에 호의를 가진 분들에게 개인 전화나 이메일을 통해 '백목사님과 어떤 관계냐'는 질문을 받습니다. 물론 질문하는 분들은 외손주나 되는 가족 정도로 짐작을 하고 있었습니다. 답변자의 노력과 연구 방향이 외부에서 볼 때 백목사님 지지 편향이 극심하기 때문에 나오는 현상일 것입니다.
그냥 단순하게 이 홈을 백목사님 관련 자료를 참고하는데 아주 필요한 홈으로 또 답변자를 그 수고하는 내부인 정도로만 보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 관심조차도 없이 의례 백목사님 쪽에도 사람이 많을 것이니 그 중 한 사람이 앞서서 그런 일을 하겠지 하는 정도로 무관심한 분들도 많습니다. 가끔 앞에 말씀드린 것처럼 집안 식구 중 어떤 관계냐고 묻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곳 방문하시는 분 전체를 상대로 할 때는 필요없는 소개이겠지만, 이 홈의 백목사님 지지 편향이 심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는 답변자의 개인 소개를 일부 해야 할 필요를 이전부터 느껴왔습니다. 답변자에게 백목사님을 개인적으로 이렇게 지지해야 할 세상적 이권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신다면 그분들은 자기들이 살아온 경험으로 그렇게 짐작할지라도 이곳 운영자로서는 세상 일반 그런 경우와는 다르다는 점을 한번 정도 설명해야 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⑵답변자는 이 복음과 그 반대편을 동시에 겪은 세월이 있었습니다.
①집안으로는 5대째, 답변자 개인적으로는 3대째 70여년 가까이 이 노선에 있습니다.
답변자는 할머니 부부가 봉산교회를 개척했고 부모님이 창동교회와 양혜원교회를 개척했으며 이 교회들은 총공회 소속 교회 설립 순서 10여 교회에 들어갑니다. 총공회 신앙노선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1939년 이래로 지금까지 집안 식구 거의 전부가 총공회 내 전국교회에 있습니다. 총공회 목회자 중 60세 이상 되는 분으로는 답변자 집안과 개인적으로 말못할 깊은 사연들을 가지지 않은 분들이 없을 정도입니다. 답변자는 총공회 안에서 출생했고 자랐고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지금 5대째 순수 총공회 집안으로 대를 이어 내려가고 있습니다. 마치 평양에서 나서 자라고 평양의 주요 요직에서 현직 활동하는 사람으로 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②그러나 성장과정에서 총공회 노선의 완전 정반대 환경을 겪게 됩니다.
답변자는 1963년 우리 나이로 7세 때 거창초등학교를 입학하고 1년을 다녔습니다. 그다음해 1964년, 거창읍에는 거창고등학교에서 경남도에 몇 개밖에 없는 사립초등학교를 학교 내에 개설하면서 첫 입학생을 모집하는데 부모님은 기독교 학교에다 미국식 사립교육을 시킨다는 말을 듣고 이 학교에 재입학을 시킵니다. 좋은 교육에 대한 열망이었겠지만 부모님으로서는 이런 기독교계 교육기관이 자기 자녀를 어떻게 만들어놓을지 전혀 알지 못할 수준이었습니다. 이후 온 집안 일가 친척들은 답변자 뒤를 이어 이 교육기관을 다니게 되고, 현재까지 답변자 6촌 안에서 이 초등학교 출신이 30명이 넘고 이 고등학교 출신이 20명이 넘습니다.
아다시피 거창지방은 기독교 신앙의 가장 골수였던 고려파의 주 근거지였고 동시에 고려파보다 더 철저한 총공회의 출발 지역입니다. 현재까지도 총공회교인의 출신 지역별 현황에서는 이 지역 출신은 월등하게 많은 비율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이 지역은 현재까지 우리 사회가 알기로 기독교계의 가장 성공한 교육운동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둘의 신앙방향은 끝에서 끝만큼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에덴동산이 설화인지 실화인지 모르겠으나... 예수님이 결혼을 했다는 최신 신학계의 소식이 있는데 .... 결혼 그런 것을 꼭 먼저 해야 합니까? 조금 살아보고 나서 결정하면 안되나요! .... 술이 왜 죄가 되냐, 주일은 쉬라는 날이지, 교회에 열심히 다니라고 만든 날이 아니라, 고려파는 바리새파, 총공회는 아주 더 독한 파 .... 이런 발언에서 그곳의 분위기를 짐작하실 것입니다.
1974년 엑스폴로 운동이 이 학교에서 개최되었고 당시 4영리 전도법을 배웠는데 요즘 2000년대 들어서 우리 총공회 안에서 이런 전도법이 총공회가 몰랐던 기발난 아이디어라 해서 교회마다 홈페이지에 올려놓거나 또는 청년 학생들에게 교육시키는 것을 보면 답변자는 그런 세계를 30년 전에 또는 40년 전에 이미 정규 과정을 거친 그 방면의 대선배가 되는 꼴입니다. 1964년 초등학교 입학한 첫 해 성탄절에 같은 학교 다니는 여학생 1명과 답변자는 'Jesus loves me this I know(예수 사랑하심은)' 이라는 영어찬송을 창동교회 순서에서 맡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학교에서 배웠던 것입니다. 학교는 1964년부터 남녀를 나란히 앉혔고, 고교 때는 3년간 한 학급 안에 여학생과 남학생으로 공부하게 됩니다. 전국 남자 고교생들이 머리를 밀고 다닐 때 우리는 스포츠머리를 했고 남녀 찬양대 연습을 하면서 별별 짓을 다했던 학교입니다.
공립학교 1개반이 65명에서 70명까지 되던 시기에 이 학교는 45명으로 정원을 맞추었고, 미국초등학교 영어교과서로 1학년 때부터 영어를 가르쳤으며 영어교사는 당시 정일권국무총리 가정에서 영어를 가르쳤던 분이며 음악교사가 따로 있었는데 연대음대를 나온 분입니다. 선교사들의 영어설교와 학교장의 동시통역을 흔하게 접했고 그때 배운 영어노래 복음성가 포크댄서는 지금까지 어떤 교회에서 어떤 신식 프로그램이 나와도 당시 그곳에서 겪고 본 것에 비하면 너무 후진적이라고 느껴질 정도입니다. 백목사님에 대하여 기억에 남을 이야기를 해보라고 한다면 한도 없겠지만 이 학교에 관련된 특별한 점도 한없이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한곳은 펄펄 끓는 가마솥이고 한곳은 얼어붙는 얼음냉동고라는 점이 다른 점입니다.
③극과 극을 달리는 양쪽의 신앙환경 속에서 답변자는 어느 쪽으로 기울어졌겠습니까?
당시 답변자는 학교에서 신앙활동에 나서 본 일이 없습니다. 일반 학생들이 학교 교육 과정에서 밟아야 하고 단체로 움직여야 하는 일만 했습니다. 그렇게 방관자처럼 뒤에서 끌려 다니면서 본 것만으로도 아직 현 우리 교계에서 잘 나간다는 교회들의 활동을 볼 때 그때 겪었던 정도에 미치는 경우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교단이나 어느 교회에서 무슨 프로그램으로 난리가 나고 소동이 났다 해도 별로 서툴게 보거나 낯선 것으로 접해 본 기억이 없습니다. 40년전 30년전에 지겹도록 거쳐봤기 때문입니다.
당시 답변자는 총공회 내부 깊숙한 교회를 다녔고 총공회만 알고 사는 가정에 있었지만, 신앙으로는 어릴 때부터 모든 것을 반항적으로 상대했기 때문에 교회나 가정의 신앙영향을 받아 본 기억이 없습니다. 단지 그 가정과 그 교회는 어떤 분위기이며 그곳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알고 숨을 죽이고 있었을 뿐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답변자 귀에는 양측을 객관적으로 비교할 수 있게 됩니다. 미국의 청소년들에게 적용되던 최신식 교회 운영법과 숨이 콱 막혀 죽을 지경인 총공회 교회 운영법을 함께 거치면서 답변자에게 남겨지는 것은 총공회의 단점들이 거의 전부였고 총공회의 장점이란 유명한 백목사님이 우리 교단의 지도자라는 사실 하나였습니다. 왜 우리 교회 교역자들은 백목사님 설교를 필기해서 예배시간에 불러주기만 하는가? 이런 것이 당시 답변자에게 크나 큰 불편과 불만이었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대신 학교에서는 요즘 미국에서는 10분 설교도 길다고 더 짧게 하는 운동이 벌어진다며 달변가 그분이 외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당시 총공회를 비판하는 외부의 비판도 마음껏 들을 수 있었고 또 교회내에서 좀 배운 축에 들어가는 젊은 선배들이 공회의 단점을 꼬집어 뒷말들을 늘어놓을 때, 답변자로서는 어느 쪽에 더 기울어질 것인지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서부교회에서 분리하자 말자 남정교회와 서정교회가 변모해 나간 과정... 기타 지교회들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이 더 일찍 그렇게 했겠지만 앞에 가나 뒤에 가나 총공회 내부식에만 저려있던 이들이 외부 교계식으로 모습을 바꿀 때까지의 잠재된 불만, 이 노선에 대한 반대 발언, 그런 심리, 그리고 최신식으로 변화했을 때 느끼고 그런 변화에 익어져가는 과정, 이 모든 것을 답변자는 어느 한 쪽에 서서 그쪽 말만 듣고 그쪽 편만 듣지 않고 양쪽을 다 같이 비교하고 비판할 수 있을 정도의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총공회의 단점 또는 문제점이라는 것은 바로 백목사님의 문제점입니다. 이런 점에서 답변자는 1980년대 후반에 나타나기 시작한 총공회 내부의 반항적 운동이나 1990년대 이후 본격화된 변화의 바람보다 적어도 20여년 또는 30여년 전부터 그런 중앙에서 있을 수 있었습니다. 만일 인간이 생각할 수 없는 그런 하나님의 직접 인도와 충격이 아니었다면, 아마 총공회 반대운동에 누구보다 앞장설 수 있는 여지가 답변자에게는 많았고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여건이 너무 많았습니다. 당시의 자세한 과정을 다 적을 필요는 없고 대충 생각할 수 있는 몇 가지 중요한 문제들을 살펴봤습니다.
④답변자는 복되게도 그런 암흑가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나, 그후 못된 습관이 생겼습니다.
백목사님에 대하여 일반인의 상식 이상으로 표현되거나 알려지는 내용이 있으면 그 뒤를 반드시 살펴보는 도마의 신앙적 요소였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로 이 신앙노선에 대한 확신은 가지게 되었고 총체적으로 이 노선은 기독교 전체 차원에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결론은 쉽게 낼 수가 있었는데, 세부 구체적이고 자세한 항목에 대하여는 마치 세상 불신 조사기관이 객관적 증거나 자료를 확보하려고 뒷조사를 하듯 속으로 혼자 엿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백목사님이 위천교회 주일학교의 피흘린 투쟁사를 언급하면, 과연 그런 시대에 그런 어린 학생들이 정말 그 표현만큼 그런 투쟁을 했겠는가 아니면 목회차원에서 후배들에게 힘을 내라며 옛 이야기를 흥미롭게 적은 것인가? 변판원선생님의 그런 순교가 과연 역사적 사실이며 그 순교의 과정이 그렇게 전개되었는가? 고려파에서 백목사님의 영향력이 고려파 전체의 판도를 바꾸어놓을 정도였는가? 백목사님에게 소경이 눈을 뜨고 말 한 마디에 소경이 되는 그런 사도행전 기적이 실재로 있었던가? 괜히 당시 분위기가 집단 최면 상태가 되어 모두들 헛것을 본 것은 아닌가? 백목사님이 가족 내부관계를 정말 그토록 철저하게 했던가, 그래서 미국으로 자녀들이 움직인 이유가 백목사님의 은밀한 지원을 받아 그 자녀들의 세상진로를 위한 것이 아니라 도피하는 차원이 된 것이라고 해야 하는가? 사위를 후계자로 삼은 것은 과연 백번 천번을 생각해 봐도 봐주기가 아니었는가?
매사 이렇게 뒤를 살펴보고 확인을 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고 확인이 된 것은 확정을 해도 그렇지 않은 것은 또 백지 상태에서 다시 조사하는 습관을 가졌는데, 답변자는 성장 배경 때문에 이 모든 사항을 답변자가 마음을 먹으면 거의 다 해당 당사자나 결정적인 목격담을 전해 줄 사람들과 직접 만나서 관련 이야기를 다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답변자가 확인을 해 나가는 방향이 이렇게 되었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 답변자와 면대를 하는 사람들은 첫 마디에 대개 당황을 하는 빛이 너무 역력했습니다.
하나를 잡으면 끝을 봐야 했기 때문에 답변자는 현재 백목사님에 관한 한 그 가족보다 전체적으로는 알고 있는 내용이 더 많습니다. 그리고 백목사님에 대하여 비판하는 분들 중에 답변자와 직접 접촉할 수 있는 분들의 입에서 나오는 불만이나 불평에 대하여 그것이 오해라고 설명해드려 보지 못한 경우가 없습니다. 그분들보다 더 많이 의심했고 더 많이 비판했고 더 많이 그 방면을 조사해 봤기 때문입니다. 얼른 생각하면 답변자는 남이 모르는 한 가지 분야를 더 깊이 살펴보는 전문가가 되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사실은 앞을 향해 달려가야 할 답변자로서 너무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많이 소비했기 때문에, 신앙생활에서 넘어질 수 있는 면을 제거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었으나, 그 대신 발전해 나가야 하는 면으로 본다면 막대한 손해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 것을 묻고 따질 시간에 성경보고 기도하는 것이 자기 신앙에는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홈에서 아무 조건없이 백목사님을 마음껏 비판해 보라고 게시판을 열어놓고 있습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그분의 단점을 바로 지적했다고 생각하는 분을 접하지 못했습니다.
⑤백목사님 사후, 그리고 이 홈을 운영하면서 소개와 설명의 역할에 대하여 많이 생각합니다.
한 사람은 이러하고 한 사람은 저러하다는 말씀처럼 답변자는 이러한 면에 장점을 가졌고 동시에 손해본 점이 많았습니다. 다른 분들은 앞을 향해 달려가며 성경과 기도의 사람으로 사는 일에는 하나님과 거리가 답변자보다 훨씬 가까울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유혹과 거짓과 샛길로 인도하는 훼방이 있을 때 그런 것에게 넘어가지 않을 수 있는 면을 두고 말한다면 받아가진 장점이 많습니다.
백목사님 사후 전개된 총공회의 그 수없고 그 극단적인 투쟁 가운데에서 답변자는 이 신앙노선 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두고 이 노선에서 벗어나는 행동과 이론에 대하여 어떤 사건을 어느 누구와 마주앉아 상대해도 상대방이 두번 다시 발언을 하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모두들 말을 잘해서 그렇다고 했지만 흰종이를 희다고 말하는 사람과 검다고 말하는 사람 사이의 결론은 말을 잘하고 못하고에 따라 결론이 나는 것이 아니라 흰종이를 희다고 말한 사람은 말더듬이라도 변호사를 이기고 달변가를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총공회는 다수결이냐 전원일치냐는 논리, 총공회규칙의 다수결 규정에 대한 해석, 영상재독을 죄라고 하는 대구공회원들의 모순, 총공회 헌법제정 등 총공회의 근본 방향과 성격규정에 대하여 답변자는 백목사님 생전부터 왜 그 문제가 모순이 아닌지 그 문제는 이렇게 생각하면 죄가 되는 것이 아닌지, 수도 없이 살펴봤고 의문이 있을 때는 최종적으로 백목사님께 몇번이라도 재질문을 해서 마지막으로 답변자가 생각한 모든 생각에 한점의 막힘도 없을 때 비로소 안심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도 답변자는 어떤 결정 하나를 해도 앞으로 상황이 변할 때, 이런 결정이 타 교단에 해당될 때, 내가 급할 때, 후 시대에 적용될 때, 성경적으로 교리적으로 역사적으로 목회현장적으로 자타 구원의 유익면까지 면밀하게 검토를 한 다음 결론을 내립니다. 이렇게 생각이 많기 때문에 발전에는 손해가 많아도 넘어지지 않는 면으로는 감사할 일이 많습니다. 더 많이 살펴봤고 더 많이 연구해봤고 더 많이 그 모순점을 뒤져봤기 때문에 이곳 홈에서 여러 글을 통해서 단정하고 담대하게 외치는 것은 젊은사람의 객기라고만 볼 수 없는 면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⑶백목사님의 단점 연구에 대한 전망
①현재까지 답변자 수준에서는 더 이상 찾지를 못했습니다.
엘리야를 엘리사라고 발언한 것을 단점이라고 한다면 그런 실언은 많습니다. 장기간 해외 생활을 통해 너무 많이 변질 되어서 귀국한 사람에게 과거 신앙을 되찾도록 격려할 목적으로 '해외생활 10년에 하나도 변한 것이 없다.'고 발언한 것을 두고 그 사람의 10년 전과 후의 행적을 비교한다면 백목사님의 발언은 너무 거짓말이 많습니다. 백목사님 자신이 예수 믿은 나이가 27세인데도 평생 25세라고 한 것도 거짓말입니다.
또 목회자를 길렀는데 그가 탈선하고 배반한 것을 두고 백목사님의 단점이라면 백목사님 밑을 떠난 사람이 붙어 있는 사람보다 많기 때문에 백목사님의 어느 조카분이 발언한 것처럼 '후배농사는 완전히 망쳤다'는 표현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런 수준 이상의 잘못을 찾으라고 한다면, 아직까지 답변자로서는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초등학교 고학년에게 대학의 수학교수가 풀어주는 문제들 중에서 잘못된 것을 찾으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초등학생이 대학교수의 잘못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발언한다 해서 대학교수를 완전자로 미화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말은 억지일 것입니다. 초등학생이 대학교수의 수학문제 풀이를 두고 실수하는 것을 찾을 수 없었다고 발언을 한다면 그리고 그 발언이 진심이라면 우리는 두 사람 사이에 격차가 너무 크게 났다고 짐작하는 편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20년 전에는 확실하게 이것은 백목사님의 단점이라고 딱 찍어 두었는데, 그후 10년이 지나면서 아닌 것이 밝혀졌고, 다시 10년이 지나자 그것은 단점이냐고 따질 것이 아니고 그분의 장점이었습니다. 이런 경우가 겹쳐지게 되면 답변자의 심리상태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눈에 단점으로 보여도 일단 숙제로 미루어 두고 먼저 확인하고 세월 속에 좀더 지켜 본 다음 단정을 내리는 것이 정상일 것입니다. 몇 개도 아니고 몇십 개도 아니고 수도없는 사안에 대하여 늘 자기 눈에 틀린 것으로 보이고 자기 귀에 잘못된 말이 들리면 자기 입으로 '틀렸다!'고 외쳐놓고 봐야겠는가? 그리고 잘못 봤다는 것을 뒤에 알고 나서 매번 돌아서서 머리를 긁는다면 평균 이하의 사람이라고 할 것입니다.
답변자는 현재도 다른 사람들이 잘 보지 못할 사안이지만 이것은 백목사님의 단점이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앞에서 말씀드린 그런 이유 때문에 이제는 백목사님의 단점이라고 섣불리 확정을 지우기 전에 우선 '보류'로 분류해두고 있습니다. 이제는 과거처럼 '단점으로 단정!'이라고 외치지 않습니다. 이제 나이가 40을 넘어가고 있는 중이면 듣기는 속히 해도 말하기는 더디 할 때도 되었을 것입니다.
②이 홈에서도 이 게시판에 들어오는 분들은 앞서거니 뒷서거니 답변자와 비슷한 분들입니다.
이렇게 홈을 운영하지 않아서 그렇지 답변자보다 더 많은 경험과 더 많은 세월을 통해 이런 면으로 다른 사람들을 상대할 분들도 계실 것이고 또 어떤 분들은 이 홈을 통해 백목사님께 대하여 잘못 가졌던 생각을 바꾼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 홈의 이 게시판을 들어와서 열람하는 분들은 총공회 내부인이거나 내부인이었던 분들 또는 외부인이라 해도 내부인 수준의 사람들일 것입니다.
총공회 외부인이 백목사님의 단점 몇개를 전시하라고 요구한다면 그분들 수준에서 이 홈을 이해하고 백목사님에 대한 접근에 다른 오해가 없도록 적절하게 몇 가지를 소개하겠습니다. 앞에서 말한 그런 내용들입니다. 분명히 그런 점들은 백목사님의 단점입니다. 그러나 백목사님에게 책임이 없는 문제를 두고 단점으로 인정하라 한다면 답변자 입에서는, 예를 들어 백목사님의 제자들 중에 타락하고 배신한 사람이 있지 않느냐는 지적에 대하여는 그러면 가룟유다 때문에 예수님을 무조건 정죄해야 하겠는가 아니면 선생이 책임질 부분인가 아닌가를 먼저 따져봐야 하겠는가 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현재 백목사님의 단점 연구를 꼭 해야 한다면 우선 그분이 걸어갔던 수준 근방에라도 접근한 다음에 착수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백목사님에 대한 안팎을 많이 살펴본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신앙은 별반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다만 이 사안을 두고 말한다면 이 면을 많이 살피고 연구한 사람이 유리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하여 답변자는 앞서 나가는 것같아도 실은 하나님 앞에 설 때 말씀대로 얼마나 우리 자신을 만들었느냐가 판단 기준이 될 것인데, 답변자는 엉뚱한 일에 소일하다 기도와 말씀에만 주력하는 평균적인 총공회 교역자들에 비하여 너무 쳐졌다는 피해의식이 많습니다. 답변자와 거의 비슷하게 신앙길을 걷고 있는 이곳 방문 형제들에게 백목사님 단점 연구는 없기 때문에 덮어두시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있겠지만 아직 우리 수준에서는 그를 통해 본받고 배울 점이 산적해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③이곳 답변자의 기본 인식이 이러하기 때문에 백목사님의 단점 연구는 많이 연기될 것입니다.
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그 표현이 또 다른 주제가 되고 시비가 되고 그렇게 되면 열번 말을 해도 답변자가 해명에 급급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일단 작업의 순서를 볼 때 장점연구가 먼저라고 말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내심 전망을 말한다면, 답변자 생존 기간이 아무리 길다 해도 그런 세월이 오겠느냐는 느낌입니다. 배울수록 배울 것이 더 많아지는데, 무엇 때문에 단점을 연구하겠다고 작업을 정식으로 시작하겠습니까?
지금도 이곳 홈에서 제공한 5천여 녹음본 자료를 뒤져보면 평범한 단점은 수없이 나타나고 교리적으로 중대한 모순점도 가끔 나타나는데. 이렇게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오는 것을 두고 내가 해결하지 않고는 신앙에 손해가 있겠다고 싶은 것은 살펴보고, 아무 문제도 아닌 것은 그런 줄 알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