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잘 들었습니다. 부산공회 내부 소식 한 가지를 덧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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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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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15 00:00
1.윗글을 적은 분의 의견에 한 가지 사안만 보충하고 싶습니다.
서부교회와 남정교회 그리고 서정교회를 차례로 거쳐보신 분의 말씀이므로
부산공회도 이 홈이나 개인적으로 아는 분들을 통해 소식을 듣고 계실 것이고
대구공회와 서울공회의 내면은 아주 당사자 입장에서 더 잘 아실 것입니다.
따라서 누구보다 공회별 성향과 현황에 대한 파악은 정확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다만, 부산공회(2)에 대한 파악에 있어
부산공회(2)의 현재 외형은 윗글로 말씀하신 분의 생각 그대로라고 생각하지만
부산공회(2)의 깊은 본질은 부산공회(2)의 형성과정을 깊이 알지 못하면 잘못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윗글을 적은 분에게 반론으로 드리는 글로 보지 마시고
부산공회(2)와 관련한 보충 자료 정도로 보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 보충 자료가 일리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대구공회와 부산공회(2)의 관계는 접선 범위 안에 있을 가능성을 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부산공회(2)의 형성 과정에 대한 보충 설명
①부산공회(2) 초기
부산공회(2)는 서목사님의 서부교회 부임과 함께 시작합니다.
원래 서목사님은 앞서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서부교회 부임 전에는 청량리교회와 양성원 교수직 하나만을 가지고 그냥 비중있는 일개 목회자로만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서부교회에 부임을 하게 되자 급격하게 옆에 세력이 불어나가게 됩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서목사님이 불러 들인 것이 아니고, 저절로 모여들었다고 보시면 맞습니다.
우선 서부교회로 부임을 하자 막바로 서윤호목사님이 최측근으로 다가섰고 이어 대구공회와 부산공회의 최초 분리 때 중립을 지키고 양쪽을 관망하던 김영채목사님이 서영호목사님이 서부교회로 부임한다면 부산공회는 옳은 공회라고 하며 바로 부산공회로 가입하면서 서목사님의 제일 측근이 됩니다. 그리고 서부교회 내에서는 서목사님의 최대 지지세력인 김효순권사님과 한 구역 출신인 김윤수 김영환목사님 그리고 김윤수목사님과 가장 가까운 김부호목사님이 바로 합류하여, 소위 4명의 김목사님들이 서목사님의 서부교회 부임과 동시에 당시 서파, 현재의 부산공회(2) 초기 형태를 갖추게 됩니다.
물론 현재 부공(1)에 속한 정조사님과 같은 분 몇 명이 서목사님 부임후 공회에서 보이지 않는 긴장관계를 감지하며 양측 중에서 유리한 쪽으로 쉴새없이 줄을 바꾸어 서는 모습들이 있었지만 이들은 대세에 의하여 한순간에 방향을 바꿀 분들이어서 양측이 서로 숫자로 계산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②서목사님의 서부교회 부임한 과정
서목사님의 서부교회 부임은 김효순권사님의 단독 노력이었습니다. 그러나 서목사님의 서부교회 부임은 사람이 도저히 막을 수 없도록 하나님께서 너무 확고하게 결정하신 표시가 있었습니다. 이 홈은 그 면을 확고하게 봤기 때문에 서목사님의 서부교회 부임 즉시, 서부교회와는 두부 자르듯 모든 관계를 끊게 됩니다. 물론 현재 4층 중간반은 서부교회 내부 교인이므로 오늘까지 투쟁을 하는 것이니 그 면을 감안한다면 그분들의 행동 역시 그분들로서는 마땅한 일이나, 객관적으로 평가한다면 너무 지나치다는 아쉬움을 늘 갖고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는 서목사님은 이재순목사님 후임으로 서부교회를 부임할 가능성이 전혀 없었습니다. 이재순목사님이 불신임을 당한 1990년 11월 마지막 주일 저녁에 서부교회의 후임을 결정할 수 있는 회의가 있었고 이 회의는 서부교회 주요 부서 직책 인물이 다 모인 자리였으며 이 자리에서 서목사님은 아예 거론도 할 수 없는 인물로 단정이 있었습니다. 그대신 당시 서부교회 핵심지도부는 서목사님과 완전 반대노선을 걷는 목회자 중 이목사님과 김목사님 등을 놓고 누구를 후임으로 결정하느냐는 행복한 고민(?)만 남은 상태였습니다. 서목사님을 적극적으로 밀던 김효순권사님은 아무런 도움이나 다른 분들의 동의를 받지 못해서 참담한 표정이었습니다.
참고로 권사님 4명의 결정이 가장 중요한 사안인데, 권사님 4명은 백목사님 사후 어떤 일이 있어도 4명의 합의로 매사를 결정하고 어떤 일이 있어도 서로 나뉘지 않는다는 약속이 있었습니다. 이 약속들은 끝까지 지켜지고 현재 3명이 세상을 떠났으며 1명만 남아계십니다. 대단한 분들이지요. 이재순목사님의 불신임이 확정되자 김효순권사님은 사석에서 다른 권사님들에게 서목사님을 설득시키려 했으나 당시 다른 3명의 권사님들이 이 홈과 개인적으로 대화를 하던 때여서 김효순권사님의 주장은 백목사님 생전 노선을 유지하는 일에 정면 배치된다는 이유로 단호히 거부되었고 김효순권사님은 이재순목사님의 후임조차 또다른 모습의 이재순목사님과 같은 분이 서부교회를 오게 된다고 체념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이재순목사님 후임을 의논하러 서부교회 핵심 지도부가 다 함께 모인 자리에서 회의의 방향은 그냥 일사천리로 진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선 장로님들은 권사님 4명이 뜻을 정하고 공개하면 그냥 다 머리를 숙입니다. 다만 서부교회 각 핵심부서를 맡고 있는 젊은 책임자 3명(주일학교, 중간반, 연구소 등)이 권사님들만큼 변수였지만 이분들은 당시 성향은 철저한 보수성향이었기 때문에 전혀 내부 문제없이 후임이 결정되도록 되었습니다.
이재순목사님의 후임 결정의 방향은, 서목사님은 거론조차 하지 말자고 해놓고 그다음 부산공회 핵심 목회자들 중에서 재독을 철저하게 해 주고 백목사님 생전 서부교회로 일단 현상유지를 잘 시킬 목회자가 몇 분 있는데 그 중에서 이진헌목사님이 그날 회의에서는 구두로 합의가 되었습니다. 이진헌목사님은 좀 넓은 면이 단점이나 백목사님에 대한 순전성이 장점이고 무엇보다 재독을 원하는 핵심지도부의 뜻에 맞서 투쟁할 분이 아니며 백목사님 생전 서부교회 방향이라는 논리 앞에서는 만사를 포기할 수 있는 분이었기 때문에 핵심 지도부의 동의는 쉽게 얻을 수 있었고, 권사님들의 결정에 불만을 하고 싶은 장로님들도 이진헌목사님의 약간 넓은 모습이 오히려 그들에게도 좋았기 때문에 이래서 저래서 이진헌목사님은 서부교회 후임으로 확정이 되었다는 정도에서 그 날 회의는 끝이 납니다.
문제는 중간반측이 목회연구소측을 믿지 못한다는 것이 가장 큰 장애였습니다. 중간반측은 목회연구소측에 의하여 움직여질 이진헌목사님이 부임한다면 향후 서부교회는 연구소측에 의하여 후임이 영구고착된다는 것을 가장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그리 될 바에야 차라리 서목사님이 후임이 되면 2년 후 신임투표에서 다시 내보낼 수가 있으나 이진헌목사님의 경우 연구소측이 지지를 하면 한번 부임한 후 서부교회는 연구소 뜻대로만 움직일 것으로 보게 됩니다. 이렇게 되자 이미 회의에서 이진헌목사님을 후임으로 결정한 것을 뒤집고 이번 후임은 권찰회 등에서 일반 투표를 하여 후임을 선출하자는 의견을 띄웁니다. 일반투표로 갑자기 제안이 들어오게 되자 서목사님의 이름은 후보로 다시 올려졌고, 중간반으로서는 이미 교회 내 분위기가 서목사님은 일반 투표를 해도 전혀 가능성이 없다고 봤으며 표대결에서는 중간반으로서 되면 좋고 안 되도 원안대로 가는 것이니까 일단 시도는 하게 됩니다.
중간반은 김응도목사님을 지지하기 위해 득표활동을 했고, 연구소는 논리로 설득을 시키는 것은 할 수 있어도 득표활동은 교회 교권확보 차원의 문제이므로 선을 지켰습니다. 이때 김효순권사님은 완전히 포기했던 서목사님을 표대결에서 표만 얻으면 후임이 될 수 있으므로 사활을 건 총력을 기울이게 됩니다. 서목사님 측에서는 이진헌목사님이 되면 서부교회는 연구소가 장악하게 된다며 온갖 거짓말을 동원했고, 중간반은 이진헌목사님으로 단일안을 합의해놓고 뒤로 김응도목사님을 지지하여 이진헌목사님의 표는 양분이 됩니다. 결과는 서목사님 반대측의 표분산으로 서목사님이 후임으로 결정이 됩니다.
그렇다면 누가 그동안 어떤 노력과 어떤 행동을 했을지라도, 이 정도의 상황 반전이라면 서부교회는 하나님께서 서목사님을 후임으로 세우겠다는 결정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주어진 만큼 노력했고 서목사님 지지측처럼 그렇게까지 거짓말을 만들어 세상 정치권의 득표활동처럼 할 수는 없었고 또한 중간반처럼 이런 문제를 두고 앞뒤 다른 행동을 해야 할 정도의 사안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서부교회를 공회 중심노선에서 포기하라는 것으로 읽게 됩니다.
시무투표 직후 후임선출의 투표결과가 나왔지만 서목사님은 서부교회로 바로 부임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본인도 망설이고 있었고, 비록 최다득표자는 되었다 해도 서부교회의 대세는 서목사님에 대한 반대측이 훨씬 많고 강했기 때문에 김효순권사님측에서도 반대측의 눈치를 보고 있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중간반에 대하여 연구소측에서는, 투표 결과에 불구하고 서목사님은 서부교회 노선에 반대되는 목회자이니 서부교회 부임을 막겠다고 한다면 함께 부임을 막아 서부교회로 들어오는 일을 못하게 하면 김효순권사님측으로서는 아무 대응을 할 수 없을 것이니 투표는 행사로만 끝날 수 있는데 그렇게 하겠느냐고 제의를 합니다. 만일 서목사님이 서부교회 후임으로 부임을 하게 된다면 바로 그 순간부터는 교회의 담임목회자이므로 교인으로서는 반대에 한계가 있고 서목사님의 성격이 일단 부임을 하게 되면 거의 움직이지 않을 것이므로 그때 가서는 아무리 서부교회 노선과 다른 문제가 나와도 연구소측으로서는 서목사님을 반대하는 일에 거의 할 일이 없을 것이라고 제의합니다. 이에 대하여 중간번으로서는 2년 후에 무조건 보낼 수 있으니 차라리 연구소측이 원하는 목회자를 부임시켰다가 교회의 주도권을 연구소측에 완전히 넘기는 것보다는 서목사님의 부임을 맞겠다고 답변합니다.
이날부터 연구소측은 주일학교총무 등 장차 서목사님을 반대할 때 중간반만큼 힘을 가지고 움직일 수 있는 가까운 분들을 서부교회에서 물러나서 개척하고 이후 서부교회 내부 투쟁에서는 완전히 손을 떼도록 했습니다. 이후 싸움은 서부교회를 두고 노선문제가 아니라 교권문제로 끝없이 계속될 싸움이고 이 싸움에서는 연구소측에서는 아무 할 일이 없고 해서 안 될 일만 생길 것이라고 선언하게 됩니다. 중간반측에서 2년만 기다렸다가 함께 서목사님을 몰아내자는 제의가 수없이 들어왔으나 연구소측의 결정은 오늘까지 그대로 가고 있고 중간반은 서목사님을 반대하며 지금까지 십수 년을 수고하고 있으며, 서목사님은 일단 서부교회로 진입을 한 이상, 본인의 원래 색채대로 소리없이 그러나 결국은 본인의 원하는 대로 서부교회를 일반 교계로 바꾸어가며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김효순권사님이 연구소만 아니었으면 권사님 4명의 합의형태로 서목사님을 서부교회로 모실 수 있는데 연구소 때문에 입도 한번 뻥끗하지 못하다가 예상치 못한 상대편의 내분 때문에 지금까지 서부교회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이 홈에 대한 비판과 욕설은 아무리 많아도 사실 할 말도 없습니다. 지금까지 대구공회 내에 퍼져 있는 이 홈에 대한 인신공격은 주로 안양 이재순목사님에게서 시작되었고, 부산공회 내부의 욕설은 서목사님측 서부교회 지지세력에게서 시작된 것이 거의 전부입니다. 특히 서목사님 측에서는 이 홈에 대하여 7계명 범죄로 백목사님 생전에 서부교회에서 시골교회로 쫓겨갔고 그후에는 서부교회 목사를 노리는 사람이라는 말로 1998년까지 부산공회(3)을 향하는 교인과 목회자를 막아 나섰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이곳이 서목사님과 김효순권사님의 신앙노선에 대하여 단호하게 잘못되었다고 반대를 하기 때문에 반대측에 의하여 이보다 더 심한 거짓말로 당해도 사실 당해야 싸다 할 만큼 이 홈은 그분들과 신앙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김효순권사님의 경우 송용조목사님 탈퇴 때에도 송목사님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다가 이 홈에 의하여 많은 고초를 겪은 적이 있습니다.
③부산공회(2)의 위기
1992년 11월 시무투표에서, 서부교회 내부의 서목사님 반대측은 중간반만 남게 됩니다. 연구소측이 서목사님 부임과 함께 서부교회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개척으로 나가게 되자, 혼자 힘으로 서목사님을 배척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결국 인원을 동원하여서 일단 불신임을 받은 목회자라는 법적 축출에는 성공하지만, 서목사님을 만만하게 본 것이 큰 실책입니다. 서목사님의 축출은 연구소측에 의하여서만 가능한데, 연구소측은 이미 서부교회를 완전히 포기한 상태였습니다.
대신 중간반측은 공회 내의 목회자들을 동원하여 서목사님을 스스로 물러나게 하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공회적으로는 서목사님을 몸으로 막아내며 서목사님과 함께 싸울 분들은 앞에 말한 4명의 김목사님들 뿐입니다. 이들은 서목사님에 대한 개인적 사모가 백목사님 이상이었거나 아니면 김효순권사님 구역출신이라는 공동체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후 공회 내에서 수년 간, 모이기만 하면 서목사님은 아주 발 아래 벌레처럼 짓밟혔고 노년 목사님들은 서목사님이 나가야 자신에게도 서부교회 후임의 기회가 올까 해서 무참하게 서목사님을 공격했고 젊은 목회자들은 자기 임지 교회 이동 문제등으로 이권문제가 걸려 있어 개데처럼 서목사님을 물게 됩니다.
시무투표제나 공회 노선의 원칙에서 본다면 서목사님은 불신임을 인정해야 옳습니다. 문제는 서목사님 본인이 이를 거부하고 또 교회 내에서 서목사님을 지지하는 교인들이 많다면, 공회로서는 권고만 하고 기다려야 하는데, 지금까지 듣고 본 소식처럼 양측은 세상 어떤 교회와 비교해도 될 만한 극심한 분규를 겪게 됩니다. 양측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거나 공회 노선을 생각했다는 흔적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로지 서부교회 교권을 확보하게 되는 측이 결과적으로 서부교회와 공회와 모든 것을 얻게 된다는 한 가지 이권만을 생각하게 됩니다.
서부교회 내부로는 서목사님이 어떤 희생과 분규를 겪더라도 한번 잡은 서부교회 교권은 놓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했고 이를 지지하는 교인들이 대다수이므로 서부교회 내부 문제는 애당초부터 끝이 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공회적으로 말한다면, 목회자들은 서목사님과 그 지지 4명, 총 5명을 빼놓고는 거의 전부가 서목사님을 반대하는 일에 총력을 기울이게 됩니다. 시무투표 이전에는 서부교회라는 위치 때문에 서목사님과 반대측 사이를 묘하게 오가는 분들이 더러 있었으나 극심하게 투쟁이 전개가 되니까 공회적으로는 만일 서목사님을 지지하게 되면 목회자가 자기 교회 내부에서조차 외부압력을 받아 위태롭게 될 수 있기 때문에 몸을 사리게 됩니다. 부산공회(2)의 위기는 1990년대 중반까지 이어지며 우리가 다 아는 바와 같이 갖은 수모를 겪게 됩니다.
바로 이런 위기감이 절정에 다달았을 때 청량리교회 서목사님 지지측 교인들과 4명의 김목사님 교인들 등을 중심으로 전국에 삐라를 뿌리며 만화로 서목사님의 지지를 고양하고 반대측 목회자 핵심들을 북한의 기쁨조라고 하는 등 상황으로 전개됩니다. 심지어 서목사님이 집회 강사 중 한 사람으로 결정이 된 것까지 일방적으로 취소시키고 양성원에서는 서목사님을 끌어내버리는 일까지 벌어지게 됩니다.
④부산공회(1) 소속 목회자들의 대거 부산공회(2)로 전향
도저히 양측은 두번 다시 노선을 바꿀 수 없을 만큼 모든 종류의 인간적 싸움을 다 했는데도 불구하고, 부산공회(1)에 몸을 담고 있으면서 서목사님과 그 지지 4명의 김목사님들을 무참하게 짓밟던 거의 모든 목회자들이 대거 부산공회(2)로 넘어가게 됩니다.
이런 기적적인 일은, 부산공회(1) 지도부가 너무 소속 목회자들을 장악하고 있다고 과신한 나머지 젊은 목회자들의 목사 안수를 무기한 거부를 하고 이를 포착한 부산공회(2) 4명의 김목사님들이 이 헛점을 포착 목사 안수를 위해 젊은 목회자들이 단합을 하자는 제의를 하여 마치 부산공회(1) 소속 젊은 중추 목회자들을 대거 양측 싸움의 중립지대로 끌어내는데 성공을 하면서 시작됩니다. 10년을 내다보며 싸워도 해결은 되지 않고, 지도부에서는 젊은 조사님들을 목사로 시켜놓으면 그때부터는 아쉬운 것이 없어 말을 잘 듣지 않는다고 목사 안수를 무기한 이유없이 연기시키니 자기 살 길을 찾되 혼자서는 찍힐까봐 안 되고 20여명이 단합을 하게 됩니다.
극소수로 몰려 무참하게 당하던 부산공회(2)는 부산공회(1)의 목사 후보 20여명 목회자를 중립지역으로 옮겨낸 것 자체가 부산공회(1)에 대하여는 심대한 타격이고 이들은 잠재적으로 부산공회(2)로 넘어올 수 있는 인재들이었습니다. 여당에서 어느날 갑자기 당직 때문에 야당으로 넘어가듯 하는 일이 발생했고, 부산공회(1)에서는 사태가 어느정도까지 갔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집단 데모를 맞게 됩니다. 황급하게 이들 젊은 목회자들 대표와 송종섭목사님이 담판을 벌여 10여명 안팎의 목사 후보 이름들을 놓고 협상을 거듭한 끝에 모든 절차를 다 무시하고 일단 양측의 흥정에 의하여 12명인가? 목사 안수를 하는 것으로 일단 사태를 수습합니다.
목사 안수를 하고 나자, 안수를 받은 목회자들은 부산공회(1)에서 부산공회(2)로 아예 대거 넘어가버립니다. 중요 간부급 목회자들이 일시에 쏠려가기 시작하자 과거에 안수를 받았던 분들, 그냥 관망만 하고 있던 이들 등 마치 요즘 탈북자가 급격하게 늘듯이 부산공회(1)에서 부산공회(2)로 전향을 하는 이들이 급증하고 마침내 부산공회(1) 측에 서서 서영호목사님과 4명의 부산공회 핵심들을 가장 심하게 몰아세우고 또 부산공회(1)로서는 기쁨조라며 실명 거론하고 삐라까지 뿌렸던 원로급 목사님들도 거의 전부 부산공회(2)로 넘어가버립니다.
송종섭 이만기 김응도 송종관 이진헌 ...... 등이 부산공회(2)에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다 앉아버리게 되자, 부산공회(1)에는 이재순목사님과 김삼암목사님 직계만 초라하게 몇명 앉아있게 됩니다.
⑤부산공회(2)의 현 상황
서목사님은 과거 10여 년 자신 때문에 공회적으로 또 서부교회 내에서 수많은 희생자들이 나고 감옥에 간 핵심이 3명이나 있고 입원 고소고발 등을 수없이 당했지만, 이들에 대하여 아무런 보답이 없게 되자 서목사님 지지세력들은 교회 내부와 공회적으로 서목사님을 위해서는 싸워봐야 주는 것은 먹고 피흘린 사람만 손해를 본다는 인식이 확산되기 시작합니다.
이미 부산공회(2)는 부산공회(1)에서 이사를 다 온 정도여서 이제 그 모임의 숫자나 교세가 총공회 전체적으로 가장 크고 든든하게 됩니다. 10년 세월을 겪어 본 후에야 이제 '우리가 언제 서목사님을 중심으로 모였는가? 총공회 노선과 원리 때문에 모였지' 하는 논리로 제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3.부산공회(2)의 핵심 몇 명 외에는 급하면 여야를 몇 번이라도 바꾼 사람들입니다.
이런 점에서, 부산공회(2) 소속 목회자들치고, 신앙노선과 양심을 따라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 길을 걸었다고 판단 되는 분들은 서목사님과 4명의 김목사님들 정도 뿐입니다. 나머지는 지금까지 대세에 따라 움직였고 자신들이 몇 번이나 주인을 바꾸었는지 모르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분들이 대구공회와 합할 수 없다는 것은, 양측의 이권이 맞지 않아서 합하지 못할 뿐이지 언젠가 서로 합하는 것이 좋다는 이권 계산만 끝난다면 즉시 합할 수 있다고 봅니다.
지금 5월과 8월 집회를 참석하는 것도, 교인들 중에서 이전 집회장소를 가지 않으면 무엇인가 허전함을 느끼는 분들 때문에 마지 못해서 집회를 그리로 가는 경우가 거의 전부입니다. 그래서 부산공회(2) 내에서는 독자적으로 몇 교회씩 모여 따로 집회를 한 경우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단 한 교회라도 끝까지 공회의 원래 노선을 견지하려면 공회의 정체성이 무엇이며, 무엇은 할 수 있고 무엇은 할 수 없는지를 알아야 하는데, 부산공회(2) 소속은 적어도 이런 면에서는 그들의 오늘까지 행동이 급할 때는 무엇이든 포기하고 놓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대구공회와 소송문제를 두고도 한 자리에서 죄가 된다고 2명 빼고는 일치 합의를 해놓고도 결국은 소송을 끝까지 밀고 나가도록 했던 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점에서, 현재까지 이 홈에서 '총공회'의 원노선을 자기들 아는 대로 끝까지 지킬 수 있는 분들은 현재 부산공회(1)에 잔류하고 있는 분들 중에서나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보고 있습니다. 부산공회(2) 소속 목회자들에게 가장 고통스런 질문은
'어떤 과정으로 부산공회(2) 소속이 되었는가?'
'지금 서영호목사님이 양성원 원장이며 서부교회 담임목사님이며 공회의 중심인데, 이병규목사님의 계약신학대학에서 송용조목사님과 함께 일반신학을 가르치는 것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며, 이 일을 두고 공회 노선에 확실하게 선 목회자라면 어떻게 처리를 해야 한다고 보는가?'
세부목록
- 서부교회 신앙생활에 대하여
- 2.현재 서부교회 내부 현황 (2차 보충)
- 1.현재 각 공회들의 현황 - 작업 중 * (1-3)
- Re: 1.현재 각 공회들의 현황 - 작업 중 * (1-3)
- 대구공회와 부산공회 2는 본질적으로 신앙노선이 다릅니다.
- 아주 잘 들었습니다. 부산공회 내부 소식 한 가지를 덧붙입니다.
- 당신네들은 틀렸고 우리가 올바른길 간다 ?
- 윗글이 맞다면 2층과 부공(2)는 틀렸습니다.
- 혹 서정교회 교인이신지 ....
- 삭제 부탁드립니다..
- 한번 올려진 글은, 최대한 그대로 보관합니다.
- 약간의 언급
- Re: 약간의 언급
- 시간 여유를 갖고 한번 정리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