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19:28 말씀을 비롯 차분하게 살필 성구가 많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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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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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30 00:00
1.요13:10-11
몸을 씻은 자는 발만 씻으면 된다는 윗글의 설명은
1960년대 이후 백목사님이 건설구원을 가르치면서 수없이 반복했습니다.
따라서 공회에서 구원론을 조금이라도 주의깊게 듣고 살펴본 사람이라면
요13:10-11 내용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윗글을 적은 분이 공회인이면 이전 설교를 모르는 최근 교인일 것이니
과거 설교를 모르면서도 이런 성구를 바로 깨달았다는 것은 그 발전이 아주 빠르다 하겠고
윗글을 적은 분이 공회 내에서 오래 된 교인이라면
공회 교인들이 상식적으로 아는 것을 마치 새로운 발견처럼 설명하고 있으니 오히려 과거 많이 들었던 것을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는 점에서 안타까운 교인입니다.
2.요13:10-11 말씀은 마19:28 말씀과 한 자리에 놓아야 할 사안
요13:10-11에서 중생과 구원교리를 찾은 것은, 배웠든 스스로 알았든 너무 귀한 일인데
문제는 마19:28 말씀까지 검토하고 나서 발언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요13:10-11 말씀에서 중생교리와 구원교리만 설명한다면 상관이 없지만
만일 요13:10-11 말씀으로 가룟유다를 불택자라고 단정하려 한다면 신중해야 합니다.
우선 가룟유다는 사도였기 때문에 4복음서의 그에 대한 설명은 그 양이 굉장히 많고
따라서 그의 택불택은 성경의 다른 사람들과 달리 성경의 한 성구만 살필 것이 아니고
그에 대한 기록 전부를 다 살펴본 후에 판단해야 합니다. 사복음서의 12 사도 관련 말씀 중에서는 기본구원을 아는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눈을 돌릴 수 없는 내용들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는 심지어 홍포 입은 부자가 음부에 들어가서 현재 불 가운데서 고통을 받고 있다고 성경이 적고 있는데도 이를 택자의 기능문제로 볼 때 우리가 알지 못했던 또 그 어떤 면을 가르치는 것이 있는가 하고 살펴보는 노선입니다. 그 부자는 그 자체가 불택자이므로 그의 심신자체가 음부에 있는가 아니면 그의 기능면의 실패가 이렇게까지 표현되는가 하는 문제를 가지고 조심스럽게 살펴보는 것이 이 노선임을 고려했으면 합니다.
3.주관과 영감
오래 전에 배워 둔 것은 자기가 잊고 있어도 불쑥 생각날 수 있습니다.
심지어 배운 기억이 없다 해도 우리 지각력은 상상외로 대단한 것이어서 자기가 의식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순간적으로 학습하여 두었다가 불쑥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 노선은 신비와 신학지식을 절묘하게 다 겸비하고 있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지식주의로 빠질 수도 있고 또한 잘못하면 불건전한 신비주의로 빠질 수도 있는 양면을 함께 가진 노선입니다. 살아있는 정통 노선에서 볼 수 있는 특이한 면입니다.
공회인들 중에서는 일반 교인들 심지어 주일학교 반사들도
자기가 퍼뜩 생각한 것이 있고 그것이 자기 아는 범위에서 성경적이라고 느끼게 되면
자기 목회자에게 자기를 쫓지 않으면 강퍅한 것이며 자기는 성령에 붙들려 영감으로 발표하는 면허증을 가졌다고 윽박지르는 경우를 흔히 봅니다. 참으로 당황스럽습니다. 신학을 강조하여 죽은 신앙이 되는 것도 탈이지만 살아있는 신앙을 강조하다가 자기가 하나님이 되는 지경에 이르는 폐단도 적지 않습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깨닫게 할 때도 또 내 주관이 외부로 발표하고 나설 때도
우리 생각을 흔들며 이용하기 때문에 불쑥 생각나는 식으로 알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의 주관도 성령의 영감도
꼭같이 나의 마음을 흔들고 나타나기 때문에
우리는 자기 속에서 깨달아지는 것이 있을 때 아주 조심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고
특히 남들에게 발표할 때는 극단적으로 조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면을 잘 조절하지 못한 사람들은
불건전한 신비주의로 이탈되며 뒤끝이 이단으로까지 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적지 않은 분들은 안타깝게도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4.정말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주시는 것이 있을 때, 주의할 점
믿는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직접 깨닫게 해주시는 것은
마치 3끼 밥 먹듯이 마치 매일 물을 마시고 숨을 쉬듯이 끊임없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깨닫는 것이 있을 때
그것을 어떤 자세로 상대하느냐에 따라
깨달음이 더할수록 가속도로 밝아져서 더 깊게 더 크게 깨달음에 나가는 사람도 있고
깨달음이 몇 번 지나갈 때 잘못 발표하여 크게 탈선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①깨닫게 해주실 때는, 전적 하나님 은혜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옳은 것을 깨달았다면 그것은 전적 하나님의 인도입니다.
인간 스스로는 배웠든 못배웠든 옳은 것을 깨달을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상식입니다.
그런데 마치 자기 노력이나 두뇌를 가지고 그렇게 깨달았다는 자세를 갖게 되면
다시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할 교만자가 됩니다. 이 면은 평소 다 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②윗글의 경우처럼, 정말 또 하나 조심할 것은 밖으로 표시를 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주셨다고 남들에게 표시를 내는 경우는 일단 앞에서 설명드린 것처럼 자기 교만이라는 저급의 죄는 짓지 않을 사람인데, 그대신 자기는 하나님께 붙들려 움직이는 사람이라는 다른 형태의 고등 교만의 죄를 짓게 됩니다. 물론 철없는 자식에게 부모 정도의 신앙차원에서 교육을 위해 그렇게 하는 경우는 그럴 수 있지만, 여기서 조심하시라고 요청하는 것은 일반 다른 사람들을 상대할 때를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이 깨닫게 해주셨기 때문에 깨달았다’는 이런 말을 하지 않아도 이런 사실이 늘 가슴 깊이 저려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면을 너무 잊어버리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자기가 전적 책임지고 기르는 자기 신앙의 어린 식구가 아닌 일반인을 상대로 ‘이 깨달음은 하나님께서 직접 가르쳐 주신 것이라’고 표현한다는 것은 고등교만에 빠졌다고 비판을 들어도 할 말이 없을 발언입니다.
③특히 부족하여 실수가 많은 사람이, 그런 표현을 하게 되면 복음에 욕이 많아집니다.
뒤로는 교회 돈을 빼먹는 목회자가 가끔 회개하고 밝아지는 심령을 가졌을 때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주셨다며 이런 저런 발언을 하게 되면, 그를 접하는 모든 어린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이름과 깨달은 그 진리까지도 도매금으로 욕을 하게 만들어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집단적인 죄를 범하게 만들게 됩니다.
우리 공회 노선은 교회 차량에 교회 이름을 붙이지 않고 어디 외부로 움직여도 교회 단체가 움직인다는 표시를 최대한 내지 않습니다. 일반 교계는 플래카드를 써붙이고 성도라는 이름을 불신자들에게 대대적으로 광고 홍보를 하면서 다닙니다. 그 차이가 바로 이 면에 대한 깨달음의 차이입니다.
④남들에게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깨달음이 그렇게 전파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면?
그것은 내 입으로 그렇게 표현하지 않아도 옳은 진리는 그 진리 스스로 진리임을 증거하고 나서기 때문에 그 진리를 바로 증거 하는 자기가 아무리 덮어 가루려고 해도 저절로 증거가 되어 집니다. 그냥 주시는 대로 또박또박 전하기만 하고 그 설교나 강의나 글에다 대고 글마다 이글은 이 설명은 하나님께서 직접 주신 것이라고 마크를 새겨놓지 않아도, 옳은 것은 그 사람의 개인 경건과 두뇌로 비롯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직접 하신 것이며 그런 사실은 내가 교만을 가지고 설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다 알리시고 발표하게 됩니다.
⑤자기 발언의 원산지 표시를 하나님으로 자꾸 붙이면 참으로 가증하게 될 수 있습니다.
현재 자기 생각에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것이라고 단정을 했는데 훗날 되돌아보면 아닌 것이 많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부족하여 생기는 것이고 심지어 사도 바울이 그 말년에 성자 중의 성자가 되었을 때에도 자기 부족을 느껴 죄인 중의 괴수라고 표현했는데, 하물며 우리 평범한 사람들이 평소 10번 말하면 9번은 자기 주관이고 1번만 하나님께 붙들려 말할까 말까 하는데, 자기가 생각한 것을 자기가 판단하여 하나님이 이 깨달음을 주신 것이라고 상표를 다 찍어버리면, 결과적으로 하나님 이름까지 팔아서 자기 주관을 미화한 것이니 이는 하나님 이름 도용의 죄까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죄는 죄 중에서도 굉장히 큰 죄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삼가 조심할 문제입니다.
⑥정말로 큰 문제는, 고칠 수 있는 가능성조차를 차단하게 됩니다.
사람이 누구나 다 실수할 수 있으므로 우리에게 회개의 길을 열어놓으셨고 이 회개의 길 때문에 우리는 출발할 때 엄청나게 부족해도 가면 갈수록 점점 나아지는 소망을 가지는 것인데, 자기 발언에다 자꾸 하나님이 주신 깨달음이라고 붙여버리면, 남들에게 자기가 발언한 것은 정확하고 부족이 없으니 반론을 하지 말라는 것이 되어 남이 보면 자기 단점을 더 잘 알게 하신 이 치료의 법, 회개의 좋은 주변 도움을 전부 차단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⑦백목사님처럼, 열매를 많이 확인한 분들은 나무만 보고도 발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평생 수없는 환경과 고비를 넘기면서 하나님의 인도와 자기 주관을 구별하고 열매로 나타나기 전에 미리 주관인지 영감인지 그 종자를 알아볼 정도의 영안을 가진 분들은 현재 진행형으로 증거하는 말씀을 그 듣는 이들에게 귀담아 듣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주셨다고 표현하여 그 듣는 이들로 하여금 삼가 듣는 복을 가지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맺어진 결과를 뒤돌아 볼 때 너무도 틀린 것이 많고 자기의 발언이 뒤죽박죽이 되어 사람치고도 별로 믿을 사람이 되기 어려운 사람으로 살아온 것이 우리들인데, 또 다시 지금 자기 생각에 이 깨달음은 옳겠다고 퍼뜩 생각이 들면 하나님께서 주신 깨달음이라고 표현해 버린다면, 안타까운 일들이 많아집니다.
요13:10-11 글을 적으신 분은 그 글의 내용으로 볼 때 신령하게 사는 분이고 하나님 동행에 주력하는 분이어서 우리 보통 사람들과 비교한다면 탁월하게 사는 성자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일반인을 향해 발표하는 글에서는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주셨다는 표시를 하는 것은 앞에서 살펴본 대로 아주 위험하게 나가는 길이며, 공회 노선은 이런 표현을 위험신호로 표시하고 자제를 권하고 있으니, 비록 공회교인이 아니라 해도 윗글 정도를 적는 분이라면 이미 공회 교인이 되었다 생각하고 이 글로 권면했으면 하고, 만일 공회교인이면 공회 내에 적지 않은 불건전한 신비주의 실패자가 있음을 고려하여 자신을 제어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