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어리와 귀머거리 둘이서 대화하고 있다고 이해해 주셨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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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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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09 00:00
1.돌고 또 돌고 또 돌고 있습니다.
답변자가 벙어리인지 듣는 상대방이 귀머거리인지...
공회 교역자회에서 늘 이런 일이 반복되어 그렇게 고통스러웠는데
또다시 그런 교역자회에 앉아 있는 듯 합니다.
재독예배 정죄건 때도 한도없이 그런 분들을 상대했는데
서목사님 시무투표 건에도 한도없이 그렇게 했는데
이제 또 다시 한도없이 상대방 말은 듣지도 않고 자기 말만 하는 분들 상대해야 하는가?
돌고
또 돌고
또 돌고 있습니다.
필요한 만큼 설명하지 않으면
수도없는 교회들이 대구공회 서울공회로 다 빠져나가듯 그런 안타까운 결과가 있고
그렇게 가서 끝까지 이전 주장을 하기라도 하면 양심만은 있어 돌아오기는 쉬울 터인데
그렇게 가서는 과거 잊기를 감쪽같이 잊어버리니
그 정체를 두고 탄식을 합니다.
또 그런 분들을 상대하지 않을 수 없는 위치를 탄식합니다.
주관과 영감을 착각하고
한번 자기 생각에서 나온 것은 성경이든 교리든 무엇이든 끌어대어
대화도 없고 듣는 것도 없고 오로지 탁월한 이 교리의 논리만 이용해서
귀는 막고 입만 자꾸 중얼거리고 있습니다.
누구는 그런 분들에게 몇 마디 하고 나서 그냥 두라 하지만
백목사님을 도성인신하신 예수님이라 하며 전국을 돌아다닌 교인을 두고
백목사님은 그 여파가 너무 크기 때문에 주변에 그런 일을 막으라 하시다가
결국 아무도 듣지 않고 우습게 생각하며 하나님 주권에 맡겨야 한다 하자
1985년 어느 초여름 주일날 오전 식사 후 전화를 해서
마치 이 글에서 답변자 탄식하듯 목사님께서 탄식하던 것이 기억납니다.
2.일단 글을 올려 놓았으니
그냥 두면 윗글로 소개한 내용이 맞다고 생각할 분들 때문에
그런 글로 인하여 일어날 뒷날 피할 수 없는 다른 분란 때문에
할 수 없이 또 손을 들어 진화하는 일을 맡고 나서겠습니다.
대신 이제까지 충분히 대화는 했으므로 앞으로는 효과적으로 진화가 되도록 과거 한번씩 사용하던 표현이나 자세를 사용할 수밖에 없겠는데, 이해 바랍니다.
3.질문글에 소개한 내용은 문답방의 질문으로 읽고 답변합니다.
(김목사님의 글)
>●마19:28의 건
>
>590번 글에서 "마19:28 말씀을 비롯 차분하게 살필 성구가 많은데" 하여
>가룟 유다를 12 사도 안에 넣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행1:25-26에 "유다는 이를 버리옵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는
>말씀으로 가룟 유다는 12 사도 안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성구로 제시하였습니다.
>그런데 최종적으로 619 글에 말씀하기를 "바울은 이 기준의 12사도이기 때문입니다."
>하셨으니 마19:28로 가롯 유다를 12 사도 안에 속한 성구로 제시한 것은
>잘못 실수임을 스스로 자인한 셈이 되겠습니다.
(답변자의 안내)
예수님이 직접 불러서 성경기록과 신약교회 시작을 하게 한 것이 '12사도' 요건입니다.
이 기준이 일반신학과 백목사님의 '특별한 12사도' 선정 기준입니다.
예수님의 직접 부르심과 성경기록이라는 요건을 두고 맛디아는 배제되고 바울은 포함됩니다.
김목사님이 윗글 중간 부분에 인용한 '바울은 이 기준의 12사도'라고 한 619번 글의 '기준'은 바로 이 기준이라고 619번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19:28에서 김목사님이 정확무오하게 믿는 성경이 가룟유다를 12사도 중 하나로 포함을 시켰고
행1:25-26에서 김목사님이 정확무오하게 믿는 성경이 사도직을 버리고 갔다 했고
특별한 사도의 기준이 일반신학과 백목사님이 3가지로 설명한 것이 맞다면
맛디아는 3가지 기준 중 적어도 2가지에 미달되고
바울은 3가지 기준에 다 맞는 사도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일반사도이기도 하지만 특별한 12사도 중 가룟유다 대신 하나로 포함되고
그래서 맛디아는 일반사도로만 분류하지 특별한 12사도 중에는 포함시키지 않습니다.
상기 글에서 김목사님이 답변자가 자인한 셈이라며 바울의 '이 기준'을 인용하는 바
김목사님과 답변자 둘 중의 한 사람은
초등학교 한글을 제대로 적지 못하거나 아니면 제대로 읽지 못하는 수준이니
둘 중 한 사람은 교리를 논하기 전에 불신자들이 만든 한글을 우선 배워야 하겠습니다.
이번 유다 문제를 두고 오가는 글은 애초부터 교리 연구 차원이 아니라
상대방의 말귀를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억지 차원의 횡패수준입니다.
(김목사님의 글)
>●맛디아 대 바울 건
>성경을 해석한 일반신학을 근거하여 바울이 12 제자 안에 포함되는 것을 제시하셨습니다.
>이는 목회교훈 차원입니다.
>맛디아를 12 제자 안에 포함시킨 것은 정확무오한 성경을 근거하여 제시하였습니다.
>이는 성경기록 차원입니다.
>고전15:4-8에 보면 바울도 자신을 제외한 12 제자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12제자 안에 자신을 포함시키지 않았습니다.
(답변자의 안내)
백영희목사님은 맛디아를 뽑은 것을 인간들의 조작배기라 늘 가르쳤는데
백목사님이 그렇게 가르친 것이 맞다면 백목사님은 김목사님이 정확무오한 성경 기록 차원에서 발견한 것조차 모르고 일반신학을 근거로 목회차원에서 바울을 사도로 포함시킨 분이라고 하겠습니다. 백목사님도 잘못된 면이 많으므로 그 제자들이 시정해야 할 사안이 많겠지만 김목사님 차원에서 백목사님의 교훈을 틀렸다고 지적할 때는 조금 신중했으면 좋겠습니다.
이 홈이 김목사님에 대하여 가지는 아쉬운 점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단 한가지입니다.
성급합니다. 주관인지 성령인지, 착각인지 정확한 것인지 생각하지 않고
성급하게 입밖으로 무엇이든 뱉고 봅니다.
백영희 노선도 고쳐가며 자라가야 할 것이 많지만
답변자와 김목사님이 이 노선을 고치려 할 때는 대단히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김목사님의 글)
>◎ 관련 성구
>⊙[(고전15:4-8)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답변자의 안내)
위 성구는 성경 인용에서 아주 조심해야 할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위 성구를 김목사님처럼 그렇게 갖다 붙일 수 있다면 여호와의증인도 정확무오한 성경대로의 집단이라고 인정을 해 줘야 할 정도입니다. 지금 자기 주관을 증명하기 위해 성구를 너무 성급하게 읽고 아무렇게나 제시한다고 우려합니다. 자기 생각을 중심에 두고 성경의 성구들은 그 생각을 증명하는 징집 동원병력처럼 사용하고 있습니다. 윗 성구의 시점 배열을 다시 한번 살펴보셨으면 합니다. 이렇게까지 성구를 갖다대면 한국교회의 선배들 중 초기에는 그렇게 신령하게 나가다가 뒤에 탈선한 분들을 따라가는 첩경입니다.
(김목사님의 글)
>● 참고
>성경기록 대로 엄밀히 본다면 맛디아는 12사도 안에 들어 있습니다.
>그에 대한 근거 성구입니다.
>
>1. 행1:26에 보면 '맛디아'를 열한 사도에 가입했습니다.
>(행1:26) 제비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저가 열한 사도의 수에 가입하니라
>2. 행6:2에 보면 '열 두 사도'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그 때에 맛디아가 포함되고 있습니다.
>(행6:2)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
>3. 행7:58에 '사울'이 등장하고 행9:3에 주님의 부르심이 있었으니까 행6:2에
>열 두 사도라는 것은 바울이 아니고 맛디아 임을 알 수 있습니다.
>(행7:58)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새 ....
>(행9:3-5) 사울이 행하여 ........
>4. 고전15:4-8에 보면 바울도 자신을 제외한 12제자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12제자 안에 자신을 포함시키지 않았습니다.
>(고전15:4-8)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
(답변자의 안내)
일반적으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종들을 사도라고 하는 일반적 개념의 사도도 있고
특별히 성경을 기록하게 하는 특별 사도들도 있다는 이 설명을 듣지 않고
무조건 사도라는 단어만 검색해서 온 성구들을 끌어다 대고 있습니다.
맛디아가 포함되었을 때 12명이라는 숫자는 일반적 의미의 사도인 맛디아가 포함된 수이니 이런 경우 12명의 수는 성경기록권을 갖는 특별한 의미의 사도를 지칭하는 12사도와 다릅니다.
지금 인용한 12명은 그냥 머리 숫자 12명을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기록할 수 있는 사도로서 예수님께서 직접 부른 사도들의 경우는 구약의 12지파처럼 반드시 그 이름이 12명 이름으로만 사용되지 않고 예수님이 특별하게 지목한 그 전체를 나타나는 수로도 사용됩니다. 따라서 위에 갖다 댄 성구들은 그 성구들을 아무리 갖다대어도 답변자가 설명한 설명이 달라질 것이 없고 그 성구들 때문에 김목사님 주장이 옳다고 증명될 성구가 아닙니다.
이런 정도의 파악은 일반 신학도 알고 있는 바이며 구약의 12지파와 신약의 12지파가 '12'라는 숫자를 두고 '전부'를 나타내는 총칭 의미가 중심에 있는 경우와 단순히 헤아려 숫자로 나타낸 경우를 구분할 수 있어야 대화가 되고, 그렇게 해야 신구약의 12명 관련 지파와 사도들을 파악하고 관련 성구를 전체 성경 중 한부분으로 상대할 수 있습니다. 이 노선도 사도와 관련한 교리에서는 일반 신학을 일반 신학으로 대하지 않고 이 노선의 교리로 상대하고 있습니다.
마19:28 말씀을 생각지도 못하고 요13:10-11 말씀만 얼른 끄집어냈다가 반론을 받으니까 지금 이 성구 저 성구 정신없이 갖다 대고 있습니다. 이미 수년 전에 요13:10-11 말씀과 그 반대되는 마19:28 말씀과 기타 여러 말씀을 면밀하게 분석해 드렸고 맛디아와 바울의 사도 포함 문제도 이미 이 홈에서는 수십 년 전에 다 검토하였던 문제인데 마치 모든 것을 이제 발견한 목사님 혼자 새 교리를 발견한 듯 여러 표현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아쉬운 일입니다.
위에서 여러 성구들을 다 들이대고 있지만, 마치 건설구원을 반대하는 분들이 성경을 갖다대지만 건설구원의 개념 자체를 부러 잊고 들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헛수고만 하는 것 같다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4.두 노선이 분리되며 따로 나가고 있습니다.
맛디아와 바울 중 누가 12사도냐는 문제를 가지고
총공회 노선은 바울이라고 단정을 하고 있으며 김목사님 노선은 맛디아라고 단정을 하고 있습니다.
총공회도 '정확무오한 성경'을 근거로 그렇게 가르치고
김목사님도 '정확무오한 성경'을 근거로 다르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홈은 현재까지 총공회 노선이 옳다고 깨닫고 있습니다.
비록 양 노선이 다르게 깨닫는다 해도
이 노선은 김목사님 노선이 불경이나 외경을 근거로 그렇게 말한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노선의 입장을 주장할 때 우리는 '정확무오한 성경'을 근거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너무 당연하기 때문이고 만일 그렇게 표현하면 김반석 노선은 그렇지 않은 것처럼 비판하는 말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노선은 김목사님 노선이 '정확무오한 성경'을 잘못 읽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김목사님은 이 홈에서 제공하는 이 노선의 많은 자료를 활용했습니다.
그때마다 김목사님은 '정확무오한 성경'을 근거했기 때문에 인용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이 노선은 늘 정확무오한 성경만 근거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라 정확무오한 성경을 잘못 깨달을 수는 있지만 아는 대로는 성경만 근거하는 것이 이 노선이며 김목사님 노선입니다. 따라서 '정확무오한 성경을 근거'한다는 이런 표현은 대화하는 상대방의 여러 입장을 살피는 것이 옳습니다.
이 홈 답변자로서 '성령이 깨닫게 해주셨다'고 표현한 경우가 거의 없지만 그동안 이곳에 올린 글은 답변자 인간 스스로 알 차원이 아니었고 비록 배웠다 해도 이것을 인정한 것은 인간 스스로일 수가 없는 내용들이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홈의 모든 글을 적을 때마다 내심으로는 성령이 깨닫게 해주셔서 그대로 전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되돌아 볼 때 답변자의 착각이 있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배워 가는 사람으로서는 성령이 가르쳐 주신 것이라는 상표를 최대한 달지 않고 나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