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일위의 양성의 상호관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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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일위의 양성의 상호관계는

설명
yilee 0 9


1.신인양성일위 교리의 교리사적 의미

1500년 이전 초대교회가 오랜 세월 토씨 하나씩을 놓고 이단과 정통으로 나뉘며 형성된 교리입니다. 정통교회가 이 교리를 그대로 이어오고 있으며 우리 노선도 이 교리에 대하여 그대로 잇고 있습니다. 우리 노선에서 이 교리가 더 밝아지게 된 것은 구원론 때문입니다.


2.신인양성일위와 건설구원

신인양성일위 교리가 지옥갈 죄인을 천국 가도록 만드는데 필요한 기본 요건인 줄로만 알았으나, 백영희 노선에서는 그 기본구원적 필수요건에 하나를 더하여 믿은 이후 믿는 사람이 자라가며 또한 천국에서 영원히 자라가야 하는 건설구원면에도 필수적인 요건임을 밝혔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교리는 우리가 자라갈 때 알아야 할 모든 자세한 상황 전부를 다 담고 있습니다.

백목사님의 건설구원론은 이렇게 기존 모든 교리를 과거 차원에서 짐작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에서 또 하나의 의미를 갖게 하며 또한 과거 모든 교리를 아날로그식 느낌으로만 대하고 활용하던 것을 더욱 깊게 하면서 동시에 디지탈로 분석하여 활용하면서 그 사용 차원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도록 만드는 엄청난 세계입니다.


3.윗글 질문하신 다음 표현

>[신인양성일위(神人兩性一位)]라고 하면 신성과 인성이 짝을 이루어
>대등적 양성(兩性)으로 일위가 되었다는 표현이 되지만,
>[신인이성일위(神人二性一位)]라고 하면 신성과 인성 이성(二性)이 일위라는
>단순적 표현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표현을 하신 분이 신인양성일위의 형성과정과 그 의미를 교리사적으로 아셨다면 일반교계를 향해 굳이 이단시비로 나갈 수 있는 표현을 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일반노선에서 이단으로 오해를 하고 시비를 하고 나선다 해도 어떤 표현은 그렇게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게 새로운 깨달음을 열어 반드시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있어 그렇게 표현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이 노선은 최대한 전통 교회의 과거 표현을 바꾸지 않습니다. 또한 교리에 관한 표현은 그 뜻이 같다 해도 여러 사람이 제각각 생각나는 대로 자기 취향대로 표현하게 되면 그 표현의 혼동이 이단교리로 인하여 교리 자체가 잘못 증거되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기 때문에 교리 표현은 엄격하게 보수적 입장을 고수하는 것이 옳습니다.


4.'양성일위'의 양성의 관계는

구성 존재의 출신으로 말하면
한쪽은 완전자 창조주 하나님이며 한쪽은 불완전의 피조물 인간입니다.
양쪽의 관계는 그 이상 표현할 수 없는 극과 극의 높낮이를 가졌습니다.
말하자면 신성 하나님이 집주인이라면 인성 인간은 그 집 화장실 구더기와 같습니다.

둘이 하나가 되어 한 분이 된 것은
인간이 지은 죄는 인간이 담당해야 하기 때문에 비록 하나님이시라도 인간의 몸을 입어야 했기 때문에 인성 인간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대등한 출신이거나 대등한 역할이거나 대등한 관계를 가져야 할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 단독으로는 대속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대속을 위해 '취하신' 요건입니다. 그래서 출신도 하나는 하나님이고 하나는 인간이며 그 역할과 그 영원의 구성도 그렇습니다. 하나는 원인이고 중심이고 주장이며 주체입니다. 인성은 그 원인이 필요해서 가진 소유물이고 이용물이며 종속되어 순종만 해야 하는 종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신 이위 성자 하나님이 양성일위가 되기 전에는 성부 하나님과 동등이었으나 대속의 업무를 시작하면서부터는 동등됨을 여길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졌습니다. 그래서 대속의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성부 밑에 성자가 되고, 성자 안에는 신성이 위가 되고 인성이 아래가 된 관계로 하나가 되었고 또 모든 역사도 그렇게 했습니다. 그리고 영원무궁토록 우리를 길러가실 길을 마련하신 부활의 모습도 역시 이런 관계입니다. 혹시 '친구'라는 하신 표현 때문일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으나 그 표현은 가린 것이 없이 하나되는 면을 말했지 대등이나 동등의 신분면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대등이라는 표현은
인간을 만들 때부터 자유성을 가진 존재로 만들어 특별한 목적 대상을 삼았는데 이 목적 대상을 원래 목적대로 길러가기 위해서는 자유성이 필수요소이고, 그 자유성은 마치 하나님과 대등한 관계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주체처럼 활동해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등한 관계의 당사자처럼 대우하고 있습니다. 이것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계약'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길러가시되 자유성을 주셔서 인격의 존재가 신격을 닮아가도록 하는 과정에서 '계약적 관계'가 필요하여 대등한 존재처럼 상대해 주시는 경우는 '대등'이라고 표현할 수 있지만, 신인양성일위에서 신성과 인성이 어떤 면에서 대등적 관계를 가져야 하는지는 아직 답변자로서는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혹시 표현하신 분의 실수인지 아니면 이 노선이 알지 못하는 새로운 가르침을 포함하고 있는지, 이 문제는 교리문제이고 또한 교리 중에서도 그 표현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교리 중 하나인 신인양성일위 문제이므로 이 정도에서 지켜보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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