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도의 중생에대한 문제(설교록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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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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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05 00:00
설교록을 발췌해서 읽고 나름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앞서 제대로된 성경공부나 설교록을 읽은 경우가 아니기에 엉뚱한 내용이 될 수 있음을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요약)구약시대는 미래의 예수님의 대속에 대한 소망과 예약적으로 미리 입고 영이 살아났지만(영생하는 생명으로 살아난것이 아니라 미래의 예수님의 대속을 소망하는 소망적으로) 우리의 경우처럼 성령님이 내주하시지는 않았고 외부에서 영감하셔서 구약성도들의 영을 주장하셔서 성도자신의 마음과 몸을 감화시키고 주장하도록 하셨습니다.
부연1.)
이에 대한 예표역사는 대속과 제사제도이며 창3:15에서 가죽옷을 지어입히시는 것으로 사람으로는 해결할 수 없음을 보이시고 누군가가 대신 해결해주실것을 약속하셨고,
창4장에서의 가인과 아벨의 제사에서 아벨은 짐승을 잡아서 드림으로 하나님 앞에 받으심직한 것이 되었고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했기에 하나님이 받지 못하는 제사가 되었음을 나타내 주셨습니다(85년8월집회중 수요일오전 끝날즈음 질문에대한 답변내용중 요약).
구약의 성도들 특히 다니엘의 사자굴 사건과 같은 경우도 외부적인 표시는 다니엘의 몸이었지만 성령님이 외부에서 다니엘의 영을 감동하시고 주장하셨는데 이에 대한 근거는 앞으로 오실 예수님의 대속을 미리 당겨서 영을 주장하신 역사입니다.
또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심을 산자의 하나님이심을 예수님이 증거하셨고,변화산에서의 모세와 엘리야와 대면하신 것도 구약성도의 영이 살아있음을 나타내는 사건입니다.
부연2.)
다만 이러한 정황에도 불구하고 <히11:39-40 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에서도 나타내셨듯이 예수님의 대속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온전함(성령님이 영안에 내주하셔서 힘있게 주장하시는)이 되지 못하였고 예수님의 부활후에 온전(영안에서 내주하실수 있게되어 온전한 중생이 되었음)해져서 예루살렘에 자던성도들이 들어가서 증거함으로 예표하셨습니다.
부연3.)
이와 관련하여 발췌해본 설교록 내용들입니다. A4양면으로 9-10장 분량입니다.
여러설교들을 필요한 부분만 발췌해서 모았기에 혹 설교의 원래의 취지내용이 왜곡될 소지도 있지만 위의 내용들을 참고하는데 필요할 것 같아서 밑에 붙여놓겠습니다. 참고하시고 제대로 요약이 되었는지 또 제대로 표현이 되었는지 판단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키워드(<중생 구약 예약> 또는 <예약적 중생>)로 검색해서 얼른 눈에 들어오는 부분(붉은색)만을 중심으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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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02.05 수새벽
그러면 새사람이 하면 새사람은 무슨 요소가 새사람입니까? 새사람이 한 것은 몇 가지가 합한 것이 새사람입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십시오? 세 가지. 중생된 영, 마음의 기능, 고기덩어리의 기능, 이 셋이 합했을 때에 이것을 가리켜서 새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중생된 영은 영이라고 했지 새사람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중생된 영은 성령으로 난 거는 영이니’ 말했습니다. 성령으로 난 거는 영이라 알겠습니까? 새사람은 중생된 영이 자기 심신을 점령해 가지고 이 심신과 심신의 기능과 중생된 영이 하나됐을 때에 새사람이고 새사람 됐다가 즉시 옛사람 되고 새사람 됐다가 즉시 옛사람 되고 ‘속지 말아라 죄를 안 지을 때는 곧 하나님의 아들이 됐고 금방 마귀의 자식이 된다’ 이렇게 말했어. 금방 마귀 자식이 된다 말이 뭐이오? 당장 마귀 자식 되고 당장 하나님의 아들 된다는 그거는 뭐이냐 하면 이 심신이 중생된 영과 일치가 되나 안 되나 거게서 말하는 것입니다.
여게서 데려감을 당하는 것은 중생된 영과 심신의 기능이 하나가 돼 가지고 이제. 꼭 같은 자리에서, 다니엘이 총리한 것은 그거는 중생된 영과 그 심신의 기능이 일치돼 가지고 그와같이 한 것인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 중생이 있었느냐? 중생이 있지 안했으나 미래의 중생을 가져서 그때의 그 영감이 내재해 가지고 영감하지는 안하지마는서도 외부에서 그 성령이 주관했습니다, 성령이. 그렇기 때문에 구약 영감과 신약 영감이 다릅니다.
또, 신약에 와 가지고 그 중생은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은, 무덤에서 살아난 것으로 이제 내재적 영감으로 중생된 것을 그때 표현했으나 다니엘 그런 사람도 다 미래의 영감으로 말미암아 그 영이 다 새로와져 가지고 있으나 완성을 이루지 못해.
완성이 이루어진 것은 우리가 있어야 완성인데 우리가 있지 않으면 완성을 못 이룬다 하는 것은, 히브리 11장 끝절에, 그들이 이렇게 생명 내어 놓은 결사적인 신앙을 가졌지마는서도 우리가 아니면 온전함을 이루지 못했다 하는 그말은 뭐이냐 하면은 대속주의 이 대속이, 십자가의 대속이 되기 전에는 그 구약에 생명 내놓은 신앙들이지마는 그거는 다, 아직까지 다 미결이요 미완성이요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완성이 됐다 하는 것을 표시한 성구입니다.
86.02.13목새벽 후반부
예수님의 대속의 이 공로의 무한한 능력의 힘과 또 성령의 감화 감동의 능력의 힘과 진리의 능력의 힘이, 우리 영이 세 가지로 살아났지마는서도 어린 아이기 때문에 빈약하다 말이오. 빈약한 것과 같은 것인 걸 이제 그 세 가지 능력이 힘이 배후에서 이렇게 권고하고 힘을 부어 주니까 이 중생된 영이 힘을 얻어 가지고서, 힘을 얻어 가지고 중생된 영이 그 힘으로써 무슨 역사를 하느냐 하면은 그 마음을 권고하는 역사를 합니다.
그 마음을 권고하는 역사를 하니까 마음이 이제 권고를 받아 가지고서, 이제 영과 합작이 돼 가지고 역사를 하기를 어디다 하느냐 하면은 그 몸에게다가 역사를 해 가지고 그 몸으로 하여금 또 이대로 이 세 가지의 힘으로 살라고, 이 세 가지 힘으로 살고 이 세 가지 성질로 살고 이 세 가지의 방편으로 살고 이 세 가지 힘으로 살도록 그렇게 할 때에, 그 몸이 받아 가지고 세 가지 힘으로 살면 이 몸은 이 세 가지 힘을 받아 가지고 어데다 대고 삽니까? 이 몸은 지금 이 세 가지 능력을 받아 가지고 이 능력으로서 어데다가 대고 그러면 그 행동을 합니까? 예? 사물에다 대고 합니다. 사물.
그러면, 사물이면 물건 성경책 이것도 물건 아닙니까? 물건 이걸 손으로 듭니다. 물건을 손으로 들고 읽는다 그말이오. 읽고. 또 그 힘을 가지고 자기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해라 전도도 하고, 또 모든 사람들은 다 다리오 왕에게만 기도하는데 다니엘은 다리오 왕에게 기도하지 안하고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것을 다리오 왕에게만 기도하라고 이라니까 다니엘은 하나님에게 기도할라 하고 다른 사람들은 다 다리오 왕에게만 기도하는데 다니엘은 거게만 기도하지 안하고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을 혼자 하지 안했습니까?
이와같이, 그러면 어떤 사람은 그 심신이, 다니엘 입이 말이오. 다니엘 입이 다리오 왕에게 ‘나는 죽어도, 사자구덩이에 들어가도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을 중단할 수 없습니다.’ 다니엘이 다리오 왕에게 말한 것은 다니엘이 마음이 말했습니까 고기덩어리가 말했습니까? 고기덩어리가 말했습니까 마음이 말했습니까? 마음이 말할 줄 압니까? 고기덩어리가 말했습니다. 다니엘이 고기덩어리가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거 중단할 수 없습니다.’ 이랬습니다. 다니엘이 입으로 그렇게 했습니다.
입으로 그랬는데, 입으로 그래한 것은 그 힘은 무슨 힘입니까? 그 힘은 어데서 왔습니까? 마음에서 왔습니다. 마음에서 왔었는데 그 마음에서 온 힘은 몇 가지 힘입니까? 세 가지 힘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 전이지마는서도 미래의, 짐승으로써 대신해서 예약의 약속대로 했기 때문에 구약에 있는 사람은 짐승으로서 사죄를 받아 가지고 이렇게 있다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그것이 완성이 됐습니다.
그러면, 마음의 힘을 받아 가지고 그랬는데 그 마음은 어데서 힘을 받았습니까? 영에게서 힘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그 영은 어데서 받았습니까? 이 세 가지 능력에게서 힘을 받았습니다. 그래 가지고 그와같이 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세 가지 능력으로 중생돼서 어떤 사람은, 어떤 사람의 그 심령은 예민하고 그 심령은 하나님이 복되게 만들어서 영이 말하면 즉시 고대로 딱딱 들어서 순종하는 마음도 있고 강퍅한 마음은 잘 듣지를 아니합니다.
후란시스는, 후란시스의 마음은 어떤 마음을 가졌느냐? 후란시스는 그 중생된 영이 있다가서 이제 나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중생됐기 때문에 이 마음과 몸은 다시는 딴거하고 합할 수가 없다. 그리스도와만 합해서 그리스도와만 배후가 돼 가지고 살지 그리스도와만 짝이 돼 가지고 살지 딴거 짝이 돼 가지고 살지 못한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와 짝되어 살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과 짝되어 살고 예수 그리스도의 뜻인 그 진리와 짝되어 살지, 진리와 영감과 대속의 공로로만 짝이 되지 딴거는 나의 배필이 없다. 내 짝이 없다.
86.02.27 목새벽 후반부
사자의 발을 막고 입을 막고 이렇게 된 것이 다니엘이 믿음이 좋아서 그랬습니까, 담력으로 말미암아 그랬습니까, 다니엘 의지로 말미암아 그랬습니까? 요새 최면술이니 기합술이니 하는 거 모양으로 기합술로 가지고 그와같이 됐습니까 뭘로 됐습니까? 예? 고 속에 뭐이 들었지요? 하나님의 의가 들었다 말이오.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의 지극히 큰 공로가 들었기 때문에 그 공로로 말미암아 쾅 터져 나왔다 그거요.
그러면, 그때에 구약 시대인데 어찌 예수님이 그 후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는데 그때 사람에게, 예수님 못 박히시기도 전에 그 효력이 나왔는가? 그거는 창세기 3장 15절에 ‘여인의 후손과 배암의 후손이 싸울 터인데 이제 여인의 후손이 배암의 후손의 대가리를 상하게 한다’ 하는 그것이 그때부터 계약된 약속된 것으로서,
그러니까 그때부터, 범죄 타락 후부터 예수님의 공로를 그들에게 준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그 표시는 짐승을 잡아서 가죽 옷을 입혔던 것이오. 또 가인과 아벨이 둘이 제사를 지냈을 때에 가인의 제사는 하나님이 부정해 버렸고 아벨의 제사를 받으신 것은 뭐이냐 하면은 아벨이 짐승 잡아서 제사 드렸기 때문에 그 제사를 받았습니다.
그거는 뭐이냐? 하나님이 그들에게 약속한 그 약속을 지켜서 미래에 신인 양성 일위의 구주의 대속, 하나님이 우리를 대속해 주시는 미래의 대속을, 하나님이 예약으로 약속한 그 예약을 믿기 때문에, 계약을 믿으니까 하나님께서 그 공로를 베풀어서 다니엘이 사자구덩이에서 살아나온 것이 그것이 무슨 능력으로 살아 나왔습니까? 무슨 효력으로 나왔어? 무슨 공로로 살아 나왔어?
다니엘이 사자구덩이에서 살아난 것은 무슨 공로로 살아 나왔습니까? 자기 믿음의 공로로 살아 나왔습니까? 사활의 하나님의 의인, 하나님의 의라 말은 예수님이 사활하신 그것이 의인데, 하나님의 의인데. 그 사활의 공로로 그렇게 됐습니까, 자기 믿음의 효력으로 됐습니까? 사활의 공로로 됐습니다.
86.04.23 수밤 전반부
하나님이 제일 노여워하시는 세 가지는 하나님의 이 법도를 어기는 것과 또 피조물이 피조물 위주로 사는 것과 하나님을 배반하는 이 세 가지 죄가 제일 하나님 앞에 거리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또 기뻐하시는 의 세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잘못된 이 세 가지 죄를 없이 하는 것과 또 하나님의 지성 지공의 법을 완전 이행한 것과 또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의 동거 동행하는 이 세 가지입니다.
이래서, 하나님의 심판은 이 세 가지 노를 정죄하는 것이 하나님의 공심판이요 또 세 가지 의에게 보상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심판인 것입니다.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신 신인양성일위이신 예수님께서 세 가지 노를 다 풀어 드렸고 세 가지 기뻐하심을 다 설정했습니다.
이 일은 사람만으로도 안 되고 하나님만으로도 안 되는 일이 있어 사람만으로는 유한하기 때문에 안 되고 하나님만으로서는 피조물을 대신할 수 없기 때문에 안 되는 이 어려운 모순 속에서 하나님과 사람이 한 격을 이루고, 신격과 인격이 한 격이 되고, 또 한 일을 같이 책임지고 감당하시는 일위의 이 지위를 가지셔서 이 일을 완성했습니다. 이래서 기독교는 신인양성일위의 교주를 모신 것이 기독교입니다.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세 가지 하나님의 진노를 해결 짓고 세 가지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일을 완성해서 하나님의 공심판을 면하게 된 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의라 그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은 이런 의를 베풀 아무런 이유도 없는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이신데 피조물의 이 노엽게 하는 것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이 일을 할 수 없어 피조물이 할 수 없는 것을 신인양성일위가 이 일을 책임지고 하신 것이 하나님의 의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과 사람이 사람을 대신해서 세 가지 노를 풀고 세 가지 기쁨을 완성해서 하나님의 공심판을 만족히 통과하고 남음이 있는 이 공로가 설정됐는데 이 공로는 사람들의 그 전부를 대신해서 대속을 하신 것이 아니고 영원 전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받은 사람들에 한해서 여섯 가지 이 문제를 대속하심으로 완료를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속은 만인 구원, 전인류 구원이 아니고 제한된 구원이니 택한 자들에게만 한해서 이 대속의 공로를 베푸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대속의 공로를 베푸신 것은 지금으로부터 이천 년이 좀 못 되는, 지금으로 말하면 1986년인데 거기다가 오 년을 그라면 91년 되겠습니다. 그때에 십자가에서 대속을 베푸셨는데, 택함을 입은 사람들은 언제부터 지구상에 있게 됐는가 하면 창세기 1장에 아담 하와가 택함을 입은 사람들이요, 또 거게서 가인 아벨 셋 이 사람들이 택함을 입은 백성들이요, 또 그 외에 성경에 기록되지 안한 사람들이 있으니 그 사람들은 택함을 입지 안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래서, 그때부터 하나님의 택함을 입은 백성들은 창조 받기 시작돼 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창조를 받았는데 그분들은 하나님이 예약으로 짐승을 잡아서 대속의 제물로 삼는, 곧 신인양성일위의 대속 그 실상이 이루어지는 그 실상을 미래에 두고 하나님의 모형적 예약을 준행함으로 구약에 속한 사람들은 이 대속을 입게 됐고, 또 지금 신약에 속한 사람들은 지나간, 예수님이 대속하신 그 지나간 대속을 우리들이 다 믿고 이렇게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대속하신 이전의 사람들이 대속된 것은 세례 요한이가 세상 죄를 지고 갈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고 증거를 했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장벽이 되어있는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있는 휘장이 사람 손대지 안하고 위로부터 아래까지 갈라져서 휘장 가운데 열린 문이 생겨졌습니다.
예수님 이 십자가 못 박히시기 전에는 짐승의 피를 가지고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 번만 출입했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그 휘장은 즉시 동시에 갈라져서 구약에 있는 모든 짐승으로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번제를 드린 이 제사가 예수님의 대속을 예표, 모형, 예약한 것인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실상이 이루어진 것을 증거해서 휘장이 갈라졌고, 바위가 터졌고, 부활하셨을 때에 자던 성인들이 많이 일어나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서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구약 성도들에 다 부활의 소망을 가지게 되고 한 것을 그렇게 계시를 해 주셨습니다.
그라고, 신약 교회에는 예수님이 이렇게 대속하신 것을 오순절 성령이 강림하셔 가지고 대속하신 것을 증거해서 이 택함을 입은 자 곧 예수님의 대속을 입은 자들에게는 성령이 그들에게 임해 가지고 성령으로 중생하는 이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세 가지 노를 풀고 세 가지 기쁘시게 하는 이 일로써 하나님의 공심판에 의인이라고 인정 통과된 이 대속을 입은 사람들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의를 입은 의인들이라 그렇게 성경에 말씀하셨습니다.
86.8.3 주일오후 초반에..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것은 택함을 입은 사람들이요 또 중생된 사람들입니다.
‘사람의 딸들’ 하는 이것은 사람은 보기에 꼭 같은 사람이지마는서도 영원 전 택함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요, 하나님의 대속을 입지 못한 사람들이요, 또 중생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전이지마는서도 그들은 하나님의 계약적 대속을 입었습니다. 구약 대속은 짐승으로 예수님을 예표한 그 예약적 대속을 입었고 또 구약적 중생을 받은 사람들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말했고 사람들의 딸들이라는 것은 예수님의 예약적 대속도, 예약적 구원도, 예약적 중생도 하지 못한 그런 불택자들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물론 택자들의 딸도 아름답게 나고 불택자들의 딸도 아름답게 났지마는 택자들이 믿는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취해서 이렇게 결혼하는 건 할 수 있지마는서도 불신자의 딸과 결혼하는 것은 결혼할 수 없다고 신약 성경에도 말씀을 했습니다.
86.10.25 토새벽
「그러면 거기에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는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를 예약적으로 예표적으로 그들은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제 완성해 놓은 대속을 받은 자입니다. 그들은 예표로 받았기 때문에 예표로 예약으로 받은 그것이 복음입니다. 짐승의 피로 속죄제, 속건제, 번제, 화목제의 이 대속의 약속을 예약적으로 받은 것이 그들이 복음 받은 겁니다.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치 아니함을 인하여」 「순종치 아니함을 인하여」 무슨 순종? 예약을 순종치 안한 것입니다. 예약을, 짐승의 피로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번제 이것을, 이 예약을 순종 안 했습니다. 아벨은 순종해서 구원에 이르렀고 가인은 순종치 안하여 구원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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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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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데, 오늘 금요일날 왔는데 여러분들이 연구하기 위해서, 안식일이 세 번 지나갔습니다. 제일 처음에 안식을 타락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아담 하와에게 안식 줬습니다. 줬는데 그때는 대속이 없이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피조물을 사람들에게 주시면서 “네가 정복하고 통치하라” 이런 권세를 주시고 다만 그때에 주신 법은 뭐이냐 하면은 “동산에서 동산을 지키고 다스리고 하나님이 먹으라는 것만 먹고 먹지 말라는 건 안 먹고” 요것이 하나님이 계약하신 계약이었습니다. 요것만 지키면 그때에 죽음이 없고 영원히 안식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지으신 게 다 저희 것이라. 정복하는 건 저희들이 다 다스릴 수가 있고 저희가 소유하고 얼마든지 이용할 수가 있어서 에덴동산에서는 아무런 이런 다른 일이 없었습니다. 하나님만 섬기고 모든 피조물들은 다 정복이 됐기 때문에 그것은 모든 피조물이 아담에게 다 복종하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이라다가 배암에게 꼬임받아 가지고 이 안식을, 안식하는 모든 일을 하는 것을 주셨는데 안식에는, 복 줬다는 것은 뭘 복 줬다 하느냐 하면은 이 일차 안식에서는 “이 모든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고 생육하고 번식하라” 하는 이것이 복입니다. 우리의 복과는 지금 다릅니다. 그는 다 유한의 복이요 땅의 것들인데, 이랬는데 그거 하나님과 안식을 할 수 있는 그 법칙을 줬는데 법칙을 어겨 가지고 그만 거게서 안식에서 패전했습니다.
패전해서 하나님께서 거게 하나 더 첨부해 가지고 대속을 첨부했습니다. 여인
의 후손으로 인해서 너희들이 이렇게 배암의 후손으로 다 승리하는 이 대속이 있을 것을 그때 말씀하시고 그때부터 예수님의 이 대속의 예약적 예표적 대속이 있었으니 이것이 곧 짐승으로 짐승의 피를 가지고 사죄, 칭의, 화친의 이 대속을 얻을 수 있는 모형적, 예표적, 예약적 대속인데 말하면 성경에는 지금은 실상이요 그때는 그림자와 같다고 그렇게 표시한 것도 있습니다.
이래 가지고, 그때는, 구약 시대는 이 두번째 안식을 가지고 그들이 다 구원 얻게 됐는데 두번째 안식은 예수님의 예약적 예표적 대속을 소망하고 지켰기 때문에 이 대속을 완전히 지킨 사람들은 우리의 구원과 꼭 같은 구원을 얻게 됩니다.
그러면 그 구원을 언제 얻느냐? 그 구원을 얻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에 그때에 이제 휘장이 찢어졌고, 또 바위가 터졌고, 모든 흑암에서 빛이 다시 드러났고, 또 무덤이 열리고 무덤 가운데에서 죽은 성도들이 일어나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예수님의 재림 때 부활을 인하여서 다시 머물고 있는 그때에 비로소 그들의 바라보던 그 구원이 완성됐습니다. 예수님이 만일 십자가에 못박히지 안했으면 구약 시대에 있는 모든 그 대속의 예약을 믿는 일은 다 헛일이 되고 맙니다.
이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온 것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당신이 모든 예약적으로 선포해 놓은 그 전부가 예약입니다. 구약은 다 예약인데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안 하면 벌한다” 그런 게 다 예약인데 그 예약을 완성하기 위해서 오셨다 했습니다. 그 완성은 언제 했느냐 하면은 십자가 못박혀 죽으실 때에 대속의 완성이 됐고 또 삼일만에 부활하심으로써 영원한 구속의 완성이 된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그때 그들은 미래의 이 대속을 소망하고 믿음으로 구원 얻은 사람
들이 약간 있었고, 이 신약에서는 이 완성된 대속을 입음으로써 그때와 다른 “성령을 물붓듯 부어 준다” 하는 그 약속이 예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루어져서, 구약 성도들이 성령 받은 것과 신약 성도들이 성령 받은 것이 다릅니다. 구약 성도들이 성령 받은 것은 언제든지 중복적이고 외부적입니다. 이래서 감화를 시켜서 역사해서 역사할 때만 역사했지마는 신약 시대는 이 성령이 우리 안에 와 가지고 중생시켜서 역사하십니다.
그러면, 그때는 다 예약적 중생이요, 그러기 때문에 성령의 역사가 있기는 있었지마는 성령이 우리 생명이 되어 있는 것처럼 이렇게 생명돼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금 중생한 생명은 성령의 이 능력이 우리의 생명이 됐고, 진리의 능력이 우리 생명이 됐고, 예수님의 피의 세 가지 대속의 공로가 우리의 생명이 됐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생명이신 예수님이라” 말은 예수님의 이 사활의 대속을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래서, 안식일 말하는 것은 뭐이냐 하면은 이 안식일 하는 것은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는 그 준비를 하는 날로 우리에게 주신 것인데 이것을 구약 때도 잘 깨닫지 못해서 일반 사람들은 일하지 않는 것이 안식 지키는 것인 줄로 그렇게 알았고, 일하지 않는 것은 안식 지키는 것이지마는 일하지 않는 거게서는 안식 지키는 외부의 소극적인 행위고 적극적인 행위는 안식 지키는 것은 예수님을 예표한 예약한, 속건제, 속죄제, 화목제, 번제 이 제에 거리낌이 없이, 있으면은 제사를 드려 가지고 하나도 하나님과의 허물도, 죄도, 모든 불목한 것도 이런 모든 하나님께 다 바쳐, 번제는 다 바치는 것입니다.
다 바치는 그런 것이 미완성 될 때에는 완성하는 그 일을 안식일날 한번 다져서 깨끗이 하고 하는 그런 사람들은 안식에 들어갔지마는 그거는 하지 못하고 그저 그날 일하지 안하는 것으로, 일하지 않는 것은 일을 안 하는 것이 그 목적이 아니고 일할 수가 없다. 그 일일랑 하지 말고 이 일 하라 하는 거, 이 일 하라 하는데 일하지 말라는 그것만 듣고서 형식으로 지켰지 이 일 하라는 그것을 하지 안했기 때문에 그때에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순종치 안한다 말은 무슨 그날 일하지 말라 해도 일을 해서 그렇다 말 아닙니다. 이거 잘못하면 외식으로 꺼꾸로 깨닫게 되는데, 일하지 말라 했는데 일을 했다는 그게 아니고 예수님의 예약 예표로 되어 있는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번제 이 제사에 대해서 완성을 이루지 못해서 자기에게 허물이 그대로 있고 죄가 그대로 있고 불목성이 그대로 있고, 하나님께 다 바쳐 ‘이거는 주님의 것이라’ 하는 이 일이 완성되지 안한 그대로 있는 그것을 가리켜서 순종치 안한 것
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오늘도 주일은, 주일을 안식이라 할 터인데 왜 주일을 안식일이라 하지 안했느냐? 다시 정한, 다시 정한 안식, 다시 정한 안식이라고 하면은 어떤 데에 유리한 점이 있느냐 하면은 ‘구약 때에 하나님이 정해 준 제칠일 안식은 폐지됐다’ 하는 거게 대해서는 강조가 되어지고 확실히 알아지는 것이 되기 때문에 유리하지마는 그것보다 더 큰 중요한 문제가 있기 때문에 주의 날로 정한 것입니다.
주의 날이라 하는 건 왜 주의 날이라 했느냐 하면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써의 이 주일이 반이 됐습니다. 죽으심의 반, 또 삼 일 만에 부활하심의 반, 이래서 죽으시고 난 다음에 이 주일이 시작되지 안했고 죽으셨다가 삼 일 만에 부활하신 그때부터 이 주일이 시작됐습니다. 그러면 주일은 예수님의 사활의 날이라. 사활의 날이라.
이러기 때문에, 이 주일날은 우리가 구약에와 같이 일하지 않는다는 것은, 일하지 않는 것은 일하지 않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일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 할 수 없느냐? 이는 예수님의 사활의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오는 그 은
혜를 주일날 받아야, 주일날 받아야 이 능력 받아 가지고, 깨달음도 받고, 그러니까 예수님의 피의 능력도 받고, 영감의 능력도 받고, 진리의 능력도 받아서, 이는 깨달음도 또 소망도 행함도 모든 이 새생명에 속한 것을 주일날 하나님이 특별히 주십니다. 설교로 주실 뿐 아니라 주일날 하나님께서 주신다 그말입니다.
1986. 10. 26. 주일새벽
본문:히브리서 4장 7절∼8절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날을 정하여 오늘날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퍅케 말라 하였나니 만일 여호수아가 저희에게 안식을 주었더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오늘은 이 주일을 지키는 데 대해서 다시 한번 더 공부를 할라고 하는데 주일은 다시 정한 안식일이요 주일입니다.*
이 주일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에 창조하신 지 후 아담 하와만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안식을 줬습니다. *안식에 들어가는 날을, 안식에 들어가는 날을 안식일이라 해 가지고 주셨습니다.*
그때는 하나님의 대속이 없는 그저 사람들이 하나님이 명령하신 그 명령, 그 계약을 지킬 때에 안식에 들어가는 그 일로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안식을 얻는, 안식에 들어가는 은혜를 받는 그날을 가리켜서 안식일이라 이렇게 해 가지고 주셨는데 그때는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사람은 아담과 하와만 있었는데 그 두 사람이 다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안식에 들어가는 날을 주시면서 여인의 후손으로 말미암아 배암의 그 후손의 역사를 다 이기고 여인의 후손의 그 대속으로 이 안식일날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는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다시 안식일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때는 예수님의 대속은 이루어지지를 아니했으나 예수님의 대속을 앞으로 하나님이 여인의 후손 곧 동정녀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하신 신인양성일위이신 예수님께서 대속하실 그 예표로 예약으로 짐승을 잡아 가지고 그 피로 하나님 앞에 속건제, 속죄제, 화목제, 번제 이 네 가지 제사를 하나님 앞에 드림으로 모든 인간의 잘못된 그것을 다 이 짐승이 담당해 줌으로써 모든 것이 해결되고 하나님 앞에서 안식 세계에 들어갈 수 있도록 그렇게 하나님이 약속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속건제라 말은 허물 건자, 자기의 모르고 범한 죄가 허물죄요, 부족해서 범한 죄가 허물죄요. 또 자기가 알고 범한 죄, 자기가 그저 범죄하지 안할라고 힘쓰지 아니함으로 범죄한 그런 모든 죄를 가리켜서 속죄제를 드렸습니다.
자기가 범하지 안할라고 애를 써도 인간의 실수로써 범한 죄를 가리켜서 허물 건자 속건제라 이렇게 말했고, 인간이 죄짓지 않는 것을 예사롭게 생각해서 범하는 죄를 가리켜서 속죄제라 이렇게 말했고, 또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불목한 그 죄를 속하는 제사를 가리켜서 화목제라 그렇게 했고, 또 하나님 앞에 다 드리는, 다 드려서 하나님의 것이 되어지는 이 제사를 가리켜서 번제라 그렇게 해 가지고 네 가지 제사를 짐승으로 제사를 드려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이 대속을 받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그때는 무슨 죄든지, 자기가 모르고 지었든지 알고 지었든지 그 허물된 죄나 죄되는 것이나, 죄는 더 짙은 것이고 허물이라는 것은 좀 얕은 죄악인데 그런 죄를 범했을 때에는 그 사람이 짐승을 하나 가지고 와 가지고 대제사장 앞에서 짐승의 머리에 자기 손을 들어얹고 제사장이 기도할 때에 그 짐승이 그 사람의 잘못한 모든 죄를 담당을 해 가지고 그 짐승을 죽입니다. 그 짐승을 죽여 가지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또 자기가 화목제, 무슨 불목한 일이 있었을 때에 또 화목하기 위해서 그 화목
제도 주기적으로 일 년에 한 번씩을 다 화목제를 드리는데 그 드릴 때도 짐승의, 자기가 가져온 그 짐승 머리에다가 손을 들어얹고 제사장이 기도해서 그 짐승이 이 화목을 위해서 죽임을 받아 제물이 되었고, 또 하나님에게 다 바치는, 짐승이 대신해서 죽었기 때문에 자기는 하나님의 것이 되는 것으로써 이렇게 하는 그 제사를 번제라고 해 가지고 내나 그와같이 기도해 가지고 짐승이 죽으므로 자기는, 자기 대신 짐승이 죽어서 하나님께 바쳐지는 것으로 이렇게 해서 그때는 네 가지, 짐승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래서, 가인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앞으로 대속하실 하나님의 독생자 신인양성일위이신 예수님이 대속하실 것을 미리 약속한, 예약이라 말은 미리 약속했다 말이요, 예표라 말은 약속한 대로 표시한다는 것을 가리켜서 예표라고 말한 것인데 그렇게, 짐승으로 그렇게 대신해 가지고 그 네 가지 제사를 드리는 그 일을 아벨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약속을 따라서 양을 잡아서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제사를 들어서 의인으로 인정을 하셨고 가인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약속을 무시했기 때문에 죄인으로서 정죄받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정죄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한 것은 창세기 3장에 그렇게 말해 놨고, 또 가인과 아벨은 4장
에 말해 놨고 이랬기 때문에 지금으로부터 근 육천 년 전에 그렇게 하나님이 예약하시고 하신 일인데 이 신약 시대에 와 가지고 히브리서에 말씀하시기를 “아벨의 피는 예수님의 피만은 못하지마는 예수님의 피 다음에는 아벨의 그 피가 제일 깨끗하다” 이렇게 말해서 하나님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사람으로서는 하나님이 예약한 이 대속을 제일 잘 지킨 것이 아벨이기 때문에, 그는 생명을 다 바쳐서 이 예약을 지켰기 때문에 인간의 대속을 입는 행위로서는 아벨을 제일 의인으로 하나님이 그렇게 정하셨습니다.
이래서, 짐승으로 예수님을 대신해 가지고, 하나님이 계약을 그리 했기 때문에 짐승을 자기의 대속 제물로 삼아 가지고 믿어서 이 안식일을 통하여 구원을 이룬 사람들이 많지는 못했고 약간 있었습니다. 그러면 이 구원도 기본구원, 영의 구원이 아니고 이 심신의 성화구원입니다.
이래서, 창세기에 사람을 기록한 것은 불택자도 기록을 했지마는 대개는 택자들만을 기록했습니다. 그때에 성경에 보면은 가인과 아벨 외에는 사람이 없는 것으로 그렇게 보였는데 가인이 범죄하고 난 다음에 ‘나를 쫓아내시면 사람들이 나를 만날 때에 나를 죽일 터이니까 내가 어떻게 합니까?’ 하니까 하나님께서 ‘죽이지 못하게 내가 너에게 표를 주겠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칠 배나 벌을 더 받으리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그때에 성경에 기록하지 안한 그런 인물들이 있었으니 그것을 가리켜서 불택자라고 말하고 또 가인과 아벨은 택자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그때에 구원의 대상자로 이렇게 기록해 나타난 것은 다 택자들이고 그 외에 불택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면 아담이 낳은 자녀 가운데에 불택자가 많고 택자들의 숫자는 적었습니다.
이래서, 그 안식법을 가지고, 그 안식에 들어가는 법을 가지고 예수님이 십자가
에 못박혀 죽으실 때까지는 그 법을 사용해 가지고 사람들이 구원 얻었습니다.
그래서, 제일 처음에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는 약속을 주셨지마는 사람들이 믿지 안하고 에덴동산에서 에덴동산을 지키고 다스리고 또 일반 과실은 먹고 선악과는 먹지 말고 이렇게 하라고 하셨는데 하나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해서 완전 실패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대속이 없이 안식 세계에 들어가는 그 약속과 방편 주신 것은 인간이 연약함으로 완전 실패했습니다. 배암의 유혹을 받아서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실패를 해서 둘째로 이차적으로 안식에 들어가는 이 약속을 주실 때에는 하나님의 이 대속, 짐승으로 대속, 짐승은 예수님을 예표한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예수님이 대속하시면, 짐승으로 하나님이 예약 예표로, 하나 예표로 그렇게 하신 그 예표를 믿고 바라보고 그대로 복종한 자들은 예수님이 실지로 대속을 베푸실 때에 대속이 완성이 됩니다. 그래서 미래에 대속하실 하나님의 어린 양, 세상 죄를 지고 갈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예수님을 말씀했습니다. 그거는 세례요한이가 성령이 충만해 가지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안식에 들어가는 준비를 하는 날로 정해 준 이차 안식 세계에 들어가는 준비하는 날을 가리켜서 안식일이라. 두번째로 주신 그 안식 준비의 날에 준비를 해 가지고 구원을 얻은 사람들이 약간 있습니다. 신약 모양으로 그렇게 많지는 못하고 약간 있습니다. 있는 것은 그것은 기본구원, 영 구원을 말하는 게 아니고 이 심신이 성화되는 성화구원을 말합니다.
그라다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때에 그때에 하나님과 인간 사이가 어찌 돼 가지고 있느냐 하는 그것을 표시하는 것으로써 성전을 하나님이 짓게 하시고 성전 지어 놓고 지성소와 성소 그 두 사이에 휘장이 있었습니다. 아주 굵은 실로 짜서 두껍게 무겁게 금을 넣어 가지고 이렇게 짜 가지고 휘장이 있었는데 휘장이 언제든지 가리워져 가지고 있었습니다.
가리워져 가지고 있어서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 번만 짐승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갑니다. 피 없이 들어가면 뭐 들어가지도 못하고 들어가면 몇이든지 즉사해 버립니다.
짐승의 피를 가지고 일 년에 한 번만 들어갔었는데 그때 샤가랴가 대제사장인데 지성소에 짐승의 피를 가지고 들어가서 그룹 사이에 있는 속죄 소 위에 뿌릴라고 들어갔을 때에 하나님께서 샤가랴를 나가지 못하게 하고, 말을 못 하게 하고 나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너로 통하여서 세례요한이 날 것을 말씀하시고 다시 말을 못 하게 했습니다. 말을 하면은 그것이 폭로돼서 마귀 시험에 걸릴 것이기 때문에 말을 못 하게 해서 샤가랴가 나와 가지고, 밖에 있는 제사장들이 보니까 뭣인가 하나님께서 샤가랴를 가지고 의논한 것 같은데 나오고 나서 그걸 뭐인가 궁금해서 들을라 하니까 샤가랴가 다시 그만 입이 막혀서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못 하고 있어 백성들은 떨며 무슨 일인가 이랬는데 그래 세례요한이 나고 난 다음에 처음으로 입을 열어서 말하면서 그의 이름을 요한이라 그렇게 이름을 지으라고 해서 내나 세례요한이 된 것입니다.
그라다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 비로소, 죽으실 때에 그 휘장이 열렸습니다. 그 휘장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가리워 있는 죄악이라고 그렇게 하나님이 말씀하셨는데 거게는 짐승의 피를 가지고만, 양의 피를 가지고만 그 휘장 속에 들어가지 그 안에 피 없이 들어가면 즉사합니다.
그래서 그 휘장이 열린 것으로서 예수님이 죽으심으로써 하나님과 택자들 사이에 죄 문제가 완전히 해결됐다 하는 것을, 사람이 손대지 안하고 휘장이 찢어지므로 그거는 이스라엘이 다 봤기 때문에 놀랬었는데 그렇게 하시고, 그라고 난 다음에 바위가 깨졌습니다. 인간에게 있는 원죄 본죄의 죄악이 박살나는 것을 하나님께서 그때에 바위들이 마구 깨어지고 하는 것으로 하나의 계시를 보였습니다.*
그라고 나서 예수님이 삼 일 만에 부활하셨을 때에 부근에 *의인들의 무덤이 있었는데 그 의인들의 무덤이 열리고 벌써 죽은 지 몇백 년이 되고 천여 년이 되는 그런 의인들의 무덤이 갈라지고 거게서 자던 성인들이 나와 가지고 많이 일어나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무덤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것은 그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봤습니다. 그게 뭐이냐?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써 비로소 예약을 받아 가지고 살 그런 예약은 받았지마는 완전한 새생명을 얻지 못하고 있다가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그들도 다 새생명 얻은 증거로서 죽은 성인들이 살아나는 그 일로써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예약한 그 예약이 그대로 실현됐고 예약이 그렇게 다 예수님이 대속하심으로 효력이 비로소 완성됐다 하는 것을 보였습니다.
인제 그라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서 예수님이 죽으시고 삼 일 만에 부활하시는 그 아침에 하나님이 다시 하루로 정해 가지고 오늘날이라고 예언하신 그 예언대로 그날이 주일날이 됐습니다. 그래서 주일날은 하나님이 다시 정한 안식일입니다.
다시 정한 안식일인데 안식일이라는 것은 일을 안 하는 것이 안식일이 아니고
일을 안 하는 것은 하나님의 대속의 구원의 일에 마음, 목숨, 힘, 뜻 다 들여서 이렇게 이 안식 세계에 들어가는 여게 관한 모든 은혜를 받는 날이기 때문에 육체의 일은 할 힘도 있고 할 시간도 없고 또 거게는 마음이나 생각이나 조그만치라도 바쳐서는 안 되는 날입니다.
이러기에 안식일 범한 사람은 다 용서 없이 죽이라 하는 것은 안식일날 일을 해서 죽인 그것이 아니고 안식일날 안식 세계에 들어가는 하나님의 대속을 전적 받는 그 일을 안 하고 엉뚱한 육의 일 했기 때문에 죽임받은 것입니다.
그러면, 죽임받았는데 죽임받은 죄는 뭐이냐 하면은 하나님의 이 대속의 은혜를 받지 않는 그 죄값으로 하나님이 분노해서 죽였지 일하지 안한 그까짓 거야 일을 했거나 말았거나 대속의 은혜만 다 받는 그게 문제입니다.
대속의 은혜를 다 받을라면 일할 그런 여유의 힘이나 남은 것이 없이 다 들여
야 대속을 받는데 대속을 받지 안하고 엉뚱한 일을 했으니까 일 한 그것보다도 대속을 받지 않는 그 죄값으로서 사람들이 안식일 범하면 죽게 됐습니다.
이라다가 다시 이 안식에 들어가는 준비를 하는 날을 정하여서 다시 정한 안식
일이라 이렇게 말을 하면은 어디다가 중점을 두느냐? 묵은 안식일, 옛 안식일은 폐해졌고 새 안식일을 정한 그것이 거기에 중요한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그것도 중요하지마는 그것보다도, 그것은 새 안식일 정하면 되는 것이지 묵은 안식일이 실패됐기 때문에 정하기는 정했지마는, 실패되고 새로 정했다는 그것도 중요한 뜻이지마는 그보다도 새로 정한 안식일은 예수님의 죽으심으로써 사죄, 칭의, 화친의 이 세 가지 대속의 이 은혜와 능력을 우리에게 주시는 날이 주일날이요, 또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써 우리를 중생시키시고, 중생은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되기 때문에 이 중생의 은혜, 중생에 관련된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와 또 성령의 은혜와 진리의 은혜를 이 주일날 안식 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그런 원만한 그런 준비의 은혜를 받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이제 이 둘째로 정한 안식일을 가리켜서 주일이라 이렇게 했습니다.
여러분들 그러니까, 안식일이 왜 폐해졌느냐? 일차 안식일은 완전히 다 무효로 돌아갔고 이차에 정한, 안식 세계에 들어가는 은혜를 받는 날이라 말이오. 안식일이라 말은 일하지 않는 날이 아니라 안식 세계에 들어가는 은혜를 받는 날이라 그말입니다. 안식일이라 말은 안식 세계에 들어가는 은혜를 받는 날이라는 그 뜻입니다.
둘째로 정해 주신 그 안식일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다 구원을 얻지를 못했고 구원얻은 사람들이 약간 있습니다. 이래서 히브리 4장 10절에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들어간 자는” 그때 들어간 자가 있습니다. 그러나 못 들어간 사람들이 많습니다.
못 들어갔다 말은 그 영이 하늘나라 못 들어갔다 말이 아니요 그 심신의 구원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심신의 기능은 다 유황불 구렁텅이에 타버렸고 다만 형체만 들어갔고 영만 들어갔기 때문에 하늘나라 가서 아무 소용없는 무지 무능의 가치 없는 그런 사람이 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런 사람을 가리켜서 “구원을 얻었으나 불 가운데서 구원 얻은 거와 같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공로가 다 불탄 사람들은 신앙 생활이 다 불탔다 그말이오. 공로가 불탔다 말은 신앙 생활이 다 불탄 사람은 구원 얻으나 불 가운데 구원 얻은 거와 같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래서, 다시 우리에게 정한 안식일을, 안식일이라 말은 일하지 안하고 노는 날이 아니라 말이오. 노는 날이라는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안식 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그 은혜를 솔빡 받는 것이 구약 시대의 안식일이요 신약 시대의 주일입니다.
그러면, 주일날은 어떤 은혜를 받느냐? 주일날은 일이고, 다른 데 생각하고, 다른 뭐 “사사로운 말 하지 말고 오락을 취하지 말라” 말은 다른 생각이나, 다른 말이나, 다른 뜻이나, 다른 마음이나 그런 것을 가질 날이 아니고, 다른 무슨 생각이나 취미나, 취미가 있으면 그 마음이 거기 갔습니까 안 갔습니까? 또 소원이 딴데 있으면은 자기 마음과 모든 감정이 갔습니까 안 갔습니까? 거기 갔다 말이오. 거기 간 것은 옛날은 다 죽여 버렸다 말이오.
86.10.26 주일오전
그래서, 1절에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미치지 못한다는 말은 이 주일날 일만 안 하고 이 다섯 가지 실상을 자기 것이 되어 있는 건데 이 실상을 자기 것인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자기 것인 것을 믿지 못함으로 이 다섯 가지의 능력의 혜택을 이용하지 못하고 쓰지 못하는 자가 될까 두려워함이라 하는 것을 가리켜서 “미치지 못하는 자가” 여게 도달치 못하고, 이 은혜를 받는 데에 방해하는 이 세상일 그거는 다 중단을 시켜서 안 하지마는 이 다섯 가지 은혜 받는 데에 도달치 못하는 자가 있을까 두려워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옛날도 순종치 안한 것은 그들이 안식일을 철저하게 지켰지마는 하나님께서 예약적으로, 모형적으로, 예표적으로 준 짐승의 피를 가지고서 속건제, 속죄제, 화목제, 번제 이 네 가지 제사로 인간이 어떤 죄가 있어도 이 네 가지 대속 이 공로를 그때 예표적으로 가르친 것을 입어서 양의 피로 대속을 받고 다시 죄를 짓지 않으면 얼마든지 깨끗해질 수 있었습니다.
이랬는데, 그들이 안식일날은 이 능력을 받는 날인데 이 날을 이 능력 받는 것은 그때에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가르치지를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가르치지를 못하고 껍데기 일하지 말아라는 것만 가르쳤지 일하지 안하는 그 이유가 완전히 사죄, 칭의, 화친, 영감, 진리의 이 다섯 가지 은혜를 지금은 우리가 예수님이 베풀어 놓은 것을 우리가 받고 있고 그때 사람들은 앞으로 예수님이 베푸실 것을 예약적으로 그들이 모형적으로 주신 그 모형, 형상을 함으로써 실상은 예수님이 십자가 못박히실 때에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예약과 모형으로 준 것을 가지고 그들이 깨끗해지지를 못한 그것을 가리켜서 순종치 아니했다 이랬습니다.
그러나 그때에 그 모든 성도들이 이 짐승의 피로 깨끗함을 입었으나 완전 깨끗함을 입지 못하고 깨끗함을 입을 수 있는 자 축에 들어 있었습니다. 있다가 언제 깨끗함을 입었느냐? 예수님이 십자가 못박혀 죽으실 때에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졌고, 또 바위돌이 갈라졌고, 어두워졌다가 다시 광명의 날이 왔고, 부활하신 다음에 무덤 속에 죽은 의인들이 다 살아나 가지고서 한꺼번에 예수님과 예루살렘에 들어갔다가 다시 예수님 재림 때 부활하기 위해서 무덤 속으로 들어간 것으로써 예루살렘에 그 수많은 이스라엘이 볼 수 있게 하셔서 이 구약은 예약 예표의 짐승의 피로써 이렇게 예약해서 속량을 받은 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대속하셨을 때에 다 그때에 완성이 됐습니다.
이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온 것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 약속의 예약의 말씀을 폐하려 온 것이 아니라 완전케 하러 왔다.” 말은 대속에 실상 제물이 되기 위해서 왔다는 말씀입니다.
이래서, 8절에, 「만일 여호수아가 저희에게 안식을 주었더면」 여호수아가 저희들에게 안식을 줬는데 그 안식 가지고 완전히 구원을 얻었다고 하면 「그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다시 새 안식일을 정하지 안했을 터인데 그때 안식에서는 실패를 했습니다.
이래서, 하나님께서 무궁세계의 안식 세계에 들어가는 그 준비하는 준비의 날로 주시기를 세 차례 줬습니다. 처음에 아담 하와에게 줬는데 그때는 대속의 길이 없이 줘서 한 사람도 성공하지 못하고 다 실패했습니다. 그 뒤에는 안 돼서 하나님이 다시 대속의 공로를 약속해 가지고 대속의 공로를 믿음으로 준비하게 해 가지고 구약 성도들이 다수는 들어가지 못했고 약간의 수가 이 예약 대속을 믿어서 구원에 이르렀습니다.
이래서 하나님이 다시 이것도 폐지하시고 다시 재안식일을 정해 주셨으니 재안식일이 뭐이냐? 이제는, 과거에 그림자와 같이 예약적으로 바라보던 다섯 가지 대속을 이제는 다시 안식일로 정하는 날에는 이 다섯 가지 대속의 실물, 다섯 가지 대속의 실물을 내어다가 우리에게 주는 날이 주일날입니다.
주일은 예수님이 죽으심만 가지고 이 주일을 설정 못 했고 부활하심으로 합해서 사활로 우리에게 영원 안식 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그 실상을 우리에게 주시도록 됐고 우리는 받을 수 있도록 됐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주일은 예수님의 다섯 가지 이 대속의 실상을 받는 날이 주일날입니다.
86.10.26 주일오후
안식을 둘째로 안식을 주시면서는 대속이 없이는 안 된다 해 가지고서 하나님이 대속을 허락하셨습니다. 대속을 허락하신 것이 창세기 3장 15절에 인간 단독은 안 되기 때문에 가죽옷을 지어 입힌 것이 남의 힘을 입지 안하고는 안 된다는 가죽옷을 지어 입혀서, 다른 이가 죽음으로 네가 산다 하는 것을 표시해서 가죽옷을 지어 입혔고, 또 여인의 후손과 배암의 후속이 싸워서 여인의 후손이 배암의 후손의 머리를 상하고 배암의 후손은 여인의 후손의 발꿈치를 이렇게 상우다가 그는 패전하고 만다는 이것이 하나님께서 대속을 허락하신 건데 이 대속이 무슨 대속인고 하니 예약 대속입니다.
앞으로 대속은 한번 있어야 되겠는데 그 대속이 있기 전에 미리 예고적 대속, 예약적 대속, 예표적 대속으로 하나님께서 짐승을, 사람이 그 죄지은 것과 또 사람이 하나님의 그 율법을 다 행하지 못한 것과 하나님과 불목된 그것을 대신 하기 위해서 이렇게 짐승의 피로 대신을 해 가지고서 예표요 모형이요 예약적으로 대속의 법칙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때에 제사가 네 가지 제사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속건제 속죄제가 있었고, 속건제라 말은 같은 말인데, 속건이라 말은 허물 건자, 죄가 되지 못하고 허물, 허물된 것과 또 죄와, 속건제 속죄제가 있었고, 속죄제와 속건제는 오늘 우리가 아는 대로는 사죄를 말하는 것이고 그다음에는 화목제가 있었으니 화목제는 하나님과 화평된 것을 가리켜서, 화평해지는신인 결합의 화목의 이 대속을 가리켜서 그렇게 화목제라 그때 그렇게 했고 번제는 하나님께 다 드리는 것인데 하나님의 전지의 입법을 다 이행할 수 있는 칭의를 그때 예약해서 그렇게 했었습니다.
그러면, 사람이 범죄했을 때에는 짐승을 갖다 놓고서 짐승의 머리에다가 안수하면은 사람의 잘못은 짐승이 다 책임을 짊어지고 짐승은 그로 인해서 죽임을 당하고 사람은 거게서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이 자유를 얻게 되는 이런, 대속을 받는 제도를 하나님이 예약으로 선포하셨을 때에 그때에 사람들은 이는 참 것의 그림자라고도 했고 또 참 것의 하나의 모형이라고도 했고 예약이라 예표라고도 했는데 그래 가지고 짐승의 제사로 그때에 이 안식 준비를 잘 해 가지고 구원에 들어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많지는 못했고, 일차 안식에서는 하나도 없이 실패했고 이차 안식에서 구원에 들어간 사람이 첫째로 구원에 들어간 사람이 아벨입니다.
성경에 보면은 가인이 쫓겨나갈 때에 그때에, 사람을 만나면 그가 나를 죽일 것이라 하는 거게 대해서 어떤 사람들이 그때에 아담의 자손은 가인과 아벨뿐인데 그 밖에 무슨 사람이 있습니까 그렇게 질문하는 사람들을 더러 봤습니다. 녜, 그렇게 성경에 아담 하와 또 가인 아벨 이것은 하나님의 택한 자들의 족보입니다. 택한 자들의 족보고, 아담과 하와가 인류 시조인데 아담과 하와에서 택함을 받지 않은 사람들은 많이 났습니다. 그때에 택함을 받은 사람들이 가인과 아벨이고 그 외에 택함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그때 아담 하와가 낳은 것은 두 사람뿐 아니고 그다음에 또 셋을 낳아 대를 이은 것은 택한 자를 낳아 가지고서 아담의 자손이라고, 그 외에 많은 자손들은 아담의 자손이라고 하지 안했습니다. 택한 자의 자손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래서, 두번째 안식에 들어가는 이 안식일을 사람들에게 주었는데 그 두번째 들어가는 안식에 아벨 같은 사람은 들어갔는데 모든 사람들은 이 안식에 다대수가 들어가지 못하고 다 실패했다 그랬습니다. 왜 실패를 했느냐? 순종치 아니함으로 실패했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순종치 아니함으로 실패했다는 것은, 자꾸 우리가 성경을 해석해 나오기를, 오늘까지 신학자들이 성경 해석해 나오기를 속에 알맹이는 그만 이거는 무시하고 자꾸 껍데기 하나의 자꾸 보이는 것만 치중해 가지고서 기독교에서도 보이는 데로만 치중해 가지고 일종 과학자와 같이 이렇게 보이는 것을 중요시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중하게 여기지를 안했습니다.
그래서, 안식일날 일하는 사람은 죽였다 그날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하는 그것은 일하지 않는 그것이 안식일을 지키는 그 목적이 아니고, 안식일은 그 날에 자기가 어떤 죄와 허물이 있고 어떤 불목이 있고, 하나님과나 사람과나 불목이 있고 어떻게 하나님의 법도를 지키지 못한 것이 있을지라도 짐승의 피를 가지고서 자기는 완전히 속죄제 속건제로써 자기가 아는 대로의 죄가 하나도 없고 또 불목한 일이 하나도 없고 또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일이 하나도 없는, 자기가 볼 때에 자기는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하나님과 관계에 대해서 아무 흠점이 없는 그 사람으로 사는 그 일을 하는 그 지혜와 믿음과 능력을 받는 날이 안식일입니다.
안식일날 그걸 받아 가지고 다 이렇게 깨끗하게 준비해 가지고서 가는 날인데 이 안식일을, 다시 말하면 죄의 문제, 의의 문제, 하나님과 이 화친되는 문제 이 세 가지 문제를 안식일날 은혜받아 가지고, 엿새 동안 살면서 이 세 가지를 지키고 세 가지를 범하지 않는 그런 사람으로 사는 이 일 하기 위해서 여게 대한 은혜를 받는 날로 안식일을 정해 줬는데 사람들은 이 은혜 받기 위해서 세상에 이런 일 아무것도, 이 일 외에는, 이 안식에 들어가는 사죄, 칭의, 화친, “죄, 하나님 법을 지키는 의, 또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되는 이 세 가지 외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아라. 이 세 가지에만 전적 기울이라.” 하는데 이 세 가지에 전적 기울인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말이기 때문에 어두워졌고 보이는 이 육체의 일을 하지 말라는 그것만 강조해 가지고서 사람들이 외식하는 일이 되어져서 힘을 쓰지 안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절단났습니다.
그러나, 구약에 있는 그 아벨도 하나님과 끊어지지 않기 위해서 생명을 바쳤고 죄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 생명을 바쳤고 하나님이 약속해 주신 그 제사를 믿고 의지하고 제사대로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 그 생명을 바쳤던 것입니다.
구약에 보면은 모세라든지 뭐 엘리야라든지 다니엘이라든지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라든지 아브라함이라든지 그런 사람들이 자기가 아는 대로 털끝만한 죄도, 하나님의 법칙에 어기는 일도 그런 일도 안 하고 힘써 이 일을 해 가지고서 자기 안식에 다 들어갔었습니다.
이랬는데, 순종치 아니한 자들은 둘째로 준 안식일로써 안식 세계에 들어가는 준비를 하지 못했다 이렇게 말씀했는데, 순종치 안했다는 요 말에 대해서 우리가 잘 생각해야 됩니다.
86.11.09 주일새벽
이래 가지고 하나님 말씀하신 것은 그 알맹이는 첫째 안식에는 네 가지를 지키는 일 하면은 영원 무궁한 그 안식 세계를 저희들이 점유할 수 있고, 둘째의 이 예약적으로 주신 이 안식일은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번제 이 네 가지 제사나 세 가지 종류의 제사 곧 예수님의 사죄, 칭의, 화친의 이 세 가지 대속을 예약해 주신 것이니까 이것을 완전히 자기가 이루어서 사죄와 하나가 되고, 칭의와 하나가 되고, 화친과 하나가 돼서 자기는 영원히 죄없는 의로운 사람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되면 되는데,
요것만 되면 영원한 안식 세계, 이차적으로 준 안식 세계가 다른데, 일차적으로 준 안식 세계와 이차적으로 준 안식 세계가 이 안식 세계가 같습니까 다릅니까? 예? 다릅니다. 같지 않고 다릅니다. 그러면 이차 안식 세계와 삼차 안식 세계는 같습니까 다릅니까? 저 ○○○선생? 예? 달라? 달라? 달라? 머리를 끄떡하면 귀에 안 들려. 달라? 같애? 잠마귀 귀신이 들어가서 지금 잠마귀 뽑아내려고 하는 거라. 이차 안식과 삼차 안식은 그 안식 세계가 같습니다. 다만 다른 거는 예약적이고 우리는 완성한 그 완성적이고 이러니까 우리 완성될 때에 그들이 비로소 예약이 완성됐습니다. 몇 번이든지 배우지 안했소?
86.12.07 주일오후
언제인가 며칠 전에 그런 말씀 했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에 성전 휘장이 위로부터 갈라졌고, 또 무덤이 열렸고, 또 바위가 터졌고, 땅이 진동했고, 자던 성인들이 무덤이 갈라지고 일어났습니다. 일어났으나 나오지는 못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심으로써 이제까지 구약 교회에서 성소와 지성소에 그 휘장으로써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죄의 장벽이 막힌 것을 늘 일 년 일 차만 수송아지의 피를 가지고 대제사장이 한 번만 그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그건데, 짐승의 피는 예수님의 보혈을 상징한 것인데, 모형하고 예약한 것인데 늘 이래 가지고서 육체의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직접 대하지 못하고 늘 휘장을 가리워 놓고서 그저 짐승의 피를 힘입어 가지고서 대제사장이 대표로 일 년에 한 번씩만 들어갔었는데 이 휘장이 사람 손 대지 안하고 위로부터 아래까지 쫙 둘로서 짜개졌습니다.
그래서 그때에 육체의 이스라엘들이 그들이 놀래고, 깨달은 자들은 “세상 죄를 지고 갈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라”고 그때 세례 요한이 선지자로서 외쳤는데 그것을 깨달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었고 깨닫지 않는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메시야가 오리라고 망령을 부리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기를 내가 온 것은 율법을 폐하려 온 것이 아니고 온전케 하러 오셨다고 말씀하신 대로 선지들의 모든 예언한 그 예언이, 예약한 예약이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박히심으로써 완성을 이룬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 교회는 예수님의 이 대속을 예약 예표한 것을 믿고 있다가 예수님이 이제 실제로 대속의 일을 완성했을 때에 그때에 휘장이 갈라진 것으로 그렇게 계시로 하나 표적으로 나타낸 것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는 완전히 죄의 담이 무너졌다, 또 사망이 깨어졌다, 땅위에는 새 운동이 일어났다, 땅이 진동한 것은 이제까지는 모두 다 이 육체의 운동 마귀 운동만 땅위에 가득 찼고 육체의 이스라엘들이 있지마는 한 예약 예표만 가지고 했지 늘 마귀의 지배 아래 있었는데 예수님이 사활하신 후에 땅위에는 딴 운동이 일어난 것을 말한 것입니다. 딴 운동은 이거는 영생하는 운동이 비로소 구약 성도들은 그때 소망하고 있다가 완성이 됐고 신약 성도들은 그때부터 이 생명 운동이 시작됐습니다.
이라다가 예수님이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난 다음에 무덤은 그때 열렸으나 무덤 열린 거게서 삼 일 동안 무덤이 열리고 거게서 일어섰으나 나오지 못하고 기다리고 있다가 삼 일이 될 때에 예수님이 부활하실 때에 무덤에서 나와 가지고서 많은 성도들이 같이 예루살렘에 들어가서 그때에 모든 이스라엘들에게 많이 보여 줬습니다. 그라다가 다시 그 무덤으로 도로 들어갔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부활로 소망하던 부활이 이제는 완전히 이루어졌다 하는 것을 말하고 새 생명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구약 성도들은 예약적 예표적 중생을 했지 중생은 하지 못하고 있다가서 예수님이 죽은 가운데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인생에게 중생이라 하는 것은 비로소 시발된 것인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그 신학교에서, 구약 성도들은 중생했느냐? 중생 안 했습니다. 중생이 예약적 중생만 했지 중생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그때에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난 다음에 “너희들이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다리라, 그라면 몇 날이 못 되어서 성령의 세례를 받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 십이 사도와 문도들에게 말씀을 했는데 그때에 그분들은 중생했느냐? 그분들은 중생했습니다. 예수님이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에 중생됐습니다.
중생된 사람들에게 너희들이 성령 세례를 받아라 이렇게 말씀했기 때문에 성령 세례는 중생 후에 받는 것인데 중생은 본인이 모르게 성신의 역사가 와 가지고서 그 죽은 영을 살리는 것이고 성신의 세례는 중생 받은 자들이 본인이 알게 영감의 역사를, 역사 영감을 받는 것을 가려켜서 성령의 세례라 그렇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세례라는 것은 주님의 대신 죽으시고 또 우리 대신 사신 사활의 대속을 똑똑히 알고 믿고 여기에 합당한 사람으로 흠 없이 살게 하는 그 운동을 하는 그 역사가 성신 세례의 역사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이것은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제것 삼았기 때문에 예수님이 대신 죽으신 것은 제가 죽은 것이기 때문에 다시는 죽은 자가 제 행동 하지 못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완전히 예수님의 것이 되는 그것이 예수의 사람들이다 그말입니다. 완전히 자기로 사는 것은 전연히 완전히 없어지고 예수님의 것으로 사는 것이 그것이 예수의 사람들이 되는 것이다 하는 그런 말씀인 것입니다.
“못박았느니라” 그다음에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성령으로 살면 그 말은 성령의 감동으로 살면 오늘 아침에 주일학교 학생들에게 우리 심령 속에는 두 인도자가 있다 하는 것을 강하게 가르치고 있는 것을 제가 오층에서 들었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아 살면 “성령으로 살면” 성령 인도를 받아 살면 말입니다.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생활을 하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성령으로 행한다 말은 성령은 전지 전능의 하나님이십니다. 성령은 전지 전능의 하나님이십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전지 전능의 하나님의 지체되어 살고 하나님에게 피동되어 살고 하나님으로 산다 그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모든 속성, 하나님의 지능, 하나님의 그 권위로 산다. 비록 피조물이지마는 성령의 인도로 살면 하나님이신 성령님에게 붙들려 가지고 살기 때문에 전능자가 흔드는 대로 흔들리기 때문에 전능자에게 피동된 자이기 때문에 피동된 그자의 움직임은 전능자의 움직임이다 하는 그말인 것입니다. 이 아주 무서운 말이고 아주 우리가 참 상상도 못할 계약입니다.
86.12.09 화새벽
그래서, 사람의 영은 독립성이 없는데 사람의 영은 하나님에게만 지배받고 피동되도록 그래 돼 가지고 있고 혼자 독립은 못 하도록 돼 가지고 있고 다른 것에게 또 무슨 지배를 받거나 거게 소속하거나 피동되도록 그래 돼 가지고 있느냐? 영은 그렇게 안 돼 가지고 있고, 영육인데 육은 두 가지에 피동될 수 있도록 돼 가지고 있는 것은 육은 자기의 그 영에게 피동되고 또 영 밖에 악령에게 피동될 수 있도록 그렇게 지음 받아 가지고 있다.
이러기 때문에 그 중생되기 전에는 사람의 그 심신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도구와 같이 이래, 나귀를 성령이 이용해서 나귀가 발람에게 교훈한 거와 같이 그렇게 도구로 이용은 당하지마는 하나님이 직접 생리적 그런 지배를 하지를 못 하고 있다가 중생이 되고 난 다음에 성령님이 중생된 영을 통해서 그 심신을 통치하고 관리하게 됐다.
이래서, “성령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에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우리라 하는 것은 심신의 우리를 가리켜 말한 것인데 그 지배하게 됐다.
그래서, 타락한 후에는 심신은 영에게 지배를 받다가 영이 하나님과 끊쳐져서 기능적으로는 아무 작용이 없는 존재가 돼 버렸으니까 그 심신을 다스리지도 못하고 또 지도하지도 못하고 능동시키지도 못하고 이거는 기능적으로는 완전히 끊어졌기 때문에,
왜? 하나님에게 피동된 그 피동을 가지고서 모든 자기 심신에게 이렇게 능동하는 이 일을 하고 있지 하나님과의 끊어져서 이는 기능적으로는 완전히 죽어서 아무 그 기능이 없는 그게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심신은 통치받을 데가 없고 이러니까, 하나님은 직접 통치하지 안하시고 이 악령이 그를 타락시켰기 때문에 악령의 통치받고, 악령의 통치뿐 아니라 모든 이 피조물 이런 것들 저런 것들에게 다 통치를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추우면 추워서 못 견디고, 더우면 더워서 못 견디고, 배고프면 배고파서 못 견디는 이런 것은 다 악령이 아니고 물질에게 모두 피동되어서 이것을 가리켜서 본능이라 그렇게 사람들은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이래서, 우리의 영은 하나님에게만 피동되고 피조물에게는 피동되지 안하기 때문에 불택자의 그 타락한 후의 활동도 순전히 이 심신의 활동이지 그 영이 활동에 가담하지는 안하고 영은 완전히 죽은 시체와 같이 이라면서 죽은 영 시체되어 있는 영하고 이 심신하고 둘이 합한 것이 사람이요, 중생되지 안한 사람이요 중생된 사람은 산 영과 이제 그 심신이 합해 가지고서 영육으로 사람이라.
그렇기 때문에 중생된 후의 사람과 중생된 이전의 사람이 다르다 요렇게 우리는 구별을 해야 되겠습니다.
또 영은 범위가, 영이, 우리의 심신의 활동 범위는 자기는 뭐 이런 것도 저런 것도 이렇게 범람하게 활동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영은 꼭 자기 심신에 자기 육에게만 활동하지 육 범위 밖에서는 절대 활동하지 못합니다.
요것도 지금 아직까지 미상한 일로서 되어 있으니 그것은 살펴보면은 영은 자기 심신에만 지배하지 심신 외에 딴거는 아무것도 지배하지 못합니다. 그것도 꼭 절대 국한되어 있고 또 영은 위로도 절대 제한돼 있고 아래로도 제한되어 있고 요 우리의 육이라 하는 것은 벌써 거게서 영에게도 지배를 받을 수 있고 마귀에게도 지배를 받을 수 있고 모든, 얼음에도 지배받아. 얼음에도 그 얼음을 닥치니까 차와서 못 견디는 것은 얼음에게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또 물질이 없어 배가 고프면 고거는 물질인 고기덩어리에게 지배받아서 배가 고파서 그때는 뭐 무슨 일이라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사람은 독립을 할 수 없도록 이렇게 하나님께 지음받은 것은 하나님에게만 절대 피동되기를 어데까지 피동되느냐? 하나님이, 완전하신 하나님에게 완전 피동받으면은 피조물이지마는 창조주와 꼭 같은 그런 위치에서 그런 작용을 할 수 있도록까지 그렇게 지극히 고귀한 그 구원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 피동으로 만들었는데 이것이 타락해 가지고 엉뚱한 것에게 피동되는 이런 작용이 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여게 육체라 이렇게 하는 것은 육체는 바로 우리의 심신의 육입니다. 심신의 고기덩어리입니다. 심신의 고기덩어리인데 왜 그러면 심신의 고기덩어리면 이것이 순전히 나타나는 열매로 말하면 죄악으로만 나타나 가지고 있는가? 그것은 심신이 악령의 지배를 받아서 그때부터 이렇게 모든 하는 행동의 결과는 다 마귀의 결과로 이렇게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육체는 자체로 말하면은 깨끗한 심신이요, 깨끗한 심신이요 또 그 행동으로 말하면 그것이 요 심신이 마귀의 지배를 받아 있기 때문에 순전히 행동은 마귀 행동이라, 요래서 그 육체라 하는 것은 마귀에게 완전 통치를 받고 있는 그 심신이라, 요것이 요 타락한 육체라 그렇게 할 수 있고 또 그 심신이 마귀에게 지배받지 안하고 하나님에게 지배받을 때는 요것은 의의 병기로서 요것은 깨끗한 육체가 된다.
그래서 이 심신만은 악령을 탈색하듯이 악령을 탈색시켜 버리면은 요 심신은 완전 요거 죄가 없는 깨끗한, 요런 말하자면 초목과 같이, 초목과 같이 바위돌과 같이 요렇게 깨끗해지고 죄가 없는 것이다. 또 요것이 중생된 영에게 지배받는, 다시 말하면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그 영에게 지배를 받으면은 그 심신은 대속적이요 성령적이요 진리적이다.
그래서, 그러기 때문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하는 거는 ‘말씀이 싹스가 되어’ 하는 그것은 거게는 예수님의 그 인성을 말한 것인데 인성이 하나님에게 지배받을 때,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완전한 형상으로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떻게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하느냐” 할 만치 그렇게 완전히 하나님의 형상됐다, 그러기 때문에 요 육체라 하는 것은, 여게 “육체의 생각” 하는 것은 심신이 마귀에게 지배받은 그것을 가리켜서 말을 한다.
그러기 때문에 중생되지 아니한 사람의 심신은 순전히 악령이 지배하는 그것뿐이고 다른 것은 없다. 그러나 중생된 이후로부터는 우리 기독자들은 이 심신이 두 가지 지배를 받게 돼 가지고 있다. 하나는 뭐이냐? 중생된 영의 지배도 받고 또 악령의 지배도 받게 된다.
그러면 악령의 지배받을 때에 그것은 그 소행이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음행과 곧 더러운 것과” 이렇게 될 때에는 우리의 심신이 악령의 지배를 받을 때에는 악령화되어서 완전히 죄의 병기가 되고, 죄의 도구가 되고 또 우리가 하나님에게 드려서 하나님이 피와 성령과 진리가 중생된 영으로 더불어 같이 일해 가지고서 우리의 이 심신을 통치할 때는 우리는 의의 병기가 된다.
이래서, 요것이 좀 알기가 어려운 요 교리가 돼 있는 것을 그것을 잘 근거 잡아서 우리가 확고하게 잡아야 됩니다. 요것을 확고하게 잡지 안하면 중간에 들어갈 때에는 그것이 뭐 이리 말하나 저리 말하나 같은 거 같지마는 궁극적인 교리에 파고 들어가면 완전히 탈선돼서 그만 딴거 돼 버리고 맙니다.
오늘 기독교가 이렇게 흐리고 있는 것은 이것은 뭐이냐? 근본을 지금 찾지 못해서 흐리고 있는 것입니다.
요새 내가 말 들으니까 어떤 여기 고려신학교에서 지금 그런 뭐 논란이 나 있다고 하는데 그 영감에 대해서 말이 나서 어떤 그 하나 신학 박사는 말하기를 ‘성령 세례받는 그 성령과 또 성령으로 중생했다는 그 성령과 그 성령이 다르다’ 이렇게 말하고 또 고려신학교 거기 또 어떤 교수 목사님은 ‘그 성령은 한 성령이다.’
다른 성령이다 한 성령이다 이래 가지고서 거게서 대단히 많은 지금 뭐 논제가 돼 가지고 있다는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논문까지 났다는데 눈문이 두 분이 다 낸 논문이 나왔다고서 그 논문을 누가 좀 읽어 본다고 그걸 구했다 하는데 그걸 나는 한번도 보지도 안했고 뭐 볼 필요도 없고 이런데, 성령은 하나라 하는 말은 하나라는 말이 맞습니다. 하나입니다. 영감은 또 둘이라 하면 영감은 또 둘이라 말이 맞습니다. 영감은, 성령은 한 성령인데 한 성령이 아니고 두 성령이라는 그것은 만일 누가 그래 말했는지 모르지마는 두 성령이라면 그거 틀렸어. 한 성령입니다.
한 성령인데 다만 영감은 각각 다릅니다. 중생시키는 그 영감은 그것은 성령 세례를 받을 수 없는 존재로 있을 때에 역사한 것이 그것이 중생 영감입니다. 중생 영감은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예수님의 대속을 통해서 우리에게 일차적으로 와 가지고서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실상적으로 역사하신 제일 초보가 그것이 중생 역사입니다. 중생되고 난 자들에게 이제 “성령 세례 받아라”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래서, 그전에 사도행전 1장에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허락하심을 기다리라 몇 날이 못 되어 너희들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는 그 성구에 대해서 오랫 동안 말하고 이 성구가 난제고 아주 어렵고 이 깊고 이러니까 이렇다고 그때 그것을 내가 며칠 동안 했지마는 이 사람들이 뭐 귀넘어 들으니까 거게 대해서 별 생각을 안 가지고 들으니까, 그러니 부득이 말할 때도 이런 난제가 있다 자꾸 이런 말 나가면 인제, 왜? 내가 죽고 없어져 버리고 난 다음에는 왕창 그래 버리면 그것 또 넘어가 버리고 또 할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은 자꾸 다져서 말합니다.
이런 것도 이래 말하는 것도 여러분들이 자꾸 미리 알아서 이렇다는 그런 신앙 상식을 가지고 이래 들으면서 오늘 비판하고 견고히 잡아야 되지 그렇지 않으면 나가면 헛일되고 맙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것은 뭐 예루살렘 뭐 장사하러 딴데 가지 말라 말 아니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 말은 그때 뭐 때문에 그러냐 하면은 예수님이 죽으셨다가 부활하시고 난 뒤입니다. 난 뒤이기 때문에 그때 예수님을 죽였고 이차적으로 부활했다 하기 때문에 그것 때문에 로마 병정들이 지키기도 했고 그다음에 많은 물의가 나서 이거 아무래도 예수교를 막 전멸을 시켜야 되지 이거 냅뒀다가는 안 된다고서 모든 정권과 모든 종교가들이 단합해 가지고서, 유대교 모두가 다 바리새교 전체가 단합을 해 가지고 하던, 그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죽일라고 하는 그 일이 한 집에도 가득 찼고 뭐 꽉 찼기 때문에 암만 공산주의 속에라도 그렇츰 어려운 박해 속에 있는 때는 없는 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것을 피해서 다 갔습니다.
사도들과 또 거게 참 유명한 유력한 사람들만 있었지 나머지기는 다 그때 죽기를 피해서 예루살렘을 다 떠나갔습니다. 떠나가고 그때에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사람,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 남아 있는 사람은 일백이십 명이 또 한테 뭉쳐 가지고 있었는데 그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 그말은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인해서, 사활의 대속을 인해서 이 사활의 대속을 가진 사람, 입은 사람, 이 사활의 대속을 믿는 사람들은 그때 예루살렘을 떠나지 안하고 그 죽음 속에 배길 수가 있었습니다.
그때 일백이십 명이 기도하던 그 기도는, 그 기도단은 그 죽음 속에 있는데, 죽음 속에 있는데 그들이 어떻게 거게서 견뎌 배겼고 그뭐 담대히 그래 됐던가?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난 다음에는 예수님이 생시에, 주일을 지키라. 내가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고 난 다음에는 주일을 지켜야 된다는 걸 똑똑히 명시해서 그들이 부활하시고 난 다음에 주일을 지켜야 될 줄 알고, 부활했다는 그런 소식을 듣고 이렇게 전달 듣고 주일을 지켜야 되겠다고 모였지마는 그 두려워서 무서워서, 두려워서 문을 닫고 낮에도 모이지도 못하고 다 깜깜하고 난 다음에 어데 구석에 가 가지고서 숨어서 그래 모였다 하는 것을 그것을 성경에 기록했습니다.
이랬는데, 예수님을 부활하시고 난 다음에 만나고 나서 예수님을 처음에 만날 때에 이제 숨을 내쉬면서 “성령을 받아라” 이렇게 말했고 그때에 그들은 “너희들이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려지리라”하는 그 말씀을 했습니다.
그때에 그 사도들과 거게 있는 은혜받은 사람들은 중생이 됐습니다. 그때 중생이 되고, 중생이 돼서 예수님의 사활의 이 일곱 가지 대속이 그들의 것이 돼서 그들이 일곱 가지 대속을 믿을 때에 그 속에 들어오신 것이 성령이 들어오셔 가지고서 성령이 그들을 중생시켰습니다. 그러면 이 대속의 공로가 아니면 성령이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성령이 대속의 공로를 앞잡이를 세우고 대속의 공로를 통해서 그들에게 들어와 가지고서 중생됐기 때문에 중생되고 또 중생된 자들에게 사활의 대속이 그 속에서 역사를 하니까 그 죽음 속에서도 그들이 도망치지 안하고 일백이십 명이 모여 가지고서 기도했습니다.
기도할 때에 그때에 이제 오순절에 성령 강림이 있었습니다. 성령 강림이 있어서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받으리라” 하는 그 성령은 오순절 성령을 가리켜서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중생 후에 오순절 성령 받아서 그들이 성령 세례 받았습니다.
성령 세례라 말은 성령이 임해서 성령의, 예수님의 대속을 입을 때에 성령이 임하고 성령이 임할 때에 예수님의 사활을 자기 자체에서 기념할 수 있다 그말입니다. “세례는 물로 씻어 그런 게 아니고, 물로 몸을 씻어 더러운 거 씻는 게 아니고 착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니라” 하는 그 말로 거게 발표했는데 그게 뭐이냐 하면은 곧 성령 세례는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인해서 예수님과 함께 자기가 죽었고 예수님의 일곱 가지 사활의 대속은 자기 것이 되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죽으신 것은 함께 죽은 것이 됐고, 죽은 계산이라 말입니다.
죽은 것이 됐고, 그러나 죽지 안하고 있습니다. 죽은, 법적으로 죽은 것이 됐고 계산적으로 죽은 계산이 됐고 또 살아 있는 것은 예수님에게 바쳐서 예수님의 것이 됐기 때문에 사활의 일곱 가지 대속은 내것 됐고 나는 주님의 것 됐고 주님의 대속에 팔린 나는 주님의 것이 됐기 때문에 이제 이것은 주님의 것이 되어진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예수님으로 죽고 예수님으로 다시 사는 그 일을 하는 것이 그것이 성령님이 오셔 가지고 세례 주는 것이요 성령 세례의 역사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내용에 영감 역사는 여러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이래서 기록 영감 있고, 중생 영감 있고, 또 우리에게 역사 영감 있고, 역사 영감을 분리해서 우리 속에서 우리 마음을 환하게 밝게 해 주는 조명의 영감도 있고, 우리에게 또 받아들이는 수락하는 그런 영감도 있고, 작용 역사 영감도 있고 그 영감은 여러가지로 있는데 그 지금 그렇게 영감에 대해서 지금 논제를 가지고 있다 하는 것이 대단히 그 기쁜 소식입니다.
아무래도 우리 교회가 바로 될라고 하면은 세계에서 이 사람의 영 문제, 영 문제에 주력해 가지고서 영 문제를 밝혀야 기독교와 이종교가 뚜렷이 다르다는 것을 알지 영 문제를 모르는 아무리 신학자는 암만 떠들어 쌓아도 저는 기독교와 다른 교와 이름이 다르기 때문에 냈들바람으로 이제까지 유전해 나오니까 다르다 이렇게 하지 다르다는 것을 자기 자신은 확고히 잡을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좀 전에도 보니까 제가, 나는 그거 은혜라요. 신문을 이래 이렇게 이만치 뭐 어데 갔다 오면 이만치 옵니다. 그거 내가 볼 여가도 없고, 볼 여가도 없는데 그날 어째 이거 주간 일보입니까, 주간 신문입니까? 주간 신문이지? 그 문선명씨 하는 거. 주간 종교인가? 주간 종교로 돼 가지고 있습니까? 그게 보고 싶어서 이래 그거 하나 떼 가지고 이래 처음에 착 펴 드니까 그 문선명씨가 종교 연합이라 하는 그 연합 운동을 하는 걸 봤습니다. 종교 통일 운동을 내가 말했는데 지금, 내치 그전에는 말했는데 이제는 종교 연합 운동이라 이래.
하도 막 교회 연합 교회 연합 막 이 쌓는 그 바람에 지금 쑥 꿰어 가지고서 이제 종교 기독교 연합이라 이렇게만 할 것이 아니고 기독교 연합에서 좀 더 아량 있고 범위 넓게 종교 연합을 해야 된다 이라니까 그 사람 그라니까 유명해집니다, 자꾸. 앞으로는 종교 연합이 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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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이 말해도 성경에 안 된 말 하면 한 마디도 안 듣고 성경에 맞은 말 하면은 뭐 성경 보고 믿지 그 사람 말 믿을 건가? 그 사람을 그 사람 말한다고 그 사람 말을 듣고서 더 자기 믿음을 소생시키고 이렇게 그 사람을 인정하고서 할 그 조그마치라도 인정 안 할 사람 손 들어 봅시다. 못 들어, 여러분들. 인정 안 하지 못해요.
성경에 그게 없어. 이래 가지고서 죽은 자가 그렇게 살아난 게 없다 하니까 그것 때문에 뭐 ‘나사로도 살아났고 뭐 나인성 과부 아들도 살아났고 뭐 어짜고’ 들어 주 대는데, 그것은 살아났다가 도로 죽어 버렸어. 그것은 다 우리에게 계시 이용하기 위해서 했고 그것은 부활이 아닙니다.
부활은 세 번밖에 없어요. 예수님의 부활, 택자의 부활, 불택자의 부활, 이거 생명과 심판의 부활, 이 셋 부활밖에는 없습니다. 그것은 다 계시 이용으로 한 그 하나님의 큰 뜻을 깨달아야 되고 어데 그렇게 뭐 죽은 가운데서 예수님이 살리지 안한 그 외에 살아난 게 어데 있습니까? 예수님이 살려내지 안한 데에 죽은 자 살아난 게 어데 있습니까? 그거 뭐 뭐꼬 바울이 하는 그런 거는 엘리사도 그래도 그런 것은 하나 계시 기관으로 이용한 것입니다. 그것도 다 또 예수님의 권능으로 살아났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해 살아났지 달리는 살아나지 안했어.
그분들도 다, 구약 그렇기에, 요거 요긴한 것 중요한 거 하나 있는데 구약 성도들은 신약 성도의 중생과 다릅니다. 중생은 예수님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그 후에 중생이 됐고 구약 성도는 중생이 아닙니다. 중생 아니고 다 예약적 중생, 예약적 중생을 하고서 있기 때문에 성령의 역사는 받아 가지고서 성령의 생활은 하기는 했지마는 그때 영감은 밖에서 외재 영감이고 지금 우리에게 영감된 것은 안에 내주하는 내재 영감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때 중생이 다 기대하고 소망하고 있다가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때에 무덤이 열린 거는 그로써 사망의 세력이 깨진 걸 가리켜 말하고, 사망의 세력이 깨져. 세력 깨졌다고 새로 살아난 건 아니라. 사망의 세력이 깨진 걸 말하고, 자던 성인들이 일어났으나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무덤에서 나와서 행동했다 그말이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써 이 생명의 소망을 가졌고 사망은 깨어졌고 거게서 다 헤어나왔지마는 산 자의 행동은 예수님의 부활 이후로 행동했다는 것을 계시하기 위해서 “무덤이 열리고 많은 성인들이 일으났으되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난 다음에 무덤에서 나와 가지고서 많은 성인들이 예루살렘에 같이 들어갔다가” 이제 그다음까지는 기록 안 했어. 같이 들어갔는데 무덤으로 도로 들어갔습니다. 그게 부활은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부활은 세 번뿐이라. 요것도 변동이 없습니다.
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그러기 때문에 영감도 구약 영감과 신약 영감이 다르고 또 중생도 구약 중생과 신약 중생이 다르다는 거 이런 것을 좀 가져야 됩니다. ○목사님 어떻습니까? 중생이 구약 중생과 신약 중생이 다르고 영감도 구약 영감과 신약 영감이 다르다는 것이 그 시대 영감이 내 말이 맞습니까? 그래 생각해. 우리 저 보배, 그래 내가 교리학 교회학을 하라 했어요. 이게 맞습니다. 뭐 세계가 반대해도 맞아요.
이러니까 이거 얼마나 우리가 지금 이거 조심해서 믿어야 될 것인지? 이거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라고 하고 있는데 그 교리 신조가 잘못되면 제까짓 거 열심있는 거 소용 어데 있어?
고래가, 고래 그놈이 힘이 나 가지고 막 공중으로 뛰고 힘이 있습니다. 힘 있는 그게 뭐 있소? 그물 속에 들어갔나 안 들어갔나 하는 게 문제요. 그물 속에 들어갔으면 암만 힘 있어도 나중에 그물 홀치면 죽는다 그말이오. 혼자 열심 암만 있어도 소용 없소. 혼자 열심과 선과 봉사와 뭐 그뭐 어떻게 한다고 해도 마귀 그물 속에 들어가 있으면 소용 없어, 교리와 신조가 그 속에 들어 있으면 마지막에는 홀치면 다 들어가 버리고 만다 그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