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단체성과 개별성 - 교회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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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단체성과 개별성 - 교회론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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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앙의 절대성과 유연성
- 절대적 기준
삼위일체 하나님, 목적과 예정, 창조와 섭리, 예수님의 대속과 기본구원, 66권 성경과 정확무오라는 이런 단어들은 토씨 하나도 내어 줄 수가 없는 절대성의 표현들입니다. 표현이 조금만 애매해 져도 종교가 달라 지거나 이단이라는 이름을 붙여야 하는 절대 기준입니다. 그 정도는 아니라 해도 신앙과 세상, 교회와 예배, 신본과 인분이라는 이런 기준들은 조금만 애매해 지면 시간 문제지 교회가 세상으로 변질이 되어 자멸하는 기준들입니다.

- 상대적 기준
이런 것이 절대성이라고 한다면 신앙에는 유연하게 살펴야 할 상대성의 기준도 있습니다.
감리교 장로교 침례교라는 교권의 형식 차이, 통성기도와 묵상기도의 기도 형식 차이, 말씀과 전도의 선택적 강조 차이, 교회 직분의 다양한 운용처럼 이런 기준들은 각 교회의 신앙 여건과 역사와 현황에 따라 언제든지 좌우를 살피며 유연하게 적용할 기준들입니다. 1970년대를 중심으로 수십 년 동안 마구 쓸어 담을 기회를 줄 때의 공회는 주교 전도만 하는 교회처럼 보였고 매체들이 주일학교 특화 교회로 보도할 정도였습니다.
1960년대까지 공회의 사경회는 개별 교회나 한 지역 또는 교역자 수양회 성격의 일부만을 대상으로 했고 전국 단위가 아니었습니다. 1960년대 초반까지 거창 8월집회에 참석하는 서부교인들은 불과 10 명도 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2. 교회의 단체성과 개별성
- 밝은 면
교회는 여러 교인의 모임입니다. 돌 무더기가 아니고, 이해 관계의 조합이 아니며, 부속품들이 만난 기계도 아니며, 바람 따라 흘러 가는 동호회도 아닙니다. 교회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인체입니다. 주님을 머리로 삼은 세포와 기관들의 유기적 한 몸입니다. 이렇게까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이는 우리의 이상향이 아니라 우리의 목표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교회의 단체성을 찾습니다.
동시에 교회는 개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곡식을 빻아 물을 붓고 젓으면 반죽이 됩니다. 그 외모의 철떡처럼 하나 됨을 표현할 때는 성경이 그렇게 보이지만, 내용적으로 보면 몸을 구성하는 모든 기관 모든 세포는 그 독립의 모습과 역할과 내용을 분명하게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등뼈의 뼈와 신경과 막과 젤로 된 완충 부분이 빻아 져서 밀가루 반죽처럼 된다면 인간은 오징어처럼 괴물이 될 것입니다. 각 부분은 자기 모양과 성분과 역할을 조금도 양보하지 않고 유지해야 합니다. 그러 해야 한 몸이 되고 그러 해야 한 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교회는 교인들의 개별성이 확고하고 그 개별성이 교회라는 단체성에서 하나가 되고, 각 지방의 교회들은 교회들의 개별성이 확고해야 하되 공회라는 이름에서 단체성을 마치 한 몸처럼 가져야 합니다.

- 교회론, 신론과 구원론에 이르는 출발
교회의 단체성과 개별성 그 자체는 절대 기준입니다. 교회가 한 몸이 아니면 교회가 아니고, 공회가 그 한 몸을 구성하는 각 교회의 개별성을 잃게 한다면 그 것은 교회도 아니고 공회도 아닙니다. 따라서 교회의 단체성과 개별성이란 대립하는 개념 같고 병립이 될 수 없다고 보이나 두 면은 반드시 절대성의 기준으로 서로 양보할 수 없는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마치 성부 성자 성령의 하나님이 개별적으로 계셔야 '삼위'가 되고, 삼위의 하나님께서 한 분이어야 '일체'로서 유일신이 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완전자시며 단일성의 절대자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삼위일체 교리는 억지로 구성한 것이 아니라 당연하며 마땅한 개념이자 우리 신앙의 가장 첫 근본입니다. 그런데 세 분 하나님도 절대성의 개념이고 한 분 하나님의 개념도 절대성의 개념이어서 일반적으로 얼핏 들으면 성립이 될 수 없다고 보입니다. 하나님의 예정과 우리의 자유성 관계도 그렇습니다. 교회의 단체성과 개별성도 그렇습니다. 다행스럽게 교회의 단체성과 개별성의 관계는 성경이 몸으로 비교해 주셨고 우리에게 잘 이해하도록 세상을 만들 때 우리 몸을 그렇게 만들어 주셨기 때문에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단체성과 개별성을 몸으로 이해하게 해 주신 이 것을 붙들고 예정과 자유성, 삼위와 일체의 하나님을 더듬고 나가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이라는 존재는 항상 가장 어려운 부분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에 속하는 예정과 우리의 의지와 관계는 비록 어려워도 우리의 의지를 우리가 손에 쥐고 있기 때문에 그래도 2차 함수를 1차 함수로 낮춘 것처럼 이해가 쉽습니다. 교회의 단체성과 개별성이라는 교회론은 둘 다 우리 손에 쥐어 주신 듯 하기 때문에 가장 가깝습니다. 교회론을 통해 구원론과 신론까지 더듬어 보게 해 주신 것도 은혜며, 우리를 길러 가는 단계입니다.

- 위험성
교회가 단체성을 강조하면 감리교 모습을 거쳐 천주교로 나갑니다. 반대로 교회가 개별성을 강조하면 단일 국가가 미합중국을 거쳐 오합지졸이 되고 내전을 거쳐 자멸하게 됩니다. 침례교는 마치 미합중국처럼 보이기 때문에 단체성과 유연성을 대단히 잘 배합한 것처럼 보이나 그 모습이 구소련의 해체 과정을 통해 아프리카 부족국가들의 내전으로 치닫는 것은 어느 날 한 순간입니다.
한국의 장로교가 성경을 부인하는 기장, 무조건 합하자는 통합, 그리고 나머지 보수 교단으로 삼분이 된다면 당연하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보수교단들이 성경 절대를 외치면서 수백 개 교단으로 쪼개 져 있습니다. 이 분열은 잠깐의 연구 과정이라고 한다면 몰라도 영구 고착형이라 한다면 있을 수 없습니다. 이 상황은 단체성과 개별성이 함께 최악을 만들어 낸 경우입니다.
교회가 단결을 강조할 때는 교회의 개별성을 잊으면 안 되고, 교회가 한 개인과 개 교회에 역사하는 하나님의 개별 인도를 강조할 때는 교회의 단체성을 철저히 붙들고 있어야 합니다.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면 교회는 설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전체성과 개별성을 함께 길러 가면서 성장해야지 만일 한 쪽을 지나 치게 강조하게 되면 강점이 약점을 주저 앉히면서 결국 강점도 주저 앉는 교회의 일부로 공멸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침례교는 개별성을 강조하는데 그 개별성이 들어 교회성을 해쳤고, 감리교는 단체성이 장점이라 하는데 그 장점이 들어서 교회의 개교회성을 주저 앉혔고 개교회성이라는 한 쪽 교각이 붕괴 되면서 그 튼튼한 단체성은 교회의 속화 타락의 주범이 되었습니다. 장로교는 양 쪽 사이에 서서 적절한 배합을 한 듯하나 기계적 배합이어서 인간적 희망 사항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수시로 양 쪽에 의한 침범으로 가장 먼저 타락하게 됩니다. 한국의 장로교는 좀 묘한 면이 있어 다른 곳에서 설명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3. 공회들의 단체성과 개별성
현재 총공회 소속 공회들의 상황으로 볼 때 부공3 외에는 개별성보다 단체성을 더 강조할 때라고 보입니다. 서울공회는 거의 모이지 않고 있어 과연 공회라고 할 수 있는지를 모를 정도라 합니다. 대구공회는 어느 정도 단체성을 유지하고 있으나 개별성이 분명히 앞 서 있습니다. 집회 강사조차 단일 강사를 세우지 못하고 또 공회장을 무조건 1 년 단위로 교체하고 있습니다. 단체성이 극히 적을 때 생기는 일입니다. 부공2는 대구공회보다 더 느슨한 상태입니다. 서부교회가 소속한 공회는 저절로 서부교회 중심으로 강력한 단체성이 생기는 법인데 그렇지 않습니다. 부공1은 단체성이 너무 강하고 개별성은 존재조차 없던 곳이었으나 인산 목사님의 임종 준비와 함께 대구 사모님의 연세가 80 세가 넘으며 그 장악력이 예전 같지 않음을 곳곳에서 느낍니다. 그런데도 25 년간 일방 주입에 기계가 되어 오늘도 그 기계들은 평양이든 서울이든 가리지 않고 입력 된 대로 걷고 있습니다.
타 공회를 분석하기 시작하면 비판처럼 보일까 싶어 부공3으로 예를 들겠습니다. 물 건너 불 구경이라 생각하고 이해 관계가 없는 부공3을 지켜 보며 참고한다면 좋을 듯합니다.


4. 부공3의 경우
- 부공3의 단체성
누구 지적처럼 본토 친척 아비집으로 똘똘 뭉쳤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좀 무식한 분들입니다. 아니면 막가는 분들입니다. 제자들로부터 한국의 고려파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원래 공회도 또 현재 공회도 외형은 본토 친척 아비집으로 뭉친 것처럼 보이게 되어 있고 실제도 그렇습니다. 다만 그 제일 속에 들어 있는 중심이 혈육 중심인가 아니면 신앙 중심인가 이 것이 문제입니다.
부공3은 본토 친척 아비집의 문제가 없습니다. 목회자들끼리는 4촌이 되는 자녀들이 대학을 들어 갈 즈음에야 4촌이 된다는 것을 알았을 정도입니다. 문제는 그런 쪽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한 사람이 너무 강하게 또는 뚜렷하게 활동을 하여 결집력이 강해 지면, 다른 분들의 자발적 노력과 자유성으로 이 길을 걷는 면이 약화가 됩니다. 규모는 아주 작지만 부공3은 그런 현상이 뚜렷합니다. 그래서 최근에 부공3의 단체성을 최대한 분산 시켜 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최소한 오늘까지는 총공회가 진정한 하나로 운영 되는가? 이 문제를 두고 부공3은 타 공회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탁월했습니다. 그런데 이 좋은 면 때문에 부공3의 역량 있는 목회자들이 사회자를 지도자로 대하듯이 모든 면에서 쳐다만 보는 문제를 감지하고 있습니다. 백 목사님 생전의 경험에 의하면, 백 목사님에게조차 무조건 순종하고 따르던 사람들은 지금 그 신앙을 유지하는 사람을 답변자는 알지 못합니다. 개별적으로 주신 자유성의 발전을 사장 시켰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백 목사님 생전부터 창의성을 발휘한다며 소신 발언을 하던 분치고 타 진영에 나가서 자기 창의성을 모두 묻어 버리고 신학의 먼지에 오염만 되지 않은 분을 알지 못합니다. 어려울 것도 없는데 그렇게 어려운가 봅니다.
지금 분명한 것은 부공3의 단체성은 다른 공회들과 비교할 때 한 몸이라고 극찬을 해야 하는데 이 정도가 되었다면 분명히 내부적으로는 각 회원들이 모두가 스스로 지도자가 되고 창조적 공회인으로 발전하는 성장이 중단이 되었을 것으로 봅니다. 만일 단체성에 개별성이 조화가 되었다면 부공3은 총공회 내부뿐 아니라 한국 교계에 우뚝 솟구쳐 그 무엇을 보이지 않았을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 부공3의 개별성
앞으로 교역자회의나 집회처럼 공회 존립의 절대 요소라고 생각 되는 문제부터 최대한 절제를 시켜 소속 회원들의 개별성이 발전 되도록 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가집니다. 집회도 교회 별로 하게 한다거나 매월 교회 보고서도 1 년에 한 번 정도 모아서 전체 흐름이나 본다든지 또 매월 교역자회도 몇 년에 한 번 정도 모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연구소는 공회와 전혀 다른 단체임에도 불구하고 그 흐름은 부공3과 늘 함께 했는데, 지금 출간에 들어 간 '백영희 성경언어론'이라는 책을 답변자가 낼 수 있는데도 다른 교인께 부탁하여 그 분 손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어 지게 했습니다. 물론 답변자가 자문은 했으나 말뿐 아니라 책에도 해당 교인이 저자 표시를 하게 했고 그 표시가 실제를 반영하게 했습니다. 이미 '총공회 소개'라는 책도 그렇게 했습니다.

마치 외부에서 보면 부공3이 산산조각이 났다고 느껴 질 만큼 개별성을 강조하다 보면 다시 단체성이 그립기도 하고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할 듯합니다. 이렇게 좌우를 오 가며 배우고 익히고 자라는 것이 우리일 것입니다.

- 예를 들면
부공3의 집회 장소는 부공3의 규모에 비해 넉넉하기 때문에 다양한 운영이 가능합니다. 같은 기간에 교회 별로 필요한 집회 말씀을 따로 할 수도 있어야 하고, 전체적으로 2 종류의 재독을 동시에 제공하여 그 중에 하나를 택하여 듣게 하는 방법도 시도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안이 밝은 종이 있던 시절은 무조건 한 가지 최선을 잡고 고속 성장을 했지만 모두가 어두워 조심해야 할 때는 무조건 한 길은 그 길이 비록 옳을지라도 바리새인의 길이 되어 신약이 왔음에도 직진만 하다 전부 타락 탈선의 길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어떤 방법이 은혜로울지 어떤 길이 우리가 갈 길인지, 단체인지 개별인지 두 가지가 함께 섞여야 할지 등 모든 면을 열어 두고 늘 살피며 한 걸음씩 걸어야 할 때입니다.


질문에서, 단결을 강조하셨는데 부공3의 경우는 개별성을 대단히 강조해야 할 시점으로 생각합니다.









>> 교인 님이 쓰신 내용 <<
:
: 어느 단체든지 보수는 썩어서 실패하고 진보는 분열을 해서 자멸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정치 단체에만 해당되는 말인 줄 알았는데 교회도 그렇습니다. 보수교단은 썩었습니다. 자유주의 신학을 가진 곳은 겉과 달리 속에는 백명이 백갈래입니다. 공회도 그럴까요? 공회의 보수파는 어느 공회입니까? 공회의 진보는 어디입니까? 여기는 어디입니까? 뭉치면 썩고, 개혁을 해보려고 하면 천지만엽입니다. 종교개혁 때도 천주교는 똘똘 뭉쳐 기득권을 지켜 냈습니다. 썩어 문드러졌지요. 루터와 칼빈은 그들조차 갈라섰습니다. 어느 하나도 둘이 함께 한 교단이 없습니다. 요즘 지방교회의 내부 분위기가 그리스도의 한 몸이라 하는데 그 분들 겉으로 그렇지 속에는 천지만엽입니다. 우리나라에 있는 지부를 보면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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