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교회 목회는 해방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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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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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07 00:00
개명교회는 신사참배를 승리했고, 봉산교회와 원기동교회는 신사참배를 실패했습니다.
설교록에 그렇게 나오고, 백 목사님 일지에도 나오고, 당시 본인들이 그렇게 말씀합니다.
개명교회는 백 목사님이 1939년 개척하여 1945년까지 해방 때까지 집사로 목회를 했고
봉산과 원기동은 개명보다 먼저 개척이 되었고 교인들이 백 목사님보다 신앙의 선배거나 동지로서 당시 백 목사님에게 신앙 지도를 받을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봉산교회나 원기동교회는 백영희라는 분을 굉장한 교인으로만 봤지 신앙의 위대한 지도자인 줄 알아 보지 못할 때였습니다.
백 목사님보다 선배거나 동료 신앙인들이 모인 봉산과 원기동 교인들은 전부 신사참배에 실패하고 개명교회는 모두가 신사참배 시험에 승리를 하며 해방을 맞게 되자, 비로소 봉산교회와 원기동교인들은 백영희라는 인물을 알아 보게 됩니다. 그리고 평생 스승으로 모시고 배우고 따릅니다. 5 년만에 닥친 6.25 전쟁에서는 개명교회보다 봉산교회의 승리 이야기가 훨씬 많고 탁월합니다. 지도자에 따라, 지도자의 지도 직할에 따라 얼마나 달라 질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사례입니다.
봉산교회는 1937년, 답변자 부모의 집 안에 세워 진 교회이며 지금도 그 곳에 있습니다. 원기동교회는 봉산교회 교인들을 1931년에 전도했고 이후에 개척하도록 후원한 교회입니다. 봉산교회 개척 교인이며 일제 때 교인이었던 답변자 부모와 조부모와 모든 가족은 전부 신사참배를 실패했습니다. '주교연구 3권, 산곡의 백화화 - 봉산교회 주일학교'라는 곳에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설교록의 내용과 이 홈의 안내가 상이할 때는 이 홈의 안내가 맞다고 보면 될 정도입니다. 백 목사님은 자기 경력과 지난 날에 대해서 훌륭했던 부분은 교훈적으로만 알고 계시지 훗날 입증을 위해 수치를 기억하는 일은 소홀하여 설교록의 관련 부분을 검색하다 보면 마치 소설처럼 오해할 정도입니다.
>> 양성생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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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공회의 공회 역사 소개 내용중에 신사참배를 승리한 교회가 3곳이라고 하는데 맞는지 확인을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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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총공회의 탄생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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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 총공회의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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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공회의 뿌리는 총공회를 탄생시킨 백 영희 목사님의 신앙 생활과 깊은 관계가 있다. 따라서 백목사님의 신앙 생활의 출발과 그 과정을 살펴보면 백 목사님은 이곳 개명에서 1910년 탄생하여 1936년 26세 때에 황보기 장로님으로부터 전도를 받고 농산교회(현 고제 교회로 개명을 했음)에서 신앙 생활을 출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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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는 돈벌이가 잘되었던 술도가를 다 정리하고 1년 동안 집에서 성경공부에 전념하여 성경을 일년만에 다 외우게 된다. 그리고 산기도와 철야기도로 이어지는 기도 생활과 성경 연구를 통한 실천적인 신앙생활을 하다가 1938년 집사로 임명받고 개명교회, 봉산교회, 원기동교회 등 3교회를 맡아 무보수로 교역일을 시작하게 되며 1939년에서 1945년까지 맡고 있던 세 교회 모두가 6년간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투쟁하며 승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