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순서 별 세부 평가

공회내부 문답      

예배 순서 별 세부 평가

설명
yilee 0 3


1.입관예배

①간단해서 좋았습니다.

큰 장례식인데도
맡은 순서 배치와 각 담당자의 진행이 아주 간결하고도 은혜로웠습니다.
오랜만에 총공회적으로 만난 자리기 때문에 자칫 부흥회나 총공회 개회 예배라고 생각하면 엉뚱하게 될 수 있는데, 모든 순서가 잘 된 것 같았습니다.


②사회, 이탁원목사님

백목사님 생전부터 청년으로 반사로 집사로 그리고 최후 행정실직원으로
그리고 현재는 서부교회 행정실 담당 목사님으로 계신 연륜과 과거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탁원목사님은 그 음성이나 사회 진행 일체에서 서부교회 오랜 세월의 모습을 그대로였습니다. 50대 중반을 넘어서는 목사님께 더욱 이 노선 원래의 본질이 더 강해지기를 구합니다.

행정 업무를 오래 맡다 보면 공무원처럼 되기 쉬운데 행정실에서 늘 성경을 많이 읽던 모습을 기억합니다. 백목사님 순교 최후까지 목사님의 식사를 섬겼던 모친 집사님, 그 기도가 더하여 이 노선의 지리적 중심지인 서부교회가 신앙노선적 중심지로 계속 이어지도록, 백목사님 유일한 최후 직원으로 서부교회 앞날이 늘 이 노선 제일 중심을 향하도록 해 주시기를 소원합니다.

서부교회는 개척 때부터 서부교인을 기른 백목사님 외에 어떤 후임이 와도 교회 내부를 파악할 수 없습니다. 일반 교인들과 달리 각 구역과 각 교인들의 내부는 바로 연결되면 아직도 세계 제일의 교회가 될 수 있는 모든 장점과 특징을 다 가지고 있고 만일 내부 충돌이 일어나면 깨어진 유리조각이 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전체를 파악하고 충돌의 완충지대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 이탁원목사님입니다. 서류나 단순 일처리의 외형면으로 본다면 더 유능한 사람이 많을 수 있으나 서부교회 역사와 현황 파악 전체는 다른 사람으로 대체가 될 수 없습니다.


③기도, 이진헌목사님

1997년 이후 10여 년 전혀 연락을 하지 않고 딴길을 걷지만 이 홈은 이진헌목사님의 진심과 전심 그리고 이 노선에 대한 그 애정은 늘 가장 존중해 왔습니다. 공회 내의 다른 목회자들은 공회 밖에 나가면 공회 안에 있는 것보다 처우나 활동 상황이 불리해지지만 송종섭목사님과 이진헌목사님은 공회 밖으로 나가야 물 만난 고기가 될 분들인데, 이 노선 내에서 늘 외부인으로 비판받고 또 늘 인본주의로 비판받으면서도 백목사님 사후에 이 노선 보수에 가장 앞장 서서 수고했고 18년이 지난 이번 장례식에서도 그때 모습들을 그대로 가지고 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교계적으로 나가면 이목사님의 영향력은 굉장합니다. 그러나 공회 안에서는 늘 데려온 자식처럼 당했습니다. 물론 이목사님 자신에게도 그럴 요소가 있었을 것이고 하나님은 그 면을 마저 고치시려 이 노선 백목사님 밑에 두셔서 억울하다 생각하실 세월을 보내게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진심이 있으므로 현재 이 노선의 직계라고 자처한 모든 이들이 이 노선을 다 버리고 나가도 당신은 아직 여기에 있고 그것으로 당신의 평생 걸음의 가치를 평가받고 있습니다.

기도 내용 한 단어마다 당신이 걸어온 이 노선의 고난 길과 애정과 충성 그리고 가족에 대한 진심이 어려있음을 잘 보았습니다. 과거처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모실 수 없어 안타깝습니다. 이 노선의 변치않는 기개를 끝까지 보이시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이 노선의 장점과 가치와 의미를 대외에 높이 넓게 멀리 외쳐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물 안 개구리들이 옆에서 뭐라고 짖어대도 개의치 마셨으니, 앞으로도 계속 그리하실 것을 믿습니다. 김목사님이 옆에서 그 오랜 세월 미친 개처럼 물어뜯는데도 다른 분들 같으면 김목사님 때문에 이 노선을 백번도 더 욕하고 나갔을 것인데, 이목사님은 그 성격이 남달리 카랑카랑하신데도 이 노선 가치 때문에 아직도 이 노선에 계시고 이제는 이 노선의 최고 원로가 되었습니다.


④성경봉독과 설교, 송종섭목사님

개인적으로
이번 장례 기간 전체를 통해 송목사님 기도 내용과 설교에 가장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물론 이진헌목사님의 진심 담은 그 기도의 내용도 같았습니다. 두 분의 기도와 설교 내용을 이렇게 평가하면 공회 내부에서 특히 부산공회 보수측에서 반론이 많을 것이나 저는 두 분의 이 노선에서 걸어온 역사와 그 모든 순간의 과정을 알기 때문에 이렇게 평가합니다.

참으로 이상합니다.
두 분은 이 노선의 가장 위험인물로 지적을 받았습니다. 이목사님은 경제부정 때문에 그리고 자기 중심의 세력을 만드는 사이비교주의 위험성 때문에 더하여 외부식 언행 때문에 그렇게 지적을 받았고, 송목사님은 박문다학과 타협주의를 금지하는 이 노선 성향 때문에 항상 인본주의로 인간지식 사용자로 지적을 받았는데, 백목사님 가족 중에서도 가장 이 노선 보수를 견지하려는 가족에 의하여 장례식 가장 중요한 순서들을 맡았습니다.

백목사님께서 두 분을 책망한 것도 두 분이 하나님 앞에서 서시기 전에 고쳐야 할 그 요소 때문이었으며 두 분을 가장 많이 책망한 것은 두 분을 가장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신도범목사님은 두 분이 들었던 책망 10분의 1만 가지고도 고신으로 이탈했습니다. 장렬목사님도 마찬가지고, 그 외 다른 분들은 백목사님께 칭찬과 대우와 지원을 남달리 많이 받고도 백목사님 사후 모두 봇따리 싸고 나갔습니다.

제자들을 구별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힘껏 책망할 수 있는 분들이 두 분이었고 반대로 무조건 밀어주다시피 해야 할 분들이 두 분과 반대에 있었던 분들이었습니다. 송목사님의 설교는 백목사님 생전보다 더 이 노선에 가까워졌고 더 은혜로워졌습니다. 후배가 건방지게 평한다 하지 마시고, 이 홈에서 이 노선 소속 목회자들을 담담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백목사님 생전에 백목사님 앞에 보란듯이 노트를 또박또박 읽으며 '내가 이렇게 이 노선에 철저합니다.'하고 광고하던 분들, 지금은 총신 고신 별별 신학교 세미나를 다니며 새 우물을 판다고 난리들입니다. 두 분은 그때도 그랬고 이번에도 역시 그렇습니다.

스승이 있을 때도 자기 모습 그대로 있었으므로 스승에게는 꾸중을 들었으나
이제 스승이 없는데도 과거 그 길을 그대로 걸어 가기 때문에 스승이 없는 순간 돌변한 분들과 비교할 때 두 분들은 이 노선 제일의 보수 지도자가 되셨습니다. 부디 70세 연세를 넘기시는 지금 이후로는 백목사님 생전에 직접 책망하신 그 음성 기억하셔서 모든 이들이 이 노선에서 벗어나는 흐름에 역류하여 더욱 이 노선 안으로 깊이 들어가시는데 앞서시기를 바랍니다. 백

송목사님께는 죄송하나
성경읽기 후에 무조건 '아멘'하는 모습 하나만 흠으로 잡고 반대하고 싶습니다. 서영호목사님이 양성원에서 시작하여 이 노선에 유행시킨 것인데 다른 분들이 그렇게 했으면 이 홈은 심하게 비판했을 것이나, 송목사님은 백목사님 생전부터 백목사님 면전에서도 옳다고 생각하면 무슨 말씀이든 서슴치 않고 하셨으므로 송목사님의 '아멘' 소리는 누구 말을 듣고 쉽게 움직인 것이 아니고 송목사님 스스로 옳다 판단하고 많이 생각하신 뒤에 그리 하셨을 것으로 믿습니다. 그렇다 해도 과거 송목사님께서 주장하신 '총공회' 이름에 대한 이견과 '아멘'이라는 이번의 표현은 어린 우리 공회 일반 교인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⑤축도, 김응도목사님

정해져 있는 한 줄의 짧은 기도문을 맡았기 때문에 달리 설명하기 어려우나
그 짧은 정해진 한 줄의 기도문 내용에 중대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백영희 축도문의 노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감화 감동하심이'
'항상 저희들과 함께 하시기를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이것이 우리 공회 축도의 한 줄에 담은 4 부분입니다.
이 축도를 줄이면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원'입니다.

김목사님은
총공회의 이 축도 기도문의 신학적 입장에 반대하고 딴 길을 걷고 계십니다.
총공회 축도문에는 '주 예수님의 이름'이 빠졌다며
위의 축도문 뒤에 다시 한 줄을 삽입했습니다.


(김응도 축도문의 노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감화 감동하심이'
'항상 저희들과 함께 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좋게 이해하려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기도는 효력이 있는 것이니
축도도 분명히 기도의 한 종류이므로 축도에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끝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짐작했습니다. 아니라면 반론 또는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첫째, 주기도문에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끝내지 않습니다.
둘째, 고후4:13 삼위일체 이름의 축도에도 '예수님 이름'은 따로 없습니다.
셋째, 이 노선의 형식과 의례 최소화에 따라 다른 진영과 달리 축도문을 최소화하고 대신 그 내용 하나하나에 기도하는 사람이 말씀의 뜻을 새기도록 했는데

김목사님의 이번 축도에서 느닷없이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하니까
마치 그동안 백목사님과 총공회 노선의 모든 축도에서는 '주 예수님의 이름'을 아주 무시한 듯, 마치 야단을 치는 듯, 강조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김목사님 혼자 목회하시는 아현동교회 내에서는 알아서 하실 수 있고 또 김목사님을 백목사님보다 더 존경하고 따르는 주변 목회자나 교회나 교인들에게는 그리 하신다 해도 백목사님을 생각하여 참석하고 진행을 맡은 이번 장례식에서 그렇게 하신다면 너무 지나쳤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 홈의 반론을 받았으므로 이제 재설명이 있을 줄 압니다.
일단 서로 연구하고 토론할 문제지만 이미 이 홈에서 이렇게 반론을 했다는 사실 하나만 가지고도 이 문제는 그렇게 쉽게 끝날 사안이 아닙니다. 그런 연구 과제나 숙제거리는 장례식에서 피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장례식은 가신 분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표시하고 남은 가족들에 대하여 성의를 다하는 자리입니다. 장례식은 신학강좌가 아니고 교회행정 혁파의 자리도 아니며 공회 개혁의 출발로 삼을 자리도 아닙니다.

김목사님 축도를 통해
이 노선은 틀렸다!
이 노선은 '주 예수님의 이름'을 뺀 노선이므로 아주 틀렸다!
이런 외침을 저는 들었습니다.
외친 방법도 자리도 순서도 그리고 그 외친 내용조차도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는 따로 한번 살필 기회를 갖겠습니다.
자기 뿌리를 보호하면서도 얼마든지 자라가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외부에 꺾이지 않는 승리의 신앙이란 자기 주관에 기준을 맞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주신 객관의 진리를 자기 주관화 시킨 다음에 그 주관이 승리로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내 속에서 생각나는 것은 전부 진리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리고 내 속에서 생각나는 것이 외부에 없었다면 그것을 새로운 교리 발견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감당못할 많은 문제가 일어납니다.



2.발인 및 하관예배

①사회와 기도, 송종섭목사님

백목사님 사후 18년째, 서부교회에서 과거 모든 공회 모든 식구들이 다 모인 행사였지만
모든 순서를 잘 정돈하고 진행하였습니다.
입관예배 설교 때 전반적인 설명을 했으므로 생략하겠습니다.


②설교, 이재순목사님

87세 연세에도 인천에서 부산까지 순서 하나 때문에 오셨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성의와 충성을 감사할 일입니다. 원래 공회 목회자 전체 중에서도 가장 건강했고 가장 세상으로 출세했던 분이며 또 백목사님 생전부터 목회에 가장 충성한 분입니다. 그분과 싸웠든지 그분을 추종했든지 이 면에 대한 평가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장례식의 장소와 순서를 맡은 사람들 때문에 실제로는 오지 않을 분들이 사모님과 백목사님을 생각하여 참석한 경우가 많은데, 장례식 설교에서 신앙노선 분쟁 문제를 주제로 삼아 설교한 것은 잘못입니다. 이목사님은 백목사님 사후에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 살펴보자 했는데, 이 노선을 버린 사람을 질책하고 따지고 싸울 수 있는 기회는 장례식 설교 시간 외에도 많습니다. 경제가 충분하고 시간이 많기 때문에 정말 그 문제가 그렇게 중요하다면 부목사에게 설교를 맡겨놓고 전국을 다니며 맞아 죽을 요량하고 순교 각오로 그렇게 하면 되는데, 장례식 설교 시간에 그렇게 한다면 잘못입니다.

이목사님은
백목사님 순교 직후에 수정노선 4명 목사님과 회동하여 노선 수정에 동의한 분이고
서부교회 담임을 맡은 1개월 내에 대구공회와 부산공회 사이에 중립을 선언했으며
서부교회 담임직을 위협받게 되자 비로소 부산공회로 급선회했던 분입니다.
1년 후 시무투표에서 떨어지자 총공회 시무투표법을 반대했다가
향후 총공회적 인물이 되실 때 불리할 것이라는 말을 듣고 또다시 선회했고
송종섭목사님과 함께 총공회 노선을 반대하고 소송을 했던 분입니다.

이번 노후한 육체를 끌고라도 장례식을 참석했다는 문제를 두고도
이목사님을 무조건 따르는 교인들은 충성의 절정이라고 극찬하고 있지만
반대쪽에서는 백목사님 사후 이목사님의 걸어온 길의 원칙은 딱 하나 '남는 장사는 한다'는 원리로 극평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홈에서는 양면을 함께 가지고 계실 분이지 한쪽으로만 평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총공회 노선이 어떻게 되든지 자신의 공회내 영향력과 교권확보를 위해서는 노선도 모르고 공회도 모르고 성경도 모르고 오직 혈과 육의 투쟁을 위해 지시를 받고 움직였던 수많은 사례가 있었습니다. 혹시 이목사님 측에서 이 문제로 반론이 있다면 명단과 구체적 사안을 들어가면서 변론할 수 있습니다만, 이제 과거 그 계열에서 그 일에 제일 앞장 선 분들이 대부분 이탈하여 있으므로 이 홈의 설명을 수긍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③특송, 유화순집사님

백목사님 3째 아들이신 백도충장로님의 부인이며 청량리 출신입니다.
소중한 가족의 일원이 되어 현재 두 아들인 영헌씨와 영호씨가 하바드대학원과 대학을 각각 졸업하고 해외 생활에서도 철저히 이 신앙노선에 엄하다고 듣고 있습니다. 백목사님 장례 테이프 중 손주 20명 막내로 기도하던 영호씨의 이번 모습은 그분의 육체가 아닌 신앙과 인격의 그런 장성함을 볼 수 있었고, 약하게 보였던 영헌씨는 소중한 가족의 대들보가 될 모든 면을 다 갖추었다 할 만큼 좋았습니다. 촌각을 다투는 미국 최상류층의 치열한 경쟁 가운데서 할머니 장례 소속을 듣자 바로 귀국하여 말 한 마디 없이 장례기간 내내 많은 생각을 하는 그들에게 '하늘 가는 밟은 길'을 부르는 그들의 어머니 유화순집사님의 깨끗한 이 노선 충성과 그들의 부친 백도충장로님의 이 노선과 지극한 효심이 그대로 영육의 복이 되어 전해졌다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백목사님 장례식 찬송가사도 잊을 수 없고 이번 장례식 찬송도 잊을 수 없습니다. 성악가로서 현역이 아니므로 음악적 수준으로는 일반 성악테이프와 어찌 되는지 잘 모르겠으나, 가신 분을 잘 알기 때문에 그리고 50대를 넘어서는 그 연륜과 신앙에서 특송을 했으므로 참 잘 들었습니다.


④약력낭독, 구의남장로님

서부교회 장로님 중에서 가장 맡을 만한 분이 순서를 맡았다고 생각합니다.
약력 낭독을 위해 강단으로 올라갈 때 단 위의 사회자에게 먼저 절을 하고 올라가신 것은 공회 강단 순서에서 피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약력 낭송 때 '고'라는 표현을 먼저 붙이고 시작한 것도 아쉽습니다. 백목사님 장례 때도 '고'라는 단어는 모든 순서지와 표현에서 뺐습니다. 이번 사모님 장례식도 그렇습니다.

생사를 명확하게 구별할 필요가 있을 때
일반인들이 명단의 생사를 잘 모를 수 있을 때
죽은 자와 산 자를 구별하기 위해 '고'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죽은 자에 대한 인식이 우리와 다르기 때문에 '고'라는 단어를 다른 의미에서 즐겨 사용합니다. 장례식 때 사모님의 이름은 누가 따로 말하지 않아도 그 자리에서는 돌아가신 줄을 다 알기 때문에 '고'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한번 더 강조해야 할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회 생활을 주로 하시고
사회 생활에서 격식을 엄하게 갖추는 행사에 익숙하신 장로님이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하셨다고 이해합니다.


⑤축도, 김삼암목사님

왜 오시지 않았는지?
왜 김목사님이 오시지 않으면 나머지 전부 다 오시지 않았는지?

김목사님은 워낙 하나님 동행에 철저한 분이어서 어떻게 결정하고 행동하셔도 고차원의 신앙판단이 계실 것이고 옳은 대로 순교하실 분이기 때문에 우리는 공회적으로 그분의 참석과 불참에 대하여서는 기도 중 특별히 생각하신 면이 계셨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그 이상 따지지 않은 것이 보통입니다.

그러나 그 밑에 목사님들은 혈과 육으로 이 노선을 위해 보이는 전투를 해야 한다고 오랜 세월 온갖 행동을 다 했던 분들입니다. 육으로 돌아가신 사모님을 육으로 장례하는 일에 혈과 육의 목회자들이 오지 않았다는 것은 그동안 그분들의 기준에 의하면 극악무도한 일입니다. 패륜입니다.

만일 과거 인천과 대구의 지시를 받고 전국을 다니며 온갖 쌍욕과 주먹을 휘둘렀던 것이 잘못되었다면 그렇게 하고 다닌 이상으로 눈에 보이는 회개와 사과를 해야 하는데, 어물쩡 기도하다가 새뜻을 발견했다 하고 넘어간다면 세상 모리배들의 말장난이 될 것입니다. 이재순목사님을 그렇게 추종할 때는 이목사님이 그렇게 완전했던가? 그리고 김목사님 측과 서로 나뉘는 순간 그때부터 '갑자기' 이재순목사님이 타락했던가?

역사의 눈이 여러분들의 과거와 함께 여러분들의 현재 모든 행동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한때 주먹 쥐고 욕설을 하고 전국을 돌아다닌 시절이 옳았다면 지금 탈선한 이재순목사님을 14명이 검정양복에 007가방을 쥐고 인천으로 찾아가서 또 협박을 하고 말을 듣지 않으면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도록 차야 합니다. 만일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잘못이라면 과거 그렇게 했던 행동을 공개 회개해야 합니다. 은밀한 죄는 은밀히 회개하고, 공개적 죄는 공개적 회개를 해야 하며, 회개는 상대방이 거절하거나 불가능한 경우가 아니면 당사자를 찾아 면전 회개가 회개입니다.

지금도 그렇게 하고 싶은데 힘이 없어 요즘은 각목을 들 자신이 없다면?
그렇다면 여러분의 운동은 지금 육체로 시작했으므로 육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뇌쇠현상을 보이는 것입니다. 육체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는 일이므로 그래서 또 회개해야 합니다. 혹시 참석한 분이 있으면 이 글에 해당이 되지 않을 것이나 다른 행사와 공회사안에는 해당이 될 것입니다.


⑥하관설교, 김응도목사님

평소 말씀 연구와 기도에 얼마나 전력하셨는지 잘 알 수 있었습니다. 봄비 맞은 식물이 한껏 수분을 품고 꽃망울을 터뜨리듯 김목사님의 입에는 전할 말씀으로 충천했습니다. 아마 시간만 주어진다면 그 자리에서 1시간이 아니라 해가 지도록 전해도 전할 말씀이 그 마음에 준비 된 듯 보였고 또 듣는 이들도 의자만 있고 외벽이 바람만 막아준다면 그렇게 앉아 들을 기회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관예배 설교는 하관예배 설교라야 하는데 부흥회가 되었습니다.
많은 성구와 많은 교훈을 담아 모든 사람에게 말세를 살아가는 양식으로 전한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장례식이나 결혼식은 은혜를 끼치려 하지 말고 간단히 한 말씀만 전하고 식이란 식으로 진행하라는 백목사님 가르침과 반대가 되었습니다.

만일 오해를 하고 비판을 하는 사람이, 왜 장례식 설교기회를 가지고 자기 설교 자랑하느냐고 말한다면 할 말이 없을 것 같습니다. 또 그곳에 온 이 노선의 1백명 넘는 목회자들도 설교에 관해서만큼은 기회만 준다면 마이크 잡고 그렇게 전하지 못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라고 불평을 한다면 그 말 역시 사실이 될 것 같습니다. 가신 분을 생각하며 장례식 하관예배 그 순간에 우리가 새길 말씀 한 마디를 전하라는 하나님의 뜻을 잊었다고 느꼈습니다.


⑦하관축도, 이재순목사님

다른 것도 아니고 축도 순서를 잊을 정도면 은퇴를 하는 것이 공회법입니다.
모두들 유리한 법은 기억하고 불리한 법은 잊어버리기 때문에 공회 목회자들은 죽을 때까지 교회를 맡는 것이 공회법으로 알지만, 공회법은 겉사람이 후패해도 속사람이 날로 새로워져서 겉사람의 후패를 능가하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삼은 것입니다.

배수윤목사님의 경우를 생각해 봐야 할 문제입니다. 또 박목사님과 김목사님의 경우도 있습니다. 이재순목사님이 축도를 잊은 것은 그 목소리를 웅장하게 해서 교인들에게 심리적으로 감동을 주려고 평소와 다른 형태의 목소리를 무리하게 만들다가 육체적 한계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이 정도라면 총공회 기도도 아니고 총공회 신앙노선도 아닙니다. 다른 진영법으로 한다면 17년 전에 은퇴해야 했습니다. 공회법은 앞으로 모든 목회자들이 자기 육체 관리의 실패를 교인들에게 떠넘길 때 교인들은 90노령의 목회자 시대를 맞아 전부 약사발이나 들고 그 험해진 육체를 존경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서부교회 권사님들의 경우 그들의 송장같은 늙은 몸을 모두 서로 씻어주려고 난리라고 했는데, 이 말을 듣고 그 권사님들처럼 신앙과 육체로 희생하지는 않은 새파란 젊은 구역장들이 자기보다 신앙으로 앞선 자기 구역 출신 목회자가 자기 구역 아가씨와 결혼했다는 사실 하나만을 가지고 자기 신앙의 자녀급으로 삼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을 해서 참 우스운 일이 벌어진 경우가 있습니다.

이재순목사님이 살아서 숨만 쉰다 해도 좋아서 축도를 다 잊어버려도 좋다 하고 담임목회자로 세운 교회가 있다면 그것은 그 교회의 개교회자유입니다. 공회에서는 아예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교인들을 벗어나서 그런 모습을 원치 않는 자리에 서게 되었다면, 최소한 축도를 종이에 적어서 읽었으야 했습니다. 축도를 종이에 적어서 읽으면 축도가 안 되는 법이 있습니까?

사회보다는 송목사님이 옆에서 축도 끝 내용을 가르쳐 주어서 끝을 냈지만, 그것은 모세의 두 팔을 주변에서 돌로 받쳐 보태었다는 성경이나 사도요한을 제자들이 들어다가 놓으면 '서로 사랑하라'는 말 한 마디에 모두들 은혜를 받았다는 고사로 비교할 일이 아니고, 사울 왕이 그 권좌를 잡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노욕으로 끝까지 간 일로 비교해서 자신이 살필 일이었습니다.

이재순목사님은 총공회의 역사를 모르는 분입니다.
총공회 마지막 끝자락만 조금 본 분입니다. 총공회 앞선 선배들이 너무 망령을 부리기 때문에 비교적 변덕이 덜 심할 것으로 생각하여 백목사님 생전 마지막에 행정 관련 업무를 맡겼습니다. 당시 이목사님이 맡은 자리는 이 노선의 가장 욕얻어 먹을 일을 맡는 수위장과 같은 역할이었습니다. 그 자리는 뚝심과 감내를 기준으로 배치하는 자리이지, 공회 내부의 성향을 파악하고 이해하며 앞날의 길을 지도하는 면으로 세운 자리가 아닙니다.

앞에서 백목사님 사후 이목사님의 노선 선택에 요동했던 면들을 소개했습니다.
이목사님의 그런 자세 때문에 대구공회 지도부에서는 온갖 욕을 당시에 했습니다.

그렇다 해도
이번 모임은 장례식이고 가족들이 그를 설교와 축도에 모신 이상
우리는 장례식을 끝내고 전혀 다른 이런 자리에서 당시를 두고 살피는 것은 할지라도 그때 장례식 진행에 문제가 되면 안 될 것입니다. 모두들 불편했다 해도 전체면을 보고 이해하고 협조한 모든 분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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