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공회 노선의 교회 부흥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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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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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30 00:00
1.현재 공회 교회들의 상황
①공회별 현 상황
서울공회 대구공회는
일반 진영의 거의 모든 교회 운영법을 그대로 다 도입하고 있습니다.
첫째 이유는, 출석하는 교인들이 신나게 믿도록 하고
둘째 이유는, 교회의 숫적 부흥에도 크게 도움된다는 것입니다.
부산공회1과 3의 경우는
신앙노선상 지켜야 할 선은 이전처럼 꼭 지켜야 한다는 원칙 때문에
부흥에 상관없이 과거 이 노선 모습을 거의 그대로 지키고 있습니다.
부산공회2는
앞선 2곳의 중간 정도입니다.
부공2 공회적으로나 각 개교회적으로도 어중간한 입장입니다.
어떤 부분은 부공1,3과 같고 어떤 부분은 서울 대구공회 같은 모습입니다.
②신앙노선 변경의 근본적 배경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과거 공회 신앙노선을 변경하는 공회나 교회들의 논리는
시대를 따라 형편과 사정에 따라 몇 가지 다른 이유들을 말한 적이 있으나
깊은 내면에서는 앞서 말한 2가지입니다.
하나는, 현재 교회를 출석하는 교인들이 신나게 교회를 다니게 하자는 것이고
하나는, 교회의 숫적 부흥을 위해서는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공회 신앙노선의 정확성 문제로 말한다면 과거 공회 노선이 분명히 옳지만
교회가 신나게 부흥이 되려면 말씀이나 노선에 묶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과거 신앙노선을 그대로 지키려고 총력을 기울이는 교회의 경우는
2가지 정도로 그 내용이 나뉘어집니다.
첫째, 이 노선이 옳기 때문에 노선은 무조건 지키고 부흥 노력은 별개 문제라는 입장이 있고
둘째, 체질적으로 순종적이고 순응적이어서 과거 노선을 무조건 따르는 곳도 있는데
대개는 둘째 성향이고 확실한 노선 입장을 가진 곳은 3분의 1 또는 확연히 그 이하입니다.
③공회별 부흥 상황
목사님 사후 20여 년을 지내고 있는 현 상황에서
결과적으로 볼 때 공회와 교회의 현 부흥상태는 어떠한가?
이제 한번쯤 평가해 볼 때가 되었고 또 그럴 의미가 있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공회나 교회적으로 내부 분쟁이나 갈등이 없고
서부교회의 경우는 과거처럼 민감하게 반응하고 표시를 내지 않으므로
이제 차분히 돌아보며 그 열매를 가지고 지난 날 어떤 나무를 심었는지
다 같이 돌아볼 여지가 있습니다.
우선
서울공회와 대구공회는
지난 20여 년간 정말 힘껏 그리고 화끈하게 일반 교회 하는 대로 다 해보았지만
처음 기대했고 그렇게 좋은 날이 올 것이라고 했던 그런 부흥의 수입은 없었습니다.
혹시 좋은 성공사례가 있다면 소개해 주시면 좋겠으나 이 홈이 알기로는 아닙니다.
종종 부흥 사례를 들은 적이 있었으나 일시였고 혹은 부흥 이면은 실제의 부흥이 아니었습니다.
다음
부산공회2는
부산공회 내의 보수노선 논쟁에서 정통성을 주장해야 할 입장이므로
겉으로는 대개 공회 노선의 최저선을 지키고 있지만
실제는 교회부흥을 위해 일반 교회식을 따르고 싶은 충동과 행동을 곳곳에서 보이고 있습니다.
부공2의 경우도 현재 부흥 사례는 거의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몇 교회의 부흥 이야기를 듣고 있으나 기존 교회의 분교식 이동이어서 인정할 정도는 아닙니다.
다음
부공1의 경우는
노선과 교리도 파악하지 못한 분들이 무조건 이 노선이 옳다는 중심만 가지고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별조차 하지 못한 상태에서
몰려 다니며 쏘다니며 너무 일을 많이 저질렀습니다.
각목을 들고 점령지의 인민위원들처럼
이제 숫자가 줄어 육체를 동원할 힘이 떨어지자 술이 깬 사람처럼
멍하니 허탈하여 맥을 잃고 있습니다.
모든 면으로 과거 재건교회를 보는 듯 합니다.
초기에는 기세 등등 살기를 느끼도록 몰려다녔는데
지금은 재건교회 간판만 휑하게 달려 있습니다.
그 역사성이나 내면 신앙의 강인함은 제일의 수준이지만
이미 노선의 의미나 부흥면을 비롯 어떤 면으로도 평가할 가치조차 없습니다.
교리도 조직도 경건도 열심도 패기도 결과도 신앙노선도 없어
마치 저물 때에 소돔 성문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롯의 모습인 듯 합니다.
끝으로
부공3의 경우는
1곳 침체, 2곳 유지, 1곳 완만 성장, 2곳은 좋은 성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다른 공회에 비하여서는 나은 편이라고 할 수 있으나
문제는 전체 교회 숫자가 적기 때문에 다른 공회와 비교하기는 어렵습니다.
숫자가 적으면 편차가 심하기 때문에 일반 참고용으로는 부족할 것입니다.
2.주목해 볼 만한 2개 교회
①공회성과 부흥을 함께 가진 사례
백목사님 생전의 공회 모습을 그대로 지키는 - 공회성
교인들의 신앙에 힘과 생기가 느껴지는 - 교회의 신앙생명력
결과적으로 볼 때 분명하게 큰 발전이 있는 - 부흥의 결과
공회 노선 교회로서
가장 이상적인 이런 3가지 면을 두루 갖춘 교회를 찾아본다면
전남 여수대전교회와 부산 동천교회 두 곳 정도가 확실하게 눈에 띄입니다.
보통
신앙 본질까지 포기하고 부흥을 도모하지만 부흥과 신앙을 함께 손해보거나
신앙노선을 붙들기 위해 교회 부흥을 포기하여 교회는 냉기와 침체로 고통하는 것이 공회교회들인데
위 두 교회들은 과거 옳다고 걸어온 신앙노선을 확고하게 지키면서 뚜렷하게 부흥 된 경우이므로
오늘 우리 전체 공회 교역자와 교회들이 분명히 살펴볼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일반 진영이 그들의 기준으로 교회 규모를 발표한 것과 비교하면
너무 미미하여 아무런 의미도 없는 사례가 될 것이나
만일 공회 기준으로 교회 내용을 고려한다면 대단한 경우들입니다.
②두 교회에 대한 간단한 소개
첫째, 대전교회는
부산공회에 속하기는 하나 내부 노선을 확정짓지 못하여 아직도 지켜만 보고 있습니다.
이 교회는 답변자가 목회하는 신풍교회 시골생활권인 바로 옆 마을에 있고
신풍교인들이 도보거리 시절 새벽기도 출석 때문에 개척한 교회이므로 잘 알고 있습니다.
현 목회자가 부임할 1989년 당시 30명 이하였으나 현재 60-70명을 넘기고 있는데
시골에서 이렇게 부흥을 했다는 것은 도시로 말하면 5배 이상의 부흥으로 평가할 정도입니다.
신풍교회에서도 대전교회로 이동하고 이전보다 더 충성하는 몇 가정이 있습니다.
둘째, 동천교회는
과거 서부교회주일학교를 책임진 장목사님이
교회 부흥문제를 두고 공회식 운영에서는 희망이 없다며
교단과 교파를 초월하여 부흥만 된다면 어떤 방법이라도 도입하겠다고 선언하자
두 가정이 중심이 되어 이치영목사님을 모시고 과거 노선을 지키겠다고 1998년에 개척했습니다.
장목사님은 몇 년 후 교회 운영을 포기했고 현재 필리핀에 초교파 선교사로 갔으며
두 가정으로 출발한 동천교회는 현재 1백 명을 넘기고 있습니다.
전형적인 구도심 골목 안에 예배당이 있어 교회 발전이 안 된다는 조건에서도
모든 면으로 잘 발전하고 있습니다.
공회의 모든 신앙노선 원칙을 과거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경우입니다.
③두 교회의 목회자
첫째, 대전교회 목회자는
평생 시골에서 지게지며 농사만 하던 초등학교 출신입니다.
출석하던 교회에서 목회자가 없을 때 한번씩 설교를 하던 평범한 교인이며
공회에서 대전교회 후임자를 찾지 못하자 당시 50세 안팎의 집사님에게 부탁했고
어느날 순종하는 마음으로 출발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는 교인 시절 새벽기도와 각종 교회에 충성할 일을 말없이 감당한 모범적 교인이었으며
목회자가 양성원이나 교역자회 등으로 자리를 비울 때 다른 교인들처럼 가끔 설교를 대신했고
설교록을 잘 읽고 새기고 그 말씀 그대로 전하던 분이었는데
설교록 그대로 잘 살고 전하였으므로 교인들에게 설교에 은혜가 있다는 평을 들었으며
공회에서 대전교회가 시골이므로 시골교회 모범 교인 중 한 사람을 보낸 것입니다.
답변자 신풍교회 예배당에서 눈으로 볼 수 있는 거리이며
신풍교회 교인 일부로 개척되어 지금도 교인들끼리 동네와 집안으로 연결이 되어
교회 내부 소식을 저절로 알 수 있으며 주일학교 장년반 심방이 서로 겹치는 정도입니다.
답변자가 보나 일반 교인들이 보나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교회에 그 어떤 특별한 프로그램이 없는 전형적인 공회의 시골 교회 그대로이며
기도실 생활이 전부이고 동네 사람이 몇 되지 않아서 심방 전도할 곳도 많지 못하나
교회는 소리 없이 성장하여 경제적으로나 숫적으로 아주 좋은 교회가 되었습니다.
목사 안수가 늦어져 신년행사 등으로 타 지방 목사님들이 몇 차례 오가게 되자
알짜배기 교회라고 파악이 되었고 지금은 전국의 유력한 목회자들이 교회를 흔들어
후임으로 가보려고 노력을 많이 하여 현재 좀 고통을 받고 있는 듯 하나
이번 논점에서 살피는 '공회 노선과 부흥'에 대한 사례 면에서는 반드시 참고할 교회일 것입니다.
둘째, 동천교회 목회자는
공회 믿는 시골 가정에서 어렵게 성장하여 초등학교만 졸업했고
철공장 목공소 등을 다니며 기술을 배워 지금도 용접이나 망치를 들면 기술자 수준입니다.
서부교회로 와서 주일학교 반사를 하며 신앙자유를 위해 리어카 행상을 했습니다.
주일학생 출석 성적 기준으로는 1급이 아닌 2급 성적 정도의 반사였으나
말씀을 증거할 때 진실되며 은혜가 있었으며 반사로서 모범적이었습니다.
1983년 5월집회 설교녹음테이프 판매가 허락되어 연구소 직원 모집이 있었고
직원의 월급은 적고 녹음 테이프 제작에는 차분하고 진실한 성격이 필요하여
가족 부담이 없는 반사였으므로 자연스럽게 교회 직원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설교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 분이어서 자연스럽게 연구실의 설교 출간을 담당했고
1984년 1월 목회설교록 첫 출간인 100호부터 오늘까지 설교록 편집을 실무 담당하였으며
설교록 출간 업무 때문에 이 노선 말씀에 대한 은혜와 전달에 유리한 점이 많았을 것입니다.
동천교인 출발교인들은 백목사님 생전 서부교인들이었고
서부교회에서 제일 실력이 있다는 장목사님과 개척했던 교인이었으므로
다른 목회자들에게 은혜 받기가 어려운 점이 있으나
늘 그러한 것처럼 차분하게 전하고 평소 설교록에 전념하며 세상 어떤 것도 돌아보지 않고
순수하게 이 노선 이 말씀 생활에 주력한 것이 전부이므로
동천교회의 현재 부흥은 공회 교회와 목회자들이 참고해야 할 바가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3.공회 노선의 교회 부흥 문제
①이 노선의 부흥은 절대 없을 것인가?
말씀 중심의 조용하고 엄한 예배
교인 간의 개인적 흥미 사교 유흥 중심의 일체 활동을 배제
주일 집회 술담배 제사문제 등에 대한 엄격한 실행
대체로 공회 교회가 이런 분위기를 엄하게 유지한다면
어떻게 새로운 전도가 가능하겠는가, 외부에서 들어오는 교인이 자리를 지키겠는가?
이것이 늘 공회의 신앙노선을 바꾸자 할 때 깊은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논리입니다.
실제로는 이미 교회를 다니는 분들이 말씀은 좋으나 나머지는 재미있게 편하게 살자는 것인데
차마 교인들이 자기들 편하게 믿기 위해 노선을 넓히자는 말을 못하니까
전도나 새교인을 먼저 내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진심을 담았을 것입니다.
②그렇다면, 일반 교회 부흥법을 도입하면 부흥을 하는가?
이렇게 반문을 한다면
처음 이 노선을 변경시킨 교회들치고 부흥이 된다고 말하지 않은 곳은 없으나
결과적으로 숫적 부흥도 실패하고 오히려 철저하게 믿던 교인들의 자세만 흐트러지게 했습니다.
현재 20년 공회 노선의 노선 변경사의 결과가 그렇고 통계가 그렇습니다.
개교회들만 그런 것이 아니고 공회들조차 완전히 풀어헤쳐졌습니다.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집회 모습입니다.
말씀 중심으로 그렇게 어렵게 긴장된 상태에서 지속된 집회를
청소년 중심의 놀이마당을 해보고 별별 프로그램을 다 시행해보았으나
제일 그렇게 심하게 한 서울공회는 집회가 없어진 정도이고
다음 따라간 대구공회 집회도 공회 규모에 비해서는 명맥만 유지하는 정도이며
가장 적게 변형시킨 부산공회2 집회가 규모에 비해서 그래도 그런 정도이며
재독 중심으로 과거 집회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곳은 규모 비례로 볼 때 공회의 중심이 집회라 할 만큼 그렇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적어도
교회나 공회적으로
이 노선을 변경하고 외부 부흥법을 도입한 그 결과는 이제 20년 결과를 통해
적어도 이 노선 교회가 이 노선을 변경하고 잘 되는 경우는 없다고 말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노선 교회와 공회는
이 노선이 옳기 때문에 과거 그렇게 어려운 중에 그렇게 걸어왔으며
이 노선이 옳다면 이 노선 때문에 어려운 것은 처음부터 각오를 한 바이므로
어렵다고 중도 포기하는 것은 자기 스스로에게도 배반이 되는 것이며
심지어 불신자가 세상 일을 할 때도 오기 자존심 때문에라도 그렇게 쉽게 바꿀 수 없는 문제인데
이 문제는 '진리문제' '신앙생명' 문제라는 표현을 써가며 우리 스스로 걸어온 길이므로
분명하게 이 노선이 잘못 된 이유와 사실을 찾아내지 않고
교회부흥과 신앙재미를 위해 일반식으로 바꾸자는 주장은 이제 확실하게 무덤으로 보내고
과거 신앙으로 다시 한번 돌아서고 출발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③이제
돌아오려고 해도
한번 뚜껑을 열고 끄집어낸 고압가스를 원상태로 집어넣으려면 불가능한 것처럼
한번 풀어져서 예배도 주일도 집회도 편하게 형편 따라 믿게 된 분들은
과거처럼 믿는 것이 옳다고 말은 하고 마음은 뻔해도 발이 움직여지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 문제라면 절대를 붙여 돌아올 수 없으며
신앙 문제라도 인간 스스로 노력해서 돌아온 경우는 교회사에 없으나
주님 의지하고 과거 신앙노선을 참으로 되새겨 지난 날을 평가하고 돌아오시면서
주님께 회개할 힘을 주시라고 기도하면
우리는 스룹바벨 성전의 재건처럼 과거보다 규모는 작아도 오히려 더 큰 이 노선의 복음운동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상황이 다급하게 우리에게 이런 면을 요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4.정말 죄송하나
1987년
백목사님 생전 마지막 기간
공회 내에서 다른 교회들처럼 무엇이든 다해 보자고 시작한 공회 내의 수정노선!
다른 교회들이 하는 것을 따라 하자 했던 그때
수정노선을 주장한 분들의 열정적인 발언과 활동
그렇게 주장한 이유와 발언 내용과 그렇게 한 그 결과를 한번만 비교해 본다면
그때 주장은 사기 거짓말 아니면 세살 아이의 잠꼬대였다고 볼 수 밖에 없게 되어 있습니다.
1989년
백목사님 장례식 직후
공회의 대다수가 수정노선을 결의하고 몰려갔으며
결과적으로 현재는 과거 신앙노선의 모습이 극소수가 되어버렸습니다.
다시 한번 1987년 당시 주장한 수정노선의 발언과 결과를 연구하듯 한다면
그때보다 1989년 이후의 주장과 행동은 더 극심합니다.
당시 발언한 내용들이
녹음으로 문서로 회의록으로 생생하게 기록되어 전해지고 있습니다.
당시 기록으로 오늘의 그때 발언자와 교회와 공회를 비교한다면
이는 거짓이거나 사기거나 아니면 세살 아이의 잠꼬대보다 더 극심한 지경입니다.
가끔
이 홈에서 답변자가 그렇게 강하게 욕을 하니까
돌아오고 싶어도 낯이 뜨거워 그렇게 하지 못한다고 충고하는 말을 한번씩 듣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발언의 수위를 낮추었더라면 보다 나았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경우도 있으나
발언의 수위를 더 높이지 않으면 그렇게 말한 적이 있었는지 기억도 못할 분들도 있습니다.
백목사님이
고신과 싸울 때 그렇게 강하게 외쳤으나
80년대 이후에는 극진하게 고신을 대하고 품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돌아온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돌아온 몇 분의 경우는 별도의 자기 상황이 있었습니다.
욕이나 비판이라고 읽지 마시고
제 정신을 가진 평범한 사람이라면 아주 점잖게 조심스럽게 적은 글이라고 평가할 것 같다는 심정으로 잠깐 몇 가지 살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