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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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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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06 00:00
1.김정웅목사님
사직동교회에서 목회를 출발했고
대전교회 등을 거쳐 거일교회에서 목회하다
백목사님 사후 1990년의 투표에서 수산교회로 이동한 후
이번 2006년 시무투표에서 불신임을 받고 개척하게 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백목사님 사후
대구공회와 부산공회의 노선 분리 과정에서 대구공회 노선에 오래 머물렀으나
양측 공회가 총공회를 분리 개최한 1990년 3월 5일 총공회 한 주간 전에
최종적으로 부산공회 소속을 결정하고 가입했으며
백목사님 당시 목회자 서열로 본다면 소장측으로 분류되었으나
부산공회로 모인 교역자의 분포 성향 때문에 부산공회에서는 중진의 위치에 있습니다.
백목사님 사후, 교역자회에서 언행이 유달리 눈에 띄이도록 크고 굵기 때문에
좋게 보는 분들은 매사 앞장서는 소신있는 목회자라 할 것이고
비판하는 분들은 분쟁만 일으킨다고 할 수 있겠으며
목회하는 교회에서도 목회자에 대한 지지와 비판이 또렷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평소 투표에서 그런 표시가 있었고 이번에는 불신임에 이르게 되었다고 보입니다.
요약하면
공회 교역자 중에서 '힘있고' '소신있게' 발언하고 행동하는 유형의 목회자들이 계신데
가장 대표적인 경우라고 하겠습니다.
2.김진태목사님
김목사님은
답변자가 이미 문답방 등을 통해
서부교회를 부공2 소속으로 전제할 때 가장 적임이라고 표현한 대로
부공2 전체에서 목회 실력과 통솔력 등 모든 면으로 최상의 목회자입니다.
남천교회와 번동교회에서 연이어 불신임이 된 것을 큰 시야에서 평가한다면
김목사님의 문제라기 보다는 큰 인물과 작은 교회가 서로 잘 맞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서부교회라는 바다였다면 돌고래는 힘있게 헤엄을 쳤을 것이며 서로가 좋았을 것이나
수족관처럼 작은 규모에서 활동을 하게 되면 서로가 불편하고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이제 백목사님 사후
10년의 세월이 두 번이나 지나가고 있으므로
여러 가지 변화가 있었을 것이므로 정확성은 약간 떨어질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근본 바탕과 성향을 기준으로 말한다면
아마 답변자의 평가는 쉽게 듣고 넘어갈 정도는 아닐 것으로 아직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번동교회와 남천교회도 공회 내에서 손꼽을 정도의 최우수 교회들입니다.
김목사님은 부공2에서 서부교회 후임으로 가장 적임자일 것입니다.
백목사님이 생존한 상태에서 지도하셨더라면 아마 아주 좋은 만남이었을 것입니다.
3.더 자세한 소개는
이 홈 노력의 우선 순위 때문에 현재로는 곤란하겠습니다.
이 홈은 이 노선 소개와 이 노선의 내면 연구에 주력하고 있기 때문에
노선 분리 초기에는 부공2가 이 노선과 아직 가까웠고 그래서 보다 자세히 언급했으나
이제 오랜 세월 속에 이 노선과 너무 멀리 나가 있기 때문에 이제 대충 소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