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가 압살롬의 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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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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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26 00:00
1. 이스라엘 건국 초기의 3 가지 사건이 주는 교훈
- 신앙의 계통 3 명
다윗은 사울을 상대로 신앙의 계통과 사은의 도를 지켰고 요나단과 의리도 지켰습니다.
솔로몬은 후계자 위치였고 선왕을 모신 요압과 아도니야를 지혜 있게 바로 처리했습니다.
르호보암은 하지 말아야 할 일만 해서 나라의 12 분의 10을 내 버렸습니다.
- 멸망의 조상 3 명
사울은 은사의 위치에서 자기 보배로 삼을 다윗을 대적으로 만들고 하나님께 버림 받았고
압살롬과 아도니야는 다윗의 아들이나 세상 정치와 잔꾀로 야욕을 추구하다 멸망 받았으며
여로보암은 신앙의 계통이 아닌 사람으로 교회를 대적한 역사의 죄인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신약시대이므로 구약처럼 구원과 멸망의 대상을 인물 별로 쉽게 나눌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자기 인격 속에 신앙의 복 된 3 명이 있을 수도 있고 멸망의 화근인 3 명이 들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 곳은 연구소라는 이름을 붙여 놓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노선의 바른 가르침을 오랜 세월 제대로 연구하다 보면 멸망의 조상 3 인을 따른다는 것은 본능적으로 어렵고 신앙의 복 된 인물 3 인을 흉내 내기는 비교적 쉬운 편입니다.
2. 답변자와 우리 전부는
우리 스스로 생각해도 오늘 우리 전부는 다윗이나 사울의 입장에 설 수는 없고, 그렇다고 압살롬이나 아도니야나 르호보암이 되어서는 아니 되겠으니, 그렇다면 당연히 우리 전부는 솔로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왕이 되자 바로 처단할 수 있었지만 솔로몬은 자기 길을 막은 이들을 위협 요소로 보고 그들을 제거하기 위해서만 절차를 밟은 것이 아니라 그 대적들이 살아 갈 수 있는 구원의 길을 열고 기회를 베풀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이 각자 자기 망할 길을 스스로 택했기 때문에 솔로몬으로서는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압살롬의 요소는 우리 속에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 번 사건은 이 노선의 우리들이 배운 출처를 밝히고 싶고 받은 은혜를 새기고 전하고 싶은데 그 길을 가로 막는 장애가 생겼습니다. 그 장애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주님이 이 시대 우리에게 가도록 열어 두신 길은 무조건 가야 하겠고, 우리에게 주지 않은 방법은 사용할 수가 없고, 대적은 우리 앞을 막고 있다면 우리는 다윗의 죽은 후에 솔로몬의 정국 대처 방향과 내용을 통해 지혜와 구원의 길을 구해야 합니다. 주변에서 모두들 압살롬을 떠올리고 있지만 오늘은 신약입니다. 우리가 다 그런 요소가 있습니다. 오늘의 압살롬은 여자일 수도 있고 평신도일 수도 있습니다. 답변자일 수도 있습니다. 백영희 이름은 자기 개인 것이니 손을 대지 말라 하신 어느 목사님도 압살롬일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 보기에 그 분이 바로 그 자리에 선 것 같습니다. 세상 법에 막혀서 더 이상 갈 수 없다면 그 때는 백영희의 이름을 사용하지 못한다 해도 답변자나 우리 책임은 아닙니다. 그 때 저작권 문제가 다시 생겨서 그 내용을 인용하지 못하게 된다면 그 역시 우리 책임은 아닙니다. 실제 막히게 되면 그 때 판단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 법이 막아도 끝까지 갈 것인가? 6.25 때 예배당 풍금의 경우나 일제 때 개명교회 예배당을 사수하기 위해 싸우지는 않았습니다. 개명교회 예배당을 일본어 학습당으로 넘겨 준 것은 신사참배 문제와 달리 예배당 건물의 이용 상황은 막히면 막힌 그 자리까지가 우리 갈 자리일 뿐입니다.
백영희 노선의 복음을 두고 '백영희' 이름을 떼게 만들거나 이 노선의 내용을 저작권으로 막고 나선다면 그 사람은 그 누구일지라도 오늘의 가룟유다가 될 것이며 그가 백 목사님의 가족 중에 한 분이라면 자기 스스로 압살롬에 취임을 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본인이 자유성을 가지고 하겠다면 하나님도 막지 않으시는데 어떻게 우리가 막겠습니까? 그러나 이 노선의 가치를 볼 때 그리고 백 목사님의 사전 조처를 볼 때 그런 일이 없도록 해 놓았으니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고 보고 있습니다.
답변자가 할 수 있는 일은 할 수 있는 것까지는 있는 힘을 다할 것이고, 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하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것이 이 노선입니다. 이미 모두에게 이 노선의 전부를 접할 수 있도록 이 연구소는 오래 전에 모든 조처를 다 해 놓았습니다. 이제 남은 것이 있다면 연구소의 문답 등을 통한 안내인데 그 문답을 답변자 이름을 걸고 할 수밖에 없다면 아무 미련 없이 그렇게 할 것입니다. 고신이 고신 이름을 자기들 것이라며 백 목사님을 제명했고 또 그들이 필요가 없어 내 버렸던 파수꾼이라는 언론조차 무고히 다시 거둬 가겠다고 할 때 목사님은 바로 내어 주었고 이후 오늘까지 이 노선을 별도 이름으로 짓고 내려 왔습니다.
백 목사님의 저작권은 천지가 몇 번을 뒤집어 지더라도 그 분의 호적상 자녀에게로 내려 가지는 않습니다. 답변자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그 것은 백 목사님이 사전에 단호하게 그 가능성을 다 차단해 놓았습니다. 백 목사님 스스로 법적 조처를 사전에 해 놓았는데 우리가 소송금지라는 교리를 이단적으로 곡해하여 압살롬을 자처하는 인물이 나와서 저작권을 주장할 때 넘겨 준다면 넘겨 받는 인물의 죄도 죄지만 넘겨 준 우리의 죄도 공범의 죄가 될 것입니다. 소송금지에 벗어 나지 않으면서도 저작권과 그 이름을 우리가 가질 수 있도록 백 목사님은 법적 조처를 미리 해 놓았습니다.
여기까지가 현재 답변자가 안내할 수 있는 선입니다. 이 연구소에 관련 된 모든 이들과 신중하게 또 복이 되는 방향으로 결정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서부인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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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연구소 운영 문제를 두고 상상하기도 싫은 주장을 접하며 압살롬이라는 이름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나만이 그럴까요? 차마 뱉지는 못해도 속으로 가족들에 대해 모두 화가 나있습니다. 백 목사님께 감사하고 그 노고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지만 오늘 서부교회와 공회를 이 지경으로 만든 것이 백태영 백영익 백영침 이재순... 다 가족들이 아니었습니까? 목사님 사후에 남정교회가 나갈 때 그들을 지도했던 분이 가족이었고 서부교회의 2층과 4층 문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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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현교회 순복음교회를 필두로 이 나라 괜찮은 교회라면 대형 경제비리나 처자식비리에 몸살이 나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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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답변자에게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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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부교회는 예외입니까? 답변자가 자기 활동 분야를 옹호하기 위해 설명하지 마시고 양심껏 객관적으로 밝혀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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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의 최고위층들은 북한 세계가 얼마나 썩었는지 우리보다 훨씬 잘 알지만 그들의 생존과 자녀의 앞날이 걸려 있기 때문에 체제 선전에 핏대를 세우고 소리를 냅니다. 혹시 pkist가 백 목사님 노선을 기치로 내걸었기 때문에 북한이 백두혈통의 절대성을 옹위하는 것처럼 백 목사님에 관련된 것은 옳지 않아도 옳다고 강변하는 것은 아닌가요? 지금 소송 건의 형식은 가족의 대리인이 나선 것처럼 보이나 소송의 실체는 가족이 아닐 수가 없지 않습니까? 백 목사님 생전에 교역자회 석상에서 막 나가는 분쟁을 벌였을 때도 조카 이재순 목사님 세력과 동생 백태영 목사님의 갈등이었고 사후에 분쟁은 아들과 동생들이 한편이 되고 딸들과 답변자가 한편이 되어 투쟁한 것이 아니었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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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이 자녀들에게 있을까요? 서부교회 담임목사로 재직하며 서부교회 강단에서 설교한 것이 자녀들의 것입니까? 총공회 집회의 설교가 자녀들이 저작권을 가졌습니까? 목회연구소를 백목사님이 설립했다 하여 백목사님의 개인 것이 됩니까? 이제 이 연구소도 백 목사님의 자녀들을 존중한다는 그런 가식을 걷고 맨 얼굴을 직접 드러내고 책임있게 활동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요? 백 목사님을 존중한다는 표현이 좋게 사용될 수도 있으나 그 이름에 숨어서 연구소의 잘못을 숨기는 폐단도 생각해야 합니다. 공회가 총공회 간판을 사용하고, 설교록에 백영희 저자를 표시한 것은 책임성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부산 연구소와 간판도 확연하게 다르게 바꾸고 백 목사님의 자녀들을 존중한다는 언행으로 우리 보기에 어줍잖은 모습으로 주춤거리지 말고 이제는 굴레를 벗고 자유롭게 활보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