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택자로 의심할 면은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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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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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06 00:00
택자와 불택자를 오늘 우리가 결정한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것은 아실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하신 대로 짐작은 가능하며 그 짐작 기준은 대개 다음 몇 가지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교회를 평생 다닌다 해도 마음 속에 한 번도 은혜나 신앙에 대한 자발적 느낌이 없거나
큰 죄를 짓고도 돌이키는 자세나 후회가 없이 너무 뻔뻔스러운 모습이 오래 갈 때
그리고 회개할 기회가 있는 상태가 주어진 임종 기회에서 회개가 없는 경우 등입니다.
꼭 이 것이라고 교리화하거나 단정할 수 없다는 점은 아실 것입니다.
말하자면 임상 의사들의 통계와 직감이라는 것이 있는데 말하자면 그런 경우입니다.
너무 추상적이어서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외부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자살의 경우는
불택자가 아닌가 하고 의심할 가장 구체적인 행동 중에 하나이기는 하지만
울컥 하는 마음으로 순간적으로 실수하여 자살에 이른다고 생각한다면
불택자라고 의심하는 것은 지나친 점이 있을 것입니다.
자살이란 자살 그 자체만 가지고 의심하기보다 평소 행동과 결부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평소 불택자처럼 아무런 회개도 감동도 어떤 표시도 없다가 자살을 하게 된다면
정말 그런 경우가 아닌가 하고 강하게 의심을 하지만
평소 믿은 표시가 확실했다면 자살이란 그 행동으로 이후의 기능 구원의 모든 기회를 놓친,
너무 안타까운 택자라고 단정하게 됩니다.
사실 자살은 너무 안타까운 정도라는 마음에서 그쳤으면 합니다.
대개 우리는 남은 인생 전체를 통해 과연 살아서 덕을 보는 것과 차라리 일찍 가는 것과
둘을 비교할 때 내가 살아 남음으로 덕 볼 것이 더 많다고 자신하기가 어렵습니다.
한 사람씩 따로 말하면 그렇지 않으나 통계적으로 볼 때 기본 구원이나 얻을 뿐이지
구원의 건설에 기회로 삼아 주어진 평생 인생이 값진 경우는 너무 허무합니다.
목회자들이
자기 교회를 맡아 은퇴를 하면서 평생 교회와 양떼를 위해 충성을 했다고 회고를 할 때
그 교회 대부분 교인들은 저 목사를 등에 지고 평생 먹여 살리고 들어 주느라고 애먹었다고
하는 분들이 더 많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