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적으로 일가를 이룬 신앙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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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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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12 00:00
1. 백 목사님 집안은
세상적으로 무난한 보통 가문입니다. 넓게 살펴 보면 집안 내력과 현황이 그렇습니다.
출신지 거창이 원래 인물이 없으며 그 곳에서도 별로 그 집안을 아는 분들이 없습니다.
거창에서 좀 알려 진 이들은 연안 이씨 거창 신씨 밀양 박씨 심지어 합천 이씨 그렇습니다.
그래서 백 목사님과 그 이력을 살펴 보면 전적 하나님 은혜라는 면이 더 부각 됩니다.
그런데 백 씨들의 공통적인 특징 중 하나는 남 신세 지거나 야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백 씨들의 공통적인 특성을 소개하는 것이므로 어느 한 사람의 예외적 경우는 제외합니다.
못 나도 못난 대로 뭔가 그 나름으로 사는 주관이 있고 쉽게 외부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야무지고 차돌같고 따지고 속으로 무엇인가 살피고 움직이는 분들입니다.
그래서 세상 일을 해도 객관성이 있어 형제라 해서 선을 넘거나 무조건 봐 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백 목사님은 믿은 이후에는 신앙의 한 가지 기준만 가지고 사신 분입니다.
가족이라는 이유는 그 분과 관계에서 한 가지 더 불리한 조건이지 유리하지 않습니다.
집안 내막을 가장 많이 알고 잘 아는 답변자가 구체적으로 알고 있는 자료가 많습니다.
지금 이 홈 답변자는 그 분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의 형편 없이 못한 처지에 있지만
최소한 가족 관계는 답변자와 가까운 만큼 분명하게 표가 나도록 불리하게 조처를 하는데
하물며 일반 수준을 넘어 선 그 분에게 일반 교계의 사례를 가지고 가족 관계를 논한다면
대화 자체가 될 수 없습니다. 그 분은 가족 관계 자체를 아득히 초월하고 사셨던 분입니다.
2. 백 영익 목사님은
신앙 초기에 백 목사님께 배우고 은혜 받아 크게 성공한 분 중에 한 분입니다.
그러나 그 분은 전혀 독자적인 신앙 세계를 구축하여 별도로 일가를 이룬 분입니다.
신앙의 근본 시각이나 자세나 성향이나 흐름까지 그 분은 백 목사님으로부터 독립하여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그를 따르는 분들을 지도하여 백 영익 신앙 노선을 세운 분입니다.
1970 년 대 서울에서 매 주 목회자를 위해 고정으로 성경 공부 강좌를 인도했었는데
지금과 달리 당시는 그런 경우가 거의 없었고 통합이나 감리교 목회자들도 다수 참석했고
그 때는 소속조차 공회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 모든 실력과 실적은 전적 본인의 것입니다.
답변자가 서울 경기 지역에 이 노선 관련 외부의 강의 초청을 많이 다닌 적이 있었는데
성공한 교회들의 유능한 목회자들이 백 영익 목사님 안부를 물어 본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때 교파는 달랐으나 교역자 성경 공부 강좌에 참석했던 은혜를 생생하게 기억했습니다.
현재 백 영익 목사님의 설교 자료는 여러 곳에서 가끔 발견 되는 수가 있는데
백 목사님께 배운 흔적이나 그 교훈이 중심이 된 내용은 많지만
분명히 스스로의 교훈을 가졌고 그 걸어 간 길을 봐도 독자적 세계를 형성했던 분입니다.
이 홈은 이 노선을 기준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백 영익 목사님의 길을 비판하고 있으나
적어도 이번 질문처럼 백 목사님의 무슨 특혜로 덕을 입었을 가능성을 가지고 안내한다면
백 목사님도 그럴 분이 아니지만 백 영익 목사님 역시 그렇게 받을 분이 아닙니다.
3. 시간이 있으면
백 영익 목사님의 신앙 세계와 족적을 살펴 볼지 모르겠습니다.
공회 역사에 속했던 때도 있었고 독자의 길을 걸어 간 세월도 적지 않기 때문에
공회사의 일부이면서 공회사를 다른 시각에서 살펴 공회를 좀 더 원만하게 볼 수 있습니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넓은 의미로 본다면 이 노선의 하나의 방계일 수도 있고
백 영익 목사님 측에서는, 백 목사님의 부족과 아쉬움까지 마저 채운 분이라 할 것 같고
답변자로서는, 이 노선의 탈선 유형 중 하나로 보는 것이 내심입니다만,
일단 세월 속에 이제 백 영익 목사님에 대하여 좀 가까이 여러 면에서 살펴 볼 기회가 있어
이 노선의 원만한 연구와 평가를 위해 훗날을 두고 지금은 일단 자료를 살피고 있습니다.
백 태영 목사님과 신 도범 목사님 그리고 김 석준 목사님 등 일가를 이룬 분들이 많으나
이런 분들 중에서 백 영익 목사님은 실력으로 그 분들을 탁월하게 앞 서는 분입니다.
아마 백 목사님이 일찍 돌아 가셨더라면 백 영익 목사님은 총공회 전체를 석권했을 것이며
오늘 백 목사님 이름과 그 노선은 마치 김 현봉 목사님처럼 역사에만 기억 될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공회는 백 영익 목사님의 신앙 실체와 이력 그리고 이 노선과 비교는 연구할 가치가 있고
만일 그 분의 길이 옳았다면 지금이라도 방향 선회를 논해야 할지 모르겠고
만일 그 분의 장점이 우리에게 중요하게 보완 되는 면이 있다면 부분적으로 배워야 하고
만일 이 노선으로 걷는 우리가 조심 할 위험선이었다면 내부를 돌아 볼 의미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