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선만은 분명하고 명확

공회내부 문답      

노선만은 분명하고 명확

설명
yilee 0 5


1. 교회가 해체되어도 노선을 앞 세웠습니다.

서진 교회는 1998년 5월에 시작된 동천 교회 개척 때문에 목회자를 보내 드렸고
후임 목회자를 구하면서 부공3의 신앙 노선을 제 1의 조건으로 제시했기 때문에
목회자 없이 3 년을 집사님들과 주일 학교 선생님이 돌아 가면서 강단을 지켰고
40 명을 넘기던 교회가 20 명으로 반토막이 나기까지 신앙 노선을 우선했습니다.



2. 목회자 청빙 조건이 엄격했습니다.

3 년이 지나던 시점에 창동 교회 교인으로 계시던 김 형렬 집사님을 모시면서
공회의 목회자 요건인 경제 문제와 몇 가지를 정리하기 위해 1 년을 대기했고
모든 조건을 갖춘 다음에야 조사님으로 인허하였습니다.
교회가 해체되고 운영에 막대한 손해가 있다 해도 노선과 원칙을 지켰습니다.
임시 목회자의 일시 임직은 쉽게 허락해도 정식 목회자 조건은 까다롭습니다.



3. 김 목사님 당시 소속 문제

김 목사님은 당시 창동 교인이었고 그 교회는 부공2에 소속된 교회가 아니지만
총공회 전체 교회 중에서 창동 교회만은 공회 소속을 두고 유보가 된 경우로서
다른 교회들은 그 어떤 형태로도 공회 별 소속이 결정되었고 분류가 가능 하나
창동 교회는 백 목사님 사후 공회 소속을 선택하는 과정에 다른 교회와는 달리
전체 교인이 합의 하기 전에는 교회 자체 소속을 결정 하지 않고 유보하였으니
창동 교회는 목회자와 교인이 공식적으로 각자 공회를 개인 차원에서 가지므로
목회자는 개인적으로 대구 공회에 속하고 그 교회 어느 장로님은 개인적으로는
대구 공회의 양성원에 이사까지 선임된 경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창동 교회의
또 다른 장로님은 부산 공회에 출석하여 공회원으로 등록한 다음 활동했습니다.
또한 교인들도 각자 교회 전체의 전원 일치 합의가 있기 전까지는 개인적으로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공회에 소속을 두고 집회 참석 등의 자유를 가졌으니

총공회 전체 교회들이 목회자 한 사람 때문에 공회의 차이도 모르고 가입하거나
아니면 서로 자기가 원하는 공회로 다른 교인들과 교회 전체를 소속 시키려고
한 교회 내에 투쟁이 격화되어 싸움을 통해서나 아니면 둘로 나뉘게 되었는데
창동 교회는 공회 원칙으로 결정하기까지 지금도 과제로 두고 각자 자유하니
다른 곳은 몰라도 창동 교회 교인들의 공회 소속은 각자에 따라 다 다릅니다.
김 형렬 목사님은 목회 출발 당시 교회내에서 이 노선 성향의 교인이었습니다.
또한 이런 면을 명확하게 한 다음 경제 문제 등의 해결을 선결 과제로 다하고
그리고 목회자로 정식 청빙을 했습니다.



4. 서진 교회는

동천 교회에서 보듯이 이 치영 목사님이 목회 실력이 있어 발전이 되던 교회였고
동천 교회의 부흥과 꼭 같은 패턴으로 잘 나가고 있었는데 동천 교회 개척 때문에
공회 차원에서 서진 교회에 목회자 파송을 부탁했고 서진 교인들은 후임이 없으면
교회가 아무리 약해져도 노선을 위해 치를 대가로 생각하였기 때문에 후임 청빙
문제를 두고 목회자의 노선을 제 1로 보고 경제 등의 요건을 제 2로 보았습니다.

부공3 내에서 2 년을 찾아도 대상이 없었기 때문에 총공회 전체 공회들을 상대로
이 홈 /소식/ 게시판을 통해 서진 교회 후임 목회자를 모신다는 광고까지 했으나
현재 부공3 소속이 아니면 경과 과정을 두어 소속을 확정할 기간을 먼저 제시했고
그리고도 경제 조건 등 부공3의 목회자가 갖출 최소한 조건을 제시하였기 때문에
적지 않은 타 공회 목회자들이 뜻을 밝혔으나 결국 아무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현 동천 교회나 신풍 교회보다 모든 면에서 훨씬 조건이 좋고 잘 부흥되던 교회나
당시 이런 까다로운 노선 조건과 목회자 전제 조건 때문에 서진은 큰 손해를 안고
현재 완전 새 개척의 상태로 다시 출발하고 있는 중입니다.




5. 손 돈 목사님의 경우도

부공3이 1991년 1월 서 목사님이 서부 교회를 부임하여 서부 교회에 소망을 접던 때
개인적으로는 부공3을 옳다고 생각하고 지지하고 실질적으로 부공3의 교인이었으며
공회 외부에 있던 그런 많은 교인들 중에 한 분이었으나 이 말출 권사님의 건강 문제
때문에 몸은 1998년 동천 교회가 개척될 때까지 서부 교회에 그대로 담고 있었습니다.
그 분 소망이 언젠가 목회할 분이며 목회를 한다면 부공3에서 목회해야 할 분이었는데
1998년 이 말출 권사님의 장례가 있었고 향후 공회 소속과 목회를 자유하게 되었을 때
부공3은 손 목사님의 당시 상황이 동천에 교인으로 출석할 분이 아니라 목회할 분인데
부공3에서 목회하려면 우선 부공3 교회에 출석하여 소속에 대한 문제를 명확하게 하고
목회자가 되었을 때 다른 사람에게 소속의 중요성을 말하기 전에 자신이 교인으로서
먼저 부공3 교회를 출석하여 부공3 교인들에게 보이는 면으로 모범을 보이도록 했으니
그런 과도기의 시기를 미리 몇 달만 하라고 예정하지 않고 조건 없이 지켜보고 있다가
모든 환경이 자연스럽게 개척할 때가 되고 여건이 되며 목회자로 나설 상황이 되어지자
공회는 강동 교회 목회자로 출발해 주시도록 부탁을 했습니다.

따라서 전후 사정을 잘 알지 못하는 분들이 본다면 외부 교인을 청빙하는 문제를 두고
공회가 기득권을 유지하려 하거나 아니면 통제하기에 버거운 상대를 배제하는 명분으로
소속 문제나 경제 문제를 거론하여 벽을 치는 것으로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부공3은
최소한 그런 면에서는 타 공회 지도부나 목회자들과 달리 인간적 이해 관계를 초월하고
노선 제일주의를 공회 운영과 유지에 제일 앞세워 나오고 그 외 문제는 양보하였습니다.

아마 현직 총공회 거의 전부에 해당할 목회자들에게 부공3 목회자의 조건을 제시한다면
거의 모든 목회자는 아무리 좋은 교회가 있다 해도 지원 자격조차 없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부공3이 제시하는 그 조건들은 이 노선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요구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부공3은 최소한 타락 탈선을 막는 일에 급급하다 보니까 양적 발전은 생각하지도
못하고 지금까지 내려 오면서 겨우 이 노선에 살아 있는 공회 하나가 아직도 있다는 의미만
지키고 있을 정도입니다.



6. 과거에도 시간 날 때마다 소개했지만

앞으로 공회가 과거 총공회처럼 소속이 많아지고 목회자가 다양하게 양성되어 진다면
목사님 생전처럼 이런 조건을 일부 완화할지 모르겠습니다.
목사님 생전에는 아무리 교단 가입의 조건을 완화해도 목사님의 지도가 노선을 지켰으나
현재 우리 수준에서는 소속 교회와 목회자의 최소 조건을 잘못 완화하면 바로 속화되어
돌이킬 수도 없을 뿐더러 이 노선의 의미 자체를 잃어 버린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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