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 진헌의 총공회 전체 위상
| 설명 |
|---|
yilee
0
5
2009.05.13 00:00
공회 전체적으로
총공회 회의는 국회와 같았고 교역자 회의는 국무회의와 같았으며 지교회는 지자체였고
전국 지교회의 오래 된 교인은 전국의 국민들 중에서도 여당의 핵심 당원과 같았습니다.
그리고 서부 교회의 권사님들과 각 부서 책임자 회의는 청와대 비서 회의와 같았습니다.
백 목사님 생전에는 각자 자기 위치에서 긍정적으로 발전적으로 효율적으로 움직였지만
목사님 사후에는 구심점을 잃으면서 각각 제대로 돌아 가기 시작했습니다.
건전했던 한 순간
백 목사님 사후 비록 짧은 기간 몇 번의 기회였지만 서부 교회에 건전한 때가 있었습니다.
곧 서울 공회와 대구 공회와 부산 공회의 각 분파로 나뉘어 서로 극단적으로 나뉠 인물들이
백 목사님 장례식과 그 직후에는 과거 배운 바가 너무 또렷했기 때문에 회의가 되었습니다.
백 목사님 사후 서부 교회의 결정은 서부 교회의 앞날과 함께 총공회의 앞날을 결정했는데
그 회의는 원로 권사 4명, 교회 부서 책임 조사 5명, 장로님 16명, 기타 몇 사람이었습니다.
성향으로는 권사 중 2명, 조사 중 1명, 장로 중 13명이 수정 노선을 적극 찬성하는 분이고
권사 중 2명과 나머지 장로 2명은 대세를 따라 서서히 움직이면 어디로든 갈 수 있었으며
당시 기준으로 확고하게 노선을 사수한다는 이들은 조사 4명 장로 1명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이들은 나름대로 다 백 목사님과 특이한 관계가 있고 오랜 세월 직접 지도를 받았던 이유로
백 태영 목사님을 비롯한 어느 인물이나 총공회 결의가 있어도 상관치 않을 분들이었습니다.
이들이 백 목사님 사후 첫 공식 회의를 한 것이 89년 9월 4일 저녁이었고 만장일치였습니다.
향후 대구 공회의 남정 교회와 부산 공회의 서부 교회로 온갖 싸움을 다 할 핵심들이었으나
백 목사님 장례 직후였기 때문에 배운 것이 있고 아직 건전했을 때 후임 결정을 했었습니다.
실력으로는 모두 이 진헌 목사님을 거론했으나 재독 때문에 이 재순 목사님을 결정했습니다.
목사님의 갑작스런 순교로 당분간은 재독으로 교회가 유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일치하였고
전자는 설교를 잘하므로 교인의 재독 집중에 손해가 있고 후자는 그 반대로 본 것입니다.
당시 서부 교회의 결정은 양측이 다 공감했고 아는 일이었으며 양측의 인적 구조로 본다면
백 목사님의 심중도 공회 전체 분위기와 전국 교회를 전반적으로 다 파악한 결과입니다.
이 한 번의 회의 후 대구 공회로 나갈 분들과는 다시는 마주 할 일이 없고 싸우기만 했는데
그 당시 모인 분들 중에서 남정 교인이 나간 후 부산 공회 측만 다시 한 번 모인 회의가
1990년 11월 25일 저녁이었고 당시 모인 전부가 현재 부공1,2,3으로 나뉠 지도부 전부였으며
그들이 앞날에는 천차만별로 나뉠지라도 그 날 단 한 번 전원 일치로 결정을 한 내용이 바로
서부 교회 후임은 이 진헌 목사님이었습니다.
서부 교회 원래 권사 4명, 조사님 5명, 장로님 3명 등 서부 교회 핵심 지도부들이었습니다.
아다시피 서부 교인들의 설교 입맛은 말을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목사님 장례 직후였는데
그 서부 교인들은 금밤과 토새 예배 때 많은 교역자들의 많은 설교를 두루 많이 들었습니다.
서부 교회 6백 명 반사 중 1 명이 백 태영 목사님을 밑으로 깔아 보던 분위기였습니다.
이런 교인이 모인 서부 교회 각계 각층의 최고 회의가 합의한 사항이 이 진헌 목사님입니다.
위 회의의 의미
백 목사님 사후라는 점입니다. 백 목사님의 지도 없는 상태에서도 공회는 건전했습니다.
전혀 다른 성향의 합의입니다. 생전부터 신앙 체질이 극단적으로 다른 이들이었습니다.
총공회 전체의 시각입니다. 과거와 현재, 본부와 지방, 교인과 교역자 입장의 총합입니다.
그 어느 한 사람의 어떤 의견도 비판도 또 제시하는 구체적 사항도 소홀히 할 수는 없으나
그 모든 세부 사항 전부를 놓고 좀 넓게 그리고 객관적으로 평가를 한다면 이제 소개하는
이 서부 교회의 목사님 사후 2 번의 최고 중대한 회의, 별별 체질이 다 모인 극단적 회의가
이 진헌 목사님이라는 이름에서는 합의가 딱 한 번씩 가능했다는 것은 의미가 있는 일이니
이 목사님의 100 점 만점에 50 일지 80 일지는 몰라도 최소한 교역자 중에서는 1 위였습니다.
여기 최근에 올려진 여러 종류의 이 진헌 목사님에 대한 평가 중 비판적 의견에 대하여
답변자로서는 다 일리가 있거나 아니면 그렇게 오해 될 여지가 있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기억할 것은 코끼리의 덩치를 공룡에 비하여 적다는 표현이 자꾸 반복 되면
어린 아이들은 코끼리가 생쥐보다 적다는 인식만 가질 수 있을 것 같아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목사님과 이 홈은
1997년에 이 홈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이런 활동을 위해 이 홈의 모든 직원들이 출발할 때에
이 목사님은 답변자 등 직원 5 명을 3개 경찰서에 10여 건으로 형사 고소 고발을 했었던
이 홈 반대 쪽을 적극 지원했고 이후 단 한 번도 연락 없이 지내고 있는 사이이므로 아마
이 홈의 이 진헌 목사님에 대한 평가는 최소한 객관적 표현일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목사님을 공회 원로 교인들이 부정적으로 비판하는 내용은 여러 분이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그 지적과 비판이 이 목사님의 전부는 아니며 그 지적도 상당 부분 배경이 필요한데
예를 들면 경제 면에서 결과적으로 이 목사님이 경제에 부정이 있는 것처럼 보일 수는 있으나
내용적으로 보면 이 목사님처럼 경제가 깨끗한 분은 답변자로서 공회에서 알지 못합니다.
아쉬운 점은 이 목사님과 맞지 않는 교인들에게는 부정한 사람으로 보이게 한 것입니다.
이 점에서는 백 목사님 사후 서 영호 목사님의 배후인 김 효순 권사님이 교역자 회의에서
백 목사님 경제 부정을 폭로한다며 마이크를 잡고 고함을 지르고 서파 김 목사님들은 물론
이 재순 김 응도 목사님 그 어느 한 사람도 나서지 않고 다 인정해 버린 적이 있었습니다.
사실을 아는 사람은 김 효순 권사님의 묘한 거짓말이고 부공1,2 교역자들은 승인을 했으나
그렇다고 그 것이 사실이 될 수는 없습니다.
물론 이 목사님이 어느 한 지교회에서 어느 교인이나 교회의 회계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부정하게 한 적이 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만 아마 당시 상황을 가지고 양측이 공정하게
발언할 기회가 있다면, 이 홈으로서는 최소한 1997년 이전의 이 목사님을 믿는 편입니다.
장례식 설교의 의미
백 목사님 장례식 설교는 총공회 모든 교역자들이 백 태영 목사님일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총공회 대표와 서부 교회 대표와 유족 대표가 함께 모인 자리에서 이 진헌으로 결정했습니다.
백 목사님의 순교 다음 날에 결정 된 이런 내용은 정말 그 어느 한 사람 사심이 들어 갈
틈이 거의 없던 순간이었고 그 때의 결정은 총공회가 가장 건전했던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예배당에서 폭동을 일으켜 주일 오전 예배를 깨뜨틸 세력들까지도
그리고 평생 백 목사님 지도를 받고 따르던 측근들도 가장 까다로웠던 그 가족들까지도
전부가 총공회 백 목사님 장례식 예배의 설교는 '이 진헌'이었습니다.
그 설교는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그렇게 남아 있는 객관적 자료를 가지고 평가했으면 합니다.
하계동 후임 선임
청량리 교회에서 이 목사님은 모략을 받아 억울하게 물러 갔다는 입장입니다.
청량리 교회에서 그 사실을 알고 하계동까지 따라 간 교인의 수가 그 정도 된다면
목회 경험상 청량리에서 있었던 일은 반대 측 이야기만 가지고는 설명이 안 됩니다.
그렇게 개척 된 교회의 담임 목회자는 그후 잘못 목회를 하게 되면 교인이 떠나게 되지
교인들이 목회자를 떠나게 하지는 못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리고 후임을 미리 결정하면 그 후임 체제 기간을 통해 그 후임과 맞는 사람은 남게 되고
그 후임과 맞지 않는 분들은 세월 속에 여러 변수를 통해 자연스럽게 이동하게 되어 집니다.
이 것은 하계동 교회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고 전국 공회 교회들의 공통 사항일 것입니다.
참고로
전체적으로 이 진헌 목사님에 대하여 비판적인 면으로 읽힐 부분들이 다른 글들에 있어서
그 반대 면도 함께 소개해 드렸고 이왕이면 전체적인 면까지도 소개해 드렸습니다.
아마 어느 날 공회가 과거처럼 또 하나로 모여질 기회가 있다면 답변자는 전체 공회의
사회와 대표를 답변자 개인 양심으로는 이 진헌 목사님을 추대할 것 같습니다.
더하여
위 글 적은 분께서 목회자들이 교인들이 아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한다 하셨는데 동감합니다.
초등 학교 1학년 담임이 교실 안에서 마음대로 학생들을 가지고 놀고 쉽게 상대하고 있지만
그 아이들도 어느 반 어느 선생님이 잘 가르치는지 진심인지 나쁜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철 없는 아이들이 쉬는 시간에 소곤 거리고 오가는 등교 길에서 소근 거리면서
좀 늦고 빠른 정도이지 알 것은 다 알고 있습니다.
교인들이 얼마나 무섭다는 것을 보통 사택에서 자라 본 사람들은 치를 떨 만큼 아는데
정작 목회자들은 상당 기간 모르고 독주 하고 교인들을 겉 보는 상태로 무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간격이 오래 지속 되면 어느 날 교회 안에서 대형 사고가 터지게 되는데
목회자들은 대개 어느 날 갑자기 교인들이 변심했다 하는데 교인 편에서 보면 참으로 오랜
세월을 참고 기다리다가 도저히 더 참지를 못한 한계였습니다.
바로 이런 면을 은혜롭게 그리고 지혜롭게 해소하기 위해 시무 투표를 하는데 그 제도조차
교역자들이 날쌔게 서로 재주를 부리고 있기 때문에 건전할 공회가 어지러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