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후2:7, 고통하는 의로운 롯

공회내부 문답      

벧후2:7, 고통하는 의로운 롯

설명
yilee 0 23


1. 위 글의 경우를

'고통하는'
'의로운'
'롯'

이렇게 간단하게 요약해 드리고 싶습니다.
남천을 말씀하셨으니 서부와 함께 남천의 경우도 몇 가지 살펴 보겠습니다.
개별 교회지만 공회적 위치가 있어 감추고 숨을 수 없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거창의 개명 봉산 창동 위산도 있고, 서부 남천 동성로 청량리가 있습니다.




2. 남천과 서부의 한 역사

남천이 특별한 것은 한 교인이 피난 시절 부산에서 백 목사님 집회 설교를 듣고 믿게 되자
살던 곳 제천에 돌아 가서 개척을 했고 다니던 교회에 노선 문제로 양해를 구하고 나왔으며
개척 초기의 외부 지원을 아주 짧게 줄인 다음 조기에 자립하고 이후 돕는 교회가 되었으며
이 나라 중부 지방의 중심 교회가 되어 목회자와 교회들을 개척하는 모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남천 교회는 공회가 지도하는 모범적 개척과 성공 사례의 표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례는 남천만의 경우가 아닌데 남천을 만날 때는 그렇게들 아는 듯 했습니다.

남천 이름을 두고 가장 특별히 기억하고 싶은 것은 백 목사님의 사례를 책임졌던 일입니다.
1959년 고신과 싸움이 끝나자마자 서부의 최고 핵심 10여 명은 백 목사님 배척을 합니다.
이 말출, 김 현찬, 김 효순, 나 인숙을 포함한 서부의 최고 핵심 중직자 전부라 할 수 있고
단호히 그 회를 반대한 분은 이 복순 장 정애 박 혜영 신 현자 등 2 급 간부들이었습니다.
장기간 계속 되던 이 내전으로 백 목사님 사택 식구들은 교회를 떠나 사택을 외부로 옮겼고
교회는 사례를 끊고 타 교역자를 데려 오기 위해 내전은 물론 교회 밖으로 외교까지 했으나
1 년을 끌던 이 문제는 핵심 교인 가정에 뒤 돌아 볼 수 없는 재앙이 닥치며 끝이 납니다.
마치 박 윤선 목사님이 동성로 교회에 3 개 월간 설교하며 이 노선을 반대하다가 그 가정에
치명적 우환이 생기자 박 목사님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다며 바로 돌이킨 그 사례입니다.

고신보다 더 치열하고 치명적 일이 서부에 생겼으나 평생 백 목사님이 언급하지 않은 것은
당시 제일 앞 선 그들이 회개하고 서부 교회 부흥에 제 1선에 서서 수고했기 때문입니다.
사택 사례를 끊고 조직적으로 조여 오는 내전의 소식은 공회 내 인물들은 모를 수 없었는데
전국에서 딱 한 곳, 사택을 지원하려고 돈을 보따리에 싸서 몰래 가져 온 곳이 제천입니다.

총공회 전체 범위에서 백 목사님 목을 조우며 행동에 나선 극단적 투사는 단 몇 명입니다.
그 때 서부 교회 교인들 전체는 대충 분위기를 알고 있지만 일부 핵심이 동조하고 나섰고
대부분 교인들은 웅성거리며 뭐가 뭔지 모르고 애만 타고 있었습니다. 방관했던 것입니다.
전국 교인들은 지금 이런 일을 기억조차 하지 못할 정도이나 당시는 분명히 알았습니다.
서부 교회 안에서 목사님을 결사 지지한 사람은 소수였고 그들은 경제력이 없던 분들이며
먼 곳에 있던 최 기주 집사님 한 분이 사택을 도우려 행동에 나선 것을 두고 최 집사님의
경제력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단 얼마라도 도우려면 도울 수 있던 시절입니다.

어려운 시기가 절정을 향할 때가 되면 산 발치까지 따라 오던 자 중턱까지 오던 자들이 다
뚝뚝 떨어 지게 됩니다. 이유는 많습니다. '나는 속으로 다 알고 있다. 지켜 본다.' '나는
기회가 주어 지면 바로 행동에 나설 것이다.' '하나님이 죽었나! 도우심을 기다려야 한다.'
교회 역사의 어려운 시기마다 별별 이유가 다 나왔습니다. 신사 참배 6.25도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이 노선 이 공회는 바로 그 때에 단 한 길, 어디로 가며 어떤 언행을 해야 하는지!
단 하나의 옳고 바른 길, 그 언행, 그 선택을 감추어 두신 시험에서 공회는 걸어 왔습니다.

이 노선이 옳다면, 백 영희를 붙들고 이 노선을 인도하고 계신다면, 반대가 잘못 된 것이면
이 노선 교인으로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옳을까! 발만 구를 일인가, 기도만 할 것인가?
사택 사례가 끊어 진 상황에서는 단 1 원이라도 도울 길을 찾는 것이 마땅한 일일 것인가?
드려도 받지 않는 것은 목사님 사택이 결정할 일입니다. 성의껏 돕는 것은 우리 일입니다.
최 귀주 집사님, 개인적으로 그 이름에 아쉬운 부분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그 이름은 이
노선의 가장 어려운 시기에 실행했던 분입니다. 공회 역사에 이런 일은 환란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관련 교인들과 교역자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여러 면을 고려하여 백 목사님은 평소
알 듯 모를 듯 언급하시거나 아주 가끔 살짝 비춘 적이 있으나 원리만은 오랜 세월 속에서
참으로 엄청나게 많이 가르쳤으니 이 노선 공회인이라면 원리만큼은 모른다 할 수 없습니다.
이 노선을 정립한 백 목사님이 정말 외롭고 어려울 그 때, 그 때 함께 한 사람이 있습니다.
백 목사님 사후 이 노선이 위태할 때 이 노선이 곁길로 나갈 때 이 노선을 붙들어야 할 때
그 때가 이 노선으로 말하면 냉수 한 그릇에 목 타는 주님이 공회인들을 찾아 오셨습니다.
그 때에 비록 냉수 한 말까지는 몰라도 한 컵이라면 누구든 들고 나서서 모실 수 있었는데
모두들 '나는 속으로 다 알고 있다.' '나는 누가 모른 척하는지 지켜 보겠다.' 했습니다.





3. 총회에서 신사 참배가 결의 되는 순간

'회장! 반대요!'
이 한 마디와 전후 좌우 여러 형편을 고려한 다음 마음 속으로 혀를 깨문 것은 다릅니다.
일본 앞잡이가 되어 신사 참배를 결의하고 반대하는 동료를 고발하여 일을 성사 시킨 인물
정확히 알지 못하나 뭔가 잘못 되었다는 마음에 불안하고 걱정스러우나 할 일이 없던 인물
분명히 잘못 되었으나 자기는 지도부가 아니어서 수백 명 회원 속에 조용히 앉아 있던 인물
한 부선 목사님처럼 '회장!' '이 것은 아니요!' 고함 지르다 형사에게 내동댕이 당한 인물

어느 것이 공회 노선일까?
어느 행동이 공회에서 배운 신앙 인물일까!
수 없는 설교 내용을 통해 반복했고 지금도 집회 때마다 반복하며 배우는 것은 무엇인가?

평양에서 신사 참배 결정이 있을 때 전국 지교회에서는 각자 자기들의 길을 걸어 갔습니다.
분명한 것은 평양 총회가 잘못 되었다며 교회적으로 일치 단결하여 거부한 것은 개명뿐이고
개명 교회는 일제 신사 참배 기간에 전국의 총회와 경남 노회와 거창 시찰회에서 끊어 졌고
그 외에 평양 총회가 틀렸다고 그 결의를 거부한 이들은 교회에 출석하지 못하게 됩니다.
남천 교회처럼 속으로 가만히 있다가 2 년에 한 번씩 인사권을 통해 다음 교역자로 갈아도
부공2 안에서는 부공2 목회자만 차례로 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 것이 남천의 결정입니다.

신사 참배를 결의한 그 총회에 속한 지 교회가 되어 현 교역자가 설친다고 다음에 보내면
그 다음에 다시 오는 교역자도 내나 그 노선의 그 교역자입니다. 목회자에게 좋아 보이는
교회 규모이므로 오는 교역자들이 교인 때문에 겉으로 행동을 조율하고 협의하게 됩니다.
지금 교역자와 남천 교인 사이에는 정치를 하고 있는데 이런 정치는 살리는 정치가 아니라
넓게 보면 교회사와 공회 역사에 수 없이 왔다 갔던 그 많은 죽고 죽이는 운동일 뿐입니다.




4. 남천과 서부 안에서 집회까지 참석하며 이 노선 원래를 지킨다는 분들의 착각과 잘못은

- 머리는 동 쪽으로 가도 몸통과 꼬리는 서 쪽으로 가겠다는 것이니
1-20 센티로 끊어 살피면 실제 동으로 가는 뱀의 몸과 꼬리는 사방으로 알아서 움직입니다.
그러나 10 미터만 시야를 넓혀 그 뱀의 머리와 몸통과 꼬리를 살피면 전부 동으로 갑니다.
몸통과 꼬리가 머리에 상관 없이 우리는 우리 좋아 하는 방향이 있다는 논리의 결과입니다.
남천과 서부가 부공1 지도부 때문에 수 없이 듣고 들은 89년 8월 집회 내용 교회론입니다.

- 시무 투표가 어디에 붙어 있는 누구의 제도인지를 잊어 버렸으니
시무 투표 때마다 자기 신앙 지도자, 자기 구원의 인도자를 결정하는 문제라며 광고하는데
백 목사님 생전의 시무 투표는 노선과 소속은 바르기 때문에 노선 내에서 결정하는 것이고
오늘 우리에게는 어느 노선 어느 소속을 결정하느냐는 문제가 목회자 결정보다 더 앞인데
소속과 노선은 언제 누가 어디에 어떻게 가져다 놓았는지 모르고 안주하고 있는 것입니다.
태평양 크기 그물에 들어 간 고기는 자기가 갇힌 줄도 모르고 자유한다는 설교 내용입니다.

왜 남천이 1990년에 대구 공회와 부산 공회의 소속을 두고 논쟁했던가, 행동을 왜 했던가!
목회자가 대구 공회 핵심에서 활동을 하더라도 지켜 보다가 어느 날 교체하면 되었는데.
그 때가 옳으면 오늘 남천은 틀렸고, 오늘 남천이 옳다면 남천은 그 때를 회개해야 합니다.
남천은 교인이 적어서 교인의 의사를 집약하고 투표 때에 조절이라도 해 볼 수가 있습니다.
서부는 지금 20 년 역사를 통해 보듯 그렇게 하지 않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습니다.
남천의 주장은 남천에만 해당 되는 이치인가, 이치는 동일이라면 서부는 어찌 해야 하는가?

-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신앙은 두 길뿐이니
이 노선은 신앙 걸음에서 노선을 계산할 때는 세 길 네 길이 아니라 오직 한 길만 가르칩니다.
두 길 중에 한 길을 택한 다음, 그 한 길 안에서는 별별 사람이 다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어느 문인가? 넓은 문을 열고 넓은 길로 들어 갔는가, 좁은 문으로 이어 진 그 길인가?
가인과 아벨, 노아와 그 시대, 아브라함과 롯 등 모든 성경은 두 길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경뿐 아니라 세계 교회사와 한국 교회사와 공회의 역사도 항상 두 길로 내려 왔습니다.
남천과 서부 내 공회 성향 교인은 두 길 중 부공2를 택했고, 그 길 안의 교인일 뿐입니다.
부공2 행동이 남천 행동이며 남천의 행동이 남천 안에 있는 공회 성향 교인의 행동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을 당시, 그 현장, 그 자리에 누가 십자가를 끝까지 붙들었는가,
예수님을 못 박는 그 순간, 저 쪽 문 뒤 쪽에서 언제가 두고 보자! 이 것이 공회 신앙인가,
천하가 난동해도 바리새인이 틀렸고 예수님이 옳은데 언제가 때를 기다리겠다 할 것인가!
이 순간, 함께 못을 박히든 막고 나서든지 단 한 번의 절정에 기회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 공회의 역사적 출발 과정을 살펴 보신다면
89년 1월에 요약 발표한 총공회 행정 노선 1번은 의외로 공회의 시작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고신 안에서 지도부 일부가 소송을 하든 유엔군 철수 운동을 하든 딱 숨어 기다리고 있다가
백 조사님에게 인사권이 주어 지도록 안수를 받고 노회장 총회장이 될 수십 년 세월 뒤에
고신을 결정하면 되는가? 바로 이 것이 고신 식이며 장로교 식의 교회 정치 기본입니다.
정치를 하려면 정말 제대로 하든지 만일 섣부르게 하면 도매금으로 죽고 희망도 없습니다.

백 목사님이 고신에서 처음 공회로 출발할 때가 오늘 나누어 진 공회 내부와 같았습니다. 1959년에 고신에서 나뉜 공회 노선을 20여 년 세월이 흘러 가던 1979년이 되면 고신 내에서 마음 속으로 이 노선 성향을 가지고 사모하며 이 노선의 가치를 남 다르게 평가한 고신 내의 공회인들이 결국 고신이 되어 버린 시점입니다. 추 순덕 집사님과 같은 이 노선 최고의 핵심 인물조차 백 목사님이 고신에서 나올 때 그 순간에 여러 상황 때문에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 노선으로 옮겨 나오는데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일찍 나온 사람, 좀 늦어 진 사람, 각 사람에게 주어 진 환경과 현실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또 그들 중에는 이 노선에 대한 가치관의 강약이 달랐던 이유도 있었습니다.

평양 정권을 창출한 극소수, 적극 지원하고 지지한 소수, 뭐가 뭔지 몰라서 지켜 본 다수, 틀린 줄은 아나 고향을 지키다 그 곳에 남은 소수, 이 4 가지가 다 뭉쳐서 북한을 만든 것입니다. 고신에서 공회가 출발할 때 송 상석처럼 칼을 든 자 극소수와 한 상동처럼 협조한 소수와 뭐가 뭔지 몰라서 위에서 이리 하든 저리 하든 반 구경에 반 우려에 발을 굴리던 다수와 한 부선 박 인순 조 수옥처럼 필사적으로 막고 나선 소수가 모여서 오늘의 고신을 이어 왔습니다.

길이란 처음에는 여러 길로 보일 수 있습니다. 특히 눈 앞에 있는 것만 좁게 보면 더욱 그러합니다. 그러나 멀리 그리고 또 더 멀리 보시면 길이란 둘로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이 그렇다고 미리 가르쳤고 역사가 또렷하게 그렇게 흘러 왔습니다. 공회는 이 면을 강조할 때 아주 유별 난 곳입니다. 길을 세 가지 네 가지로 나눈다면 이미 그는 넓은 길에 속한 사람입니다. 길을 여러 길로 나눌 수 있는 것은 어린 사람을 길러 갈 때 그를 좁은 길로 갖다 놓기 위해 그를 지도할 단계와 차원을 고려하기 위한 것이지 그 길이 그 길 그 대로 걸어 갈 수 있는 길이어서 몇 가지로 나누는 것이 아닙니다.

위 글로 지적하신 분의 '현재'는 분명히 이 노선의 원래 신앙을 바로 가진 분입니다. 위 글로 지적하신 분처럼 그렇게 계속 걸어 가게 되면 그 '앞 날'은 틀림 없이 넓은 길입니다. 고신에서 백 목사님이 기치를 제대로 내 걸고 행동에 나섰다면 고신의 정권을 잡아 고신을 뿌리째 고쳐 놓을 수 있는 영향력이 있었고 목사님은 그럴 실력이 있는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려면 평생 전쟁을 해야 했습니다. 고신은 백 목사님이 세운 곳이 아니라 백 목사님이 속했던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고신의 외부까지 지키려고 싸우는 문제를 두고는 고신의 창립자 입장과 속했던 입장이 달랐습니다. 이 것이 그가 고신을 향해 할 수 있는 데까지만 증거하고 그 증거 때문에 밀려 났습니다. 이런 것을 공회라 합니다. 이렇게 할 때에 공회인이라고 합니다.

소리 없고 행동 없이 속으로 지도부에 대하여 분노하며 지도부를 지켜 보며 자기 대로의 가치관과 걸어 가는 행동은 따로 가지고 계신 분들, 그런 분들이 바로 속화 타락을 지켜 봐서는 안 되는 사람들인데 그들이 행동을 조심해 주고 절제해 주어 서 영호 목사님이 계약 신학이라는 교파로 넘나 들고 대구 공회로 오고 가는 것이 자유로운 것입니다. 그리고 기회가 주어 질 때에 투표권을 행사한다는 그 행동도 이미 부공2의 그릇 안에서만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남천의 경우 교만하고 어리섞고 대단히 착각한 교인들 때문에 현재는 목회자 교체권을 가지고 교회는 목회자에게 휘둘리지 않고 교회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한다는데, 크게 보면 남천은 그 남천의 이름을 가지고 부공2를 떠 받히고 부공2를 구성하는 핵심이 되어 있습니다. 마치 서부 교인들이 더 큰 범위에서 그렇게 하고 있듯이. 그리고 부산 공회 제일 많은 교인들이 속한 그들의 그런 자세 때문에 극소수가 끌고 가는 대로 그리고 소수가 좋아하는 대로 부산 공회 전체는 허무하게 무너 지고 있는 것입니다.

넓은 길로 갈 리가 없는 기독교, 자유 주의 신학이 발을 디딜 틈이 있을 수 없는 개혁 주의 신앙 노선, 서 영호라는 분이 이름을 들이 밀 리가 없고 틈이 없던 서부 교회가 역사 흐름 중에 좌우를 선택할 한 순간에 밤 중에 신앙의 절정이 다가 온 바로 그 때에 침묵하고 속셈하는 그들에 의하여 넓은 길로 들어 서고 자유 주의의 기치를 앞 세운 다음 서 영호와 같은 인물이 지도자가 된 것입니다. 서부 교회의 반사 1 명이 백 태영 백 영익 목사님을 어린 아이 대하듯 야단 치고 혼을 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백 목사님께 직접 배운 서부 교인들의 실력이 실제 그러하며 그들의 자신감과 깨달음과 상황 파악력이 그러했습니다. 1989년 10월 11월경 대원장 여관에서 실제 있었던 일입니다. 그리고 세월은 20여 년이 흘렀습니다. 아직도 소수가 현 서부 교회의 뒤 틀린 길을 보고 가슴 치며 속으로 자기만의 길을 가고 있으나 이제 그들은 소돔 안에 있던 롯이 되어 가는 자신을 보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솥 속에 들어 있는 이상 팥이든 콩이든 함께 삶아 지게 됩니다. 그릇에 상관 없이 나 대로 계속 가는 그런 노선이란 없습니다. 공회란 외치다가 죽거나 외치다가 쫓겨 나는 것이 공회이지 그 속에 있으면서 세월 속에 동화 되는 것은 비공회의 길이라고 생각하는 곳입니다. 그 것이 이 공회의 출발이며 행정 노선의 본질입니다. 성경과 세계 교회의 역사와 한국 교회사와 공회 역사는 그렇게 흘러 왔습니다.

- 남천은 이미 이런 문제를 두고 돌이킬 수 없는 단계를 겪었으니
남천 교회에 대하여, 이 홈은 한 번 안내했습니다. 두 번째 안내하게 된다면 남천 교인들의 자유성은 약해 질 것이니 남천 교인들이 성장식으로 자라 가지 못하고 확대식 신앙으로 변질 될 수 있으며 이 홈과 관계가 그 한 번 정도가 주어 진 현실이라 생각하여 다시 돌아 보지 않고 있습니다. 외쳐 진 과거까지 있으므로 남천 교회는 현재 그 속에 있는 공회인들이 그들의 자유와 신앙과 결정으로 부공2에 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뚜껑이 열려 있는 솥 안에서 서서히 삶겨 지는 개구리는 나오지를 않고 죽는다고 합니다. 애양원 교회 내에 이 노선의 가치를 강하게 알았던 이들이 그러했고, 고신 내에 이 노선의 가치를 깨달았으나 끝까지 고신 교단의 범위를 지킨 이들이 그러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공회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이름은 그냥 교단의 이름 중에 하나로 붙였거나 개교회 주의라는 이 한 면 때문에 가지고 있는 이름이 아니라 이미 이 이름은 그 역사를 통해 처신과 선택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보통 교회가 이해하지 못하는 길을 걷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5. 어쨌든 아직도 살아 있는 숨 소리를 들을 수 있어 기뻤습니다.

판단은 우리가 서로 착각할 수 있는 것이며 길은 비록 돌아 오려면 멀고 거의 어렵지만
그렇다고 백 프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나 만일 개체의 생명 자체를 잃으면 끝장이 나는데
위 글에서 지적하신 분들을 접하며 비록 노선적으로는 죽었고 썩었고 희망이 전혀 없으나
그 속에 지금까지 버티면서 숨을 쉬고 있는 글들이 있다는 점에서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광산 매몰이 1 개 월 정도 지나 가면 그 속에 사람이 살 여지는 없다고 판단하게 되는데
매몰 된 곳에 2 년이 더 지나 가는 이 시점에 사람이 숨을 쉬고 있다는 흔적이 있습니다.
이 홈에 그 분들을 구출할 수 있는 구조대 자격이나 그런 위치가 있다면 목숨을 걸겠는데
망원경으로 멀리서 흔적이 있는가 없는가 살펴 볼 정도여서 안타깝지만 소식만 전합니다.


어쨌든 위 글 적은 분의 심정과 그 걸음을 두고 짧게 보면 비판적이 아니라 동지적 우호적 입장으로 보며 이해합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넓게 본다면 비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마치 저 쪽으로 밀어 내치듯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해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덧붙입니다.

교인들은, 마지막에 문제가 생기고 책임을 져야 하고 역사를 비판해야 할 일이 생기면
갑자기 목회자들을 잡고 뚜드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위 글에서 비판하신 대로 목회자들이
모이면 마치 지들 몇이 모이면 교회 몇이 모여 결정한 듯 행동하고 발표를 해 버리는데
참으로 우스운 일이며 틀린 일입니다. 그런데 교인들은 그렇게 하도록 놔 둔다는 것이고
그 교인들은 백 목사님 생전에 목회자들과 꼭 같은 위치에서 꼭 같은 대우를 받으면서
백 목사님께 한 자리에서 함께 배웠다는 사실은 부러 잊으려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다른 노선은 몰라도 총공회 교인들은 단언코 목회자 핑계를 댈 수가 없게 되어 있습니다.
이 노선의 역사를 통해 공회는 교역자에게 별도의 지위와 권세와 위치를 맡긴 적이 없으니
만일 교역자가 뭔가 특별한 줄 알고 그렇게 행동했다면 그렇게 하도록 놔 둔 각 교회 교인
책임입니다. 옳으면 하나님의 종! 틀렸으면 마귀 종! 한 자리에서 수십 번도 바뀐다고 들은
것이 목회자들만 모아 놓은 교역자 회의에서만 교육한 내부 문건이며 내부 교육이었습니까?

교회를 처음 나온 사람과 주일 학생까지 앉아 있는 1만 5천 명의 집회 장소에서
목회자와 교인에게 함께 가르쳤던 내용입니다. 주일 학생도 옳은 말을 하면 하나님의 사자,
백 목사님도 틀린 말을 하면 마귀! 사탄의 종! 이런 교육을 한도 없이 받았던 우리들입니다.

따라서 남천의 목회자가 외부에서 하는 행동은 남천의 교인들이 남천의 이름을 주어서
그렇게 하도록 했기 때문에 남천의 교인들이 목회자 행동에 나 몰라라 할 수는 없습니다.
원죄 원리이기도 합니다. 대표 원리이기도 합니다. 행동에 대한 책임 원리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사후에 교체하면 된다! 그러면 지난 2 년간 남천 목회자 이름으로 공회를 다니며
이미 남의 교회에, 남의 교회 교인에게, 남의 공회에게 저질러 놓은 것은 누가 책임지고!
우리 집 개가 옆 집 아이를 물면, 주인이 그 개만 교체하고 끝을 낼 수 있는 문제입니까.
우리 소가 옆 집 소를 받으면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두고 구약 율법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교역자들이 생각하는 공회, 그들끼리 모여 그들이 목회하는 전체 교회의 총합이 어느 공회라고 생각하는 착각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목회하는 교회의 교인들 중에는 적을 수도 있으나 남천 교회처럼 많은 교인들이 소속 공회와 별도로 남천의 원래 신앙을 지켜 나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바로 이런 논리가 신사 참배 해방 후에 자기 합리화로 나가고 합동과 통합의 사이에서도 고신과 공회 사이에서도 광범위하게 사용 되었습니다. 대단히 죄송하나, 위안제일 뿐입니다. 남천이 전체적으로 이런 흐름이 있다면 집단 최면에 빠진
상태입니다. 서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서부에도 꼭 같은 현상이 있습니다.




















>> 공회인 님이 쓰신 내용 <<
:
: 목사님께서 쓰신 상세한 글도 잘 읽었습니다.
: 저또한 누구보다 공회 신앙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며 , 세상과 동화되지 않으려 노력 합니다.
: 하지만 아쉬운 부분이 있어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 교역자님들의 생각은 공회가 그리고 교회가 본인들의 공회나 맞고 계신 교회가 본인들의 교회라는 생각이 깊은듯 합니다.
: 이것이 교인들과 교역자님들과 생각이 다른 부분이라 여겨집니다.
: 맏고 계신 교역자가 부산공회1 ,2, 3이라면 당연히 교인은 교역자님이 속해있는 공회라고 여기는것이 교인들의 생각과 다르다고 여겨집니다.
: 교인들의 다수는 교역자님들이 어디에 속해 있든지 큰 관심 없습니다.
: 다만 그리스도의자녀로써 총공회 교인이다라는것 뿐이지요.
: 그러기에 공회공식 집회를 참석할뿐이며 , 부산공회1이 주최하는곳에 일부가 참석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는것입니다.
: 다만 부산공회2의 일부 목사님들이 별도로 집회를 개최할 뿐이라는 생각입니다.
: 저또한 그렇게 참석해 왔구요.
: 이목사님도 아시겠지만 김부호 목사님이 남천교회로 이동할때 교회에서 반대가 있었다는것을 아실것입니다.
: 이유는 집회에 참석하지 않는 목회자이므로 남천교회에서 모실수 없다는것이었지요.
: 결국은 김부호 목사님이 집회를 참석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남천교에서도 수락하셨습니다.
: 대표적인 예이지만 몇몇 목회자가 처음 약 10여 교회가 별도 집회를 개최하다 교인들의 요구로 공식집회를 참석하고 현재는 6∼7개교회가 별도로 하고 있는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또한 교역자 6-7명이 별도 개최하는 교회의 교인들이 목회자 없이 교인들만 몇몇이 공식집회에 개별로 참석하고 있다는것 또한 교역자님들은 모르고 계신듯하여 가슴 아픕니다.
: 교인들은 목회자들이 삐라는 뿌리든 이재순 목사님을 호위병처럼 호위를 하든 관심이 없다는것입니다.
: 다만 목회자가 나와 맞지 않을시에 부표를 던지든 아니면 별도 분리하여 본인들과 맞는 부산1이든 2이든 3이든 간다는것입니다.
: 거창집회 , 대구집회를 참석하는 교회의 교인들 다수가 백영희 목사님 생전대로 과거나 현제까지 공식 집회이므로 은혜의 샘이라 생각하고 참석한다는것과 앞으로도 그를것이라는 것입니다.
: 거창집회를 참석하지 않는 부산공회2의 목사님들이 교회이동이 있을때에는 남천교회와 같은일이 다시 또 일어날 수 있다는것을 아셔야 할것입니다.
: 목회자들이 어제까지 내 당 , 네당 하며 싸울것인지 교인들은 별 관심도 없을뿐 아니라 정치에 핵으로 부상한 목회자들은 앞으로 어느 교회에도 계실수 없다는것 또한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
:
:
:
:
:
:
: >> yilee 님이 쓰신 내용 <<
: :
: : 아마 현재 상태로는 부공2의 전체 입장을 위 글처럼 그렇게 정리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 : 그렇다면 부공2의 일반 교인들께서는 첫 글과 이 번 글로 알고 참석하실 것으로 봅니다.
: :
: : 답변자는 부공2의 오늘을 오늘로만 보지 않고 부공2의 오늘을 출발과 연결 시켰습니다.
: : 부공2가 태동하는 1991년, 시련의 1992년 이후, 그리고 1999년을 넘기며 발전하는 시기,
: : 그리고 오늘을 안다면 부공2의 오늘은 과거를 스스로 비판하고 정죄하고 있습니다.
: :
: : 위 글이 부공2의 공식 입장이라면 부공2는 과거 도평 대구 집회를 훼방하기 위해 했던
: : 삐라, 낙서, 강단 공격 위협 등 수 많은 드러 난 일과 비밀리에 진행한 일들을 설명을
: : 해야 하고 당시 행동에 대한 자체 처벌이 있어야 합니다. 그냥 쉽게 표현할 수 없습니다.
: : 이 홈 /총공회/일반자료/ 게시판에 부공2 설립 공로자들의 처절한 외침이 남겨 있습니다.
: : 부공2 설립 공로자들의 그 외침과 결단이 옳다면 오늘 도평 대구 참석자들은 비양심이고
: : 도평 대구 참석이 옳고 바르다면 부공2는 태어 나서는 안 되는 단체가 말이 됩니다.
: :
: :
: :
: : 그래서 서부 교회와 부공2는 일단 모든 과거를 다 덮어 놓고 있는 것입니다.
: : 그리고 오늘 총공회 전체의 중심에 선 현재만 가지고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 : 오늘 부공2는 교회 소속의 수나 교회의 덩치로 볼 때 아쉬울 것이 없습니다.
: :
: :
: :
: :
: :
: : 차분하게 점잖하게 양심껏 말씀하신 분이어서 더 이상 말씀을 드리지 못하겠습니다.
: :
: :
: :
: :
: :
: :
: :
: : >> 총공회 님이 쓰신 내용 <<
: : :
: : : 아래의 글이 맞는 표현입니다.
: : : 개별 참석이 아니라 부산공회뿐 아니라 한국총공회장이 임시 강사로 진행하는 어느 교회든 참석이 가능하며 , 현제는 부산공회 1,2,3중 부산공회3을 제외한 1과 2가 모두 참석하는 집회이며 , 일부교회 8개교회가 개별로 진행하고 있다는 표현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 : : 공회장을 멀리하는 서영호 목사님측이 주체에서 멀어져 있을뿐 예수교 장로회 한국총공회 공회의 공식 집회이라고 생각합니다.
: : : 참고로 저는 부산공회2 교회에 속한 교인입니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부공2 일부교회가 부공1 도평집회에 개별 참석이 아니고
: : : :
: : : : 백목사님 생전의 집회, 그 장소 그 기간 재독집회를 공식 집회로 결의하여
: : : : 거의 다 참석을 해 왔고, 하고 있고,
: : : :
: : : : 소속된 약 50개 교회 중, 일부 교회가 (약 8교회 정도만)
: : : : 따로 개별 집회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 : : :
: : : : 글을 올리실 때는 적어도 틀리게는 올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 : : (잘 모르시면 안 올리는 것이 바른 양심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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