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 지는 이 노선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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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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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3 00:00
그 분과 함께 하지 않는 분들은 그 분의 장점조차 부인하고 부러 잊으려 하는데, 지적하신 분께서는 과거의 사실을 사실 그대로 기억하시고 또 현재도 인정하실 부분을 인정하시는 자세를 유지하고 계시는 분이어서 더욱 반갑습니다. 말씀하신 부분 대부분을 인정합니다. 서로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부분도 있으나 얼마든지 서로 다르게 생각할 여지가 있는 것도 사실이므로 굳이 찬반으로 말하기보다 서로 참고할 내용으로 읽었습니다. 지적하신 분의 말씀에 대하여 몇 가지 설명을 추가하고 싶어 적습니다.
: : - 평소 서영준 목사님의 아내이자 서 목사님의 신앙과 실력에 못지 않았던 동반 신앙가였고
: ===== 사실입니다만, 현재형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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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 뵙지 못한 세월이 20여 년이 되어 이후 상황과 현재 상황은 저 역시 전혀 모릅니다.
다만 짐작으로는 당시 신앙과 실력이 현재도 그대로 생생하게 유지하실 분으로 생각합니다.
: : - 이미 청주교회라는 기성 교회와 광안동교회라는 개척을 통해 실제 목회 실력까지 보였고
: ===== 제가 모르는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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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성공 사례는 대단했습니다. 광안동의 성공 사례는 오늘 부산 최대교회로 발전한 수영로교회가 당시 바짝 긴장했을 정도였고 청주교회는 지역적 특성 때문에 참으로 어려운 곳인데 잘 하셨습니다. 이런 내용은 일반 자료가 아니므로 대부분 모를 수 있는 사안입니다.
: : - 혹시 부분적으로 아쉬운 면이 있다면 주변에 보조할 각 분야 인재들이 고루 있었습니다.
: ===== 있었습니다. 사모님은 정말 철두철미한 분이셨습니다. 지금은 과거형일뿐입니다.
: 주변에 밥통들이 많이 붙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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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목사님 생전에도 60년대 초창기는 정말 주변 모두가 긴장했고 모두들 그 중심이 순결했으나 70년대에 들어 서며 약간 이완 현상이 감지 되었고 80년대에는 대규모 이탈이 있었습니다. 예수님 제자들도 그러했고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백 태영 목사님입니다.
전체적으로 어느 단체든 투쟁의 초창기는 다 긴장을 하지만 세월이 가면 이완 현상이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그렇지만 4층은 현재 상황이 초창기보다 어렵기 때문에 지금 남아 있는 식구들은 2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죽어도 끝까지 갈 수 있는 정말 핵심들과 세상 그 어디라도 갈 수 없어 붙어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실은 우리 공회 전체도 그렇다고 보입니다.
이 노선에서 얻어 먹을 것이 하나도 없는 이 때에도 죽어도 이 노선이며 목이 터지도록 외칠 수 있는 소수의 핵심과, 어디 한 곳이라도 갈 곳이 없어 처마 밑에 비를 피하는 신세처럼 서글프게 멍하니 쳐다 보는 다수의 사람들로 구성 되어 있다고 느껴 집니다. 교역자도 장로님들도 각 교회의 핵심 교인들도 다 마찬 가지 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