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존 자료 2. 간단한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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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03 00:00
1. 김병춘 목사님
현재 대구공회 지도자 중에 한 분이며, 경남 거창의 창북교회 출신으로 72세로 기억합니다. 1980년 1월 18일에 목회자로 출발했습니다. 이 홈의 상단에 있는 '총공회'에서 '소식' '문답' '교회별' '인물별' '일반자료'에 들어 가셔서 '병춘'이라는 검색어로 찾아 보시면 다양한 내용이 있다고 기억합니다.
공회의 가장 전형적인 인물입니다. 거창 시골에서 농사를 짓던 가난한 출신이며, 10대 후반에 믿기 시작하면서 이 노선에서 창북교회의 개척과 반사와 청년기를 다 거쳤고, 그 사모님은 설교록에 신앙박해로 유명한 분입니다. 부산의 백 목사님을 찾아 서부교회로 이사했고 공회의 목회자나 교인의 가장 정통 코스라 할 수 있는 시골 농사꾼 출신에 도시로 온 이후에는 노동을 하셨고, 막 노동 목수 일에서 짐을 지고 바닥을 다 훑었으며 그런 밑바닥에서부터 출발하여 경제와 사회까지 성공을 했습니다. 신앙과 거쳐 온 과정과 실력과 모든 면을 살핀 다음 1978년에 서부교회 집사에서 공회 조사님으로 인허하여 목회를 내 보냈습니다.
답변자 기억에 초등학교만 나오신 듯한데 정식 공부는 양성원이 전부이고, 양성원 공부를 제대로 하고 목회를 잘 하게 되어 현재 대구공회에서 양성원 원장을 계속 맡고 있습니다. 양성원은 타 교단의 신학대학원에 해당하니 말하자면 신대원 원장입니다. 대구공회는 부산공회와 달리 세상 학벌이나 실력을 참고하는 곳이니 모든 면에서 크게 성공한 분으로 생각합니다. 목회한 곳곳에도 좋은 평편이 있다고 듣고 있습니다.
백 목사님 생전에 울산의 남산교회로 파송을 받았는데 당시 남산교회는 300여 명 이상의 교회며 울산의 10여 교회 개척의 중심이자 파송 교회며 전국 공회에서도 손 꼽히는 핵심 교회입니다. 신앙과 실력과 목회까지 두루 인정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백 목사님 사후에 대구공회의 중심 목회자 중에 한 분이 되었고 전국에 유명한 교회의 후임 청빙 때 자주 후임으로 거론 되는 실력가입니다. 대구공회 집회 강사는 교역자들의 투표로 결정하는데 답변자 기억으로는 아마 늘 1위를 하거나 가장 많이 강사로 선정 된 분입니다. 화려하거나 기술적인 목회나 설교를 배제하고 조용히 설교록 중심으로 전하는 분입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좋고 훌륭한 반응이 있다면 이는 신앙의 능력이라고 판단 됩니다. 전체 공회적으로 이런 류의 목회자로서는 대전의 문석표 목사님 정도로 기억합니다. 답변자로서는 왜 부산공회에 계시지 않았는지 늘 궁금합니다만 이 홈에 대해 아주 극단적으로 거부감을 가진 분이어서 따로 연락이나 면담이나 대화의 기회는 없었습니다.
2. 김명재 목사님
아마 공회에서 공회 안팎 어디 내 놓아도 신앙과 실력으로 거물이라고 평가를 받을 분이 있다면 백영익 이진헌 두 분으로 생각하고, 바로 그 밑으로는 배종일 김명재 두 분을 꼽을 정도일 것입니다. 이진헌 배종일 목사님은 외부로 활동을 하지 않았고 여러 내부의 견제나 장벽에 막혀 작은 교회를 맡고 계신 것 같으나 인물은 교계적 인물이 될 실력가들입니다. 백영익 목사님은 교계적으로 지명도를 가지고 활동을 했던 분입니다. 김명재 목사님은 답변자가 평소에 '작은 백영익' 목사님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명재'라는 이름으로 상기의 김병춘 목사님의 경우처럼 검색해 보시면 다양하게 활동하신 것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경북 영천 출신의 65세며 목회는 1977년 3월 23일에 출발했습니다. 부임한 곳마다 교인들이 평생에 비교할 수 없는 목회자로 기억할 만큼 설교와 목회 실력이 출중했습니다. 너무 뛰어 나다 보니 주변에서 공회성이 없다는 비판과 오해도 더러 제기 되었고 심지어 백 목사님 생전에 유일하게 백 목사님 앞에서 통일찬송가를 개척 교회 형편에서 사용하겠다고 말씀을 드렸는데도 지금까지 공회를 잘 지키고 있다는 점에서 백 목사님 생전에는 공회 노선을 조금도 어기지 않고 지킬 것처럼 발언하고 훗날 그 입장을 바꾼 사람들과 비교한다면 양심까지 갖춘 목회자입니다.
답변자는 1977년 2월말에 서부교회로 처음 갔고 새벽기도가 마치면 서기부 뒤에 있던 방에서 그 날 새벽기도 설교를 재필하면서 몇 번 직접 대면한 적이 있었습니다. 답변자는 백 목사님 밑에 처음 배우던 걸음마 시절이었고 그 분은 모든 과정을 거치고 목회를 나가기 직전의 대선배였습니다. 그 분은 백 목사님을 답변자에게 설명하면서 우리들은 땅에 발을 딛고 다니는 사람들끼리 비교할 수 있는 그런 수준이고, 백 목사님은 창공 아득히 떠 있는 독수리처럼 하늘의 별처럼 높은 수준이라고 했는데 그렇게 감격스럽게 답변자를 감동 시켰습니다. 지금까지 그 때 그 표정과 그 입었던 옷과 목에 둘렀던 목도리의 질감까지 답변자 뇌리에서 각인이 되어 있습니다.
3. 이 홈의 타 목회자 소개
답변자는 같은 부공3의 10여 명 목회자들끼리도 일이 없으면 1년에 한 번도 대화할 기회가 없습니다. 업무상 긴급하고 필요한 일이 아니면 안부 전화 한 번도 따로 하는 일은 없습니다. 몇 년에 한 번은 몰라도 한 해 한 번도 없습니다. 같은 공회 몇 되지 않는 교회가 건축을 하여 입당을 해도 어떤 행사도 없고 방문도 없습니다. 내부적으로 이런 정도이니 타 공회 목회자와 대화는 이 홈의 연구 작업에 필요하지 않으면 당연히 하지 않습니다.
이제 부탁하신 두 분 목사님에 대해 1989년 백 목사님의 순교 후부터 서로 가는 길이 달라 뵐 일도 대화할 일도 거의 없었습니다.
답변자는 이 곳에서 어떤 질문이든 최선을 다하나 최근의 소식을 알지 못하는 한계는 분명합니다. 공회 인물이나 교회에 대한 소개를 받을 때는 일단 답변자가 아는 대로 설명하겠으나, 누구라도 최근을 잘 아시는 분들께서 전체를 위해 소개 글을 주시면 좋겠습니다. '목사'는 사생활이 없습니다. 어떤 비판을 받아도 억울하다 할 수 없습니다. 공회 목회자는 공회 전체의 공적 인물이므로 모두가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우호적으로 적을 때는 주관적으로 소개해도 좋으나 비판을 해야 할 상황이 있다면 주관을 최대한 배제하고 객관적이 되도록 소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4. 목회자 이동
부공1은 대구에 계신 지도자가 늘 결정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부공2는 전체 협의와 관련자들의 의논을 통해서 한다고 하는데 부공2를 창설하고 유지한 김 목사님들이 주도하고 있다는 것은 여러 면에서 감지 되고 있습니다.
대구공회는 누구의 주도라고 말하기는 곤란한 듯하며 이동 문제가 생긴 교회 별로 특별하게 연고가 있는 목회자들과 전체 공회의 지도부의 조정과 권고로 이동을 하는 것 같습니다.
대개 일반 교인들은 '공회에서'라고 말을 시작하면 억압을 당합니다. 물론 교회 별로 또는 교인 별로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소신이 있는 곳은 이동 문제를 두고 공회보다는 개별 교회가 결정하지만, 대개는 공회가 달래고 설명하고 의논하다 보면 개별 교회 일반 교인이 공회의 방향을 거슬리기는 어렵습니다. 대구공회의 교역자 이동의 원칙만 가지고 본다면 개별 교회가 자기 입장을 확실히 해 버리면 공회가 이길 수는 없습니다. 어쨌든 현재 공회들은 전체적으로 심지어 부공1이라 해도 한 교회가 강하게 자기 주장을 가진다면 결국 교회 원하는 대로 된다는 점에서, 이동은 교인의 결정에 달려 있습니다.
>> 11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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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병춘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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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김명재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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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이동경우,,, 어캐 이동 하는 지..교역자 이동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