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회 노선의 말씀과 찬송의 균형 문제 - 부연 문제 제기 (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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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회 초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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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09 00:00
원제: '추가하여 부연된 문제제기'
양해: '첨부파일' 등의 문제로 이 글이 두 번 올려져서 하나로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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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륜으로 보나 공회신앙 수준으로 보나 모든 면에서 뛰어나시고 공회를 위해 많은 지식을 갖고 계시고 또 고민을 하신 분께서 간단하게 보이는 부분의 답변을 지연하시니 제 나름대로 다시 한번 생각하고 또 고민하게 됩니다.
퇴근을 하는 1시간 넘는 동안 곰곰이 생각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말씀들이 있어서 다시 접속하여 글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지능이 부족하여 잊어버릴새라 집에 도착하자마자 저녁도 먹지 않고 글을 썼는데, 애써 쓴 글이 부주의하여 파일을 날려 다시 또 한 번씁니다. 첫글에 실렸던 의도와 감정이 저감되어 되었습니다.
1. 앞 글 찬송에 대한 부분에 대한 추가 설명
공회측 교회를 다니면서 느낀 점이 여러 가지 있는데 생각나는 대로 두서 없이 적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공회측에서는 제가 보건데 찬송에 대해서는 굉장히 인색하다고 느낍니다. 잘 모르는 상황(-다른 공회측 교회 참석경험 없으며, 공회노선에 대한 깊은 이해가 부족한 상태, 개개인의 신앙을 모르는 상황)에서 말씀드리기가 조심스럽긴 하지만, 최소한 예배시에 드러나는 외형적인 모습만 보건대 그렇게 보았습니다.
우스운 논란거리겠지만, 설교와 찬송을 두 가지로 놓고 공회에서 경중과 귀천을 비교하면, 제 사견으로는 찬송은 경과 천에 가까울 것이요, 설교는 중과 귀에 가깝게 보았습니다.
그래서 공회의 찬송에 대한 저의 이해는 확실히 활성화 되지 않고 있다는 견해입니다.(순전히 저 혼자만의 견해임)
“준비찬송”이라고 하게 되면 예배이전에 준비하는 개념이고, 예배 보다 덜 중요하게 느껴지는 단어적 뉘앙스가 내포되어 교인들이 말씀 듣는 것에는 대학생 수준이나 찬양에 있어서는 초등교육 수준으로 비유되는 것 같습니다.(너무 극단적 표현인지 모르겠습니다.)
왜 공회는 말씀은 강하지만, 찬송에는 약한 것인가?(이에 대한 반론이 많이 있겠지만,)
생각해 볼 부분인 것 같습니다.
이런 공회측의 외형적 현상이 어디서 나온 것일까 생각해보면 “준비찬송”이라는 단어사용과 연관될 수 있다고 볼수도 있겠습니다.
이에 언급되는 찬송에 대한 부분은 이 홈에서 많은 분들이 문제 제기를 해 오셨고 그때마다 일관되게 운용자께서 답해 온 부분을 다시 한번 제기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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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을 적다 보니 너무 많아 져서 아래 글 일부만 적고 아래한글파일로 올리겠습니다.
내용이 길어져서 출력해서 시간을 가지고 읽어 주십시요.
공회 계신 여러분들도 시간내서 한번 읽어 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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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활용이 힘든 분들을 위해 자료를 직접 소개했습니다.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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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공회 노선의 찬송에 대한 신조
공회 노선이 타교단과 같지 않고 고 백목사님의 순수한 신앙 노선을 따라, 인간들의 상업성과 속화 가능의 여지를 두지 않기 위해 기본 찬송에 대한 노선 유지는 너무나 귀하고 아름다운 신앙의 길이고, 찬송뿐 아니라 생활의 전반에서 따라야 할 길입니다.
하지만,
3. 노래(음악)은 하나님의 것!
세상 만물 중에 노래할 수 있는 존재는 인간 뿐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동물들 중에 일부 선율을 가지는 소리를 내거나, 인간노래를 흉내내는 것도 있지만, 인간처럼 아름다운 선율에 뜻을 가진 가사를 실어 부르는 노래는 인간밖에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노래는 <인간의 것!>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의 것!>이 겠지요.
세상 모든 만물의 하나님의 것으로 이 노래도 하나님의 것인데 인간에게 노래를 주신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찬양, 찬송하기 위해 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불택자들이 이 노래에 세상의 사랑과 삶의 애환을 실어 부르게 되어 본질이 왜곡 되어 버린 것이지요.
요즘 한창 대두되고 있는 비정규직 법안과 같은 현상이라 하겠습니다. 정부에서는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해서 쓰라고 만들어 놓은 법을 사용자들은 구조조정의 칼로 사용하고 있는 상황과 같은 이치이겠지요.
세상 노래가 아닌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찬양이 된다 라는 것이 저의 찬양에 대한 자세입니다.
- 벙어리가 말을 못해 구원의 감격을 춤으로 표현하는 것도 찬양!
- 뇌성마비 장애우가 우리는 알아듣지 못해도 하나님 찬송드리는 소리 떠듬 떠듬하는 것도 찬양
- 운율과 곡조와 상관없어도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한 모든 행동과 몸짓, 소리는 다 찬양일 것입니다
- 심지어는 요즘 젊은이들이 부르는 힙합이나 랩(- 저도 전혀 노래로 들리지 않고 무슨 가지인지 잘 모름)으로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되었다면 찬송의 범주에 넣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표현할 수 있는 것이 그것이 최선이라고 한다면, 그리고 선한 목적을 가지고 하는 것이라면 모두 찬송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모든 노래는 하니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공회의 찬송을 돌아보면 굳이 공회식 신앙노선을 내세워 타교단의 찬송가와 복음송을 배척시 되고 막아버린 상황에서 그런 찬양을 신앙의 저급한 것으로 치부되고 있진 않습니까? 우리 교인들 중 주중에 찬송을 몇 번이나 드릴까?, 교인들의 평소 흥얼걸림 노래 속에 차지하는 찬송의 횟수는 얼마나 될까요? 기존 공회교인으로서 필요성을 전혀 못 느끼시는 분들이 많겠지만, 다른 교단에서 넘어오신 분들이나 중간반 사춘기 학생들은 얼마나 공회 찬송을 부르며 그 가사를 새길까요?
오히려 이런 찬양에 대한 욕구가 변질되어 세상노래를 더 많이 듣게 되어 세상 가사가 속에서 무엇을 배우겠습니까? 찬송에 대한 공회 노선을 어떻게 하는 것이 더 유익일까요?
신앙의 장사에서 찬송에 대한 어떤 자세가 더 이익일가요?
여기서 왜 공회에서는 이런 이동신자와 학생들을 고려해야 하는지 뒤글에서 살펴보겠습니다.
물론 공회에서 쓰고 있는 200곡의 찬송은 귀하고 아름다운 것이기에 논란의 대상도 되지 않고, 오히려 제언을 하나 더 드린다면 200곡 밖에 되지 않는 찬송을 가능하다면 다 외워서 부르면 그 얼마다 더 은혜롭게 부를 수 있겠습니까?
4. 제2의 스펄전이 될것인가?
제가 알고 있는 짧은 지식을 언급하겠습니다.
옛 영국에 스펄전이라는 시대의 영감으로 설교하신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리고 무디 목사님도 계십니다. 우리 일반교인들이 이 두 분 중 어느 목사님을 더 잘고 있을까요? 제가 알기로는 무디 목사님이십니다.
대설교가 이셨던 스펄전 목사님 보다 무디 목사님을 우리가 더 잘 알고 이름이라도 한번 더 들어본 것은
스펄전 목사님은 당대의 목회로 끝나 버렸고, 무디 목사님은 신학교를 지으셔서 그분의 신앙노선을 이을 후배를 양성하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의 두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의 차이가 된 것입니다.
5. 계속신앙노선을 유지시켜야 할 책무
우리가 따르는 백목사님의 신앙의 순수성과 귀함을 계속교단(교회)로 유지하여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전도도하고 교인도 많아져야 하고 목회자도 많이 세워져서 신앙노선을 더 전파해야 하겠습니다. 이런 어려운 목회길을 누가 가겠습니까? 백목사님 생전에 신앙생활하시고 전적으로 그분들이 다돌아 가시면 누가 이노선을 지키겠습니까?
이 고귀하고 아름다운 신앙노선을
“다른 사람이야 이노선 알던지 모르던지 나만 구원받고 누리고 성장하면 돼!’라고만,
“그 이후론 몰라!”라고만 하고 이기적인 태도를 취하여야 하겠습니까?
지금 공회 계신 교인분들이나 목회자께서는 백목사님의 신앙노선을 유지 계승 발전 시켜야 할 책무가 있는 분들이 아니신지요?
안으로 이 노선을 장자노선이라 하고 싶습니다만, 성경에 장자들이 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차자나 막내한테 항상 밀렸습니다. 장자노선을 자처하기 전에 우리의 고칠점을 찾아 볼때가 되었습니다.
6. 새신자와 기존 교단에서 오신 교인들에 대한 배려
비유로 설명하겠습니다.
우리나라 산골시골에 마을 사람들은 외부와 전혀 차단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산골에서나는 쌀과 곡물 야채만이 그들의 주식이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필요를 전혀느끼지도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외부에서 그말을 쌀이 너무 몸에 좋고 맛있다는 소문에 마을로 들어와 살았습니다.그렇게 살러온 외지인이 예전에 먹었던 수입과일이 어느날 먹고 싶어졌습니다. 물론 우리나라 사람은 쌀(밥, 식량)과 그곳 야채 곡물만 먹으면 살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에 먹어본 수입과일에 눈에 아른하고 먹고 싶지만, 그 동네 사람들은 그걸 먹어보지도 않았으면서 “그런건 다 필요 없고, 우리가 먹는 것만 있으면 돼!”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런말을 하는 것을 이상한 사람 쳐다 보듯하고 그런 말 꺼내는 자체를 싫어해 그 마을 사람에겐 말도 못하고 혼자만 끙끙 거립니다. 쌀(밥)으로만 본다면 이곳 것이 제일이요. 진국이이만,, 이 외지인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동네 사람들 몰래 수입과일 사러 나갔다다고 오던지, 아니면 이동네를 나와 다시 외지로 나가서 쌀만 택배로 부쳐먹을 두가지 길밖에 없습니다.
기존에 계신 분들이야 필요성도 그것에 대한 식욕도 없으니 문제 없는 것이지만, 새로 온 외지인은 여간 곤역이 안닙니다. 맛도 모르면서 그건 잘 못됐다 아니다 하니...
‘그럼 그런거 하고 싶으면 그쪽으로 가라’ 하면 될 것이지만, 공회의 계승 발전 유지가 걱정입니다.
우리의 신앙에서 독이든 곡물과 채소가 아니라면, 우리는 수입 과일과 채소를 먹을 수 있습니다. 공회에서는 농약, 독도 좀 들어있고 해서 힘들다고만 합니다.
현 공회에 외지인들이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하였는데 공회에서는 대책이 필요합니다.
7. 색깔론
공회에서 들은 얘기로는 공회는 진리, 은혜, 말씀 중심이어서 그에 위배되지 않는다면 좋은 제도와 신앙자세는 받아들여 수정을 할 수 있다고 말들 하십니다.
그런데 막상 이런 저런 얘길 하다보면, ‘그건 백목사님 계실 때 안 그렇게했다’, ‘백목사님 이 이것 저것 다 시험하여 현재 제도가 확립됬으니 다른 거 다필요없다’ 식입니다.
바른 모습이면 받아들일수 있다는 노선의 기본 자세를 말씀하시면서도 그런 부분이 나오면
공회식이 아니다, 백목사님 목회식이 아니다 하여 색깔을 끼고 보십니다.
안에 계신 분들이야 당연히 그것에 익숙해져 있으니 더 필요성도 못 느끼지고 무슨 색깔론이냐 하시지만, 외부이동교인이나 외부에서보면 보이는 것들을 색깔론으로 보입니다.
8. 고기를 너무 잘 잡는 어부의 문제
우리 백목사님을 어부로 비유하면 천하에 제일 가는 말씀 어부이십니다.
워낙 고기를 잘 잡으셔서 그 방면에서 제일이지만 누구하나 알아주는 사람 많지 않습니다.
고작해서 그 동네 사람들이고 확대 되어봤자 고기잡는 사람들 속에서나 회자되는 얘기입니다. 여하튼 고기는 확실히 잘 잡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 분 자식들은 그분이 잡아 놓으신 고기만 잘 저장해 두었다가 먹으면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어부 자식들은 어촌에 살지만 고기 잡는 법은 잘 익히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고기 못잡는 어부자손들은 부친이 잡아 놓으신 고기만 먹고 삽니다. 고기를 말씀으로 보았을 때 공회측 교인의 약한 부분은 어느 고기가 좋은지 맛있는지는 알지만 고기를 잡을 줄 모르는 문제에 봉착하게 됩니다.
백목사님 설교록을 통해 주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그분의 시야와 시각으로 보게만 됩니다. 우리에게는 다행이 성령이 계셔서 누구나 백목사님과 같은 좋은 훌륭한 어부가 될 수 있는데도 직접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잡아놓은 고기만 먹는 어부가 되는 우를 범하고 있지는 않는 가 되돌아 봐야 할때입니다.
9, 더 많은 생각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제 지능이 부족하여 다 적지 못한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유익이되고 또 생각이 나면 다시 더 올릴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고 다시 싶은 내용이 위에 것은 기존의 공회 교인들께선 전혀 필요성을 못 느끼실 수 도 있고, 당치 않는 소리라고 하실 분들도 있겠지만, 저같은 이동교인의 입장에서는 참 고민입니다. 그리고 공회의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공회에 대한 충언이라 생각 해 주십시오.
좋은쌀(말씀과 제도, 신앙의 순수성)을 두고 가자니 아쉽고, 목숨에 직결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먹고 싶은 외부과일과 야채도 있는데 어떻해야 할가요? 외부로 가서 쌀배달 시켜 먹을까요? 아님 남아서 계속 먹고싶은거 참고 있을까요?
그것들에 대한 해답이 필요한 시점의 공회가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