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신앙에 잘못된 표현 - 우선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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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신앙에 잘못된 표현 - 우선 답변

설명
yilee 0 7


1.신앙 관련 용어 문제

(1)잘못 사용하는 예

'예배 본다'보다 '예배 드린다'는 표현이 더 좋고
'축복을 내려 주소서'는 틀렸고 '복을 내려주소서'가 맞습니다.
'교회 간다'는 말은 틀렸고 '예배당에 간다'는 말이 바른 표현입니다.
'주님이' '주가'는 어색한 표현이고 '주께서'가 바른 표현이며
'예수님께서' '예수님이'도 그렇고 '예수께서'가 맞습니다.
'중생한 영'은 틀렸고 '중생된 영'이 정확합니다.


(2)표현의 시대적 기준 차이

현재
국문법적 기준에서 본다면 위에서 설명한 것은 상식이지만
앞서 설명한 내용 중 잘못된 표현들이 교회 현장에서는 평범하게 사용됩니다.

물론 교파나 교회마다 조금씩 다른 점이 있습니다.
어느 곳에서는 '교회'와 '예배당' 구별을 확실히 교육시키는 곳이 있고
어떤 분들은 '복'과 '축복'을 거듭 강조하며 교리차원에서 조심시키기도 하며
공적 기관의 예법에 익은 경우는 '예수'와 '예수님'을 그렇게 강조하기도 합니다.
중생교리에서 '중생된' 표현은 정통이고, '중생한' 표현은 펠라기우스식 이단입니다.

그러나
표현은 절대의 법이 있는 것이 아니고
많은 사람의 사용이 대세로 굳어지면 그 단어의 뜻과 표현의 의미가 달라질 수있으니
언어학자들은 말과 글의 의미나 표현법은 생물이라고 설명하는데 실제도 그렇습니다.

부부는 남편 부'夫'와 며느리 부'婦'라는 단어가 조합되었다고 합니다.
아내는 이름도 없던 시절 시부모 입장에서 그렇게 표현되었다고 합니다.
마치 지금도 젊은 여자들이 거의 '00 엄마'로 존재하는 것과 같은 경우입니다.
남자 친구들이 모여서 '우리 아내는 ....' 이런 표현이 흔하게 나오는데
아내는 친구들이나 다른 사람과 공동소유일 수 없으나
서양사람처럼 나와 너의 소유구분이 체질적으로 명확하지 못해서 나온 것입니다.


(3)'예배' 표현에서

아마 지적하신 분이 아니었다면
답변자 평생에 '예배드린다' 표현은 열에 1-2회, 본다는 8-9회 사용하고 살았을 것입니다.
앞으로는 예배본다 표현이 열에 1-2회, 드린다 표현이 8-9회로 바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아마 들은 이상 분명히 변화가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 한 마디 듣고 보니까 생각없이 사용한 것이 이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배당'과 '교회'의 차이는 신학적으로 아무리 강조해도 바뀌지 않습니다.
만일 이것을 바꾸려 한다면 이 노선 제일 핵심인 '중생교리'를 교육하듯 엄청나게 노력과 시간을 기우려야 하는데 표현이 시대에 따라 의미적 변화를 보이는 면을 고려한다면 그렇게 주력할 일이 아니라 사람들이 예배당과 교회라는 단어를 같은 단어로 사용하기 때문에 그렇게 변화된 의미를 그대로 사용하면 가장 간단한 문제가 될 것입니다.


(4)일반의 변화를 어디까지 지켜볼 것인가?

신앙의 생명성을 잃고 일반의 변화를 무조건 따라 간다면 생명의 역사가 없다 할 것이고
만일 일반의 변화 중에서 단어나 표현의 잘못을 다 잡으려 한다면 이 역시 힘이 부족할 것이나
죽어도 해야 할 일이면 해야 하지만 그렇게까지 해야 할 일은 아니라고 보고 있습니다.
'표현'이란 일반인의 공동 공통 인식을 하나의 의사소통 방법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몇 가지만 예를 들었으나 조금 자세하게 주의를 기울인다면 이런 문제는 한이 없습니다. 그리고 현재 시점에서도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그 문제점은 끊임없이 새롭게 전개되고 그 파악조처 어려울 문제로 전개 될 것입니다.


(5)가장 중요한 것은 실제 행동인데

예배에 대한 표현 문제를 일단 접어두고 예배 보는 실제 모습으로 본다면
'예배를 본다'고 표현하는 이 노선 예배는 대체적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예배의 실체를 알기 때문에 예배의 기본 자세만큼은 아직도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좋기는 질문자 지적처럼 표현까지 그렇게 하면 더 좋겠으나
생각없이 모두들 '예배 본다'고 사용하다 보니 우리의 예배 드리는 그 실제 행동을
말로 표현할 때는 '예배 본다'로 했고
현재 말과 행동에서 별로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사용했습니다.

다행히 이 표현은 한번 듣고 누구라도 단번에 이해가 되어 현저하게 고쳐질 것 같은데
다른 단어들의 문제점, 즉 '중생한'이나 '축복' 등의 단어는
너무 굳어져버려서 전체 교계를 되돌리기 어렵고 모든 일반인의 사용이 그렇게 된다면
이 노선은 이 문제를 그렇게 주력해야 할 문제인가 라는 차원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축복'은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내려 주시라고 빈다는 뜻인데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축복해 주소서'라고 하면 하나님께 다른 존재로 하여금 우리를 복 주도록 하나님께서 직접 빌어달라는 말이 됩니다. 1계명 2계명에 정면 위배되는 말입니다. 그러나 '부부'처럼 생각한다면 비록 그 뜻은 큰 일 날 잘못이지만 그 사용은 이미 '며느리 부'가 아니라 '아내 부'가 되었으니 '축복'도 원래는 '복을 빌다'는 단어지만 이제는 '복=축복'이라는 표현이 되어버렸습니다.

이 노선은
주력할 일과 지켜볼 일과 무시하는 일을 나누어 조심스럽게 대하고 있습니다.
무시할 일에 주력하면 주력할 일에 소홀하게 되는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몇 사람이 나서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일반 표현의 잘못을 제어한다는 것은 실제 불가능하므로
우리는 가장 정확하게 조심스런 표현을 하려고 노력은 해야 하겠지만
이미 그 표현의 대세가 굳어지게 된다면 그때는 표현 어법 문제를 두고 부딪히거나 오해받아야 할 문제인가? 지켜보다가 대세가 굳어지면 따라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6)좋기는

그때 그때 고치는 것이 좋으나 우리에게 주신 전체를 향한 통제력과 실력 범위를 생각하여
삼분론이나 중생교리처럼 이 시대 이 노선이 주력할 일은 최선을 다하되
지적하신 '드린다'는 표현은 이런 자리를 통해 알게 된 이들이 주변에 간단히 주의를 촉구하여
자연스럽게 '드린다'는 표현이 사용되게 하는 정도로 할 사안으로 생각됩니다.
다행히 이런 작은 인식이 전체를 바꾸게 되면 더욱 좋은 일이나
그렇지 않고 대세의 표현이 '교회 간다'는 표현처럼 아주 굳어져버리면
뒤에 좀 떨어져 함께 그렇게 따라 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2.한 가지 다른 차원에서 생각할 문제

예배 드린다는 표현이 본다는 표현보다 좋고 맞다는 것 자체는 이론이 없으나
그런 표현이 일반 교계에서 사용되는 배경을 좀더 넓게 봐야 할 면이 있습니다.

현재 교계는 이미 예배당을 일반 사회의 회관처럼 사용하는 것이 아주 일반화가 되었습니다. 그 행동은 분명히 예배당을 예배당으로 사용하지 않으면서 유독 표현에서는 '예배를 드린다'고 극진하게 하는 경우를 만납니다. 성경의 권위는 아주 우습게 되었으나 성경 포장은 금박으로 또 여러 극진한 포장법으로 발전하고, 목회자의 내면은 세상 무속인이나 직업인이 되었다 할 만큼 되었는데 예배당의 치장과 목회자의 예복은 더 거룩한 모습으로 또 경건한 모습으로 발전해 가고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연보'가 '헌금'이 되고
'전도'가 '선교'가 되며
'목회자'가 '성직자'라는 표현으로
'예배당 의자'가 '성구'라는 표현으로 자꾸 발전해 나가면서
그 중에 한 가지 표현이 '예배를 보고 있으면서' 표현은 '예배를 드린다'고 하는데
지금 경제력만 있으면 예배 보는 교인들이 강사를 극장 구경하듯 관람석 위치를 높여놓고 밑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거의 모든 면으로 신앙과 신학의 실제 내용은 극도록 천해지고 있으나 표현에서만 극진하게 사용되는 부분들이 있어, 최근 그런 교계 상황을 무시하고 이 노선은 이 노선대로 바쁘게 가야 할 길이 있어 가다 보니까

이번 질문자처럼 외부 교회 생활하신 분께서 단번에 느낄 수 있는 차이로
예배를 본다는 표현에서 어색함을 느꼈습니다. 그렇다면 이 노선 교인들은 이런 간단하고 마음에 느껴질 지적을 받았다면 우리가 듣고 익어온 것이 아니니 무조건 배척해 놓고 보거나 비판만 하거나 아니면 삐딱하게 볼 것이 아니라 말 못하는 나귀를 통해서도 선지자를 가르칠 수 있는 것이니 얼른 고쳤으면 합니다. 답변자는 단번에 그렇게 조심할 것 같습니다. 다만 이것을 이 노선 교인들이 주력할 운동 차원에서 소개하는 일은, 그 일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더 중요한 다른 문제들이 있어 시선이 흩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고쳤으면 좋겠다는 정도로 윗글을 읽었습니다.

예배를 실제로 드리는 것은 굉장히 어렵고 고생을 해야 하는 일입니다.
예배를 실제로 드리는 사람들이 그 표현을 '드린다'고 덧붙이는 것은 너무 쉽습니다.
반대로 예배를 보는 차원으로 상대한 교계는 '드린다' 표현을 사용한 것은 잘한 일이나 그 내용이 실제로는 예배를 보는 식이었으니 그 예배 보는 실제 행동을 이전 한국교회 선배들이 예배를 드리던 시절처럼 드리려고 고치려면 아마 거의 불가능하다 할 만큼 많은 고통이 있을 것입니다.

바로 이런 차이점이
아주 사소하게 보이는 것이지만 이 노선의 장단점이며 동시에 교계의 장단점이므로
귀한 노선을 알게 되었고 이왕 가장 바른 길을 걸어보겠다고 출발한 이 노선 공회인들이라고 한다면 이번 지적처럼 아주 간단하게 한번 들리는 말 중에 내가 고쳐서 좋은 것은 얼른 고치면 될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지켜내고 있는 예배의 실제 모습인 '예배를 드리는 행동'은 그대로 더욱 잘 하면 될 일입니다.


공회 교인들은 인사를 잘하지 않는다...
이런 지적에 대하여서도 그런 지적을 받는 순간 그 다음부터 바로 고치고 바꾸면 될 일입니다. 반갑게 인사하는 것이야 불신자라도 해야 할 일이고 자기 건강을 위해서라도 좋은 일이며 그렇게 하는데 돈이 들거나 무슨 대형 부흥회를 해야 할 문제는 아닙니다. 이 노선은 이 시대가 찾기 어렵고 놓치기 쉬운 아주 중요한 노선들을 확고하게 가진 면이 장점입니다. 그러나 완전자가 없는 법이 앞선 자가 뒤서는 것이 신앙 이치이므로 늘 긴장하고 깨어 있어야 하며, 만일 그렇게 자세가 되어 있다면 좋은 것은 더욱 강하게 붙들어 발전시키고 만일 사소해 보이는 문제점이라도 지적을 받으면 바로 고치는 결과로 나타날 것 같습니다.


이번 지적 중에서 '예배를 드린다'는 지적은
우선 그 표현 자체만 가지고도 사소해 보이나 우리가 기본적으로 가질 자세에 중요한 사례가 될 수 있고, 동시에 이 원리와 이 자세가 우리 신앙전반에서 공회인들이 늘 긴장하고 있어야 할 정곡을 바로 찌른 대표적 사례라고 생각했습니다.




외부 출장 중에 간단하게 적었습니다.
시간이 있으면 윗글 내용을 정서하고 다음 글을 잇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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