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절차 형식의 최소화 -

공회내부 문답      

2.절차 형식의 최소화 -

설명
yilee 0 2


1.제도나 절차의 단순화

이 노선은 형식의 최소화 원칙을 하나의 신앙 노선으로 늘 견지해 왔습니다.
구약에서 신약으로 바뀔 때의 원칙이 그러했고 초대교회가 그러했으며
실제 신앙의 내면에 집중하려면 외부 형식에 대한 최소화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공회의 예배 순서가 단순한 것도 그런 이유이고
공회의 결혼 장례 세례 성찬 안수 등 모든 면에서
형식이나 외부 절차에 관하여서는 최소화의 원칙이 늘 이 노선의 상식입니다.




2.표현의 단순화

'말'과 '표현'의 간결 단순 최소화도 있습니다.
일반 교회의 축도는 그 문장이 화려하고 길고 장엄하며
목소리도 거룩하고 장엄하게 들리도록 하기 위해 가성을 내는 것이 보통이지만
공회는 내용을 최소화시켜 간단 명료하게 그리고 평상 대화체로 이어갑니다.

지적하신 '준비 찬송'이란 표현은
원래 예배 시작 전 교인들의 마음을 미리 모두어 예배 드릴 준비를 하는데
이런 경우 기도나 다른 방법보다 보통 찬송가를 부르게 됩니다.

원래 표현은 '이제 예배 준비하겠습니다. 찬송가 000장입니다.' 이렇게 했는데
이 표현을 최대한 줄인 것이 '준비 찬송 000장'이라는 표현입니다.



특히 '표현'을 두고 최소화의 원칙을 적용하는 이유 하나는

남 앞에 서면 괜히 말을 길게 하는 분들이 있고
그런 경우 말하는 사람은 좋아도 듣는 사람은 고통스러워하기 때문입니다.
목회자는 말할 것도 없고 광고나 다른 순서를 위해 교인이 강단 앞으로 나가면
역시 그렇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눈쌀 지푸릴 일이 종종 생기기 때문에
예배 진행 표현만큼은 간소화시키는 성향이 있습니다.

지적하신 '준비찬송'의 경우
예배를 준비하기 위해 찬송을 인도하러 앞에 나갔으면 '찬송가 000장'이라고 하면 되는데
앞뒤에 자꾸 말을 붙이는 분들이 적지 않기 때문에
'준비 찬송 000장'이라고 최소화한 것입니다.



3.문제는 '집회 예배'입니다.

(1)공회 집회와 찬송

아마 지적하신 분은 출석하는 교회에서 드리는 일반 예배 시간 문제가 아니고
집회 때를 주로 지적하신 것 같습니다.
집회 때는 준비 찬송을 30분 정도하고 예배가 시작되면 바로 설교를 하기 때문입니다.

정식 예배가 시작되었는데 찬송 없이 바로 말씀으로 시작하게 된다면
처음부터 공회 교회에서 집회 때는 늘 그렇게 했던 것만 봤던 분들은 아무 생각이 없을 것 같으나
일반 교회에서 집회를 참석해 본 분들이라면 너무 의아하게 느꼈을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이런 지적을 받아본 적이 없어 답변자 역시 이런 지적은 예상도 하지 않았습니다.


(2)공회의 집회 성격

일단 집회의 원래 성격을 이해하셨으면 합니다.
집회는 원래 '부흥회'라는 이름과 '사경회'라는 이름의 중립적 표현입니다.

평소 예배 생활을 통해 모든 교인들은 힘있게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데
세상생활에 휘말려 신앙의 힘을 잃게 되면 한번 보약을 먹어 원기를 돋우듯
개교회 집회를 하거나 아니면 교회들이 함께 모여 연합집회를 하게 됩니다.

'집회'라는 단어는 지극히 담담한 객관적 관찰식 표현이고
집회의 내용이 가라앉은 교인들의 마음에 불을 붙이겠다는 면을 강조하면 '부흥회'라 하고
집회의 내용이 말씀을 더 깊이 잘 배워 양식을 삼아야 한다는 면이 강조되면 '사경회'라고 합니다.



'부흥회'라는 이름의 집회는

온 교인이 찬송과 기도를 통해 가라앉은 심령이 번쩍 깨어날 수 있도록 모이기 때문에
설교 내용도 교인들이 뜨겁게 회개하고 기쁘게 찬송을 부를 수 있도록 방향을 잡게 되어
부흥회의 전체 분위기는 뜨겁고 격정적으로 진행됩니다.
부흥회라는 단어는 '방언' '철야' '간증' '찬송' '체험' '신유' 등과 주로 통합니다.

말하자면
신앙인들의 신령한 단합대회 성격이 있어
부흥회를 통해 소속감 사명감을 새롭게 하고 뜨거운 충성을 다짐하여
주저앉은 자기를 채찍질 하여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게 하는 면이 장점입니다.


'사경회'라는 집회는

평소 예배생활에서는 매일 현실 속에서 신앙으로 사는데 필요한 말씀을 배우게 되는데
말씀을 배운 다음 바로 현실 속에서 살아야 하는 일을 반복하다 보니까
말씀을 깊이 새기고 많이 배우는 면에 아쉬움이 있어
1년 1-2회 세상을 등지고 깊은 산속으로 가서 한 주간 내내 말씀만 배우는 성격의 집회입니다.
살필 '사査'에 성경 '경經'이니 말씀을 조사하고 살피는 집회라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사경회는 성경이 뭐라고 하는지 믿는 이치가 무엇인지 믿으려 하면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말씀을 가지고 살펴보고 따져보고 비교해보는 치열한 성경공부 집회입니다.
부흥회가 감정 위주라면 사경회는 지성과 이성을 위주로 하는 집회이며
부흥회가 찬송 통성 기도 위주라면 사경회는 말씀과 묵상기도 중심입니다.
부흥회는 시각적 효과가 즉시 있어야 하고 사경회는 조용한 혁명이 시작되어야 정상입니다.

더 이상적으로 설명한다면
진정한 부흥회는 사경회의 말씀 연구를 통해 불을 받고 그 불이 부흥회로 나타나야 하니
이 두 집회는 별도의 이름으로 별도로 진행할 일은 아닌데
순복음교회 감리교 성결교 계통은 부흥회 일변도라 할 정도이고
정통 장로교는 사경회 일변도라는 역사적 배경이 있습니다.


(3)지적과 과제

이론과 실행이 잘 조화되고
회개와 감사가 함께 손잡고 나가며
개인과 전체가 함께 필요한 것이며
경건과 도덕이 한 쪽으로 치우치면 안 되는 것인데

유능한 목회자라면
부흥회로 교인을 이끌어야 할 때는 힘있게 찬송하고 강하게 기도하게 하고
사경회로 교인들이 알고 믿어야 할 때는 가르치는 것도 잘해야 하니
아이를 기르는 부모가 어떤 때는 엄함으로 어떤 때는 사랑으로
어떤때는 아이의 자율을 기르고 어떤 때는 순종을 기르면서
경우에 맞게 잘 해야 하는데

부모가 자기 아이 하나를 길러도 말이 쉽지 실제 어려운 것처럼
교회도 앞서고 뒤서는 정도는 있다 해도 완벽하게 조절하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답변자의 경우 백목사님 생전의 서부교회와 공회는 참 그러했다고 느끼고 있으나
앞서 지도하는 스승이 없게 된 이 시점에서 지난 20여 년 답변자 걸어온 걸음을 되짚으면
어떤 때는 이 면이 치우쳐 탈이고 어떤 때는 저 면에 치우쳐 탈이니
배운 것이 있어 마음은 뻔한데 실제 걸음은 잰걸음이 되지 않고 좌우 요동이 많습니다.

답변자는 혼자 체험은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 그런 뜨거움을 전할 정도는 아니고
다른 공회집회들도 현재까지는 다 비슷한 경우입니다.
사경회로 시작하여 부흥회의 폭발로 이어지는 경우는 과거 백목사님 생전에 계속 되었으나
지금은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이상이 없고 끊어진 지 오래 되었던 시대와 같다고 탄식합니다.


현재 공회 집회는
찬송이 예배 중의 설교나 기도에 포함이 되어 있다고 말할 정도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일반 교회에서 드리는 일반 예배가 아니라 산집회의 특별한 면이 있어 그렇게 설명할 수 있으나
외부를 겪은 분의 지적을 받고 보니 이 역시 들을수록 답변자도 부자연스럽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지 과제를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지적한 것은 답변자 혼자 자연스럽게 '예배를 드린다'고 고치고 계속하게 되면
주변과 공회 내에서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수정되어 나갈 것 같은데
집회 찬송은 그 다음 예배시간이 빡빡하게 이어지기 때문에 정시 예배 시간 안에 또 다시 찬송을 넣게 되면 마치는 시간이 늦어져서 집회 전체 일정에 문제가 생길 것 같습니다. 이제 글을 막 배운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많은 학생들이 예배를 참석하고 있으니 이들의 실력도 염두에 둬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과제를 받았으니 잘 풀어서
하나님 기쁘하시도록 또 누가 봐도 옳다 할 수 있도록 해봐야겠습니다.


2시간 예배에 찬송 1장을 부르지도 않을 정도냐?
이렇게 말한다면 누가 지적을 해도 '너무 심했다.'할 정도입니다.
신학교의 여름 특강이라고 한다면 공회 집회는 신학강좌 이상이므로 전혀 이상할 것은 없지만 그래도 이상한 느낌을 가질 분들이 있을 것이고 또 그동안 참석한 분들도 이 말을 듣고 난 다음부터는 그렇게 느낄 것 같습니다.


(4)말이 나온 김에

이 노선 예배는 예배조차도 부흥회가 아니고 사경회입니다.
일반 교회 예배는 급격하게 사경회에서 부흥회로 가고 있는 추세입니다.
예배 때의 율동이나 찬양이나 여러 가지 행사가 교인을 깨우고 재미있게 하는 위주이고
이 노선은 모든 예배와 생활이 기본적으로 사경회에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근본 원칙은
사경회적 자세와 접근으로 출발하여 부흥회적 결과로 나타나야 하는데
그렇다면
이 노선은 기초만 닦고 그 위에 건설이 없어 단점이고 안타까우며
일반 교회들은 기초는 없이 건설만 하고 있으므로 부실공사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질문자께서 첨부한 '찬송과 예배 그리고 신앙생활의 근본 조화' 문제에도
직결되는 면이 있어 글이 여기까지 왔습니다.
다시 시간이 나면 이곳의 글과 다음 이어질 답변에서 일부 내용은 옮기기도 하고
재조정도 하여 뒷날 같은 문제를 가진 분들에게 참고자료가 되게 하면서
또 이 노선 내부인들이 항상 깨어 살펴야 할 점을 여기에 상시 전시하고 싶습니다.




찬송으로 시작한 문제를 가지고
답변자의 탄식은 여기에 이르고 있습니다.

집회의 시작과 중심과 성향이 뚜렷하게 사경회이므로
공회 집회가 정상적으로 잘 진행된다면 진정한 부흥회다운 부흥회로 나타나야 하는데

집회에 받은 말씀이
참석한 교인의 마음과 사상과 사고방식을 뜯어고치고
그 결과 뜨거운 회개가 솟구쳐 참을 수가 없는 고성이 터쳐 나와야 하는데
그리고 찬송을 통해 전체가 한 목소리로 회개하고 감사하고 찬양하는 열기에 덕유산이 들썩거려야 공회 집회는 비로소 온전한 집회가 되어지는데


질문자의 지적은 '준비찬송'이지만
이 문제를 따지고 되새기며 살펴보면 결국 이런 자책에 이르게 됩니다.
앞 시간 받은 말씀의 은혜가 그 다음 시간 준비 찬송에 불을 붙여 용광로가 되어야 하고
그런 30분의 찬송 시간이 있은 다음에 시작되는 다음 설교 시간은
전 시간보다 더욱 말씀을 받을 준비가 된 상태이니 비록 조용하게 설교록을 읽는 모습을 가지지만
말씀 속에 내용은 말씀을 듣는 이의 마음을 뒤흔들어 말씀 하나하나가 전부 간증이요 회개요 찬송이어서 옆사람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미친 사람처럼 울고 웃고 악을 쓰는 기괴한 행동을 계속해야 할 것입니다.

앞서 인도하는 사람이 모든 참석한 교인을 월등히 앞서 한 고개를 넘어섰다면
집회 전체 분위기 역시 그렇게 되는 것이니 그렇게 될 날을 소망합니다.
공회 노선의 찬송 생활은 현재 일반 교회의 찬송생활과 비교되지 않을 내면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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