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합니다.

공회내부 문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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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공회 초심자 0 0


질문자에 대한 성심을 다하시는 답변자께 감사를 드립니다.

1. 용어제기에 대한 부분에서 <예배드리다>는 수용의 자세로, <준비찬양>에 대한 답변은 분명치 않은 대답을 해 주셨습니다.

2. 아쉬운 것 첫째
질문자가 이 홈을 알게 된 초창기, 몇 번 둘러보고 이 홈을 잘 찾지 않은 이유 중에 하나가 홈에 글 쓰시는 많은 분들 중 이 홈의 타교단에 대한 시각(관)과 신앙판단이었습니다.
그런류의 글들을 계속 보고 접하는게 싫어서였습니다.

3. 아쉬운 것 둘째
질문자가 찬송문제는 이 홈을 통해 답변자의 일관된 자세를 충분히 보아왔기 때문에 제기하려 않았던 문제입니다. 허나, 찬송에 공회측의 변화가 있지는 않더라도 이 노선을 이끌어가시는 답변자의 찬송에 대한 이해를 조금이라도 구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답변하신 내용의 논조나 논리로 볼 때 그 “일관된 답변”을 이끌어 가실 것이라고 추론 되어 바쁘신 답변자의 시간을 뺏게 하는게 도리가 아닌 듯합니다.
질문자만을 위한 답변이라면 빠쁘신 중에 계속 답변을 이어 가지 않으셔도 괜챦을 듯 합니다. 질문자가 이제까지의 답변에 대하여 일일이 반론을 제기하고 설명하더라도 소모적 논쟁이 되어 먼저 제 개인신앙에 도움이 되지 않을 듯하고, 이 홈을 이용하시는 공회 교인에게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은 판단입니다. 하지만, 개인간증사례와 몇가지 아쉬움을 남김으로 마치도록하겠습니다.

4. 찬양에 대한 개인 간증소개
질문자는 모태신앙이 아니고 친구따라 교회간 사례입니다. 그 곳은 고신교단 중 큰 교회였으며 지금도 부족하지만 당시 저의 신앙은[영접의 문] 언저리에서 기울거리는 수준이었습니다. 당시 교회는 예배시간에 복음송을 금하고 피아노 이외에는 허용하지 않았고, 대학 진학 후 대예배 말고 오후예배에만 복음송과 기타악기 연주를 허용하는 수준이었습니다.
고3 때 ‘대학만 가고 나면 나도 열심히 신앙생활 해볼련다’는 각오를 품었으나 [놈팽이 신앙]으로 지내고 있었고, 은혜로 대학에 진학하였습니다. 고3때 각오을 시행하려고 “교회만 열심히 다닐련다”라고 생각하고 지내던 대학신입생활 중이었습니다. 어느날 선교단체 동아리 선배가 찾아와 그 단체를 소개하고 참여를 권유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 각오를 누그리지 않고 ‘교회만 열심히 다니겠다’고 대답하고는 잘라버렸는데, 그 후 여러번이나 친절하게 찾아와 안내를 하였습니다. 하여서 그 성의와 노력에 ‘한번은 가준다’라고 생각하고 그 동아리 모임에 참여하였습니다.
동아리 자체 모임이 있는 날 맘의 비장한 각오(?-절대로 가입안한다는 생각)를 하고 참석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동아리에서 찬양을 하는 모습을 보고 그날 저는 제 자신이 완전히 박살나고 깨어지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떠난 베드로가 예수님의 지시에 의해 갈릴리에 그물을 던져 많은 고기를 건저 올린 후 ‘주와 나를 떠나소서. 저는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한 사건과 견줄만한 개인적인 사건이 내게 일어났습니다.
그 지체(동아리회원들)이 찬양하는 모습은 제가 이제껏 보아왔던 고신교회의 경건한(?) 모습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복음송을 찬양하는데 모두들 자신의 온 몸과 맘, 감정을 다 드려 찬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한 형제는 일어나 자기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춤을 보이며 찬양드렸습니다. 현 공회 교인이 볼때는 [미친 짓], [또라이]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며 미친 짓이나 이상하다고 생각되지 않고 온전하게 온맘과 몸으로 기쁘게 찬양드리는 모습으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내 자신의 찬양모습을 되돌아 보았습니다. 예배시간이나 학생회 시간에 찬양을 <불렀으나> 이렇게 <드리는 수준>은 아니었던 저였습니다. 춤은 고사하고 찬송의 가사도 알지 못하고 글을 읽는 수준이었고, 팔과 다리 입이 내게 달려있었으나 하나님께서 주신 육신을 제대로 찬양의 수준으로 드려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드려온 글 읽는 찬양과 가지고 있는 팔, 다리가 부끄러워졌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제대로 된 찬송 한번 드리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그 자리에서 저도 모르게 통곡(?)을 하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팔고 다리 있어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고 입이 달렸으나 찬송이 아니었다고...............’ 그러면서 부끄러웠던 모습을 회개하며 눈물흘리며 기도하였습니다. 그 후 선교단체 동아리에 가입하여 열심히 활동하고 교회에서도 그동안 미뤄왔던 세례를 받으면서 현재까지 신앙생활을 해오고 있습니다.

5. 개인적인 사례를 말씀 올리는 것은 제가 찬양을 강조하고 싶어서 그런것이 아닙니다.
사람에게 각각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다 다르다는 주장을 하고 싶어서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환자에게는 질병치유로, 귀신들린자에게는 귀신쫓음으로, 창녀에게는 자유함으로, 각각 개인의 사정과 환경에 맞게 역사하셨습니다.
개개인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역사가 다다름으로 교회에서는 그런 통로를 열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6. 공회적 판단과 치우침의 문제
답변자계서 말씀하시길 타교단은 감정, 재미위주, 예배에 1/3시간 차지 등 이라고 하셨지만 그것은 외면만 모는 것입니다. 그 안에 예배자의 내면 예배태도가 어떤지 아시는지요? 외모로 보고 내면까지 판정할 수 없고 판단해서도 안될 것이 신앙인의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답변자께서도 인정하셨듯이 공회는 말씀이 강합니다. 찬송은 감정표현이 되지 않으나 내면은 그 어떤 것보다 강하다 하시지만 감정표현과 외형이 그렇지 않으니 모든 교회교인이 그렇다고도 말 할 수 없습니다. 제가 제기한 것은 치우침에 대한 문제입니다. 타교단이 감정과 재미에 치우친다 하시지만, 그럼 공회는 말씀에만 치우치지 않습니까? 그런 논리로만 보면 타교단을 판단할 게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그래서 우리의 자세는 판단이 아니라 나 개인의 신앙을 돌아보는 수준으로 돌아와야 하고 치우침이 있다는 것을 인정되면 고치면 되는 것입니다.

7. 하지만 공회교인 대부분이 본인의 문제제기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에서 제 고민의 문제는 혼자서 기도함으로 결정할 문제 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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