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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회내부 문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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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 내용 공개)

원래 조용하게 믿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교역자들만 앉아서 지적을 받고 내부적으로 고치는 방향으로 모임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지적하는 분 중에 교역자들이 부끄러운 부분이 공개되면 목회가 곤란해지지 않겠느냐는 우려를 수 차 반복하였는데 이런 생각이 그 분만 아니라 다른 교인도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 노선의 기본 방향과 반대되는 것이므로 지적 받은 내용들을 전면 공개했습니다.

부공3 교역자회는 교역자 기득권을 위해 공회나 교회를 맡는 그런 차원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사직을 해야 할 문제가 있으면 공회와 교회를 위해 주저없이 그렇게 할 것이며 고쳐야 할 점이 있다면 고치면 된다는 것이 공회 노선이므로 이런 문제를 두고는 아주 간단하고 확고한 입장이라고 생각합니다. 틀렸지만 모른 척 하고 눌러앉는 기득권은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교인의 생각도 틀릴 가능성이 있으므로 교인이 말한다고 무조건 고치거나 자복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습니다. 서로 양심껏 하기를 노력하되 의견이 다르면 잠깐 과제로 두고 살펴보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용의 구체적 설명)

07.9.24.과 10.4.에 지적된 내용 중에서

첫째는 하나님과 목회자 관계의 순수한 신앙 차원을 지적한 것이 있고
둘째는 목회자 처리 내용 중 실무적으로 잘못했다고 지적한 것이 있는데



첫째, 지적한 순수 신앙 내면에 대하여서는

목회자로서 하나님 앞에 늘 죄송하고 부족했던 부분을 지적 받았습니다.
이런 점에서 지적하신 분들은 깨어 사는 분이므로 당연히 지적했습니다.
목회자들이 스스로 고치고 자라갔다면 교인이 지적하는 일이 없었을 것인데
앞서 자기를 고치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종들을 붙들고 야단하신 것입니다.

책망 받은 부분들에 대하여
전체 목회자들은 심각하게 차분하게 개선하도록 노력하여 시간이 지나면
말 대신에 행동으로 개선이 되었다고 교인들에게 평가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의견 일치를 보았습니다.



둘째, 지적 내용은 사건 개별적 대처와 전체 흐름으로 나누어 볼 때

사건 개별적 대처는 공회 신앙 노선을 벗어난 것이 없었습니다.
다만 전체 흐름으로 볼 때 은혜스러웠느냐고 한다면? 부족했습니다.

지적한 내용들 중에 '관서'나 '교육당국' 등을 상대로 있었던 문제들과
사업주의가 되었다고 지적 받은 구체적 문제들의 경우
어떤 일도 공회노선에서 수없이 생각하고 철저하게 계산한 다음 처리했고
교인 몰래 하다가 들키면 덮어야 할 그런 사안으로 한 것이 없으며
어떤 사안이든지 과거 사실 전체가 공개되면 교역자의 자랑처럼 될 수 있거나
혜택 보는 교인이 그들 신앙에서 손해가 될까 해서 공개치 않은 것은 있습니다.
교육당국과 관서와 사업 관련 그 어떤 내용도 이해 교인만 양해 할 수 있다면
어떤 자리에서 어떤 내용이라도 전면 공개를 다 할 수 있습니다.

지적하신 분은 개별 상황의 사실 관계를 잘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지적하신 분이 정확하게 사실 관계를 아신 사안은 지적하신 분과 교역자가
주와 복음의 유익을 위해 우리가 희생하고 대처해야 한다는원칙은 동일한데
개별 사안을 두고 어느 방법과 어느 정도로 대처할 수 있는지를 두고는
그 동안 듣고 배우고 느낀 것도 너무 다르고 또 후천적 체질도 너무 달라서

교역자 기준으로 보면 지적하신 분은 공회와 신앙현장을 전혀 모르는 분이 되고
지적하신 분 기준에서는 교역자가 깡패이며 공갈범이며 부랑자가 됩니다.

분명한 것은
지적하신 분이 사랑으로 지적했고 공회를 아끼는 마음이었고
평소 그 신앙은 부공3 교역자 중에서도 가장 앞세울 분이었으므로
지적하신 분의 진정성이나 비판하는 중심에 대하여서는 전혀 의심이 없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지적하신 분은 늘 깨어 기도하는 분이므로
비록 목회자가 현장 목회와 심방 차원에서 교회와 교인을 위해 중심이 좋았다 해도
목회자를 넓게 보고 길게 볼 때 '틀렸다'고 한 면을 두고는 이의가 없습니다.
목회 현장에서 교회와 교인을 사랑하고 아끼고 신앙유익을 위해 뛰었는데
결과적으로 인간과 세상에 가까워졌고 하나님과 천국과 멀어졌다는 지적 앞에는
평소 목회자로서 스스로도 불만스러웠고 죄송했고 죄책감을 떨쳐 본 적이 없습니다.



(가장 안타까운 것)

백목사님 생전에는 전화로 질문하면 명쾌하게 설명을 받고 그대로 순종했는데
이제 애매한 문제를 두고 지도 받을 데가 없으므로 소경이 더듬는 꼴입니다.
그래서 과거 배운 것을 생각하여 매사 최대한 조심을 하고 신중하게 대하나
그 판단이나 결과가 다 옳다고 생각해 본 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최소한 공회 신앙노선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 할 때 그 다음 처리한 일들이고
공회노선이 명백히 금하는데 알면서 무슨 이익을 위해 몰래 하지는 않았습니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바로 이 대목입니다.
한 가지씩 살피고 조심했지만 그것으로 전부가 아니며 전부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씩 바로 한다고 했는데 전체로 볼 때 방향이 통째 잘못 될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씩도 바로 하고 전체 방향도 바로 잡았다 해도
그 걸어가는 순간이 하나님 동행과 하나님 기뻐하는 순간이었느냐는 면으로 본다면
우리는 처음부터 그럴 자신도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일이든 하는 데까지 하는 것이지
우리가 하는 일이 하나님 기뻐하는 일이라고 자신하고 단정한 일은 없습니다.
상황을 볼 때 적어도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지 않느냐는 것만 판단하고 나온 것입니다.



(몇 가지만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 교육 당국과의 마찰

학교 교사가 목사에게 공갈 협박을 당해서 벌벌 떨며 교인에게 전화를 했다는데
그 교사가 그렇게 떨고 그렇게 말을 했다면 충분히 그랬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만일 평범한 교사의 평범한 일로 그를 벌벌 떨게 했다면 목회자 언행이 잘못일 것이고
만일 교사가 있을 수 없는 일을 했다면 앞뒤 상황을 살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교역자의 당시 판단으로는
현재 사회 상황에 교사가 그렇게까지 학생에게 제사지내도록 강요할 수 있을까
현재 우리 사회에서 학부형이 그토록 학생이 당하는데도 입을 닫고 참았을까
교사가 다른 학급까지 교회를 그렇게 욕을 하도록 시끄럽게 할 수 있었을까
이런 상황으로 봤습니다.

더구나
해당 학교 학생의 최소 3분의 1 이상은 항상 공회 교회를 출석하고 있으며
학생 중에는 불신가정도 있으며 동네는 거의 전부 집안으로 얽혀져 있습니다.
교회와 목회자와 신앙있는 교인이 희생할 문제면 애당초 문제가 되지 않겠으나
학생들은 자발 신앙 정도가 아니고 불신 가정들이 많은 상태에서
학교에서 계속 이 문제를 떠들어 온 동네에 일방 이야기가 나가게 하는 것을 두고
당시 교역자는 최대한 정중하게 교사 스스로 더 이상 그렇게 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교사나 학교나, 온 동네 불신자나, 우리 교인이나 학생에게 유익되겠다고 판단했습니다.

앞으로도 그렇고 오늘도 누가 홈에서 이런 문제로 상담한다면
신앙수준에 따라 대응이 달라질 일이지 무조건 참으라 안내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교사가 어떻게 무슨 일을 했는지 일체 확인하지 않고
교사 입에서 무서워 벌벌 떨린다고만 했으면 교회의 대응은 무조건 다 틀렸는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교인 중 한 학부형에게 그런 표현을 한 것을 두고도 많은 면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 하필 그 교인에게, 그런 표현을, 그렇게 했겠는가?
그것이 그 교사가 자기 스스로 뒷감당하지 못할 일을 했다고 뒷늦게 인식하자
자기 방어와 자기 해결을 위해 가장 적절한 표현이며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교회와 목회자 이름을 말하고 교사에게 전화를 해야 했으므로 신중했고
알릴 교인들에게 다 알렸고 이후 교회에서도 소상하게 당시 일을 설명했습니다.
전혀 감춘 것이 없고 전체 교인들이 소상하게 전말을 다 알도록 처리했습니다.
교장 교사 멱살을 잡겠다는 교인
교육부나 법원에 책임을 묻겠다는 교인
불신 가정 학생과 이웃 불신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끝까지 두고 볼 것이냐는 교인
그리고 지적하신 분의 경우는 끝까지 어떤 대응도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엇갈린다면
교역자로서 이 문제는 무조건 개입금지 사항이냐 무조건 맞대응 할 일이냐?

당시 처리 내용 자체를 두고는 지금도 무엇을 잘못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만큼 신중하게 처리했고 최대한 존중과 예의와 최선을 다했습니다.
처음에는 학부형으로서 간곡하게 사정만 했습니다. 막무가내였습니다.
다음에는 이 문제가 만일 사회 문제가 될 때 뒷감당을 하겠느냐고 했습니다.
만일 이 문제를 두고 교육부에서 과연 잘했다고 할지 상부에 물어보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하자 그때서야 그 동안 모든 태도를 돌변하고 사과를 했습니다. 이후 과정은 더 이상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오늘까지 이런 문제가 있으면 늘 그렇게 처리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최대한 참고 양보하고 당합니다. 복음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조건 참아야 하는가?
당하는 사람의 신앙과 수준과 실력과 전체 구원의 유익 문제를 두고 심각히 판단한 다음
만일 필요하다 하면 어디까지 할 수 있는가, 어떻게 할 수 있는가를 두고 살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당시 신앙없이 처리했다고 총론적으로 비판하는 사람이 있다면
교역자는 무조건 자신을 돌아볼 문제이지 달리 설명하고 변명할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 무슨 이야기가 어떻게 되었는지 구체적 사실관계가 나온다면 그것은 별개 문제입니다.



- 관서 문제

교인들이 사회생활이나 사업에서 관서로부터 너무 불법행위로 큰 손해를 보면
경제 손실도 크고 신앙생활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고통을 겪는 수가 있습니다.
사업 적격 건물인데 담당자들이 없는 법으로 못하게 하여 고초를 겪는 교인들
전혀 돈 들 필요가 없는데 큰 돈을 주고 필요 없는 서류를 해오라 시키는 경우
치료비를 1천만원 받아야 하는데 50만원 밖에 못 준다고 거짓말 하는 직원들

이런 문제들이 도시의 똑똑한 교인들이면 아무 문제가 될 리도 없는데
무조건 당하는 교인이 그 문제 때문에 가정과 경제에 영향을 받고
결국 신앙까지 손해를 볼 수 있는 경우가 있다면 목회자는 어떻게 해야겠는가?

기도로만 해결하고 담당자의 어떤 처분이든 무조건 따르라고 지도해야 하는가?
기도와 함께 우리 사회의 법과 사리를 따져 지혜롭게 대처하라는 지도도 있고
때로는 지적 책망해서 담당자 잘못을 바로 잡아 주도록 지도해 줄 수도 있는가?
해당 교인이 너무 억울한 문제를 당하는데 교역자 외에 도와 줄 사람이 없다면
교인 사랑과 심방 차원에서 그 교인 대신에 담당자에게 시정을 요구하여 도울 수 있는가?

어떤 문제든지 교인이면 무조건 돕는다고 도와 준 기억은 없고
어떤 문제든지 관서 담당자들을 혼부터 내고 야단치고 공갈 협박한 적은 없고
매사 도울 문제인가, 신앙 유익이 어떤가, 교회 손해가 없는가를 생각했고
도울 때는 만일 도운 사람이 공회 목사였다는 것이 알려질 때 덕이 되겠는가?
이 면을 살펴 도운 것도 가려서 했고 도울 때는 모든 선을 조심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교역자가 도운 문제를 두고 양쪽 내용을 공평하게 설명할 수 있다면
교역자가 도운 내용과 상황은 극찬을 받을 정도가 대부분이었다고 생각하며
간혹 애매한 경우가 있었으나 교인을 사랑한다면 마땅히 그랬어야 했다는 일입니다.

적어도 오늘까지 이 나라 관서 담당자들의 구조적이며 체질적인 문제점은
너무 모순이고 잘못된 점이 한도 없이 많은데 그것은 누가 그 자리에 앉아도
우리 사회 전체 수준이 그 정도이기 때문에 별반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들의 처리 때문에 교인이 너무 억울한데 신앙에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라면
목회자로서 아는 범위에서 또 도울 정도는 도왔습니다.



(이번 지적의 결과)

그러나 여기까지 설명은 교역자의 중심과 취지만 해명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과연 하나님의 뜻에 명중이냐고 묻는다면 답변자는 눈이 어두워 단정하지는 못하겠고
다른 사람보다는 이 노선 사례를 많이 알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는 많이 살폈으나
단정하라면 자신있게 단정하지는 못하겠습니다.
백목사님 사후 답변자 스스로 걸어온 길은 더듬어 겨우 겨우 한 걸음씩 걷는다고 걸었지
과연 하나님 뜻에 명중이냐 묻는다면 이 홈의 설교록 자료 전면공개에 이르기까지
솔직히 단정적으로 하나님 뜻에 명중이란 표현은 하지 못하겠습니다.

다만 매 판단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래도 이것이 낫지 않겠는가, 이래야 하지 않겠는가!
이 정도 수준에서만 판단했고 그 판단에 따라 실행해 왔을 뿐입니다.

물론 약하여 넘어진 것도 많고 부족하여 알면서도 실행 못한 것도 적지 않으나
교인들을 돕는다고 관서 등과 마주친 일들의 거의 전부는 이러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지적하신 분은
몇 가지 구체적인 사례를 가지고 듣고 본 것을 예로 들었습니다.
그 구체적 사례는 지금도 분명히 답변자가 잘못 한 일이 아니라고 단정합니다.
다만 그 한 가지 일과 일을 10여 년 세월 속에 펼쳐놓고 전체를 가지고 말할 때
답변자는 맡고 있는 교회의 목회자냐 아니면 교인들의 사업을 돕는 사업가냐?
이렇게 말한다면 답변자는 교인들의 뒤치닥거리를 하는 브로커 노릇을 했다고
인정할 만합니다.
이런 점에서 답변자는 이번 지적을 보통 지적으로 받지 않고 답변자 앞으로 목회 방향 자체를 바꿀 정도의 중요한 경고로 받고 있습니다.

교인 사랑 때문에 시작했다 하지만 과연 하나님께서 원하는 만큼 그렇게 했느냐?
너무 넘쳐서 탈이었다고 인정이 됩니다.
그 시간들만큼 성경도 읽지 못했고 또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세상 법리와 물정은 그 방면에 최고 전문가 수준까지 되었지만 그 대신 이 홈에서 약속한 '성경개론' 교재 편찬도 늦어졌고 백영희전기작업도 수 년 늦어졌습니다. 또 답변자 스스로 읽어야 할 설교록도 손해를 봤습니다. 또 직접 손발로 교인들을 돕는다고 설쳤던 그 시간과 노력을 가지고 교인들을 위해서 그만큼 분량의 기도를 했더라면 하늘에서 능력으로 우리 교인들을 아듬어 초월의 삶을 살도록 했을 것인데 그렇게도 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면을 생각한다면 다른 노선에서는 답변자가 걸어온 지난 10여 년 세월은 큰 자랑거리가 되어야 하겠지만 이 노선에서는 아주 엉뚱한 짓을 했다고 큰 책망을 받아야 할 사안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성경 읽고 기도하고 심방하는 일만 주력해야겠습니다. 답변자를 이렇게 결심하고 걸어가는 방향 자체를 바꾸도록 한 이번 모임의 지적자께는 한없이 감사할 뿐입니다. 그래서 어떤 지적을 해도 잠깐씩 설명은 드렸으나 전체적으로 지적에 대하여 거부하거 반대하거나 달리 이의하지 않았습니다. 답변자는 그 지적의 원 뜻에 충실하도록 실제 바꿀 것입니다.


현재 이 홈 운영조차도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적하신 분은 교인인데도 인터넷을 전혀 보지 않는 분이고 이 홈도 보지 않습니다.
교인이 이렇게 하나님만 가까이 하려고 세상 기술과 소식을 끊고 살고 있는데
이 노선 목회자라는 사람이 인터넷에서 타이핑을 치고 있는 것도 부끄러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알리시고자 한다면 누구를 통해 어떻게라도 알리실 것인데
공연히 인터넷에 피동이 되어 사람 기술과 노력으로 설치고 소란스럽게 했는가?

한편으로 설교록 출간도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듣고 알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직접 역사하실 것인데
왜 한 교회 목회자가 총공회 전체를 대표하고 서부교회 할 일을 가져와서 난리였는가?
심지어 번역도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하실 것인데 시골 교회 교인들이 자기들 낸 연보의 사용 의미와 효력과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도 모르는데 지나친 것이 아닌가? 방언의 역사가 오늘도 있으며 하나님의 복음 역사는 한 사람의 사람 노력이나 기획이나 의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닌데?

사실 총공회 기본으로 돌아와서 살핀다면
가장 신앙적이고 가장 성경적이며 가장 이상적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져가게 됩니다.
무리 할 것 없고 유유하며 넉넉하며 만사를 다 내어주고도 넘치는 세계에 살게 됩니다.
답변자의 경우는 1983년 4월까지 그런 세계를 살았던 기억이 뚜렷합니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 오늘까지 너무 막 살았고 너무 주님과 거리가 멀어졌습니다.
남들은 답변자의 경력에서 나오는 활동만 접하고 과대 평가할 수 있겠지만
답변자는 자기 내면의 하나님과 거리가 과거와 너무 성글어져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연구소 일이 공회적 일이 또 맡은 교회의 일들이 이 한 몸 바쳐 가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여 정신 없이 뛰어 왔는데 어느 날 문득 지적을 받고 나니까 모두들 엉뚱한 짓을 한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고 있습니다. 아직 단정까지는 가지 않았습니다. 지금 부공1 교회들은 어느 누구 하나 홈 운영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기도만 하고 성경만 보는 진정한 그리고 순수한 공회적 목회자들의 때묻지 않은 모습니다. 그들보다 더 그렇게 살았던 답변자가 언제 어느 순간부터 이런 홈을 통해 이름을 외부에 알리고 모든 사람들 앞에 공회 문제를 두고 무슨 연예인처럼 살아 왔는가? 한탄스럽습니다.

설교록, 녹음테이프, 홈운영, 조직신학, 백영희전기작업, 시집....
이 모든 것이 신앙 어린 분들과 외부 노선에 가까운 분들은 반가운 일이라 하나
이 노선을 깊이 걷고 분들은 답변자를 백목사님 이름을 팔아 자기 명예주의와 인기주의로 산다고 비판을 하고 있는 줄 압니다. 구체적으로 그런 말들을 들었으나 이번 지적을 받고 지난날을 돌아볼 때 과연 그럴 필요가 있었는가?
이번 지적하신 분이 홈운영을 통해 설교록이 얼마나 더 많이 나갔는가?
이번 영어 번역 설교를 영어홈에 올렸으나 몇 사람이나 반응을 했던가?
이런 지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사실 이 홈 운영 이전에 이런 문제를 두고 오래 동안 망설였습니다.
그보다 앞서 백목사님 사후 과연 이 노선 자료를 전하고 연구를 해야 하는가
문제로 수 년간 크게 고민하고 혼동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 다시 당분간 또는 그 이상 시간을 통해 얼마나 고민을 할지 모르겠습니다.
우선 모든 것이 단정이 될 때까지 하루 일정 시간만 정하여 홈을 대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여 백지 상태에서 살펴볼 기회로 이번 기회를 가졌습니다.
다시 시작하는 부분이 있다 해도 이전과 자세가 크게 달라질 것 같습니다.
혹시 어떤 결정을 내릴지 답변자도 모르겠습니다.
만사 신중하게 그러나 철저하게 살펴보겠다는 것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적어도 기득권에 붙들려 밥그릇과 명예를 차지하는 길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에는 이 노선에서 받은 바가 너무 골수에 깊이 박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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