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 발전사, 공회 교리의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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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 발전사, 공회 교리의 위치

설명
yilee 0 4


1. 교리의 형성 과정
- 교리와 성경
구약교회에 구세주를 주셨으나 구약교회가 구약성경을 읽고도 예수님을 몰라 봤습니다. 성경은 받았는데 성경이 안내한 예수님을 못 박았습니다. 이들이 구약의 글은 읽었으나 구약의 가르침을 몰랐던 것입니다. 교리란 성경을 성경으로 읽었느냐는 것을 알 수 있는 표시입니다.

신약교회에도 성경을 주셨습니다. 성경은 모두 가지고 있고 읽고 있으나 그 책을 책으로만 읽는 사람과 그 책을 성경으로 읽는 사람은 아주 다른 길을 걷게 됩니다. 교리라는 것은 바로 이런 갈랫길에서 성경을 어떻게 읽었으며 성경을 어떤 성경으로 읽었느냐는 것을 알 수 있게 합니다. 죽은 교리는 성경에서 더 멀어 지게 하나 산 교리는 성경을 알았다는 증거입니다.

- 교리의 형성
교회와 교인이 정상적인 상황은 성경 하나만 들고 읽고 믿고 그대로 살고 천국에 갑니다. 그런데 악령이 곁길로 끌고 신앙 길을 막으려고 손을 댈 때 성경을 가감하고 흐립니다. 구약만 진짜라거나, 신약만 진짜라거나, 신구약이 다 진짜인데 적을 때 오류가 있었다거나, 아니면 성경책을 앞에 두고 절을 해야 한다는 등 조금만 바꿔 놓으면 신앙은 헛일이니 온갖 시도가 들어 옵니다. 하나님은 세 분이다 예수님은 하나님 축에 들지 않는다 등의 온갖 이야기를 한꺼번에 풀기도 하고 하나씩 사용하기도 하는데

세계 교회가 다 함께 인정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 성경인가' '하나님은 삼위일체신가?' '예수님은 신인양성일위신가' '구원은 믿음인가?' '믿음 후 우리는 왜 노력하는가?'라는 순서로 내려 옵니다. 이 과정에 대해 이 홈의 '/초기화면/보관자료/연구서적/총공회약사/와 /연구실/연경교재(5)/ 등에서 비교적 자세히 설명을 했습니다. 개략적인 교리 전개 과정입니다.



2. 공회 교리의 형성 과정
- 1952년 이전
백 목사님이 1936년에 믿고 1952년에 부산으로 이동을 하게 됩니다. 이동 전에는 거창의 개명이라는 덕유산 자락 깊은 골짜기에서 몇 교인들을 신앙으로 인도하는 일에만 주력했고 교계나 신학을 접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있다 해도 관심조차 주지를 않았습니다. 성경 읽고 실행하고 모르는 것은 기도하고 충성하다 보니 하나님과 동행과 능력은 사선을 넘었고 온 교인들도 그리 되었고 그 골짜기의 그 세계는 이미 지상낙원이었습니다. 외부에서 신학 책에 이렇고 교계의 제도가 이렇다는 소리는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 1952년의 부산
다윗을 양 몇 마리 맡겨 길렀던 주님이 때가 되어 왕궁을 맡기시려고 끌어 낸 것처럼 주님도 그 분을 부산으로 옮겼습니다. 그 시골이 좋아 필사적으로 버티며 주를 위해 죽겠다는 사람을 오지 않을 수 없도록 했습니다. 이제 교계 한 복판에 선 것입니다. 죄 되지 않는 이상 신학도 해야 했고 주변을 접촉하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혼자 시골에서 읽고 깨달았던 것이 신학교의 2천 년 교리 역사와 비교할 때 같았으므로 한 편으로는 이 세상에는 동지들이 있다는 사실에 기뻤고, 또한 서로 연락 한 번 하지 않아도 이렇게 같다는 사실은 성령님이 한 분임을 깨닫게 했으니 더욱 기뻤습니다.

신학교와 부산의 교계를 통해 백 목사님은 역사의 전통 교회와 정통 신학이 과목을 붙이고 항목을 나누고 제목을 붙인 그런 표현들 그런 체계를 익혔습니다. 전혀 모르고 있다가 배우는 사람은 남의 말 배우듯 어려운데 목사님은 미리 알고 있었으나 일반적인 표현법과 체계를 익히는 것이므로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고 백으로 나갈 정도였습니다. 꼭 같은 것이라 해도 교계 전체가 상식적으로 아는 단어나 표현을 익히지 않으면 의사 소통에 불편하며 오해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열심히 익혔습니다. 그렇지만 가끔 아주 다르게 깨닫는 것도 있었으니 이런 것은 두 견해를 비교하며 확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장로교의 목사는 설교를 맡고 장로는 교회 치리를 맡는다는 교리가 있는데 백 목사님은 설교를 하지 않는 장로의 치리는 행정을 위한 행정이 되어 바로 될 수 없다는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그런 문제점들이 곳곳에 있다 해도 자기 혼자 깨달은 것을 역사의 선배들이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반갑고 그들이 선배이므로 후배 된 입장에서 그들의 표현 방식을 열심히 익혔습니다.

그래서 1950년대의 백 목사님 주해서나 설교에는 신학교 강의 내용들이 많이 나타 나는데 바로 이런 상황 때문이었습니다. 자기처럼 성경에서 막바로 그런 교리들을 깨달을 정도라면 그런 선배들의 성경 원어 소개나 성경 시대의 여러 신학적 일반 소개도 관심 있게 들었고 또 전하기도 했습니다. 1952년부터 1959년까지의 50년대 10여 년이 바로 백 목사님에게는 우물 안의 개구리가 세상 구경을 하던 시기였습니다. 다행스럽게 혼자 있던 우물 안과 세상은 범위만 다르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았습니다.

- 1959년 이후
실제로는 신학교를 공부하면서 이런저런 문제점들을 눈여겨 보고 있었는데 우선 그가 할 일은 선배들이 바로 깨달아서 가르치는 것을 최대한 그대로 익혀 두는 것이었으므로 그가 곳곳에 이견을 갖고 있는 것은 전면 보류하다 시피 했습니다. 박윤선 목사님이 1950년대를 통해 제일 아낀 제자며 학생은 바로 백 목사님이었습니다.

그런데 진리 연구의 절대성 때문에 그는 성경과 성령의 깨달음으로 명확하게 자신이 있던 점들은 신학교 내에서도 질문을 했고 이의를 제기했고 점점 그 강도를 높여 갔으니 신학교 교수들과 교단의 지도자들은 백영희라는 이름은 경외로웠습니다. 바로 그 시기에 기본구원이나 건설구원과 같은 개념은 명확하게 그런 단어를 사용하지는 않았다 해도 제일 강하게 갖고 있던 개념입니다. 천국에 차이가 있다, 중생으로 전부가 아니라, 신앙의 건설은 각자 받은 자기 은혜로 어떻게 충성하느냐는 자기 투쟁에 달렸다는 등입니다.

성경으로도 실제 말씀대로 살아 본 경험으로도 너무 명확한 문제인데, 신학교에서는 2천 년의 교리사를 들어 그 부분에 대해서는 모르겠다고 하거나 얼버무리거나 아니면 백 목사님의 생각을 오해라고 눌러 버리니 이 부분은 장기 과제로 넘겨 지게 됩니다. 이런 문제를 하나씩 풀어 가는 과정에서 마음 속에 영을 찾게 되고 영과 건설구원을 함께 가지게 되자 바로 모든 것은 깨달아 지며 오늘 공회 교리가 형성 됩니다.

바로 그렇게 차원을 달리 하도록 발전 되던 시기에 고신 교단 내에서 소송 금지 문제 등 여러 내분에 휘말리면서 백 목사님은 제명을 당하게 되는데 그로 인해 교단과 신학교로부터 얽매이지 않고 자유하게 되자 백 목사님은 곧 바로 외양간에서 놓인 천리마처럼 자기의 길을 달립니다.

- 인성론과 구원론의 전개 과정
건설구원이 손 쉽게 간단하게 먼저 앞 서 갔고, 영이라는 존재에 대해서는 어떻게 명확하게 결론을 내리기 애매한 시절이 있었는데 신학이 이분설로 명확하게 단정을 하게 되니까 백 목사님은 중생이란 마음이 아니며 중생이란 중생 이후 죄를 짓지 않는 부분이 있고, 중생이란 중생에 관련 없는 부분이 평생 자기 투쟁을 통해 자라 가는 면이 있음을 밝히며 인성론과 구원론이 맞물려 나가고 있었습니다.

다 설명하려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 듯하여 이 정도에서 그치겠습니다. 지금 설명하는 이 부분은 공회 내에서 아무라도 '백영희의 인성론과 구원론의 전개 과정'을 박사 학위 논문으로 연구하고 밝히면 좋겠습니다. 신학이라는 사울의 갑옷 투구 무기로 이 노선의 다윗 신앙을 뒤집어 씌우면 바보 되기 알맞는데 신학에 체질이 맞는 분들은 사울이 되어 다른 길로 가 버리고, 다윗의 신앙을 가진 분들은 사울의 무장을 빌려 사진만 한 번 찍으면 되는데 답변자처럼 그 5 분을 견디지 못하고 뛰쳐 나가 버리니 다윗은 되지 못하고 다윗의 흉내만 내다가 아주 우습게 되었습니다. 네이처나 셀과 같은 세계 과학계의 최고 학술지에 등재 될 소재가 우리에게는 수도 없이 많은데 모두 사장 되고 있습니다.

- 열처녀 비유
성경 전부의 해석이 다 달라 질 천지개벽의 교리인데 여러 곳을 들쑤셔 놓으면 벌떼처럼 달라 드는 주변 교회들 때문에 제대로 된 복음운동을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1960년대에 마25장의 열처녀 비유를 하나만 먼저 제시하며 교계를 향해 외칩니다. 중생 된 우리는 전부가 슬기로운 처녀며 지금 전 세계의 교인들은 전부 기름 준비를 잘 하고 있는가? 세계가 둥글다는 말을 한 번 내 놓은 이상 결국은 그 말이 이기게 됩니다. 실제 마25장은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 성구 하나가 이 교리를 설명하는 문제에 대세를 잡게 되자 그 다음에는 1980년대에 눅16장의 홍포 입은 부자를 제시하며 믿는 우리는 전부 나사로처럼 살고 있으며 홍포 입은 부자꼴을 하는 사람은 없는가? 이 성구를 설명하게 되면서 필연적으로 심신의 기능을 지옥에 버리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가르치게 됩니다.

기능 구원을 설명하는 부분부터 공회 내에서도 이해가 어렵고 오해 소지가 있겠다며 반론을 펴는 분들이 줄을 잇습니다. 실은 1단계를 바로 이해했으면 2단계는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넘어 갈 문제인데 1단계조차 이해가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2단계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전체적으로는 이미 교리 논쟁의 대상이 되지 않을 정도의 확고한 체계였기 때문에 백 목사님은 이후 우리가 받은 중생의 본질은 무엇인가? 지옥 가지 않음이 전부인가? 천국 문에 발을 딛고 들어 가는 것은 전부인가? 그 깊이를 더하다가 중생의 생명은 하나님께로서 난 씨라는 점을 마지막 해에 집중적으로 가르치다가 하나님 앞에 섰습니다. 그 생명을 제대로 안다면 마치 DNA 염기 분석을 완료한 생물학과 같습니다. 이후 남은 것은 생물학이 창조주 하나님을 대신한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의 세상이 펼쳐 집니다.



3. 공회의 성장 과정이 기독교 제일 중심에 있었다는 점
예수님의 승천 후 사도행전의 초대교회가 있었고 사도행전의 마지막이 로마로 간 바울의 역사로 끝을 맺습니다. 성경도 그렇고 또 실제로 성경 역사 이후에 기독교의 초기는 로마 교회가 역사의 중심에 섭니다. 로마교회의 타락이 1천 년을 가게 되고 이후에 루터 칼빈 재세례파 등 많은 개혁운동이 일어 납니다. 투쟁의 강함을 두고는 수 많은 순교자를 낸 형제교회도 있고 여러 분파들이 있으나 역시 칼빈의 이름은 16세기의 종교개혁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이후 그를 잇는 신앙이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으로 나타 났고, 그 신앙이 미국으로 건너 가게 됩니다. 물론 유럽 곳곳에 크고 작은 정통들이 있고 여러 개혁교단의 이름으로 독자적으로 발전한 곳들이 있지만 시대적 역사는 대륙에서 미국으로 넘어 갔다고 봅니다. 미국 대륙의 발견과 청교도의 이동과 그 곳이 향후 세계의 중심에 서서 오늘까지 내려 오는 것은 물질 중심으로 본 것이 아니라 그 신앙의 흐름과 경향이 그렇습니다.

미국의 신앙 중에서도 가장 순수하고 보수적이며 제대로 된 신앙의 일부가 한국에 전해 졌고 한국의 오늘 신앙은 교계 안팎의 별별 비판을 다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벽예배의 생활화까지 이룬 이런 하나의 사례를 볼 때 세계 교회의 신앙 중심이라 하겠습니다. 야곱의 열 아들들이 망령이요 패륜이었지만 그래도 야곱이 이삭을 이었고 야곱의 아들 요셉이 형제들을 구출해 내지만 뒤에 보면 유다 지파로 계통은 이어 집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욕을 한다 해서 그 속에 숨어 있는 생명과 보배까지 버린다면 곤란합니다.

한국만이 세계적으로 장로교가 대세를 이루고 장로교는 원래 신앙이 부패한 교파인데 한국의 장로교는 보수 일색입니다. 한국의 장로교가 세계 기독교의 전부라거나 이 외에 대안이 없다는 말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계통이 세계 기독교의 정중앙의 끝자락에 섰음은 쉽게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한국 교회가 이런 의미를 가졌다고 본다면 한국 교회 내에서 공회의 위상이라는 것은 가시권 안에 들어 온 역사니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다고 보겠습니다.

용문산 나운몽 장로님이 성경의 동방을 오늘의 한중일 극동으로 보고 동방의 별을 자기로 끌어다 붙이는 바람에, 그리고 신천지며 무슨 이단들까지 다 그렇게 말을 하는 바람에 지금은 한국 교회가 세계 중심이라고 말을 하면 또 하나의 이단이라고 오해할까 봐서 말하기도 조심스럽고 또 사람이 겸손해야 한다는 점을 기억하면 더욱 조심스러울 뿐이고, 성경의 동방이 오늘 경도 130도에 있는 한국을 말한다는 것은 잘못이나 결과적으로 한국이 오늘 말세에 신앙의 중심지가 되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국내 거의 모든 신학자들이 미국과 유럽에서 공부를 하고 온 관계로 자기가 공부한 나라와 신학교를 자랑해야 자기 공부가 빛을 발한다 하여 일제히 미국 영국 독일 화란 남아공의 신앙과 신학을 치켜 세우고 있으나 그들의 역사는 과연 그렇지만 그들의 오늘 신앙은 그렇지 못합니다.



누가 양반 자제인고? 다리 밑에 있는 거지가 왕자라고 한다면 혈통이 왕자라 해도 그런 왕자를 낳은 그 왕실은 거지같이 천대를 받아야 할 것이고, 다리 밑에 거지의 자식이라 해도 그가 왕궁에서 천하를 다스릴 제왕이 되었다면 그를 낳고 기른 다리 밑에 부모는 거지가 아니라 진흙에 숨겨 진 보배로 대우를 받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 공회의 신앙 노선과 역사를 가지고 기독교 역사와 현황을 견주어 본다면 여기 글을 적는 답변자와 이 글을 읽는 우리 공회 교인들의 수준은 몹쓸 상황이지만 우리의 노선과 교리와 역사는 말세를 감당하고도 남을 교리요 신조요 행정이라고 자신합니다.







>> 3공회교인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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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회의 교리 발전의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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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리는 현재 가장 옳고 바르고 정확한 내용을 가지는 것이 생명입니다. 그런데 이 정확성이라는 생명을 잘 지키고 바르게 발전을 시키려면 교리 형성의 과정을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흘러 온 방향을 보면 흘러 갈 앞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동에서 서로 가는 차량과 북에서 남으로 가는 차량이 사거리 한 가운데 이르러 정확히 일치합니다. 시간으로 그 순간만을 가지고 말하면 두 차량은 정확히 일치하지만 그 차량이 어떻게 흘러 왔는지를 살펴 보면 같은 길을 가는지 다른 길을 가다가 우연히 마주 쳤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최근에 지방교회를 /연구실/발언/ 게시판에서 살피며 그 역사를 거듭 질문했습니다. 바로 이런 면 때문입니다.
:
: 공회와 지방교회의 오늘 현재만 단면을 놓고 보면 같은 면들이 많고 그 핵심 교리나 교훈은 놀랄 만큼 동일합니다. 그런데 더 궁금한 것은 그 형성 과정이었습니다. 형성 과정을 살피면 현재를 형성한 성향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문답에서는 그 부분을 주로 삼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지금 우리는 영과 육이 천국과 지옥으로 나누어 갈 수 있는지를 살피고 있습니다.
:
: 공회의 인성과 구원론의 전개 과정은 사람을 형성하는 근본 요소가 분리 된다는 것은 아예 개입 될 여지가 없었습니다. 부활이라는 기본 교리에 문제가 생기면 바로 이단이 될 수 있고, 이 때 이단이라는 표현은 신앙 어린 이들이 멋 모르고 표현을 실수할 때 낙인을 찍어 교계에서 함부로 날 뛰지 못하게 억압을 하는 그런 이단이 아니라 종교 자체가 달라 지는 문제입니다. 공회의 장점 중에 하나는 그 발원과 성장 과정이 기독교의 제일 중심에 있었고 벗어 난 적이 없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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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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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교리의 형성과정에 대해서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 2.공회교리의 형성과정에 대해서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 3.공회의 인성론과 구원론의 전개과정에 대해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 4.공회의 성장과정이 기독교의 제일중심에 있었다는 것에 대해서.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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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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