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가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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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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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13 00:00
일반적으로
1970년대 한국 교회는 전국 어디라도 십자가만 걸고 몇 년 고생하면 자리를 잡았습니다.
1980년대 한국 교회는 말이 되건 안 되건 무조건 열심히 뛰면 중형 교회가 되었습니다.
1990년대가 되면서 한국사회와 교계의 역량이 보태지면 초대형 부자 교회들이 생겼는데
1980년대에 개척한 교회들은 시기가 늦어 성공을 한 교회도 있고 실패한 교회도 있으나
1990년대에 개척한 교회는 거의 개척 초기 모습에서 더 이상 발전 없이 중단 되었습니다.
공회 교회들은
1989년까지 백 목사님 때문에 타 교단처럼 하지 못했고 90년대 중반까지는 내분에 붙들려
개척해서 중형 교회를 거쳐 대형 교회로 나갈 수 있는 기회를 모두 놓쳤다고 생각합니다.
90년대는 이미 자리 잡은 교회는 저절로 커 나갔고 그렇지 못한 교회는 주저 앉는 상황인데
공회 교회는 90년대 초반까지도 1 - 2백 명의 교회들은 모두 내분 때문에 붙들려 있었으며
2000년대가 되어서야 소신껏 해 볼 수가 있었는데 이 시기는 대형마트만 사업이 되고
골목 가게들은 대책 없이 문을 닫거나 달리 할 일이 없어 그냥 자리만 지키는 것처럼
공회 교회들이 바로 이런 모습이 되어 버렸습니다. 몇십 명 교회에서 대부분 주저 앉았고
1 - 2백여 명의 괜찮은 교회들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해가 서산에 저물고 있었습니다.
이미 성공한 교회들을 보며 춤을 추니까 되고 예배당을 현대식으로 지으니까 되고 문화 체험을 하니까 되고 열린 예배를 하면 된다는 등으로 온갖 성공 비법들이 난무했으나 그런 방법들은 이미 80년대에 중형교회를 만들어 90년대부터는 돈이 돈을 벌듯이 괜찮은 예배당에 교인들이 저절로 몰리는 그런 교회들에게 해당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아주 특이한 목회자에게만 예외적으로 적용 되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공회 교회들이 공회성을 모두 내어 버리고 아주 있는 힘을 다해 타 교단의 모습을 쫓아 갔는데 몸만 버리고 돈조차 벌지 못한 여인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잠실동교회로 예를 들면 1980년대에 1천 명 출석 교인이었으니 공회 내분이 없는 상태에서 1990년대를 전체 교인이 단결하여 요즘처럼 사업을 벌렸다면 최소 수천에서 수만 명의 교회로 바로 갈 수 있는 경우였습니다. 1990년대를 내분 때문에 후임 문제로 싸우다가 10 년을 소비하고 이제 내부 단결에 의해 마음껏 시작하려 하자 기독교 전성기는 서산에 걸린 해처럼 되어 교회를 이제는 때를 놓쳐 버린 것입니다.
공회 신앙적으로 답변하지 않고 교계의 일반 사례로 설명을 드렸습니다. 이미 공회 교회의 본질조차 제대로 아는 분들이 없는 시대임을 감안했습니다.
그 누가 뭐라 해도 원래 공회 교회를 바로 안다면 공회 신앙은 때와 장소와 환경과 교계의 흐름에 상관 없이 우리 식으로 갑니다만 답변의 보편성이 없을 듯하여 이 정도로만 일단 소개합니다.
때를 따라 춤을 춘 타 교단 교회들은 세상이라도 붙들었는데
때조차 놓친 공회 교회들의 타 교단 따라 하기는 몸만 버렸습니다.
>> 교사 님이 쓰신 내용 <<
:
: 부공2 대구공회 서울공회는 정도 차이만 있지 정말 부흥을 위해 타 교단의 방법을 도입했습니다. 그런데 왜 부흥이 되지 않을까요? 부공1도 소리 없이 그렇게 합니다. 그런데 부흥이 안 됩니다. 이 질문은 타 교단이 하는 만큼 하는 공회 교회들이 부흥이 되지 않는 이유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