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계산법 - 개척 추진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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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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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16 00:00
1.매사 결정할 때
①우선 고려할 3가지
첫째, 영감입니다.
우리 양심을 통해 하나님께서 직접 알려주시는 감화와 감동이 있습니다.
믿는 사람의 모든 판단은 최종적으로 이 내적 판단에 따라야 하고 그 외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영감은 자기 마음으로 혼자 살펴야 하므로 자기 주관과 혼동하기 쉽습니다.
둘째, 진리입니다.
믿는 모든 사람이 꼭 같이 지킬 신앙의 법이 있으니 성경으로 간단히 살필 수 있습니다.
조금 배우거나 살피면 쉽게 알 수 있는 대신에 정답의 부근까지만 안내할 뿐입니다.
셋째, 현실입니다.
자기 안팎의 모든 형편과 사정은 하나님께서 필요해서 주신 현실이므로
자기 현실의 진행 과정을 유심히 잘 살펴보면 하나님의 인도 방향을 더듬을 수 있습니다.
②신앙 수준별 결정
안 믿는 사람도
자기 현실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살펴본다면 세상을 움직이는 하나님을 보지는 못해도
하나님이 세상을 어떻게 운영하는지 세상 돌아가는 방향에 대하여 눈치는 챌 수 있습니다.
귀신과 철학을 슬쩍 팔면 점쟁이 관상쟁이, 정치에 써먹으면 모략가 경세가입니다.
신앙이 어리면
퍼뜩 생각나는 것이 다 영감이라고 발표를 하고 행동에 옮겼다가는 거의 이단이 됩니다.
영감을 찾는 노력은 발표하지 말고 마음 속에 감추어 두고 혼자 부지런히 노력해야 합니다.
대신 자기 현실 돌아가는 것과 신앙 이치를 배우고 살펴 우선 확실한 것을 찾아야 합니다.
신앙이 장성한 분들은
현실도 수없이 겪어봤고 진리 연구와 실행이 몸에 베여 따로 더듬고 배울 것도 없으니
현실 파악과 진리화 된 본능을 가진 상태에서 하나님 뜻을 바로 찾아 단정할 수 있습니다.
③예를 들면
과거 백목사님은
믿을 때부터 생사 걸고 순종만으로 달렸고 영감에 붙들려 살기만을 총력했기 때문에
신앙 출발부터 그는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는 노력으로 매사 결정하는 것이 앞서 나갔고
진리 연구나 현실 파악은 그가 전념한 영감생활과 함께 나갔거나 뒤를 따랐던 정도입니다.
사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그렇게 출발해야 되는데 그 출발조차 우리는 어려운가 합니다.
통계적으로 본다면
현실 파악은 안 믿을 때부터 자연 이치와 자연 양심을 사용해서 어느 정도 알도록 하셨고
믿은 이후에는 주로 말씀 연구를 통해 하나님께서 인도하는 일반 이치를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각자의 영감세계는 어떤 때는 맞을 때도 있고 어떤 때는 자기가 착각하기도 하는데
대개 착각이 많고 가끔 영감의 인도를 확실하게 받아 혼자만의 증거를 가지기도 합니다.
이 홈은
신앙이 어린 정도와 장성한 정도의 중간쯤 된다고 자평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이것을 기뻐한다 저것을 기뻐한다 그렇게 미리 척척 말하는 것은 극히 삼갑니다.
몇 가지는 미리 확신했고 오랜 세월을 통해 갈수록 더욱 강하게 증명되는 것도 있습니다.
대부분은 현실과 신앙의 법으로 평소 굉장히 조심스럽게 살피고 네 발로 기다시피 합니다.
신앙시력이 약하기 때문에 낭떠러지는 보이고 가야 할 앞의 대로는 보이는데
그 대신 한 발 한 걸음 디딜 때에 정확한 착지점은 서툰 면이 많습니다.
2.울산 개척을 두고
①주요 기초 사실들
-울산교인들이 재독에 귀열고 이 노선을 찾은 것은 사람의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 인도였고
-그분들이 동천목사님을 원했고 동천목사님은 그곳 개척에 적임자였고
-공회와 동천은 울산개척에 필요한 경제나 목회자 파송에 따르는 후속 임명이 가능했으며
답변자는 현실판단과 이 노선의 신앙이치에도 개척을 위해 주신 인도라고 생각했으며
답변자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즉시 개척을 추진하도록 노력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봄에 급하게 서둘렀습니다.
주변에서 볼 때 답변자가 무슨 일이든 너무 급하게 추진하는 면이 있다고들 할 것이나
답변자 스스로는 단정이 되지 않으면 주변분들의 짐작 이상으로 매사 신중한 편입니다.
그러나 급히 추진해야 옳다는 판단이 답변자 영감으로 단정되면 그때는 순종하는 것이고
그런 경우라 해도 매 순간 답변자가 할 수 있는 데까지만 그렇게 힘껏 순종할 뿐이고
한 단계씩 밟아가며 추진하다가 다시 현실을 바꾸시며 추진을 막으시면 무리하지 않습니다.
②울산 개척을 두고
우리 공회는 교역자나 교인이 답변자에게 매사 명령하면 순종하겠다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답변자는 그런 표현을 답변자 앞에서 답변자를 좋게 달래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듣고 있으며
혹 진심이라 해도, 공회나 그분들의 신앙 유익을 위해서 또 답변자 실력을 고려한다면
공회는 철저한 개교회주의 원칙으로 나가되 답변자는 사회자 위치가 적당한 것 같습니다.
답변자의 입장이 확고하게 이러했기 때문에 울산 개척을 두고 공회 처리는 간단했습니다.
울산교인들의 개척 요청과 공회와 동천교회의 능력은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결정과 추진에 있어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실지 한 가지 지켜봐야 할 것이 있으니
교역자 이동의 대상이 되는 교회들의 교인들의 결정이었습니다.
답변자는 울산개척을 하나님께서 원하는 시급한 사안으로 봤고 그렇게 충성했습니다.
그러나 앞서 결정해야 하는 동천교인들은 교역자 파송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동천교회가 교역자를 파송하는 경우 다른 교회가 또 교역자를 동천으로 보내야 하는데
교회별 전체 의견을 모으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추진은 부결된 것입니다.
③그렇다면, 오늘 1년을 되돌아보며 우리는 '작년의 개척 추진'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앞날을 두고 판단하는 것은 망원경을 가져야 가능하기 때문에 굉장한 시력이 필요하지만
현재를 보면서 해석을 하는 것은 그냥 자세히 뜯어보기만 해도 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과거를 판단하는 것은 열매가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모를 수가 없습니다.
당시 공회 내에서 답변자는 사회자였고 동천교인들은 결정권을 행사할 위치에 있었습니다.
지금 1년 정도 지났기 때문에 이제는 그때보다는 훨씬 판단이 쉬운 상태입니다.
울산교인들은
지금도 주일은 부산으로 출석하고 밤예배는 실시간으로 주일저녁은 별도 재독을 하십니다.
그렇다면 울산교인들의 교역자 요청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요청하라 하신 명령이었습니다.
동천교인들은
지금 울산교인들이 부산까지 참석하는 장거리 통행과 평일의 그분들 신앙생활을 생각할 때
동천교인들로서는 동천목사님의 울산개척을 다시 의논한다면 어떤 결론이 나오겠는가?
한번 생각해 볼 시점입니다. 그 답은 동천교인들에게 있습니다.
만일
오늘 동천교인들이 그때 동천목사님을 울산개척으로 가시게 했어야 했다고 결론이 나더라도
각자가 작년에 반대한 것은 작년 상황에서는 목회자 이동을 신앙으로 감당할 수 없었다면
작년의 반대가 옳았고 그 반대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최종적으로 개척을 미루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