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한 분이라 생각되어 한 말씀 더 올립니다.

공회내부 문답      

귀한 분이라 생각되어 한 말씀 더 올립니다.

설명
yilee 0 2


현재 서부교회 상황을 떠나
그냥 과거 서부교회 직원이었던 사람으로서 한 말씀 올립니다.



백목사님 한 분 밑에 다 서로 좋을 때의 일입니다.
1980년 중반의 일이므로 지금 서부교회 당사자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중간반 여직원 1명과 주일학교 행정실 여직원 1명이 있었습니다.
서로 책상의 크기와 위치 때문에 사표를 낸다 만다 하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연구실 직원들은 창고에서 그 여직원들 책상 절반만한 곳에서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중간반사 월급은 연구소 직원 월급의 2배 또는 3배가 넘었습니다.
중간반사는 부부가 함께 월급을 받기 때문에 최저비용에서 사는 직원들에게는 큰 혜택이고
중간반사는 본인들이 요령을 부리려면 심방 전도 없이도 주교 선생님들이 다 맡았습니다.
중간반학생으로 올려 준 후의 관리 출석 심방도 이전 주교 반사가 대부분 하고 있었으며
중간반 학생들이 차비가 없으면 주일학교 선생님이나 주교선생님 구역장에게서 받았습니다.
중간반사들은 그분들이 움직이는 심방비를 교회가 지출하나 주교선생님은 자기 돈입니다.
전화세 집세까지 다 받고 있었으나 연구소 직원들은 월 7만원이면 그게 전부였습니다.

자세한 월급 내역은 본인들만 알지만 대충은 서로 알 수가 있었습니다.
연구소 직원들보다 보통 2-3배가 넘었습니다.
물론 몇 명의 중간반사들은 교회가 그렇게 지원하는 그 이상으로 충성을 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중간반사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중간반사를 다 없애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중간반사들은 1989년에 백목사님 사후 서부교회를 위해 따로 세웠고
답변자가 잘 알지 못하는 면도 많고 또 너무 오래 떨어져 있어 가끔 듣고 있습니다.


답변자가 소개하고 싶은 것은
당시 연구실 직원들은 누구 하나 월급 때문에 불평하거나 어렵다는 말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중간반사들 사이에서는 누구는 얼마 얼마 하는 문제로 늘 시비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불리한 지역에 보냈다고 하여 교회를 떠난 분들도 있고 참 문제가 많았습니다.
교회로서는 당시 중간반사를 모든 면으로 최고 대우했습니다.
그런데 그 최고 대우를 받은 중간반사들의 당시와 그후 그리고 지금 형편을 봐야 합니다.

연구소 직원들은 이민영목사님 같은 분 1명을 제외하고는 실력에 있어 중간반사만 못했으나
그들은 방 한 칸 없이 전화세 혜택과 차비 혜택 하나도 없이
오히려 연구소 직원들은 그 월급으로 자기 차비와 주교학생에 중간반학생 차비까지 냈는데
그들은 경제 문제로 불평하지는 않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

하나님이 사람 되어 날 위해 수고하신 그 희생을 생각하면 우리가 경제적으로 덜 받는 것은
비교할 수도 없고 그것을 수고라고 내세우거나 다른 사람과 비교할 수가 없었습니다.
연구소 직원들은 주로 설교를 계속 읽기 때문에 늘 업무상 그 내용을 접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연구소 직원들에게 1980년대 중반의 중간반사들이 4층과 5층의 반사 사택이 나오면
큰 것 주라, 저 쪽 것을 주라, 옮겨라, 내 순서다.....
늘 이렇게 하던 모습을 보며, 참 남의 나라 무슨 먼 나라 사람을 보듯 했습니다.



2층과 4층이 노선 싸움을 하거나 아니면 옳고 그른 시비를 하는 것은
이 홈이 찬성을 합니다.
그러나 이쪽이든 저쪽이든 그 누구든 신앙과 복음의 직책을 맡고 있는 상태에서
자기가 현재 겪는 어려움과 다른 사람을 비교한다면?
그때부터는 아무리 나 원하는 대로 다 된다 해도 해결 되지 않고 계속 어려움이 생깁니다.

윗글은
중간반사 중에서도 글 쓰신 것을 보아 순수하며 열심을 가진 참 반사라고 느껴집니다.
소속과 노선 시비는 다른 글에서 따로 살피기로 하고
이 자리에서는 윗글 적은 분께, 그냥 현직에서 정말 주를 위해 죽도록 충성하시기 바라며
그 과정에서 자기에게 오는 대우나 조건이나 타 반사와 비교는 하지 마셨으면 합니다.
질문자 자신을 위해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연구소 소장은 8년 간 화장실도 없는 방 한 칸에서 근무했습니다.
주일학교 총무는 8년 간 방 한 칸에 모친 세 자녀 두 부부가 장농으로 막고 살았습니다.
바로 그 기간에 중간반사들은 혼자 사는 처녀들끼리 방이 크다 작다 하고 싸웠습니다.
오늘 그들은 각각 어떻게 되어 있는지 비교하기에 앞서
그 당시만 두고 말한다면 연구소장과 주교총무는 서부교회 정상적인 직원이었습니다.
그리고 중간반사 그분들 때문에 백목사님은 1986년 2월 중간반 제도를 없애버렸습니다.
1989년 새로 오늘의 중간반 이전 중간반은 서부교회 역사에서 중간반이 아니었습니다.

더 우스운 것은
1986-89년 기간 중간반사 자신들은 과거 중간반사 그대로인 줄 알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이 홈은
이 홈을 위해 제일 수고를 많이 하는 분들부터 월급을 주지 않습니다.
이 홈을 위해 비교적 수고를 덜하는 분들께 좀더 월급을 챙기려 하고 있습니다.

백목사님 생전
연구소 직원들의 자부심 중에서 가장 큰 자부심은
중간반사들은 백목사님께서 저렇게 돈으로 파격적 대우를 해야 하는 어린 사람들이다...
우리는 이렇게까지 쳐박아놓아도 안심하시는 사람들이다...

지금 비록 소속은 2층이지만 정말 하나님만 바라보고 진실되이 충성하게 되면
여러 면으로 어려움이 많겠지만 감추인 보배를 하나님께서 설마 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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