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와 신앙의 실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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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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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24 00:00
1.양해 요청
전통의 정통 신학에서 사용하는 표현은 대부분 알고 있는 편입니다.
그런데 최근 신학계에서 사용하는 여러 가지 표현들은 잘 모르는 편입니다.
그 표현들을 익히고 공부할 시간도 없고 그렇게 할 필요도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런 표현을 알아야 외부와 대화할 수 있을 것인데 시간과 능력의 한계가 있습니다.
일단 질문자께서 신학 표현과 함께 문제의 글을 소개해 주셨으니 간단히 평가해 봅니다.
2.신앙의 균형
교리는 나무의 둥치와 같습니다.
나무의 둥치가 바르게 견실하게 서 있지 못하면 나무 자체가 부러지고 넘어집니다.
그러나 교리는 무미건조하며 아름다움이 없어 생명의 맛을 느끼지 못하게 합니다.
경건은 나무의 잎과 같고 꽃과 같으며 열매와 같습니다.
바로 선 교리 위에 잎이 무성해야 나무가 혈기왕성한 청년처럼 청청하게 자라게 되고
바로 선 교리 위에 꽃이 피어야 아름답고 주인이 기뻐하시고 주변이 다 화사롭게 되며
바로 선 교리 위에 열매가 맺혀야 결실이 있어 먹고 배부를 수 있습니다.
흔히 정통 장로교는 교리에 강하다고 합니다.
정통 장로교는 어느 이단도 틈을 볼 수 없도록 치밀하고 체계적이니 잘 쌓은 성벽 같으나
그 성벽 안에는 생명의 활동 모습이 없고 말라빠진 교리만 붙들고 있는 꼴이 되었습니다.
흔히 정통 감리교는 경건에 강하다고 합니다.
정통 감리교는 눈물이 있고 감격이 있으며 신앙에 생명을 가진 기쁨에 충만합니다.
그러나 교리가 허물어지니 세월이 지나면서 꽃도 잎도 떨어지고 나무조차 넘어진 꼴입니다.
바로 된 교회라면
교리가 체계적으로 잘 짜여져 빈틈이 없고 견실하여 고층 빌딩을 지을 수 있어야 하며
그 교리 위에 생명이 존재하고 활동하는 활발한 표시가 경건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교리로만 치우치고 경건을 잃어버려 말라빠진 뼈다귀처럼 고목처럼 냉냉한 것도 문제고
경건을 강조하다가 뛰고 구르고 춤을 추는 방종과 방탕으로 나가는 것도 잘못입니다.
3.소개한 글들을 읽으며
그 글을 적은 분들의 이력이나 목회나 다른 모습들을 봤으면 더욱 좋겠으나
일단 주신 글만 가지고 볼 때는 신앙의 생명력을 강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만일 바른 교리에 선 종들이라면 위 글로 소개한 내용은 우리가 꼭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 분들의 그런 내용에 상관 없이 우리 믿는 사람은 누구나 그런 내용을 가졌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교리서의 교리 표현에서만 상대한다면
비록 이단에 빠지지는 않을 수 있으나 그 하나님께서 현실마다 인도하고 은혜를 주시는
우리의 생활 속에까지 뻗쳐 있는 매 현실의 실제 은혜는 전부 내버리는 사람일 것입니다.
물론 질문자께서 우려하신 대로 교리와 신앙 노선의 확실한 바탕을 잊어 버리게 되면
세상의 사조에 따라 인간이 자기 된 대로 제 멋대로 제 기분대로 신앙을 뒤 바꾸어서
팝송 가수는 찬송을 팝송 식으로 부르고, 타령하는 사람은 성경을 타령 식으로 읽고
랩 가수는 찬송도 성경도 설교도 랩 식으로 뱉어 내며 나갈 것이니 아주 잡탕일 것입니다.
4.구체적으로
성경을 연애 편지로 표현한 것은 하필 세상의 저질 애정 행각에 비교한 것이 불쾌하지만
신앙이 어리다면 그렇게 표현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니 그렇게 이해할 수 있으며
성경에는 생명의 맥박이 뛰고 있다고 한 것은 성경을 읽은 사람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공산주의 책을 읽으면 부자를 때려 죽이고 싶은 충동이 저절로 생겨지게 됩니다.
불경을 바로 읽은 사람이라면 가족을 떠나고 세상을 다 끊고 산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성경을 성경으로 읽었다면 구구절절 기쁨 회개 통한 감사가 요동을 쳐야 정상일 것입니다.
기도의 응답을 연기하신다고 했는데, 기도하면 즉각 들어 주셔서 기를 때가 있고
기도를 해도 응답을 끈질기게 연기하면서 우리를 만들어 가는 때가 있지 않습니까?
요셉이 출옥하는 분들께 부탁한 것, 욥의 인내 등 그 예는 무수합니다.
기도할 때 즉시 즉시 들어주면 신앙이 더 자랄 것 같지만 출애굽 40 년을 기억하셔야 하고
정말 신앙으로 크게 기르는 이들은 오랜 세월 만들어 가는 과정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일꾼들은 하나님이 하실 여백 여지를 남겨 두어야 한다고 했는데, 맞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주님이시고 우리는 종인데, 우리가 명령하고 하나님은 종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기도하는 우리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다 지시하고 하나님은 우리 지시대로 해야 할 정도니
말로만 우리가 종이지 실제로는 우리가 주님이고 주님이 우리 종이 되어 있습니다.
게을러 그런 것이 아니라 정말 하나님을 주님으로 바로 믿는 사람이라면 만사 결정할 때
주님이 전결 처리하시도록 백지 위임장을 드리는 것이 신앙입니다.
5.좋은 글을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위 글에서 소개한 분들은 답변자가 그 이름을 처음 들어 보는 분들입니다.
그러나 시대가 다르고 사회가 다르고 서로 한 번도 교통하고 대화해 본 적이 없으나
믿어 본 사람이라면 이런 말들을 저절로 하게 되어 있고 또 들을 때 와닿는 것이 있습니다.
군대를 갔다 온 사람들끼리는 무슨 알아 듣지도 못할 소리를 끝도 없이 평생하게 됩니다.
시집을 살아 본 며느리들이 나이가 많아지면 그 때를 생각하며 모두 자기 말처럼 합니다.
아이를 기르고 있는 새댁들이 서로 만나면 남의 말이 구구절절이 다 자기 말입니다.
성경과 기도와 결단의 순간을 차례대로 소개해 주셨는데
과연 성경은 그러하고 기도도 그러하며 성도의 결단은 주님께 맡겨야 하는 것이 옳습니다.
다만 그 분들의 교리 입장은 답변자가 모르겠습니다. 그 분들의 경건 신앙은 참 훌륭한데
만일 그 분들이 교리에 바로 서지 않았다면 둥치가 부실한 나무처럼 그 화려한 모든 것이
어느 날 갑자기 으스러 지거나 아니면 어느 바람 한 번에 허무하게 흩어질 것입니다.
교리에 튼튼하게 선 분들은, 그 입에서 위 글에서 소개한 그런 경험이 저절로 나와야 하고
위 글 내용을 체험한 분들은, 그 머리 속에 교리의 체계가 빈 틈 없이 엮여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