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록의 한 곳이 아니라 전체를 보셨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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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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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14 00:00
역사적으로
국기에 대하여 '배례' '경례' '주목'이라는 3 가지 구호가 있었습니다.
국기 문제가 문제 된 것은 '배례' 때문이었습니다. 배례가 주목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다가 군사 정권을 거치면서 배례와 주목의 중간인 경례로 내용이 바뀌었습니다.
공회의 노선은
국기를 인격으로 상대하거나 인격 이상으로 상대하는 것은 무조건 2 계명으로 금했고
국기를 애국의 표시로 삼고 국기 의례를 국민의 단결로 삼는 행동은 적극 지지했습니다.
국기 문제는
독립 직후 자유당 시절에는 종교적 '배례'와 '목숨을 건 반대'만 있었습니다.
이 후에는 정권과 각 단체장에 따라 계속해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의미도 바뀌었습니다.
그래도 이 문제가 역사적으로 신앙 투쟁의 연결성이 있어 외면까지 조심시켜 왔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에 분명한 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백 목사님의 현장 지도도 바뀌었습니다.
자세한 설명은 /초기화면/연구실/문의답변/ 게시판 등에서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적하신 분도 아시겠지만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다음 내용을 참고로 올립니다.
성경의 한 쪽을 보면 자기 부모를 미워하지 않으면 구원이 없다고 하셨고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친족까지 돌아 보지 아니하면 불신자보다 더 악하다고 했습니다.
이 홈은 기본적으로 이 노선 내에서 제일 보수입니다.
다른 공회나 교회나 교역자들은 그 무슨 말을 해왔다 해도 결국 다 변했습니다.
막상 이해득실이 생길 때 변하지 않은 교역자와 교인과 공회가 한 곳도 없으나
이 홈은 현재까지 이 노선의 가장 옳고 바른 길을 찾았고 걸어 가고 있습니다.
설교록 내용을 모르거나 무시하거나 세월이 지났기 때문에 조금씩 변개시키는 것이 아니라
변할 수 없는 것과 변할 수 있는 것과 변해야 하는 것을 구별하여 설명한 것이며
이 것을 제대로 구별하지 않고 좁게 보게 되면 나중에 크게 삐뚤어 질 수 있습니다.
설교록 181 호에서
국기에 대하여 '경례'라는 구호가 나오면 어떤 행동도 할 수 없고
국기에 대하여 '주목'이라 할 때만 오른 손을 왼 가슴에 올려 애국심을 표한다고 가르치며
이 사실은 공회 내부인이면 모르는 분들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일에 돈을 사용할 수 없는 것과 주일에 돈을 주고 시내 버스를 탔던 것을
우리는 같은 설교록 안에서 읽고 있습니다.
원칙 자체가 바뀌는 것은 탈선이지만
원칙의 적용이라는 것은 쉽게 판단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현실 구원이 결정됩니다.
신앙의 원칙은 성경 해석에 있기 때문에 아주 간단하게 정립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어려운 문제는 쉬임 없이 변하는 우리 현실에서 그 말씀을 지켜 사는 것이
어떻게 하는 것이 그 현실에서 내가 해야 할 유일한 길이냐는 것입니다.
이 것을 실패하면 성경을 다 외우고 꿰뚫어도 구원은 '0'입니다.
물론 말씀대로 행하려면 현실적 손해가 많아서 알면서도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