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분들
| 설명 |
|---|
yilee
0
0
2013.06.24 00:00
1. 서원균 목사님
- 성장
60 세로 기억하며 1 세 정도 차이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전남 여수의 신풍교회가 모교회입니다. 부친이 서천석 목사님이며 고모님이 애양원교회 손양원 목사님을 가장 가깝게 모셨던 차종석 장로님의 부인입니다. 우리 나라에서 제일 억세고 잘 났다고 알려 진 통합 교단에서도 순천 노회는 알아 주는 곳이고 그 곳에서 제일 똑똑하여 목사님들도 맞서기 어렵다는 애양원 교회의 장로님들이 제일 버겁게 생각하고 알아 주던 분이 고모님 서귀덕 집사님입니다. 애양원 장로님 한둘 가지고는 서 집사님을 상대하지 못하고 서너 명도 이긴다는 분입니다. 손 목사님 사후 외롭게 신앙 투쟁에 나선 정양순 사모님의 가장 충실하고 의지할 오른 팔이었습니다. 가정 이야기는 이 게시판의 바로 밑에 '인물별' 게시판의 검색창에서 '서천석'을 찾아 보시면 됩니다.
- 신앙
집안의 신앙 내력을 이야기 하는 것은 목회자는 그 스스로도 남 다른 길을 걷겠지만 집안의 신앙 뿌리가 있으면 그 기도와 그 지도의 영향력을 적지 않게 받기 때문입니다.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에 충실했고 이 곳에서는 학생 시절부터 신앙이 돋 보였으며 모두가 장래의 목회자로 눈여겨 봤다고 합니다. 신풍교회가 손 목사님 사모님의 개척 후 고신에 속하고 이후 김현봉 목사님과 이교부 조사님을 거쳐 이병규 목사님 교회의 주력이 되었는데 1975년에 서원균 목사님 부친이 백 목사님께 은혜를 받고 신풍교회를 공회 교회로 가입을 시킵니다. 교회를 공회에 가입 시킨 후 백 목사님의 말씀을 하나도 빼지 않고 싶어 부친은 1970년대 말에 서부교회로 이사를 합니다.
- 목회
서원균 목사님은 서부교회 백 목사님 밑에서 반사를 했고 중간반사를 거쳐 남해의 서상교회로 부임합니다. 이후 순천의 순남교회에 부임했고 거제동교회를 거쳐 지금은 순천의 강청교회에 계십니다. 사모님은 길천교회 출신이며 백 목사님의 지도에 따라 10대에 결혼하신 것으로 기억합니다. 부부 사이가 좋기로 서부교회에서도 소문 난 정도이고 자녀분들도 다 훌륭하게 자란 것으로 기억합니다. 특히 찬송을 잘하시고 목회자로서 강력한 지도력을 가진 분입니다. 부산공회에 속해야 할 분인데 왜 대구공회로 갔을까 하는 아쉬움을 많이 가졌고 부산공회 내에서도 부공1에 속할 분으로 생각했습니다. 부친 목사님은 은퇴 후 신풍교회 바로 뒷집으로 이사를 오셨는데 신풍교회는 비디오 재독을 하는 우상 교회라고 해서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인사 한 번 받지 않고 살다가 가셨습니다. 답변자로서 부친 목사님의 판단은 동의하지 않으나 옳다고 생각한다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들 목사님도 그렇게 이 노선에 철저하여 일반 교회의 성향은 눈길 한 번 주지 않을 분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이 노선에 가치를 확실히 알면서도 교회 부흥을 위해서는 약간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으로 바뀌셨고 백 목사님 사후 그 입장을 고수하기 때문에 대구공회에서는 유력한 목사님으로 활동하실 것으로 생각하고 답변자로서는 함께 가지 못하여 아쉽게 생각합니다.
2. 김두환 목사님
- 성장
부친 김병춘 목사님은 경남 거창의 창북 출신입니다. 거창읍에서 도평 기도원을 가는 길 중간입니다. 부친이 창북교회 개척 교인이며 개척 이야기는 '인물별' 게시판의 '김철수' 목록에서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박신찬 목사님의 글에서도 좋은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고 이 홈에 많이 소개를 했는데 방금 찾아 보다가 말았습니다. 직접 확인하시거나 다른 분들이 도와 주시면 좋겠습니다. 부친 이야기를 먼저 하는 것은 신앙의 내력 때문입니다. 부친 목사님은 서부교회로 일찍 내려 오셨고 서부교회에서 노동으로 목수로 건설 현장에서 맨손으로 시작하여 사업을 크게 이루었고 사업이 문제가 아니라 훌륭한 목회자로 출발하게 됩니다.
김두환 목사님은 답변자로서 지나 가다가 얼굴만 서로 몇 번 본 정도입니다만 백 목사님의 1970년대 설교 중에 질문을 하시다가 어린 주일학생을 지목하면 바로 답을 맞추면서 설교 때마다 어린 학생들이 소망이 있고 잘 깨닫고 어른들은 소망이 없다고 수도 없이 말씀을 했던 바로 그 학생이었습니다. 백 목사님께서 늘 장차 목회자로 일찍부터 주목하고 계셨습니다.
- 신앙
목사님의 댁은 서부교회 예배당 모퉁이 바로 맞은 편 기와집이었고 며칠 전 백명희 사모님 장례 때 서부교회를 가니까 아직도 그 가옥이 그대로 있었습니다. 목회연구소 맞은 편이기도 합니다. 그 많은 서부교인들 중에서 예배당에 제일 가깝게 사셨으니 싫든 좋든 눕든 일어 나던 이 노선의 본부인 서부교회 처마 밑에서 학생 생활을 줄곧 했으니 자신이 신앙이 있을 때는 신앙이 있어서 잘 믿었을 것이고 혹 신앙이 주저 될 때가 있었다면 그 가옥의 위치 때문에 주저할 틈도 없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모친의 신앙은 개명교회 변 집사님의 신앙이고 백 목사님께서 집회 때 늘 예를 드시는 가정이며, 부인 되는 사모님은 제천의 최귀주 집사님의 손녀니 공회의 최고 신앙 가정을 배경에 두셨습니다. 조상과 집안 그 자체가 신앙은 아니지만 위에서 흘러 내리는 신앙의 물 줄기를 피하는 것은 어렵고 그 모든 것 위에 아주 어려서부터 청년기가 될 때까지 백 목사님의 생전 내내 백 목사님의 가장 많은 기대와 관심과 지도를 받았다는 점은 분명할 듯합니다.
어려서부터 공부를 잘했고 성격도 학문에 적합하여 기대를 모았다고 하며 동아대 법대를 거쳐 독일의 법학박사 과정 유학을 오랫동안 거치고 귀국했으므로 법학에 관해서는 최고의 학문 세계를 가졌을 것인데 백 목사님의 오랜 소원과 부모님의 지도 때문에 목회자로 출발하게 되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 목회
백 목사님 사후 대구공회에서 목회를 출발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다른 목회자처럼 아는 바가 전혀 없습니다.
>> .... 님이 쓰신 내용 <<
:
: 1. 서원균 목사님 대하여...
: 앞 전 소개를 했더라도 구체적으로 부탁 드립니다.
:
: 2. 김두환 목사님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