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РЬ ГыМБРЧ ПЌБИ РкРЏ
| 설명 |
|---|
yilee
0
0
2009.04.18 00:00
1) 지금 중국 공회라는 이름으로
성경을 가지고 공기돌 놀이를 하듯 놀고 있고
정통 교회의 역사적 사실 자체를 뒤집고 있고
이 노선의 교리 교훈을 이단으로 만드려 하지만 기도 외에는 아마 할 일이 없습니다.
중세 천주교는 이런 주장을 화형에 처하지만 그러다가 루터를 죽일 수 있어 그럴 수도 없고
정말 죽여야 할 이단만 죽인다고 해도 신약은 신령한 전투이니 육체를 손 대지 않는 것이며
그렇다고 그냥 두고 보기에는 육체를 다량으로 죽이는 것보다 더 많은 신앙 손해가 있는데
그런 면까지를 고려해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지 않으면 하지 않는 것이 이 노선입니다.
오로지 현재
이 홈이 하는 일은 '중국 공회는 아니라' '그 교리는 아니라' '아니라'만 하고 있습니다.
그 주장은 성경이 아니며 정신이 혼미하여 정신과 치료 받을 사람의 병적 표현일 뿐이지
그 주장을 가지고 따지고 말고 할 사안도 아닐 뿐더러 본인이 스스로 막아 놓았습니다.
2) 출판을 위한 상호 상품권과 관련
- 출판을 위해 필요한 상품 상호권
1997년에 이 홈은 안정적 연구 확보와 분쟁 자체를 피하기 위해 출판권을 우선 확보하고
이 홈 외에도 향후 이 노선을 연구하는 출간물에 지장을 받지 않도록 도우려 하였습니다.
당시 공회들은 얽혀 싸우고 있었으나 언젠가 평화적 연구 시기가 올 것으로 보았습니다.
지금 부산 연구소의 상품 상호 등록은 2000년인데 이 홈은 1997년에 먼저 신청을 했습니다.
부산 연구소가 상호 상품 등록을 먼저 해도 이 홈은 기존 출간을 하고 있어 상관이 없으나
향후 대구 공회나 부공2 등이 자유롭게 연구하고 출간하여 전체 공회의 노선을 연구하려면
'백영희' '목회연구소' '목회설교록'에 대한 조합을 확보하여 출판권을 확보해야 했습니다.
이 번 대구 공회의 바로 이런 연구와 출간을 두고 그 내용에 대한 문제는 내부 토론을 해도
최소한 법적으로 무조건 출간이 막아 지게 되는 것은 우리 노선이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변리사를 사용하여 고액의 비용을 들여야 상품 상호권을 확보할 수가 있었으니
대구 공회나 부공2의 앞날의 연구 자유와 출간을 지원하기 위해 이 홈이 비용을 대야 하는가?
지금과 달리 당시는 대내외 경제 지원과 여력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포기해야 했습니다.
- 상품 상호권 확보를 포기한 것은
이 홈은 부산 연구소보다 2년이나 먼저 등록 신청했고 돈만 들이면 권리 확보는 할 수 있으나
일단 당시 이 홈으로서는 부담하기 어려운 비용이 필요했고 이 홈은 누가 권리를 확보해도
이미 먼저 그 이름과 그 상표를 출간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 홈의 출간에는 영향이 없으며
이 홈이 보장해 주고 싶었던 총공회 전체의 연구와 출판 분위기의 혜택을 받게 될 공회들이
이 홈을 극구 도적으로 비판하면서 부산 연구소만 무조건 옳다는데 왜 그 일을 해야 하는가?
결국 이 홈의 책임 범위를 넘는다 보고 훗날 진행이 어떻게 되는지 지켜 보게 되었습니다.
이 번 부산 연구소의 제재 경고장을 받아 든 대구 공회를 보며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합니다.
다시 1997년으로 돌아 가서 당시의 부산 연구소의 모든 발표와 조처를 전적 지지하고 있는가?
대구 공회나 부공2가 그들의 목표에 가장 걸리고 위험한 존재를 두고 부공1 핵심을 겨냥했고
부공1의 핵심 뒤에는 이 홈이 가장 큰 문제라는 인식을 하여 살인범 배후로까지 몰았으니
부공1 내부에서 갈등이 생겨 부산 연구소와 이 홈이 나뉘면 당연히 먼저 이 홈을 겨냥하겠지만
그 당시가 이미 20여 년에서 10여 년의 세월이 지났고 이제 진심과 내용이 다 밝혀 지는 때인데
이 홈의 진심과 이 홈의 행동을 두고 오늘에 다시 되 돌아 볼 때 사소한 문제를 제외하고
이 노선 신앙의 본질 문제를 두고 이 홈의 진심과 충성과 행동에 이의를 제기할 것이 있는가?
이 홈이 부산 연구소와 부공1과 2로부터 3 회의 제명을 당하면서도 공회 간 소송을 반대하고
또한 이 노선 연구와 출간의 자유성을 확보하려 했던 것이 이 홈의 투쟁의 본질이었습니다.
이 본질은 갈등 당시에는 입으로 아무리 설명을 해도 증명이 되지 않고 세월만 해결할 뿐인데
대구 공회나 부공2는 성급하게 부공1과 부산 연구소의 편을 들었습니다. 이제 증명이 되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한 번 더 밝히고 이 자리에서 강조하는 이유는 지난 날을 따지자는 것이 아니라
현재 우리 공회들은 또 당명한 여러 현안들을 맞고 있는데 이 현안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지금 이해득실만 생각하여 또 다시 과거 그런 일을 되풀이 하고 지내 놓고 나면 망각할 것인가?
치매 걸린 노인네처럼 치매 걸린 공회들이 되어 단체 차원의 공식적 치매 집단이 될 것인가?
매사를 오늘 현실과 함께 앞날의 역사까지 함께 놓고 신중하게 생각하기를 권하는 것입니다.
- 서 영호 목사님이 부공1과 손 잡았던 사례
이 홈을 양성원에서 제거할 때 당시 수 없이 엉켜 싸우던 부공1과 부공2는 일단 협력했으니
부공1의 송 종섭 목사님이 총대를 메고 부공2의 서 영호 목사님은 적극 지지를 했으며
인천의 이 재순 목사님과 당시에는 아직 부공1이었던 송 종섭 김 응도 목사님이 도왔습니다.
이 홈을 양성원 교수직에서 제거했던 소식을 듣고 이 홈이 직접 서 영호 목사님 등께 확인했고
서 목사님께는 이 번에 답변자를 제거한 그 방식대로 서 목사님이 제거 될 것이라고 했는데
바로 그 다음에 그렇게 당하게 되자 부공2의 김 윤수 김 부호 김 영채 목사님들을 앞 세워서
얼마나 양측이 전쟁을 벌였는지 그 현장의 치열한 전투 상황은 스스로 더 잘 알 것이고
그 후 이 재순 목사님 한 분 외에는 전부 부공2로 넘어 가 버렸으니 도대체 무엇을 위해
싸우고 무엇을 위해 오늘까지 걸어 가고 있는지를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모습을 보게 되면 이권을 위해 싸우는 정치 투쟁이라고 할 뿐입니다.
부공1과 2가 위치와 입장을 뒤 바꾸면서 말하는 진리니 노선이니 하는 말을 듣지 않습니다.
조금 신중하기를 권합니다. 부탁합니다. 당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