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진 분들의 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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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갈한 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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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2 00:00
이도영 목사님은 이진헌 목사님의 사위로써 서울 청량리 교회에서 1키로 정도 거리에 장안동 교회를 십수년 전에 설립하여 목회를 출발하다가 별 수입을 보지 못하고, 서울 도봉구 소재 하계동 교회를 설립하신 장인 이진헌 목사님이 원로 목사님으로 퇴임하시고 그 뒤를 이어 후계자로 하계동 교회를 승계하여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다만 승계 과정이나 현 상황은 필자가 정확히는 모릅니다. 장안동 교회는 아마 폐쇄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이 도영 목사님은 이진헌 목사님 께서 청량리 교회를 담당하실 때에 역시 청량리 교회에서 수년간 교인으로 있다가 이진헌 목사님이 하계동교회를 개척하실때에 함께 따라 하계동 교회로 이전하여 이후에 장인동 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다만 이런 과정은 정확히는 모릅니다.
이진헌 목사님은 본명이 '창호'이신데 개명을 하여 '진헌'으로 바꾸셨고 - - '진헌'이 참되게 주님에게 헌신한다는 의미라면 좋은 개명이 됩니다.---본래 나사렛교파에 계시다가-- 나사렛에서도 상당한 위치에 계시다가 백 목사님의 교훈의 가치를 아시고 흠모하여 우리 공회로 소속을 변경하여 존함 그대로 평생 헌신하신 것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과정은 마치---- 갑자기 성함이 생각이 않나네요.--- 교사하시다가 다른 교파에서 오신 분-- 달산교회에 시무하셨고, 백 목사님이 칭찬이 많은신 분, 키 크시고 음성이 허스키히시고---- 이 분과 유사합니다.
이 진헌 목사님은 목소리가 크셔서 설교도 웅변적으로 하십니다. 평생 백 목사님에 대한 순종이 유달랐고 지혜도 많으셨고 외부적 면을 중시하셨고, 우리 공회화 되기에 각별한 노력을 다 하셨고 교회 충근도 유달랐습니다. 하지만 태생적 한계는 어쩔수 없었던지 그 극복이 참으로 어려웠던지 가는 교회마다 부흥은 잘 안 된 편이고 - 교회 이동이 많은 목회자 중의 한 분임- 설교는 온 힘을 다하는 데 은혜는 별로 끼치지 못해 우리 공회복음에 깨달음에 밝은 교인과는 항상 마찰이 심하고 교회 행정도 인본이 많다는 평가를 가지고 사셨습니다.
공회 복음의 가치인식은 확실하신데 막상 설교는 백 목사님의 교훈을 가감 없이 전달하는 정도에는 낮은 수준이고, 백 목사님의 설교와는 괴리가 심하여 우리 공회의 골수분자들의 교인과는 항상 상충이 야기되고, 교인은 이 목사님을 경원시하고 동질감을 느끼는 데에 부족하고 이질감을 가지게 만들며, 공회 노선에 충실한 설교를 기대했던 교인들과는 항상 마찰속에 목회를 하지 않을 수 없어서 본인이니 교인들이나 상호간에 불협화음을 발생케 하는 면을 가지고 사셨습니다. 이는 사실은, 우리 공회 복음에 대한 가치 인식이 속속들이 되는 정도에 부족하였던데 기인되고, 과거 나사렛에 계실 적에 대한 보상심리가 여전하여 떨쳐 버리지 못한 것도 있는 듯이 보였으며, 비교컨대 만약 박사학위를 받았다면 서영호 목사님에 유사하게 발전할 분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런 면에도 불구하고 한 평생을 스승인 백 목사님에 대한 순종이 남달랐으셨으며 백 목사님으로부터도 사랑을 받으셨으며 나사렛 교파에 있으셨다면 많은 대우와 지위를 누리셨을 텐데 이것을 버리고 공회로 오셔서 철없는 교인의 배척과 무시를 감내하며 많은 교회를 이동하며 육적 고난을 당하며 십자가의 길을 걸으셨던 것입니다.
이젠 이진헌 목사님의 생애도 고령으로 서산에 해 기우는 저녁 노을을 맞고 있습니다. 주님이 그 분의 생애를 아릅답게 평가하실줄 필자는 믿습니다.
이민영 목사님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부자간의 관계를 극복하기가 어려운 것이 역시 태생적 한계인지라 백 목사님에 설교록 편찬에 지대한 기술적 공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 이 시대에 백 목사님의 설교를 가지고 은혜 받는 모든 이들에게도 혜택을 주었음에도-- 우리 공회를 탈퇴하고 자기 방식대로 하는 것이 그리 이상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교회를 부흥시키려다 보니 우리 공회 방식이 거추장 스럽게 보이는지----. 그러나 참된 교회 부흥은 우리 공회 식대로 하면서 백 목사님의 교훈대로 하는 것이 주님의 뜻에 가장 합치하는 것이며 주님이 인정하는 이 시대의 소명이라고 필자는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