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이 목사님 비판의 배경

공회내부 문답      

2. 이 목사님 비판의 배경

설명
yilee 0 1


1. 서울 지방의 총공회 교회들의 부흥사

나무의 생장처럼
백 목사님께 은혜 받은 타 지역 교인들이 교회를 세우고 은혜 받은 교인이 교역자가 되면서
백 목사님 한 분으로 심어지고 자라 가고 뻗어 나간 경우이니 공회 부흥사는 성장입니다.
일반 교단은 선교의 전략이 있고 목적을 위한 역할 분담이 있어 세상 단체와 흡사합니다.
그래서 일반 교회와 공회는 근본적으로 그 존재 출발과 형식과 내용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와 종교 개혁의 초기는 이런 성경적인 모습이 아주 자연스럽고 흔했습니다.

공회의 부흥사는
백 목사님 한 분이 바로 믿고 나갈 때 주변에서 따르는 교인들이 개명과 봉산로 모여 들고
백 목사님이 이동 부임한 서부 교회 교인들이 하나씩 공회 교인으로 변화 되어 따라 갔고
그 과정에서 거리 때문에 백 목사님 교회에 교인이 될 수 없는 이들은 교역자를 요청했고
목사님은 최대한 직접 기르고 키운 이들을 교인 상태에서 바로 목회자로 파송하였습니다.
그들 실력보다 그렇게 한 신앙 노선에 있는 이들이 현실에 충성하면 자라 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개명 봉산 서부 교인들이 전국 각처에서 이 노선을 원하는 곳에 교회를 개척합니다.
한 편으로 서울의 인구 집중에 따라 여러 이유로 서울로 이동하는 교인들이 많아졌는데
전국 공회 교인들이 서울로 갈 때는 거주처와 교회 그리고 목회자에 따라 쏠림이 있었습니다.

서울 공회 교회는
초기에 백 목사님이 청량리에 주력했으므로 어지간하면 청량리 교회로 교인들이 몰렸습니다.
청량리 교회가 든든해 지자 좀 부족한 목회자를 파송하여 목회자를 훈련 시키려 하셨고
대신 타 교회들은 약한 교회들이어서 실력 있는 목회자를 보냈으므로 균형이 맞추어 졌고
사직동은 교인의 세상 인적 배경과 신앙 면이 특별하여 제일 실력 있는 분들을 보냈습니다지금은 탈퇴 경력 때문에 공회 내 정통 교인들이 호되게 비판하고 무시하고 있지만
사직동을 거친 백 영익 신 도범 백 태영 장 렬 송 용조 목사님은 공회 최고 목회자들입니다.
그렇게 최고의 목회자를 계속 파송하자 서울로 가는 지방 교인들이 사직동 교회로 몰렸고
초기 청량리 교회와 비슷하던 사직동 교회는 확실하게 서울 지방 최고 최대 교회가 됩니다.
그리고 사직동 교회가 그대로 잠실동에 개척하고 백 목사님 생존 기간 단연 최고가 됩니다.
특히 백 태영 목사님이 사직동에 부임한 79년부터 전국 교역자는 서울로 가는 교인들을
대거 백 태영 목사님의 사직동과 잠실동 교회로 대거 몰아 주고 있었으니 공회 분위기는
무슨 하나의 공식처럼 되었습니다.
백 목사님의 동생이니 모두 알아서 제일이라고 생각했고 공회 행정적으로 목사님 다음이었고
백 목사님의 설교 중에서 백 태영 목사님을 최고로 생각하게 하는 내용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백 목사님의 진심
그러나 백 목사님의 사람 평가와 지도의 내면을 몰라서 일반 목회자들이 실수한 것입니다.
백 목사님은 백 태영 목사님과 전체 목회자를 기르기 위해 그렇게 했을 뿐인데 모두들 그
표현을 액면 그대로 받아 들였던 것입니다. 사실은 외형만 보는 각자의 자기 주관이었습니다.
1980년대 초반을 거치면서 백 태영 목사님은 백 목사님과 또렷하게 맞서고 있었기 때문에
확실하게 속을 아는 사람들은 잠실동을 피했고 아무 것도 모르는 분들은 계속 잠실동으로
몰려들고 있었는데 우스운 것은 그런 교인들마다 모두들 자기가 갈 때까지만 해도 건전했는데
그 이후에 잠실동이 타락해서 나왔다고 하며 심지어 백 목사님 사후 공회가 분열 된 한참
후에도 그렇게 들어 갔다가 나온 분들이 계십니다.
이미 백 목사님 생전 마지막에는 서부 교회에서 진학이나 직장으로 서울에 가는 교인에게
공개적으로 막지는 않았으나 지도할 만하고 물어 보는 교인이 있으면 잠실동은 막았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추천하면 신앙 노선에 굳센 교회들을 추천했고 가능하면 2 곳을 추천했으니
우선 추천한 곳은 이 진헌 목사님이고 다음 추천은 상남 교회 이 원일 목사님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이 진헌 목사님 교회는 가정집 수준의 예배당에 서울 북쪽 외곡이어서
학교나 직장에서 다니기가 어려워 실질적으로 그렇게 가는 분들은 적었을 것입니다.




2. 이 진헌 목사님에 대한 공회적 일반 평가

그런데 이렇게까지 되기까지 공회 내에서는 일반적으로 교역자와 교인들이 알고 있었던 것은
이 진헌 목사님에 대하여 반대로 부정적으로 비판적으로만 거의 일관하게 되었습니다. 이유는


백 목사님의 칭찬과 책망

백 목사님은 일단 눈에서 벗어 나서 가망이 없으면 아주 내버려 두고 간여하지 않습니다.
다만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면 공개적으로 설명해서라도 막고 나서게 됩니다.
대신에 고칠 가망이 있는 사람은일수록 혹독하게 그리고 공개적으로 꾸중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신앙은 어리지만 가망이 있는 사람은 극찬을 하면서 일단 자랄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서 영호 목사님은 어려서 고칠까 해서 칭찬은 공개하고 책망은 모두 익명으로 한 경우이고
백 태영 목사님은 요압처럼 너무 커져서 세월과 섭리에 맡겨 둔 경우여서 세력화를 했었고
송 종섭 목사님은 틀린 점은 많아도 공회성이 있어서 고치기 위해 가장 야단을 많이 했고
이 진헌 목사님은 본인이 단 1 가지라도 끝까지 고치겠다며 자원했으므로 책망했습니다.

무조건 다 그런 것은 아니나 일반적으로 백 목사님 후계자가 될 사람이라고 칭찬하는 경우는
서 영준 목사님처럼 정말 그런 분이고 이제 발표를 해야 할 시점이 되어 그렇게 하는 경우와
다른 분들처럼 아주 위험하나 어려서 격려하여 기르기 위해 극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서 영호 목사님처럼 투자가 많았던 인재인데 너무 위험하여 최후로 붙드는 방법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내용을 알지 못해서 설교의 한 표현으로 그 사람의 안팎을 다 끝을 내버렸으므로
백 태영 목사님과 서 영호 목사님이 백 목사님 사후를 이끌 인물로 보고 따르는 지경이 되고
이 진헌 목사님은 아주 몹쓸 인물로 평가하는 정도가 되어 오늘 공회가 이렇습니다.

심지어 김 정웅 목사님이 백 목사님께 이 진헌 목사님이 이상하다고 하자 네가 잡아라 했고
그 말을 듣고 평생 이 진헌 목사님을 비판하는 것이 자기 사명인 것처럼 활동하고 왔었는데
현재 김 정웅 목사님의 머리는 서 영호 목사님인 정도니 이런 분위기 때문에 공회의 비판은
각자 나름대로 생명 걸 만큼 무엇인가 확신과 증거를 다 가지고 있는데 착각이 너무 많습니다.
서부 교회 나무에 물을 주던 시골 출신 노인 한 분이 백 목사님 설교 중에서 자연을 강조하며
풀 한 포기 기르는 것도 모르는 것이 무슨 박사냐 자연에서 정말 큰 것을 배운다고 하자
양성원을 찾아 가서 농사도 모르는 서 영호 박사 대신 나를 교수 시켜 달라고 했습니다.
바로 이 배짱과 교훈이 공회 신앙이며 장점이이면서 동시에 실제 남에게 그런 식으로 말하면
공회 신앙을 제대로 가진 사람치고 정신병자가 아닌 사람이 없다 할 지경이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이런 막 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속으로 이 노선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흐뭇해 합니다.

김 정웅 목사님이 이 진헌 목사님을 인본 주의로 고발하자 네가 직접 잡아 봐라 한 것은
김 목사님이 워낙 어린데 당돌하게 나서니까 그 중심과 용기를 북 돋아서 기르는 방편이며
그런 후배 하나가 따라 다니면서 이 진헌 목사님을 계속 욕을 해대고 몽둥이를 들고 다니면
이 목사님은 과거보다 더 조심할 것이니 이 목사님은 더 깨끗해지고 예방까지 되어 좋고
김 목사님은 그 어린 수준에서 그런 용기가 있어야 앞으로 희망이 있으며 아직은 그렇게
철 없이 어디나 대들 수 있어야 좋으며 자라면 철이 들어 제 자리로 돌아 오는 것이 좋으니
이런 방식은 백 목사님이 흔하게 사용하는 후배 지도법 중에 하나인데

김 목사님은 그 말을 듣고 하늘 같은 백 목사님으로부터 자기는 암행어사가 된 줄로 착각하고
사방에 이야기하면서 이 목사님은 인생 자체가 희망 없는 인본주의자라서 찍어야 한다고 하니
교역자 회의에서 이 진헌 목사님 발언만 있으면 김 정웅 목사님이 맞받아 나온 배경이었습니다.


이 목사님의 문제점

몇 분이 지적하신 대로 이 목사님은 누가 대해도 공회 외부 느낌이 많이 들게 합니다.
백 목사님이 시킨 것도 아니고 누가 말을 부인해서 부인 될 일도 아니라 사실입니다.
이런 외모적 단점에 백 목사님 책망이나 주변 목회자의 이야기를 들으면 확신으로 바뀝니다.


공회의 어설픈 전문가들

공회 내에는 한 부분만 알고 그 것으로 만족하며 자칭 숨어 있는 전문가 그룹들이 많습니다.
외부에 발표 않는 것은 실은 자신이 없거나 아니면 자기는 이미 세상을 초월했다는 착각인데
실제로는 서로 좀 내놓고 비교를 하다 보면 사실 자체가 잘못 된 것은 고치면 자기 유익이고
실제로는 자기가 몰랐던 부분이 있으면 얼른 배워서 알아야 자기가 자라게 되는 것인데
혼자 다 안다고 치고 외부에 내놓으라면 자랑하기 싫고 상대할 가치가 없어 그렇다 하면서
만일 밖으로 내놓았다가 틀렸거나 문제가 있으면 그 동안 자기가 주변에 왕 노릇한 귄위가
다 깨질 것이므로 끝까지 입을 열지 않는 이런 잘못 된 공회만의 흐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부공1 젊은 교역자들이 경건하여 천하를 초월했다며 숨어 지내는 자칭 선지자들이었는데
한번 정권을 잡자 멋 모르고 각목 들고 전국을 휩쓸었다가 지금은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숨어서 주변 몇 사람에게 무슨 큰 비밀을 아는 듯 설명을 하여 권위를 얻는 것은 쉽지만
막상 내놓고 제한 없이 외부 비판을 받아 보고 사실 관계를 따지면 여지 없이 무너집니다.
지금 이 홈이 완전 활성화가 된 후 10여 년 공회 내에서 어떤 토론도 없어진 이유입니다.


교회의 구조

어느 교파든 백 목사님과 같은 특별한 분에게 특별히 배우고 나면 신앙이 엄청 자랍니다.
그리고 나면 그 교인의 신앙 실력은 굉장하게 되는데 그 대신 그는 평생 비판자가 됩니다.
애양원 교회 원로들이 그렇고 아현 교회 원로들이 그렇습니다. 공회도 당연한 것입니다.
이들은 큰 것을 봤으므로 옳은 것은 목회자가 말하고 천하가 달라 들어도 목숨 바쳐 지키고
옳고 그른 노선 문제가 아니면 자기들이 본 대로 한 없이 낮아지고 충성을 애햐 하는데
전자만 가지되 옳고 그른 문제가 아닌 모든 것까지 전부 옳고 그른 것으로만 분류하여
자기의 생각 느낌 취향까지 전부 진리고 그 외에는 모조리 틀린 것으로 정죄를 하고 나서니
공회 교회들 중에 예전을 말하는 교인이 있는 교회의 목회자는 교회를 미리 쪼개서 나가든지
아니면 그런 교인을 백 목사님 생전에 백 목사님 모시듯이 무조건 순종하고 따르든지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필요도 없고 따질 일도 아닌 문제로 끝 없는 내부 논쟁만 하다 끝이 납니다.

고려파가 주일 계명과 국기 배례는 하면서 신사 참배는 하지 않았다고 오늘까지 자랑하며
재건파가 재건을 주장했다며 지금까지 간판을 가지면서 반대파와 어울려 하나가 되어 있고
공회 내에서 재독을 가장 주장하던 분들이 본인이나 가족이 설교할 때는 재독을 하지 않거나
재독이면 된다고 하면서 목회자를 청빙하는 교인들의 경우가 그런 경우들입니다.

이런 이가 있는 반면에 교회에는 그냥 멋 모르고 교회가 지도하는 대로 자라는 분들도 있으니
이들은 10 짜리 목회자가 오면 10 짜리 만큼 자라고 50 짜리 목회자가 오면 50으로 자라는데
10이나 50 짜리 목회자보다 훌륭하여 자기가 이미 80 짜리가 된 교인들은 앞의 행동만 하다
자기 신앙이 어느 날 10 짜리 어린 교인보다 못한 처지가 되어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리 되면 자기가 10 짜리가 된 것은 목회자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 것은 그 목회자를 청빙한
자기의 결정이었지 그 목회자의 책임이 아니며 그 목회자가 온 후에 제일 은혜 받은 교인만큼
은혜 생활은 할 수 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교인 자기 책임입니다.

이런 두 부류의 교인들이 섞여 있는 곳에 어느 목회자가 힘 있게 목회를 하게 된다면
오래 된 교인들은 교역자 비판만 하고 흠만 찾게 되고 모르는 교인들은 일단 은혜를 받습니다.
옛 교인과 새 교인 양 쪽으로부터 다 비판 받거나 부흥이 되지 않으면 목회자는 할 말이 없고
어린 교인의 환영이 없어 부흥은 없으나 옛 교인이 환영하면 목회자는 녹음기로 대처하면 되고
옛 교인은 싫어 하나 어린 교인이 좋아하고 부흥이 되면, 그 때는 두 가지로 분류해야 합니다.
그런데로 노선도 옳고 나름대로 충성을 해서 목회자가 목회자의 값을 제대로 한 경우도 있고
노선을 바꾸어 부흥을 했다면 그 교회는 일반 교회가 부흥한 것이지 공회 교회는 아닙니다.

이 진헌 목사님은
그 노선이 총공회 전체 역사를 보면 가장 충실한 분이고 당시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런데
가는 교회마다 부흥 되었던 것은 사실이고 그 대신 잡음들이 있었는데 그 잡음이 나온 것은
그 교회의 오래 된 공회 교인들 때문입니다.

그 옛 교인들을 분류해 본다면
60년대 공회에서 처음 목회한 동성로와 덕수 교회는 공회 들어 온 초기니까 예외로 하고
거제동 교회는 그 분이 개척했으므로 이 목사님 당시 교인들이 부흥 되고 다 좋아 했었고
1971년 부임한 창동 교회에서는 2-3명 교인이 반대했는데 현재 그 교인들은 노선 밖에 있고
부임하자 교회가 폭발적으로 부흥하여 거창 지방 전체의 판도를 바꾸어 놓은 정도였고
청도 교회에서도 전반적으로 부흥이 되었으나 당시 집사님 한 분이 오는 교역자와 계속
싸우면서 주일에 연보한 것을 설교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강단 연보를 가져 가는 정도였고
그 분은 공회 목사 아무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자기가 직접 목사가 되어 목회를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파계를 했습니다.
79-83년 기간 신풍 교회에서는 어려움이 많았는데 그 것은 안산 이 재순 목사님의 반대
활동이 심해서 그러했고 전체 교회적으로는 부흥과 존경이 대단했었습니다.

공회 교인들이 부산 백 목사님께 직접 전화를 해서 자기 교역자를 두고 불평을 하게 되면
어떤 교인의 불평이든지 목사님은 거의 그 교인을 격려하고 교역자가 어려 그렇다고 합니다.
그런 말을 한 번 들은 교인들은 백 목사님으로부터 목회자 수준이 넘는 교인으로 자신하고
평생 그 자긍심으로 살게 되는데 이 목사님의 교인 충돌 문제는 주로 이런 경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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