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변화와 신앙의 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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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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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8 00:00
선교사가 아니더라도
조선말 이 나라는 국제 정세에 의하여 언젠가는 오늘처럼 이렇게 변화해 나왔을 것입니다.
때가 되면 머리를 깎았을 것이고 옷도 생활도 주택도 학교도 문화도 다 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나라 변화의 중심에는 그리고 이 나라 변화의 제 일선에는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한국 교회 경건사에서
1960년대까지만 해도 교단마다 귀한 인물들이 있어 주변을 바른 신앙으로 붙들고 있었으나
1970년대와 80년대를 거치면서 어느 교단이든 인물다운 인물들이 거의 다 무너져 버렸는데
이 시기에도 박 윤선 김 창인 등 한국의 정통 노선의 원로들이 더러 생존해 있었습니다만
이 시기를 지내면서 그들은 교단의 은퇴법에 걸려 눈을 뜨고도 속수무책 쳐다보고 있었고
그 결과 1990년대를 통과하면서 한국 교회에는 겉모습에까지 경건이란 다 무너졌었습니다.
비록 작지만 총공회는
1970년대를 통과하면서 더욱 정통 신앙 노선에 확고하면서도 그 영향력을 길러 왔으며
80년대 10년을 통해 언론 보도에 의하여 일반 교계에게 너무 대대적으로 잘 소개 되었는데
한국 교회에서 정통 경건의 모습을 더욱 강하게 가지면서 모든 신앙 원칙을 지키고 더하여
폭발적 부흥까지 이룬 것이 낱낱이 알려졌고 이 소식은 부흥을 위해 신앙을 포기하던 교계에
신앙과 부흥, 원칙과 생동, 보수와 발전이 공존할 수 있다는 엄청난 충격을 주었습니다.
백 목사님의 사후에도
적지 않은 기간 동안 이 홈 출간으로 서부 교회에는 백 목사님 생전 같은 탐방이 이어졌고
김 효순 권사님 등 서부 교회 핵심으로부터 보여 줄 것도 없는데 책 때문에 난감하다면서
즐거운 비명이 아니라 듣고 견디기 어려운 뼈 아픈 비판을 들려 주었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이 번 질문을 두고 이 내용을 소개하는 것은 이 노선의 한국 교회 영향력 설명 때문입니다.
비록 교단의 장벽과
한국 교회 부흥을 선도하는 전국 유명 초대형 각 교회의 담임 목회자들의 개인 사정 때문에
비록 백 영희 신앙 노선에 참고하고 힘을 얻고 또는 배웠기 때문이라는 표시는 없었지만
이 노선의 영향이 흘러 간 경로는 이 홈이 상세히 잘 아는 바가 있어 파악하고 있습니다.
내적으로 확실하게 '신앙과 발전'이라는 것은 신앙을 포기해야 발전을 이룰 수 있다든지
아니면 신앙을 확고하게 붙들면 발전은 무조건 포기해야 하는 그런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백 목사님의 서부 교회 목회를 통해 한국 교계는 1980년대와 90년대 초반까지 잘 보았고
이 시기 동안 최근 대구 공회가 1990년대부터 부흥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 본 요즘
자발적으로 과거 신앙 모습을 어느 정도 찾아야 한다면서 이제 공회 원 노선을 회고하여
복고풍이라 할 수 있는 많은 표시를 볼 수 있듯이 교계도 그러했습니다.
공회의 연보 제도는
마구 거두지 않고는 목회자의 생존이 어렵던 시절에도 우리는 연보궤를 통해 나아 왔는데
외부에서 서부 교회를 방문할 때만 해도 그들이 연보를 강제로 거두는 방식이 횡행하다가
서부 교회 모습을 목도하는 그 시점에 우리 사회와 한국 교계의 경제가 아주 좋아졌으므로
한 교회씩 과감히 연보궤 운용을 해 보았고 그렇게 하는 교회들은 좋은 결과가 있었습니다.
작은 교회는 생존을 위해, 대형 교회는 대형 사업을 위해 연보 방식에 무리가 참 많았는데
서부 교회의 소식이 80년대에 언론과 교계와 주변에서 물 밀 듯 밀려 전국에 쏟아 질 때에
희망 있는 목회자들에게는 의외로 연보 소식이 아주 큰 충격으로 전달 되어 졌었습니다.
그런 소식 하나에 힘을 얻고 도전했고 결과가 좋았고 지금 전체 분위기를 개선시켰습니다.
연보만이 아니라
서부 교회의 비결은 목회자의 설교 은혜 하나가 전 교회와 전 반사를 살아 움직이게 했고
그 교회와 반사들의 활동 비결은 주변 아주 작은 몇 명을 중심으로 차분하게 움직인 결과며
철저히 소그룹 별 한 책임자에게 전권이 맡겨 진 사명 체제로 그렇게 되어 진 소식 때문에
70년대까지 교계를 유행 시킨 대부흥의 행태와 80년대 이후의 패턴은 급속히 바뀌게 됩니다.
기타
교역자의 복장이나 예배 시간 등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면들도 설명하려면 복잡합니다.
그렇다 해도 너무 과정이거나 착각이거나 우연의 일치가 아니겠느냐고 말하는 분이 계신다면
잠실동 교회가 지난 10여 년 총력을 기울여 서울 장안에서 셀 그룹 부흥 교수의 중심인데
그 셀 그룹이라는 전도 부흥법의 내용을 들여다 보면 1960년대부터 공회에서는 흔하게 온
주교 반사 제도이며 장년반의 구역장 제도인데 그 방법을 영어 단어로 바꾸어 표현하자
최근 막 수입한 미국발 신제품인 줄 모두들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잠실동 교회는 그 담임 목사님이 80년대 서부 교회에 단체 탐방 선생님들을 이끌고
따라 온 선생님들은 대개 타 교파 신학교 정규 신학생들이 이 노선 좋아서 왔던 분들인데
그들 자신은 이 모든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바일 것입니다.
어쨌든 조선 나라는 땅도 시야도 사람도 좁고 대국 사이에 눈치만 보고 살아 온 세월이 많아
외국산이라야 알아 주기 때문에 한글도 영어 표현으로 한 마디 척해야 유식해 보이는 것이고
제품도 한국에서 만들어 일본 미국에 갔다가 오면서 외제 상표가 붙어야 하는 면이 있습니다.
총공회의 교리, 목회, 경건, 교회 부흥법............... 사례가 수도 없이 많으나
전부 다 제쳐 두고, 총공회 내 핵심 목회자들이 미국에 갔다가 그 곳에서 배운 것을 가르치고
그 쪽 이야기로 말을 하면 양성원 안에서까지 먹혀 들어 백 목사님과 맞설 영향력을 가졌으니
애초 이런 질문을 답하다 보면 마지막에는 우리 안에다 또 총을 겨누어야 고통스런 일입니다.
미국에 가서 신학교를 졸업했다고 말하면 모두들 무슨 하늘에서 떨어 진 것을 배운 줄 아나
세계 좋은 것이 영어로 번역 되지 않은 것이 없고 미국의 쓰레기도 다 번역이 되어 있어서
영어가 모국어 정도 되지 않으면 한국에서 번역 된 책을 중심으로 원서와 조금 비교하여 보면
미국에 오가고 그 나라 체제의 교육 과정 때문에 소모한 시람보다 한국에서 책만 읽은 결과가
훨씬 앞선다는 면을 모르는 것이 정말 대탄식입니다.
오늘도 서부 2층에 미국 박사를 딴 목회자를 세웠다고 흐뭇해 하고 뭔가를 기대하는 분들!
송 종섭 목사님처럼 세상 공부와 독서력과 기억과 응용력에서는 서 목사님보다 탁월한 분이
신학에 있어서는, 서 목사님이 평생 연구한 종교 개혁 일부를 제외하면 서 목사님보다 나은데
백 목사님은 생전에 이런 세상 학문에서는 송 종섭 목사님의 실력을 평가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워낙 무식하니까, 그 무식이 머리가 나쁘고 학교를 덜 다녀서 나쁜 것이 아니라
우리 한국인의 충동적이며 순간적으로 분출 되는 자기 최면에 촛불로 쏠려 가버리듯이 하니까
오늘의 총공회와 서부 교회와 우리의 형편이 이 모양입니다.
서 목사님을 모실 때 세계적 학자며, 그 비판은 모략이고 그는 노선에 충실하다 했던 분들
서 목사님이 서부 교회 담임 목사로서 단 한 장의 책이라도 이 노선과 서부 교회를 위해
그의 전공인 교회사 입장에서 서부 교회 자기 연혁과 역사와 소개를 출간한 적이 있었던가?
심지어 그 재임 기간에 교계에서 서부 교회를 이단이라고 신문에 도배를 할 때에도
단 한 번도 발표 없이 침묵함으로 교계에 대하여 그 발표를 묵시적으로 동의를 했던가?
오히려 타 노선 신학교에 가서 이중 월급을 받고 강의하여 해외 지식을 팔아 수입을 봤던가?
위 글의 여러 짐작 중에는
이 시대가 복고풍이라는 흐름을 타고 있다는 배경도 분명히 알고 계셔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이 노선의 한국 교계에 주도적 역할이란 오늘 이 노선에서 글 배운 사람의 몫입니다.
그들이 글 재주를 가졌고 이런 사실을 알면서 그렇다고 기도만 하는 분들이 아니면서도
자기 게을을 경건으로 위장하여 침묵한다면 서부 담임 같은 길을 걷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글은 적되 발표를 함부로 하다 보면 중국 공회 꼴이 나기 쉽상이니 조심하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