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와 순종의 장점이, 시대를 잘 못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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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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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7 00:00
돌의 장점은 6천 년 풍상에도 눈 한 번 깜빡하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며 인내한다는 점이고
돌의 단점은 6천 년 그 세월에 한 번도 발전의 길을 따라 순종했던 일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공중에 나는 새의 장점은 하나님께서 새롭게 인도를 하실 때는 번개처럼 움직여 적응하지만
새의 단점은 그 자리를 지키고 인내하며 고난을 즐겨 받으라 할 때는 조급하고 변덕입니다.
성도는 비록 순간에 그렇게 되지는 않으나 온전하고 구비하여 부족함이 없도록 만들어 지니
하나님께서 현재를 현실로 받아서 어떤 고난이 있다 해도 인내하라 하면 인내하는 존재이고
하나님께서 현실을 바꾸어 주시며 새로 순종하고 개척할 현실을 주실 때는 순종해야 하는데
서부 교회는 백 목사님 생전에 오늘의 입장을 미리 말씀하신 적이 계셨으니 내가 죽은 뒤
서부 교인들은 평생 목사에게 순종하던 습관과 훈련만 되어 있어 누가 와도 엎드릴 것이라,
과연 그리 되었으니 중이 강단에서 목탁을 두드려도 우리는 이 현실을 끝까지 지킨다 하여
서부 교회 2층 예배실에 변치 않고 앉아 있는 것을 공회 신앙인 줄 알고 버티고 있습니다.
계신 교단의 교수가 서부 강단에 인사 차 한 번 서는 것이 아니고 목회자로 20년을 끌어도
남천 교인들처럼 또 도평 집회를 참석하는 사람들처럼 '그 자리' '그 집회' '그 때 그대로'
이 것을 신앙에 본질인 줄 알고 6천 년 반석이 그 자리를 지키듯 지키고 앉아 있기 때문에
지금 이 병규 목사님이라는 계신 측 교단의 총회장이 서 목사님을 통해 총공회를 장악했고
지금 세계 신학이 계신 신학교와 서 목사님을 통해 서부 교회를 옥죄고 들어 가고 있지만
오늘 서부 교회 교인은 '우리는 백 목사님께 배운 그 자리 그 시간 그 대로!'를 주장합니다.
가깝게는 재건 교회가 그 모양 그 꼴입니다. 그들의 환란 속 인내가 오늘 짜부라 진 이유고
재건 교회를 비판한 고신은 그들의 초기 모습을 가진 듯해도 실은 속으로는 다 변질 되었고
처음부터 환경 적응이 중요하다 말한 합동과 통합은 쓰레기 통이 되어 원 모습도 잃었습니다.
오늘 부공1은 과거 재건 교회의 길을 빼다 박은 듯 되었고, 부공2는 과거 고신 길을 가고
대구 공회는 통합 교단을, 또 서울 공회는 기장의 길을 걷는 것이 무슨 배끼기 갑습니다.
이 노선은 왜 '공회'인가, 이 노선은 왜 '이 노선'인가, 한 번만 생각을 해 보셨더라면!
평소 움직이는 것을 가르쳐 놓으면 움직이지 말아야 할 때도 뿌리를 뽑아 돌아 다녀서 큰 일!
평소 현실의 인내와 순종을 가르쳐 놓으니 귀신이 앞에서 끌고 가도 인내로 지킨다니 큰 일!
서부 교인 문제는 백 목사님이라는 분 밑에 가만히 있어도 되는 일 면만 기형적으로 배웠고
남천 문제는 원래 양반이고 절개가 굳은 분들이 많아 움직이지만 않으면 신앙인 줄 압니다.
이런 성향이 옳은 분이 인도할 때는 발전을 향해 큰 장점이 되며 실제 그 과거가 그러했고
이런 성향에 머리가 잘못 들어 앉으면 탈선을 향해 어디까지 가도 가는 줄도 모르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 섭리 인도의 원칙 중에 하나는 공평입니다. 양면을 다 주시고 계십니다.
새처럼 인내가 없는 인물과 지방과 교회는 바위의 인내와 고난 극복의 장점을 배워야 하고
바위처럼 제 자리를 잘 지키는 이들은 제 소속과 향방이 어딘 지 알고 나서 따라야 합니다.
서울 공회가, 생각하고 연구하고 살피고 따져서 그리했다면 틀렸다 해도 진실은 있는 것이고
부공2의 서부와 남천도 생각과 연구와 구별을 하고 나서 그러면 돌아 설 희망이라도 있는데
생각하자니 귀찮고 움직이자니 두렵고 그냥 있자니 속이 터질 지경이나 우물 쭈물하다 보니
현재 이 모양으로 세월이 너무 많이 흘렀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자라 나는 어린 학생이나 어린 사람도 있고 자존심도 있어 뭐라 하는 것입니다.
계신 교단 신학 교수의 소속을 가진 서 목사님이 목회하는 2층 강단 상태가 지속 되는 것이
서부 교회의 '그 때 그 자리 그 대로'인가, 아니면 목숨을 걸고 싸울 현실을 주신 것인가,
부공1이 이 노선대로가 아니라 한 사람이 울컥할 때마다 해치워 버리 듯 해 온 상태인가.
부공1 핵심이 부공2 핵심을 만나 공회 전체를 흥정한 일을 이제는 부공2 스스로 알고 있는데
부공1 제의에 무리가 있고 부공1의 내분과 약화 때문에 고사 작전으로 먹자는 판단 때문에
과거 부공1을 사탄의 집회로 비판을 하던 부공2 지도부가 말 없이 끝까지 참석 정책으로
정치를 한 것입니다. 눈치가 있고 기억력이 있으면 교인이라도 다 알아 차리고 있는 일이며
부공1과 부공2 안에 있는데도 '그 때' '그 자리' '그 집회'를 입에 담는 분이 계신다 하면
일 면으로는 그런 분들은 정말 진실 되므로 그렇고
일 면으로는 교회를 넘겨 주되 무지하여 제 손으로 넘겨 준 경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