ШЎРЮ КЮХЙЕхИГДЯДй(АЕЕЛч АэНУ ГэЙЎ ЙпУщ)
| 설명 |
|---|
교인
0
0
2009.09.10 00:00
타락 전의 영은 인성적으로 완전하나 타락 후의 영과 동일하게 그리스도의 구속을 입지 못한 영이다.
중생한 사람의 영은 타락 전후(前後)의 영과는 달리 그리스도의 구속을 입은 완전한 영이다.
중생한 영은 죄와 허물로 죽었던 영과는 전연 상이한 생명이다. 타락 전의 영과도 전연 상이한 생명이다. 타락 전의 영은 가범성(可犯性)적인 영이며 가사성(可死性)적인 영이였다.
그러나 중생한 영은 불가범(不可犯)적이며 불사성(不死性)적인 영이다.
그리스도의 구속을 입은 영이다(벧전 1:3,23; 요일 3:9, 5:18). 즉 그리스도의 십자가 代刑(사죄), 代行(칭의), 中保(새 생명)을 입혀 거듭난 새 생명이다.
중생한 영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의 구속으로 그리스도의 본질과 본성대로 성분 적으로 의로워진 생명이며 성령이 임하여 결합되어 내주하신다.
중생한 영은 그 자체가 본성적으로 하나님과 끊어지고자 하는 성질이 없고 또 그 결합성을 그 누구도 끊을래야 끊을 수 없다(롬 8:33-35).
중생한 영의 특징은 이와 같이 타락 전후의 영과는 현저한 차이가 있다. 성도가 구원 받아 중생한 영을 소유하게 된 것은 삼위 하나님의 완전한 사역에 의해서 이루어진 결과이다. 신체의 성장과 일반 인격인 육의 성장은 유한하나 중생한 영의 성장은 무한하다.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한 성품이므로 중생한 하나님의 자녀는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하나님의 인격,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무한히 자라 간다(엡 4:15).
중생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요일 3:6,9; 5:18). “하나님께로서 난 자”(파스 호 게겐네메노스 에크 투 데우, Pa'" oJ gegennhmevno" ejk tou' qeou')는 중생한 자아 곧 중생한 영을 가리킨다.
만일 “하나님께로 난 자”가 중생한 자아가 아니고 중생한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해석이다. 왜냐하면 중생한 사람도 범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범죄하지 않는다는 말씀은 중생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는 말씀이다.
중생한 영은 성령님이 내주 역사하여 유기적으로 활동하는 기관이다. 중생한 영은 성령님의 내주 역사에 피동되어 능동하는 영이지 절대 단독적으로 활동하는 기관이 아니다(요 15:5).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주님을 떠나서는 열매를 맺는 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중생한 영은 그리스도의 본질과 본성대로 성분적으로 의로워진 생명이므로 죄의 성질(부패성)이 없다. 중생한 영 안에 죄의 설질이 있다면 범죄 할 수 있으나 죄의 성질은 중생한 영 밖에 있으므로 중생한 영은 범죄 할 수 없다.
중생한 영은 오직 죄 없는 자아, 의로운 자아, 영생하는 생명을 가진 자아이다. 요한일서 5:18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중생한 자)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난 자(예수 그리스도)가 저(중생한 자, 중생한 영)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라고 하였다.
중생한 영의 성질, 특성 자체가 범죄 불가능 할뿐만 아니라 전능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중생한 자의 영을 지켜 주시기 때문에 범죄 불가능하다.
만일 중생한 영이 범죄 한다면 “죄의 삯은 사망이니”(롬 3:23)라고 한 말씀에 따라 다시 죽어야 한다는 논리가 된다.
3) 중생한 영은 지옥 가지 않는다. 중생한 사람은 죄를 범하여도 이 세상 떠날 때, 그 영이 지옥 가지 않는다. 그 이유는 중생한 영은 중생시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중생한 자의 영혼은 이 세상 떠날 때, 육체를 벗어나 영화되어 천국에서 안식한다. 몸의 구속 신령한 부활체로 변화될 때까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린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하나님의 품에서 안식하던 영혼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의 역사로 육체와 재결합하여 신령한 부활체로 변화되어 영생복락을 누릴 것이다.11
<>롬 7:19에 “내가 원하는바 선은 행치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라고 하였는데 박윤선 박사는 여기서 “내가”를 중생한 영으로 보고 “악을 행하는도다”와 한 문구로 보아 결국 중생한 영이 악을 행한 것으로 본다. 또 20절에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고 하였는데 여기에서도 역시 “내가”를 중생한 자의 영으로 보고 그 영 속에 죄가 거한다고 해석한다. 뿐만 아니라 23절에서도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라고 한 것을 중생한 영이 죄에게 끌려가는 것으로 해석하여 중생한 영의 연약성과 범죄성을 주장한다.18
그러나 롬 7:15-25에 나오는 1인칭 대명사 “내가”, “나의”,“내게”를 일률적으로 거듭난 자의 영으로만 해석하면 안 된다. 25절에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체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고 하였는데 “내 자신”, “마음”, “육체”는 분명히 한 사람 속에 존재하는 각 부분임을 알 수 있고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도다”라고 한 23절 말씀에서는 성도 속에 있는 두 성질의 내적 투쟁임을 잘 알 수 있다(갈 5:17).
그러나 롬 7:15-25에 나오는 1인칭 대명사 “내가”, “나의”,“내게”를 일률적으로 거듭난 자의 영으로만 해석하면 안 된다. 25절에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체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고 하였는데 “내 자신”, “마음”, “육체”는 분명히 한 사람 속에 존재하는 각 부분임을 알 수 있고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도다”라고 한 23절 말씀에서는 성도 속에 있는 두 성질의 내적 투쟁임을 잘 알 수 있다(갈 5:17).
>그러므로 롬 7:15-25에서 나오는 “나”는 전체인 <나>와 중생한 영의 <나>와 부패성인 <나>로 구별해서 해석하여야만 성경 원리에 맞게 된다. 즉 19절에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치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는 말씀은 신자가 중생한 영이 원하는 선을 행하지 않고 부패성을 따라 악을 행한다는 뜻이며, 20절에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는 말씀은 중생한 영이 원치 않는 악을 행하게 되는 것은 중생한 영이 아니고 성도 속에 있는 죄악성이라고 해석되어야 한다. 따라서 23절에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도다”는 말씀도 중생! 영이 죄의 법 아래로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선을 행하기 원하는 성도를 옛 사람(부패성)의 세력이 범죄의 길로 사로잡아 끌고 간다는 뜻이 된다.
2) 벧전 2:11에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하였는데 박윤선 박사는 이 말씀을 육체의 정욕이 영혼의 귀중한 생명을 침해한다는 의미라고 하였으며, 육체의 원어 “쌀크, savrx”는 부패성을 의미하는데 그 부패성과 죄악성은 영혼 속에도 있다고 하였다.19 더 자세히 말하면 쌀크로 번역되는 부패한 요소(옛 사람)는 죽는 날까지 성도의 육에도 있고 혼에도 있고 중생한 영에도 있기 때문에 중생한 영도 범죄 한다고 주장한다. 더 자세히 말하면 쌀크로 번역되는 부패한 요소(옛 사람)는 죽는 날까지 성도의 육에도 있고 혼에도 있고 중생한 영에도 있기 때문에 중생한 영도 범죄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육체의 원어 쌀크는 부패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타락이나 부패의 어느 암시도 없고 인간의 감각적이고도 동물적인 성질, 피가 스며들게 되고 뼈를 덮는 몸의 부드러운 물질, 곧 육을 가리킨다(눅 24:39; 요 3:6, 6:51-56, 63; 고전 15:39; 고후 7:1, 10:3, 11:18; 갈 5:24, 14:23 등).20
이렇게 쌀크가 육(flesh, meat)으로 해석되는 것은 당연하나 보다 넓은 의미에서는 몸(body)으로 해석되는 쏘마와 같은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마 19:5; 고전 9:27; 요 1:14; 행 2:31; 롬 1:3, 9:5; 골 2:5; 딤전 3:16 등). 그러므로 쌀크는 부패성이라고 하면 안 되고 육으로 해석되어야 하며 가끔 몸으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다. 만일 쌀크를 부패성이라고 한다면 요 1:14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라고 하였는데 예수님도 죄악성을 입고 오셨다는 말이 되고 예수님께서 요 6:51-56에 살(쌀크)과 피를 마시라고 하였는데 예수님께서 죄악과 부패성을 먹고 마시게 하였다는 해석이 되고 만다.
쌀크가 부패성으로 해석되는 구절들(롬 7:25, 8:12, 13:14; 갈 5:13, 19 등)이 있기는 하지만 쌀크 자체가 부패성이라는 뜻이 아니다. 그 구절들은 갈 5:17; 엡 2:3; 벧전 2:11과 같이 “소욕”, “정욕”, “욕심” 등 부패성의 내용을 표현하는 단어들이 “육체”라는 단어와 함께 쓰여져야 할 구절들이다. 다시 말하면 쌀크 자체가 부패성이라는 뜻이 아니고 부패한 요소의 용어들이 쌀크라는 단어와 함께 쓰이므로 부패의 성질과 위치를 더 잘 드러낸다는 말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벧전 2:11에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는 표현은 부패성의 성질과 위치를 잘 드러내어 준다. 만일 부패성이 영 안에도 있다면 “육체의 정욕”이라 하지 않고 “영의 정욕”이라 했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갈 5:16-21에 “육체의 욕심”, “육체의 소욕”, “육체의 일”을 “영의 욕심” , “영의 소욕”, “영의 일”이라 했을 것이다.
박윤선 박사는 또 요일 3:9에서 “죄를 짓지 아니 하나니”란 말이 헬라어 원문 “하말티안 우 포이헤, aJmartivan ouj poiei'”의 시제가 현재이기 때문에 상습적으로 범죄하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말한다.
22
그러나 만일 모든 영이 아닌 일부분(새 사람의 분량)만 중생하여 그 새 사람의 분량만이 성령에게 붙들려 죄를 짓지 않고 중생하지 못한 남은 부분(옛 사람의 요소)이 죄를 짓는다고 하면, 성도가 계속해서 중생되어 나가야 한다는 모순이 생길 뿐만 아니라 한 인격의 실체 안에 산 것과 죽은 것이 함께 한다는 말이 되고 만다. “어찌 의와 불법이, 선과 악이, 빛과 어두움이, 하나님과 사단의 세력이 함께 할 수 있겠는가”(고후 6:14-15).
그러나 “죄를 짓지 아니 하나니”가 헬라어의 문법에 있어 시제가 현재동사(포이헤, poiei')라고 해서 그것이 상습적 혹은 비 상습적의 기준이 될 수 없다. 그것은 오히려 상습적이든 비 상습적이든 간에 중생한 영이 범죄 하지 않음을 더 잘 증거 해주고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에서 “난 자”(게겐네메노스, gegennhmevno")는 완료 분사로서23 이미 태어난 완료시제를 나타내므로 만약에 “죄를 짓지 아니 하나니”(하말티안 온 포이헤)의 시제가 미래나 과거로 되었다면 오히려 문법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에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의 시제가 현재 동사로(능동태 직설법)된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것은 또 중생한 영이 상습적인 죄뿐 아니라 상습적이 아닌 죄까지도 짓지 않는다는 증거가 된다.
중생한 사람도 범죄한다
중생한 사람도 죄를 범한다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이며 양심이 그 증거가 된다. 사람은 중생함을 받은 이후에도 육체 속에 죄의 성질이 내재하고 또 외부로부터 사탄의 시험과 유혹이 끊이지 않기 때문에 육신이 연약하여 이성으로 죄를 범하며, 때로는 의도적으로 죄를 범하기도 한다. 일평생 믿음을 지키고 선한 싸움을 싸워 온 사도 바울도 로마서 7장에서 내적인 갈등과 죄와의 싸움을 고백하였다. 7장에 “나”라고 하는 단어가 많이 나온다.
바울은 “나”라는 단어를 두 가지 관점에서 사용하였다. 하나는 인격 전체(전인:全人)를 말하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자아(중생한 자아, 중생한 영)를 말하고 있다. 그런데 영육을 포함한 전 인격을 가리키는 나(전인격)에게는 죄가 있으나, 새로운 자아 곧 중생한 영에게는 죄가 없음을 시사한다. 로마서 7장에서 사도 바울은 전인(全人)과 전인 안에 있는 새로운 자아(自我)를 분명히 구별하고 그 둘이 서로 충돌하고 갈등하며 계속 싸움을 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러한 바울의 경험과 바울 안에서 보여주는 내적 갈등과 죄와의 싸움은 중생한 모든 신자들인 우리도 동일하게 경험되는 바이다. 우리는 죄 없다고 변명할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우리 자신들을 스스로 속이는 것이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요, 반면에 만일 우리가 죄를 고백하면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의로우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깨끗이 씻어 주신다고 하였다(요일 1:8).
7 ‘중생한 영’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려 하고, ‘육신의 부패성’은 육신의 정욕에 따라 범죄하려는 각기 다른 본성이 있다. 우리의 몸이 중생한 영의 인도를 따라 살 때는 “의에 병기” (롬 6:13)가 되고 육신의 사욕(부패성)을 따라 살면 “불의의 병기”가 되는 것이다.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다 죄 범하였다 고 선언하기 때문이다(롬 3:10,23).
“(14)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全人).
(15)나는 내 자신이 하는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노라(全人)왜냐하면 내(새로운 자아, 중생한 영)가 원하는 것은 행치 아니하고 내(새로운 자아24)가 미워하는 바로 그것을 내(전인격)가 행함이라. (16)만일 내(새로운 자아)가 원치 아니하는 것을 내(전인격)가 행하면, 나는 율법이 선하다고 시인하노니, (17)이제는 내(새로운 자아)가 미워하는 것들을 행하는 것은 내(새로운 자아)가 아니요, 내(전인) 속에 거하는 죄니라. (18)왜냐하면 내 속 곧 내(全人)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않는 것을 내(전인)가 알기 때문이라 원하는 바는 내(새로운 자아)게 있으나 선을 행할 능력은 내(새로운 자아)게 없노라, (19)이러한 이유는 내(새로운 자아)가 원하는 바 선은 내(전인격)가 행하지 아니하고 내(전인격)가 행하는 것은 내(새로운 자아)가 원하지 않는 악은 행하도다. (20)그러나 만일 내(새로운 자아)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내(전인격)가 행하면, 이것을 하는 것은 내(새로운 자아)가 아니요, 내(전인)속에 거하는 죄니라, (21)내(새로운 자아)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새로운 자아)! 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왜냐하면 내(전인격)가 나(새로운 자아 )의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노라, (23)그러나 나(전인)는 나의 지체 속에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더불어 싸워 나(전인격)로 하여금 내 지체 속에 거한 죄의 법에 굴복하게 하는 것을 보도다. (24)오호라 나(전인격)는 곤고한 사람이라 누가 나(전인격)를 이 사망의 몸에서 구원하랴? (25)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그런즉 내 자신(새로운 자아)이 내 마음(중생한 영)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나 내(전인) 육신으로는 내(전인)가 죄의 법을 섬기노라”
중생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
중생한 사람은 범죄하나 중생한 사람의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요일 3:9). 중생한 사람일지라도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살 때는 죄를 범하며 성령의 소욕을 따라 살 때는 “의의 병기”가 되고 선을 행하며 의를 이룬다. 중생한 영은 오직 성령의 소욕을 따라 하나님과 교통하며 선행으로 의를 행하기를 기뻐한다. 중생한 영을 거스려 육체의 소욕을 따라 이성이 범죄하면 양심이 이를 책망한다. 육체의 소욕을 따라 이성이 죄를 범할 때에라도 중생한 영은 죄를 범치 않는다. 우리의 이성과 몸이 육신의 부패성을 따라 죄의 길로 갈 때 중생한 영은 탄식하며 슬퍼한다. 그렇다고 육신의 범죄로 중생한 영의 성결함이 더럽혀 질 수 없으며 중생한 영은 범죄에 대해 책임을 지고 근심 할 뿐이다(고후 7: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다. 이병규 목사님은 성도가 범죄하는 것은 언제나 옛 사람의 소행이고, 새 사람 즉 중생한 영의 소행은 아니나 그 범죄 한 것을 중생한 영이 책임을 지고 탄식하며 같이 회개한다고 하였다. 그! 痼 마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책임지고 대신 형벌 받으시고 대신 의를 행한 것과 같다고 하였다.
성경은 중생한 자의 극한 타락도 육신은 멸할 지은정 그의 영은 지옥가지 않고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한다고 증거 한다(고전 5:5). 중생된 영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의 구속으로 그리스도의 본질과 본성대로 성분적으로 의로워진 생명이며 진리와 성령이 영속에 들어와서 결합되어 내주해 오직 진리 가운데로 빛 가운데로 인도하며 견인하여 가신다. 고로 이 중생된 영은 그 자체가 본성적으로는 하나님과 끊어지고자 하는 성질이 없고 또 그 결합성을 그 누구도 끊을래야 끊을 수 없다. 이 생명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죄(대형), 칭의(대행), 중보(대생)의 효과를 입혀 살려낸 새 생명이다. 이 새 생명(새로운 자아)은 하나님의 본질이 죄가 없고 거룩하듯 죄가 없다. 중생한 영은 오직 죄 없는 자아, 의로운 자아, 영생하는 생명을 가진 자아이다. 이 중생된 영이 범죄 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께! 난 자 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속성과 본질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절대적으로 단독적 활동 기관이 아니고, 성령님과 결합된 상태로써 유기적으로 피동하는 활동 기관이다. 중생한 영은 성령님의 내주 역사에 피동(被動)되어 능동(能動)하는 영이다. 절대 하나님을 의존하는 의존적 존재이다. 이 영행은 전부 의행이요 성령과 하나된 의행이다. 그래서 죄행은 있을 수 없고 만일 범죄 한다면 영행(靈行)이 아니라 육체의 소욕을 따라 행한 심행(心行)이다. 이성(마음)이 하나님을 떠나 자행(自行)한 그 결과이다. 중생한 영은 하나님과 연합된 생명으로서 하나님의 인도와 통치를 받는 기관으로서 스스로 자행할 수가 없고 이성은 자유의지를 가져서 육체의 소욕을 따라 자행함으로 범죄 한다.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의 공로로 말미암아 성령의 재 창조 사역을 통하여 중생된 부활의 생명은 더 이상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할 수 없다. 하나님과 단절 될 수도 없고 죽지 않는 영원한 생명이다. 우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한다(빌 1:6).
만일 중생한 영이 범죄 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한다면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른다. 중생한 영이 범죄 할 수 있다면 예수를 구주로 믿어 중생한 자라도 범죄하면 그 영혼이 다시 죽는 다는 뜻이 되며(롬 3:23) 죽은 영혼은 하늘나라에 갈 수도 없고 지옥에 가야하며 예수님의 십자가 속죄는 무효로 돌아 간다. 항상 범죄로 인한 지옥의 불안감을 항상 갖고 살아야 하고 동시에 구속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기쁨도 연속적이 될 수 없다는 엄청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면 다음과 같은 결과를 가져온다. 성도의 타락이 영의 죽음과는 무관할지라도 육신과 영적인 면에서 많은 손해를 당하게 된다. 범죄하면 가장 먼저 하나님과의 영적 교통(기도)이 잘 되지 않고 성령의 감동과 영적 기쁨을 상실하고, 영적흑암을 당하게 되고, 계속해서 회개치 않을 때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징계를 당하며, 또한 신앙인격이 성장하거나 성숙에 이르지 못하며 성품이 만들어지지 못하므로 영원한 손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한종희 목사는 중생한 영이 범죄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 하나님께 대한 게으름과 ! 태만을 초래한다고 주장했으나 사실은 정반대로 이 진리를 깨달아 가진 자는 기쁨으로 하나님의 율례를 따르게 되는 것이다. 즉 얽매이고 억지였던 신앙생활은 감사와 기쁨과 자발적인 태도로 변화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성도의 내면에는 두 세력이 있어 중생한 영이 성령의 소욕을 따라 말씀을 순종하면 칭찬과 기쁨과 자랑이 있고 육신의 부패성을 따라 불의의 병기로 드려 범죄하면 책망과 실패와 낙심과 슬픔과 성장과 성숙함에 이르지 못하여 후회가운데 빠지게 된다. 고린도전서 3:10-15에 말씀처럼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중생한 영을 따라 구원을 이루며(빌 2:12), 하나님을 위해 산 사람은 금과 은과 보석의 집으로 건축되고 각각 성령의 불로 공력을 나타낼 것이다. 반면에 부패성을 따라 자기를 위해 산 사람은 나무와 짚과 풀로 지어질 것이며 성령의 불로 공력을 밝히면 해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공력이 불타 없어져도 기본구원은 얻을 것이다.
Ⅲ. 결 론
우리의 중생 구원은 우리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것이다.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선물이다. 우리의 구원은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이루어 진 것이기에 값진 것이다. 이처럼 중생은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과 부활을 믿는 신앙에 기초 한다. 중생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으로 초자연적인 사역이며 단독적 사역이다. 그것은 잠재의식의 생활 가운데 죽었던 전영이 살아나는 즉각적인 변화이며 단회적인 역사이다. 인간의 협력이 불가한 불가항력적 은혜이다. 성령님의 사역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 흘리신 속죄의 보혈과 부활하심으로 사죄, 칭의, 새 생명의 효과를 성령님이 가져오셔서 죄와 허물로 죽은 영을 대속의 효과! 입혀 살려 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물(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난 영은 그리스도 예수 십자가 보혈의 구속을 입은 영이며,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연합된 것 같이 또한 그리스도의 부활로 연합된 부활의 생명이다. 이 영은 그리스도의 본질과 본성대로 성분적으로 의로워졌고 또 진리와 성령이 내주 역사하는 영이 되었다. 타락 전후의 영과는 전연 상이한 새 생명이다. 하나님께로 난 이 속사람은 그 자체가 본성적으로는 하나님과 끊어지고자 하는 성질이 없고 또 그 연합성을 그 누구도 하나님의 손에서 빼앗거나 끊을 수 없다.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거듭난 영은 본질적으로 완전무결하여 범죄 할 의사도, 힘도 갖고 있지 않다.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는 죄가 저희를 주관치 못한다. 이는 저희가 율법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의 법, 성령의 생명의 법아래 있기 때문이다(롬 6:14).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 일지라도 때로는 범죄한다. 그러나 죄가 저희를 주관하지는 못한다. 저희는 곧 뉘우치고 죄를 자백하며 회개한다(요일 1:9-2:1). 중생으로 시작된 구원의 역사는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계속된다(빌 2:12). 중생한 영은 신령한 젖인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여 먹고(벧전 2:2)강건함으로 기뻐 순종하며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간다. 때로는 사도 바울 안에서 본 내적인 갈등과 두 세력의 싸움을 경험한다. 그러나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중생한 영, 숨은 속사람)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룸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으로 성장해 간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 돛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무한히 자라간다. 성도는 중생한 영이 자라난 상태를 가지고 죽을 당시 즉시 영화되어 하늘나라에 들어간다.
(강도사고시눈문에서 발췌하여서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