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이전과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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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이전과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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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인산교회에서 목회하고 계시며 올해 90세입니다. /초기화면/총공회/인물별/42번/ 자료에서 일반 상황은 자세하게 안내를 했습니다.



그 부인이 1950년대에 이 노선을 접하며 가장 핵심 교인이 되었고 부인의 노력으로 부인이 중심이 되어 서울의 사직동교회가 개척하게 됩니다. 이 목사님은 과거 국내 손 꼽던 대림 그룹의 사촌 범위 안에서 회사 경영의 핵심이었고 특히 대림의 주력 사업인 대림건설은 공식 홈페이지에서 이 목사님을 창립 공로자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때가 되어 하나님께서 부르시려고 회사의 모든 책임을 져야 할 상황이 생겼고 그 때까지는 마음만 먹으면 안 되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던 인생에 그가 알지 못하는 막 다른 골목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대림의 미국 사업을 책임 지고 가야 할 상황에서 목회로 출발했고, 1970년대 공회 목회자들의 가장 극단적인 경제 핍절을 그대로 다 겪고 밟으면서 개척 목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남해 서상교회와 합천의 봉천교회를 맡아 부부가 함께 겨우 교회를 꾸려 나가는 정도에 그쳤고 그런 과정이었으므로 설교를 제대로 할 기회도 없었으므로 목회자로서는 공회 전체를 통해 가장 바닥이었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에 인천으로 이주하는 공회 교인들이 많아서 인산교회를 개척했고 공회 교인들이 모여 들어 개척 교회가 성공하게 됩니다. 교회가 안정 될 때쯤 공회에서는 거창 기도원의 불법 건축 등의 문제로 사회 관서를 상대해야 하는 일이 있고 또 공회가 백 목사님 생존 마지막 시기로 가면서 내분들이 생기자 은혜 가운데 처리할 일도 있으나 사회 상식으로 처리할 일들이 생기면서 이 목사님은 사회 생활에서 쌓은 노련으로 자주 중요한 심부름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공회의 행정 면을 자주 접하게 되는데 여전히 설교와 교리와 교훈과 신앙의 노선에는 어둡고 어렸습니다.



백 목사님 사후
서부교회가 일시에 목사님을 잃은 공백 상태가 될 때 서부교회의 특성상 백 목사님 생전의 실무자들이 의논하여 처리하면 교회의 유지와 발전에는 어려움이 없고 설교는 재독으로 넉넉히 감당할 수 있는데 일단 강단에 세울 목회자가 필요했으므로 서부교회 실무자들과 함께 이 노선을 위해 마음을 맞추고 협조할 분을 찾게 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실력이 있는 분들이 많았으나 넓게 보면 자신감이 넘쳐 섣불리 개인 취향을 드러 내면 교회가 걷잡을 수 없는 혼란과 분쟁 상태로 들어 갈 것이므로 교회는 설교나 행정에서 자기를 전혀 나타 낼 수 없고 오직 중심만 함께 할 수 있는 목회자로 이 목사님을 택했습니다. 신앙의 노선과 교리와 교훈과 설교는 전혀 없는 분인데 의논하면 노력할 수 있다는 면 때문에 초빙을 받았으니 실력이 없어서 청빙이 된 경우였습니다.

부임 후에
대구공회 측에 설 교인들이 성급하고 과격하게 투쟁에 나서자 이 목사님은 특유의 뚝심으로 무조건 버티게 되고 일단 목회자가 그렇게만 해 준 상황에서 백 목사님 당시 실무자들은 무난히 사태를 수습하고 대구공회 교인들을 개척 시키고 서부교회를 안정 시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순간부터 이 목사님은 자기를 반대한 사람들이 나갔고 남은 사람들은 자기를 절대 지지한다고 착각을 합니다. 89년 8월에 부임하고 90년 5월에 교회가 수습 되자 그 해 11월에 불신임을 받고 인천으로 돌아 가게 됩니다.

그런데 평소 이 노선을 따르되 백 목사님이 앉은 자리만 보고 따르던 이들이 인천으로 돌아 간 이후에도 백 목사님 때보다 더 이 목사님을 따르는 현상이 나타 났는데 지금 부공1에 있는 분들 대부분입니다. 한 편 당시 부산공회 핵심들은 대구공회와 재산 분쟁 때문에 소송을 해야 했고 이런 과정에서 세상에서 백전노장으로 살아 온 이 목사님을 활용하고 공회 내외의 분쟁 대상과 싸울 때에 이 목사님의 버티기가 필요하여 그 분이 서부교회를 떠난 후에도 총공회장 자리에 유지 시키게 됩니다.

백 목사님 사후 20 년의 공회 분쟁사에서 초기 대구공회와 나뉠 때 한 번 외에는 공회의 무익하고 잘못 된 투쟁에 한 쪽 대표가 되어 노년을 다 보낸 분입니다. 백 목사님 생전의 15년이 그 분에게는 꿈 같은 복 된 시기였고 백 목사님 사후 20여 년은 초기 1 년을 제외하고는 너무 불행하여 차마 눈을 뜨고 보기 어렵다고 표현할 만큼 안스럽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 질문 님이 쓰신 내용 <<
:
: 이재순 목사님은 어떤 분이며 어느 교회에서 시무하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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