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목사님의 치적과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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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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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7 00:00
1. 일반 사항
1991년 1월 54세에 오셔서 한 달이면 이제 만 18년이 지난 73세가 됩니다. 50대 전부와 60대 전부와 70대 초반을 서부교회에 오셔서 담임 목회자로 활동하셨으니 이제 서 목사님의 서부교회 재임 기간은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세는 80세에 시작했지만 서 목사님은 54세에 시작했으니 현 시점은 모세의 광야 20 년이 지난 시점이므로 모세를 실제로 평가하는데 불편이 없다고 생각 됩니다.
사람이 50대 전에는 좋은 의미로 발전을 한다 해도 아직 그의 인생 전체를 통해 변화하며 발전하기 때문에 그의 정체성을 말하기 어려운 점이 있고, 70대가 넘어 가면 그의 평생이 굳어 져 만든 인생 전체의 모습이 있어 적어도 '실적'으로는 더 산다고 해서 더 바뀔 것이 없습니다. 서 목사님은 공부하고 여기저기 옮겨 다니느라고 자기의 목회 방식으로 자기를 보여 줄 기회도 없었고 그리고 그의 신앙 실체가 뭔지도 사실 파악하기 어려웠습니다. 가르치는 것은 일반 신학이고 몸은 공회에 두고 있었고 목회는 가는 곳마다 전임자보다 교인이 줄고 있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54세에서 73세까지 서부교회 한 곳에서 목회하며 국내 몇 손을 꼽는 정상급 최대 교회를 18년간 목회했다면 더 이상 기다릴 것도 없고 머뭇거릴 것도 없이 그 분의 치적과 함께 그의 신앙 실체는 결론을 낼 수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마지막 날이 아니어서 아직 서툰 면이 많으나 그 날 이전에라도 우리에게 판단과 예측을 하도록 주신 자연계시가 있고 또 이 노선에는 이 노선 기준에서 아주 명확하게 미리 규정할 여러 기준들이 있습니다.
2. 부임 당시
1) 우호 지지 측
- 교인 구성
서 목사님이 서부교회에 부임할 때 그를 지지한 분들은, 우선 김효순 권사님이 최고 책임자며 실질적인 배후였고 김 권사님의 명령이면 서부교회로 부임할 수 있고 또 재임 기간 성실하게 순종과 충성을 바치며 서부교회를 총책임 진 서 목사님, 그리고 권사님을 받들고 서 목사님을 중심으로 물불 가리지 않고 투쟁한 장수들로는 김 권사님이 낳거나 기른 김 권사님의 자녀들인 김 목사님들 그리고 그 이후 추종 모든 교인들이 있었습니다. 그 전체를 하나로 묶어 '서파'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다. 비칭이 아니라 편의상 약칭입니다. 서 목사님의 부임 전에는 전체 숫자에서 반대측에 비해 적었으나 일단 모신 다음에는 80%에 이를 정도였습니다.
- 교인 성향
출신별로 구별하면, 첫째는 핵심 그룹으로 김 권사님 구역 식구나 출신은 거의 전부가 포함 됩니다. 둘째는 김 권사님 구역 외의 교인 중에서 학력이 좋거나 집안이 좋은 분들이 평소 서부교회의 전반적 분위기가 세상 상식으로 볼 때 막가는 면이 심하여 불편했다가 서 목사님에게서는 공회 전체 목회자들 중에서 가장 동질감을 느껴 끌리는 본능 때문에 지지하고 협조하는 세력을 형성합니다. 셋째는 출신은 천하나 공산 혁명 초기에 선전 선동에 이끌려 멋 모르고 따라 나선 사람들처럼 서 목사님에 대한 기대 때문에 끌렸던 교인들이 있었습니다.
흐름으로 본다면, 김 권사님이 무슨 지시를 하던 순종해 놓고 보는 교인들이니 김 권사님에게 직접 장악 되었거나 영향을 받는 이들이 서파의 심이 되었습니다. 한 편으로는 목사님 사후 초기에 서부교회를 운영하던 4층의 행동이 과격하고 너무 보수적이라고 생각하여 반발심을 가진 이들이 서 목사님에게서는 그 반대 이미지가 있어 기대감을 가진 경우입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는 과거 서부교회의 보수 성향이 체질적으로 맞지 않았던 분들이 과거 눈치를 봤던 데에서 이제 서 목사님을 모시면 서부교회의 지도자가 앞서 보다 자유롭게 믿는 방향으로 지도해 주리라는 심리가 컸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서부교회적인데 서부교회 외부인들로서는 이해를 할 수 없는 그룹이 있으니 첫째는 서부교회 2층 강단에는 불상을 갖다 놓아도 머리를 숙이며 따라 갈 수 있는 교인들의 숫자가 적지 않습니다. 이들은 381번지 상의 건물이 그들 신앙에 실질적인 전부입니다. 둘째는 그 누가 오든 말든 서부교회 내에서 자기 세력을 다소간에 확보한 다음 강단은 강단대로 놔 두고 자기는 자기대로 자기 주변을 장악하는 소그룹 지도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서 목사님이라는 인물에 대한 지지가 아니라 자기의 현상을 유지하기 위해 누가 오든 그를 적절하게 활용하는 이들입니다.
- 지지 이유
서파가 서 목사님을 백 목사님 사후 서부교회의 유일한 대안이라고 적극 지지하고 활동한 것은
'훌륭한 학벌'이었고
'고귀한 인품'이었으며
'적통인 김효순' 출신이며
'세계적인 교회사학자'이며
'백 목사님이 거명한 후계자'이며
'서부교회 출신으로 총공회 신앙에 정통'이며
'미국 10년 생활에서도 속화되지 않은 신앙 순결성'인데
'백 목사님 사후 서부교회를 과거보다 더 발전 시킬 이 시대를 감당할 종'이었기 때문입니다.
2) 반대 거부 측
- 교인 구성
반대 측은 크게 3 가지 부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지난 18 년의 투쟁사에서 본 것처럼 우선 4층 중간반이 있습니다. 둘째는 4층보다 서 목사님을 더 극단적으로 반대한 이들은 백 목사님 생존 마지막 시기에 백 목사님께 5층 결재를 받으며 서부교회 운영의 주요 실무를 맡았던 남자 조사님들이었습니다. 장영목 주일학교 총무와 이민영 편집실장과 이치영 특수반 부장이 있었고 소속은 서부교회가 아니나 서부교회 내부 직원처럼 활동했던 답변자가 이들을 지도하던 입장이었습니다. 내부적으로는 보통 중간반을 통칭해서 여반이라고 불렀고 그 외를 남반이라고 했습니다. 셋째는 스스로 배운 것이 있어 체질적으로 서 목사님을 반대했던 이들입니다.
중간반은 반사들과 그 주변 식구들을 중심으로 수백 명이 있었고, 남반들은 중간반과 김 권사님을 뺀 나머지 3 명 권사님들이 답변자를 신뢰하고 있어 교회 전체의 기본 조직인 구역적 지지가 컸고 또 활동적으로는 서부교회가 주일학교 반사 중심이었으므로 장 조사님의 활동이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특히 말씀에 깨달음이 남 다른 핵심 교인들은 연구소 중심으로 별도 연결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세 번째 그룹은 서 목사님 부임 전에는 남반은 위의 남반에 또 여반들은 대개 여반에 자연스럽게 연결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 교인 성향
이 교인들은 서부교회 목회자로 왔기 때문에 서 목사님에 대한 표현과 입장을 입에 담게 되었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서 목사님이라는 이름을 총공회 수백 명 교역자 중에 한 사람으로 명단에서 기억할 정도입니다. 사실은 공회 교역자라고 인정하지도 않기 때문에 그냥 그 분에 대하여 들리는 소식이 있으면 듣고 지나 가는 정도였습니다. 소를 기르는 우리에 닭 한 마리 오간다고 소들이 굳이 보려 하지도 않고 우연히 보이면 저렇게 생긴 것도 있구나 하는 정도였습니다.
이 교인들은 서 목사님이라는 이름에 앞서 이 노선에 원래 모습에 철저한 교인들입니다. 다만 투쟁하는 방식이 훗날 18 년을 통해 드러 난 것처럼 다를 뿐입니다. 이 노선 사랑과 자부심과 가치관이 특별하고 어떤 세월 속에서도 변치 않을 사람들입니다. 다만 끝까지 그럴 것인지는 18 년 세월을 두고 보니까 많이 흩어 졌습니다만 서부교회가 정상적으로 운영이 되었다면 늘 과거 그 모습에서 끝까지 철저했을 것입니다.
이 교인들에게 한 가지 특색이 있다면 행동이 과격하다는 점입니다. 서 목사님 문제로는 남반 측에서 큰 활동을 하지 않았고 여반 측에서 주로 활동을 해서 과격하게 인식이 되어 있으나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다만 서 목사님을 두고는 남반에서는 부임이 없도록 막아야 한다는 판단이었고 일단 부임하게 되면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상대할 현실이 아닐 것이라고 판단을 했습니다. 여반은 그 반대였습니다. 부임을 시켜 놓고 서부교회에 온 상태에서 투쟁을 하고 2 년 후에 돌려 보내서 서 목사님에게나 그 지지 세력들에게 서 목사님에 대한 환상을 깨뜨리는 것이 유익하다고 판단했습니다.
- 반대 이유
우선, 그는 총공회와 서부교회 신앙노선을 두고 외부인이므로 아예 고려 대상이 아니었고
다음, 그의 장점이라는 학벌은 공회와 서부교회에서는 학벌 자체를 결격사유라 생각했고
또한, 김효순 계열이란 서부교회 내에서 가장 해악의 인물이므로 그 계열은 기피 대상이고
인품은, 그의 과거 오랜 세월 행적을 통해 이익을 위해 기회를 노리는 이중인격이라고 봤고
후임 거론은, 백 목사님이 어린 사람을 격려하는 방법이었으므로 서 목사님은 여기에 맞고
신앙 순결성은, 일반 도덕 신앙 기준으로 말한 것이지 그는 신학 10년에 외부인이 되었고
앞날의 기대는, 서부교회 주일학교 반사 하나가 되기에도 부족하다고 봤습니다.
반대의 방법으로는 여반 측은 그가 서부교회에 와도 아무 영향을 미치기 어려울 것이므로 2 년 후 시무투표에서 보내면 그만이라고 봤고 남반은 그가 일단 서부교회 내로 들어 오지 못하게 하는 것은 너무 간단하나 한 번 들어 오면 다른 목회자와 달리 반대 측에게 공격의 기회를 주지 않고 납작 엎드려 조용하게 세력을 키울 것인데 그렇게 되면 싸워서 내 보내기 위해서는 너무 손해가 많아서 차라리 교회를 포기해야 할 상황이 올 것이므로 서부교회 울타리에 발을 딛지 못하게 하자는 입장이었습니다.
결국 서 목사님의 부임은 서 목사님의 지지하는 측의 실력으로 온 것이 아니고 서 목사님을 원할 때 언제든지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한 여반 측에서 서 목사님의 부임 자체는 반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들어 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남반들은 바로 개척으로 다 나왔고 이후 어떤 투쟁에서도 손을 끊었으며 여반들은 원래 소신에 따라 18 년간 계속 투쟁하고 있습니다. 여반은 여반의 사명에 따라 서부교회 내부에서 서부교회 전체를 운영할 날을 바라고 노력하고 있으며 남반은 남반의 사명을 따라 이 홈에서 노선 연구와 전달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3. 부임 이후
1) 좋은 현상
서 목사님 스스로는 서부교회라는 환경 속에서 정권을 실질적으로 잡기 위해서 김 권사님을 어느 면으로 보나 극진하게 섬겼고 예우했고 그 분의 지시라면 최대한 순종하려 했습니다. 그리고 일단 서부교회를 맡았기 때문에 전체 교인들을 장악하기 위해 그의 식대로 조용하게 시작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영호는 이 노선의 반대자였다는 반대측 교인들에게 반대의 힘도 약화를 시켜야 했고 또 투쟁의 기회를 주면 아니 되었고 또 모두가 어떻게 하는지 바라 보고 있는 상황이었으므로 서 목사님은 평소 하지 않던 공회적 행동들을 하게 됩니다.
교인들 전체가 서 목사님의 설교가 설교록 어디를 근거하고 있는지를 지켜 보고 있고 매 설교 시간이 끝나면 설교록과 서 목사님의 설교를 비교해서 낱낱이 도마질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 목사님은 설교록을 아예 강단 위에 가지고 올라 가면서 교인들에게 보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서부교회를 부임하기 전에는 외부인들이 설교록을 물어 보면 일반 교회에 다 있는 것이고 별 것 아니라고 말을 했던 입장에서 이제는 설교록만이 전부인 것처럼 충실하고 있었습니다.
어디까지가 진심이며 어디까지가 정치인지는 사실 아무도 알지 못하나 외부적으로 분명히 설교록을 무시하고 살아 왔던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서부교회에서 설교록 중심의 설교를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서 목사님 설교는 나날이 발전을 합니다. 그리고 믿을 만한 측근들에게 사석에서 '정말 신학보다는 이 설교록을 바로 읽는 것이 중요하더라'는 말이 은밀하게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 어떤 비판과 해석이 있을지라도 서부교회 부임 이전과 이후의 서 목사님은 자기 자신에게는 신앙의 발전에 틀림 없이 나아 졌습니다.
2) 나쁜 현상들
대신에 서부교회에는 서부교회가 앞 날에 타락 속화 될 수 있는 문을 하나도 빼지 않고 다 열어 놓았습니다. 성문을 열어 놓았다는 말은 성 외부의 그 어떤 것이든지 다 들어 오게 했다는 말입니다. 성문을 열어 놓았는데도 내부가 아직 속화되지 않았다면 이는 내부의 실력이 아니라 외부에서 그 문을 활용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짐승들도 우리 문을 열어 놓아 보면 처음에는 어리둥절해서 잘 나가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한 두 마리씩 이탈이 있고 좀 시간이 지나면 한 마리도 남아 나지 않습니다. 서 목사님 재임 기간 중에 모든 것을 평가하려면 세부사항 별로 따져 봐야 하는데 총론으로 말하면 서부교회를 세상 일반 교회의 타락 속화의 길에 세워 놓고 모든 종류의 문을 다 열어 놓았다고 요약하고 싶습니다.
이론적으로는 개방을 잘 활용하면 외부의 좋은 것은 받아 들이고 나의 좋은 것은 외부에 전하며 나쁜 것은 공항에서 차단하면 된다고 합니다만, 실제로는 좋은 것보다 나쁜 것은 더 빨리 배우고 좋은 것은 학원을 다니며 예습 복습을 해도 익히기 어렵습니다. 재임 18 년간 서부교회는 과거에 꿈도 꾸지 못할 모든 종류의 속화 타락의 문을 열고 그 길의 초입에 서서 발을 몇 발짝 떼 놓았느냐는 것만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열기는 쉬워도 한 번 열어 놓은 것을 닫는 것은 현 상태가 유지 되면서는 불가능한 것이 세계 문화사입니다.
(1) 노선 이탈
그 어떤 발전과 부흥과 변화가 있었다 해도 서부교회라는 이름, 공회라는 이름에서는 노선을 떠났다면 이는 사망이며 탈선이며 이 기준에 문제가 있다면 다른 공로를 가지고는 더 이상 따져 볼 필요가 없습니다. 누구든지 쉽게 알 수 있고 누구라 해도 부인할 수 없는 사례를 몇 가지 들어 본다면,
- 담임 목사의 타 교단 겸직
그 어떤 말을 해도 이처럼 더 나쁜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여자가 몰래 누구를 만나러 다닌다면 그래도 자기는 참지 못해서 그러했다 치더라도 적어도 자식에게 본은 보이지 않으려는 노력입니다. 그런데 호적에다 두 남자를 올려 놓고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공개까지 해 버린다면? 물론 그 쪽에서 했지 내가 했느냐고 반론할지 몰라도 그 교단과 그 학교가 서 목사님에게 돈을 대는데 그 이름을 대외에 사용하려 하지 않겠습니까? 그 곳에서 찍은 모든 사진은 서 목사님의 자기 판단이며 결정이었습니다. 세계 어디에 어떻게 공개해도 좋다는 허락입니다.
서부교인들에게 단 한번도 강단에서 이중국적을 옹호하거나 이중결혼을 장려한 일은 없을 것이나 그는 행동 하나를 가지고 평생 가르쳐서도 교육 시키기 어려운 일을 몸소 행동하여 보였습니다. 이 노선과 저 노선을 함께 가질 수 있다는 사실, 이 것이 신앙의 성질상 뒤에 가면 이 종교와 저 종교를 함께 가질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내고야 맙니다. 설교록에 나오는 표현에 의하면 어려운 길과 쉬운 길을 함께 알게 되면 인간은 어려움을 당할 때 본능적으로 쉬운 길을 택하게 되므로 평소 두 길 중에 어느 길인지를 확정해 놓아야 한다는 것이 이 노선의 평소 자기 관리입니다.
이런 면에서 그 지지 교인들은 서 목사님을 모실 때에 다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기본 양심도 없는 이들입니다. 있다면 지금이라도 회개를 해야 합니다. 그를 바꾸기 위해 그를 모실 때 노력 이상으로 피 흘리는 투쟁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익숙한 정치가들이 되어 일단 정권을 잡았으니까 정권은 쥐고 그 다음 무마를 하는 식으로 방향을 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치 평양 정권이 공산주의로 시작했다가 민족주의로 돌아 서고 급기야 세습 왕조를 통해 가내 공업으로 귀착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밑에 이론가들이 말과 힘을 가지고 백성을 끌고 가듯 그런 식입니다.
이런 면 때문에 답변자는 서 목사님 자신에 대해서는 서부교회 부임을 위해 운동도 하지 않았고 일단 온 다음부터는 그 신앙이 이 노선으로 가까와 질 수 있어 복이라고 생각하나 그를 이 노선 제일의 지도자로 생각하여 그를 소개했던 김 목사님들 그 식구들 그 측근들은 목회자가 아니라 일반 세상 양심도 없는 사람들이라고 치고 있습니다.
- 강단 교류
좁은 의미의 강단 교류는 교회의 공식 예배의 강단에 올려 놓아야 하지만 넓은 의미로는 실질적으로 서부교회를 서부교회가 맺어서 안 되는 교류를 했는지를 두고 말합니다. 백 목사님 생전에 고신의 많은 지도자들이 서부교회 강단에 섰지만 그 것은 강단 교류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을 이 노선으로 돌아 서고 또 이 노선을 비판한 과거를 회개할 기회를 준 것입니다. 그러나 서 목사님은 극히 일부 기회에 일부 교류를 시켰지만 그 것은 근본 취지와 방향이 다릅니다. 서부교회 내부 교인이 고신을 향하여 배우고 받아 들여야 할 것이 있다는 첫 길을 열었던 것입니다. 첫 잘못이 신앙의 지조 정조 개념을 없앴다면 둘째 잘못은 대외를 향해 달려 갈 수 있는 길을 다 닦아 두었다는 것입니다.
- 백 목사님에 대한 반발심 착근
앞에서 말한 것이 다 문제가 있다 해도 이 노선에 대한 근본이 바로 되어 있으면 복원력을 기대라도 하겠는데, 복원력의 기회조차 없도록 하기 위해 서 목사님의 재임 기간에 계속한 것은 백 목사님에 대한 반항 반발심을 조용히 그러나 철저하게 심어 놓았습니다. 지금 서부교회에서는 설교록의 구입이 단 1권도 없습니다. 서 목사님 몰래 또는 서부교회와 상관 없이 개인적 구입은 아주 가끔 1 - 2 권이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 기준으로 비교하면 단 1 권의 구입도 없습니다. 묘소 방문도 없습니다. 처음에는 돌아 가신 그 날에 가는 것은 백 목사님 뜻이 아니라 했습니다. 그러면 서 목사님 청빙부터 그 이후 모든 것은 백 목사님의 뜻이었던가? 백 목사님에 대한 반발심을 심어 놓는 것만큼 서부교인을 자기 중심으로 재편할 수 있다는 식은 역사적으로 어느 정권이 바뀌어도 다 그렇게 하는 것인데, 문제는 5계명입니다.
(2) 교회의 침체
- 교회의 분열
아무리 싸워도 교인들이 다시 합한다면 이전에 싸운 것은 발전을 위한 단계가 됩니다. 훈련이며 자기 발견이며 자기 수정이 되어 넓은 면에서는 평화를 위한 전쟁이니 이는 성장통입니다. 그런데 서 목사님은 서부교회를 아주 두 쪽으로 나누어서 이제 서 목사님이 떠난다 해도 다시는 합할 수가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송용조 목사님이 사직동교회에서 사용한 방법인데, 실은 일반 교단에서는 흔하디 흔한 방법인데도 공회는 너무 순수한 곳이어서 그런 의도를 아는 분도 극히 적었고 설명을 해도 너무 순수해서 알아 듣지를 못했습니다. 몇 번 겹쳐 당해 봐야 아는 것인데. 서 목사님 재임 기간의 세 번째 큰 문제는 내부적으로 다시는 하나 될 수 없도록 만들어 이제 서부교회 내에 서 목사님이라는 별도 그룹을 심어 놓은 것입니다.
- 앉은뱅이 불구화 된 교회
백 목사님 생전에도 교회의 성장 부흥에는 과도기도 있었고 때로는 후퇴도 있었고 이탈로 인한 내분도 있었으니 없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바로 이끌어 나가는 데 있어 발생한 자연 현상들이었습니다. 그 후임들로서는 백 목사님과 바로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일반 다른 교회들의 보통 목회자들과 비교할 수는 있습니다. 만일 그 정도도 아니라면 중대한 문제입니다. 이재순 목사님은 대구공회와의 분립에서 과도기를 맡았을 뿐이므로 평가 대상이 될 수 없으나 서 목사님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20여 년의 세월을 본인이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할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시무투표 자체를 없애고 재임을 했으므로 이는 백 목사님 생전의 백 목사님보다도 더 큰 힘을 가지고 전권을 행사했습니다.
선거도 없이 그리고 목회자에 대한 그 어떤 책임도 물을 수 없도록 교회를 만들었으므로 이는 공회 법에서도 하나님 독재가 아닌 서 목사님 개인 독재가 되어 금지 된 선을 넘었고 서 목사님이 기독교는 민주주의라고 외쳤던 일반 교회와 세상 정치로 볼 때도 왕정국가 외에는 생각할 수 없는 독재를 했습니다. 평양정권조차도 비록 형식이라도 비록 감시를 철저히 한다지만 그래도 선거는 있습니다. 서 목사님은 매 2년의 선거를 20여 년 폐지하고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서부교회의 부흥과 발전에 관련 된 결과는 오직 서 목사님 혼자만의 책임입니다.
외형도 교인들의 예배 참석율도 신앙의 지향하는 의지까지 그 어떤 면으로든지 서부교회는 목회지를 따로 갖기 어려운 한 사람의 학자의 개인 실험 대상이 되었고 이제 70세가 넘었으므로 앞으로는 서 목사님의 노후 텃밭으로 전락했습니다. 서부교회는 한 교인의 교회 중심 생활의 집중력이 일반 교회의 부목 정도였으나 이제는 거의 일반 교회 수준으로 떨어져 버렸습니다.
더 이상 살핀다면 시간 낭비일 것 같습니다.
서 목사님은 20여 년 잘 계셨고, 그 측근들은 꿈에도 그리던 서부교회 정권 주변에서 기웃거릴 수 있었고, 그 분들과 뜻을 같이 한 교인들은 교회 안에서 신앙을 떠나 세상을 즐겨 본 나날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서 목사님 시기는 다윗을 이은 솔로몬이 아니라 르호보암이었고 모세를 이은 여호수아가 아니라 고라였으며 아브라함을 이은 이삭의 걸음이 아니라 이스마엘의 걸음이었습니다. 이 것은 무슨 학설의 대립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고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어 단죄를 할 수 없는 애매한 문제도 아닙니다.
북한 정권에 잠입한 자본주의며, 남한 정권에 잠입한 좌파 남로당 활동이었으며, 불교계에 스며 든 기독교 운영법이었습니다. 이 노선이 옳으면 서 목사님과 그를 둘러 싸고 교역자 회의 때 수 없이 악을 쓰며 물리적 충돌을 서슴치 않았던 김 목사님들이 틀린 것이고, 만일 서 목사님이 옳으면 이 노선이 원래 어느 목사님의 말씀처럼 생겨서는 아니 될 사생아 교단이기 때문입니다. 이 홈은 이 노선이 옳다는 확증이 있으므로 서 목사님이라는 개인이 아니라 서영호라는 신앙 노선이 틀렸고 그와 멍에를 함께 했던 김 목사님들의 죄가 고라와 함께 한 이들의 죄라는 설명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서부인 님이 쓰신 내용 <<
:
: 서목사님의 재임기간이 20년쯤 되나 봅니다. 서목사님 후임 이야기는 올 때부터 말들이 있었습니다. 4층이 너무 저래 싸니까 내보내자고 2층교인들도 말이 많았습니다. 4층교인들은 2층교인들이 죽어도 잡고 있다고 자주 말하는데 실제는 아닙니다. 일부는 그렇지만 대개 교인들은 대안이 없어서 그냥 온 겁니다. 20년가량 지냈으니까 이제 서부교회에 서목사님 시기를 평가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치적을 평가해 주셨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