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애는 것이 나은 사람도 있으나, 전체적으로 보면 보존이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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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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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5 00:00
백 목사님 생전 마지막까지는 공회 전체 교역자들이 설교 자료 한 자라도 더 일찍 확보하려고 혈안이 되었습니다. 당시 20만원 생활비 교역자가 60만 원 100만 원씩 주고 자료를 복사하려고 동료 교역자 주변을 기웃거렸습니다. 그래도 서로 자료를 덜 공개하기 위해 선의일 수도 있고 악한 심보일 수도 있는데, 돈을 주고도 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목사님 사후에 대구공회가 교권을 잡아야 하는데 서부교회 강단이 재독으로 넉넉히 잘 유지가 되자 설교만 가지고 말한다면 백태영 목사님이 제일 인기가 있지 않겠나 하는 오판에서 서부교회 재독을 막고 그 분의 교권 진입의 걸림돌을 없애려고 대구공회 목회자들이 어느날 갑자기 재독은 죄다, 필기 노트도 다 불 사르라고 했다 하여 일시 광기가 도진 적이 있었습니다. 속으로는 자기 교회 설교 인기 유지를 위해 자료를 다 챙기고 있으면서...
코메디는 그렇게 한 편 지나갔으나 그 유탄에 맞아서 이 노선을 떠났거나 수 없이 죄를 짓느라고 목이 쉰 수 많은 사람들... 오늘 아침에 다시 20년 전에 일시 사용했다가 없어 진 논리를 접하며 참담한 심정으로 글을 적습니다. 기록으로 남아 있어야 같은 유혹에 같은 죄를 짓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산공회2에서 나온 이야기로 들었습니다. 급하면 그 많은 설교록 내용 중에 한 곳만 짚어서 써 먹습니다. 마치 이단들이 성경 전체에서 딱 한 구절만 골라 뽑은 다음 자기 주관으로 해석하여 다른 곳으로 끌어 가듯이.
위 글 질문자를 향한 글이 아니라 위 글 질문자와 다른 목적으로 글을 적고 써 먹는 분들 때문에 답변이 좀 공격적이 되었습니다. 깊은 양해를 구합니다. 죄를 지을 사람들에게 사전에 죄 지을 의사를 포기 시키는 목적 때문입니다.
1. 공회의 필기 역사
- 설교의 은혜
천주교는 불교처럼 수도 없는 의식과 절차만 지키면 하나님이 은혜를 주신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신약의 은혜는 예배 시간의 설교 말씀을 통해 내가 그 말씀대로 변화가 되어 실제 생활에서 그렇게 행동을 할 때 은혜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술을 좋아하던 사람이 설교를 통해 술을 끊어야 하겠다는 결심을 하여 사람이 바뀌고 이제부터는 주변에서 술을 권해도 그 유혹을 물리치게 된다면, 이 것이 예배의 은혜 말씀의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 공회의 필기
백 목사님 설교는 그 은혜도 크고 강하지만 그 설교 내용에 배우고 고쳐야 할 내용이 너무 자세하고 깊어서, 설교를 듣는 사람들이 예배 때 받을 은혜를 받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놓쳐 버리는 내용이 많고 설교 내용 중에서 헷갈리는 부분도 있기 때문에 귀한 말씀을 잊거나 놓치지 않기 위해서 모든 교인들이 필기를 했습니다. 말씀 하나 잘못 깨달으면 이단이 될 수 있고 또 복이 되는 말씀을 놓치면 너무 안타깝기 때문에 백 목사님의 평생 설교에는 듣는 교인들이나 교역자까지도 모두들 예배 시간 내내 다 필기를 해 왔습니다.
- 예배 시간 태도 문제
그런데 백 목사님께 성경을 배우는 목회자들은 설교를 듣고 나면 자기가 교회에 가서 설교를 해야 하는데 설교를 정확하게 하기 위해 교인들보다 필기를 더 열심히 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예배 시간에 설교를 듣는 자신이 우선 은혜를 받아 변화 되는 이 면은 소홀하게 되고 필기를 잘해서 설교를 잘 하는 사람이 되려는 의욕만 앞서다 보니까, 공회 목회자들이 모두들 말은 잘하는데 인격적으로 변화가 없어 교인들에게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 녹음기 문제
1970년대부터는 일제 소니 녹음기를 구하기 쉽게 됩니다. 그러자 예배 때 아무리 노력해도 필기는 부족한 점이 많으므로 녹음을 통해 예배 후에 완벽하게 정서를 해서 바로 전하는 사람이 되려고 녹음기를 사용하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들이 처음에 동기는 그러했지만 예배 시간에 녹음기만 믿고 마음을 집중하지 않거나 조우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 녹음 금지
설교 내용을 정확하게 공부해서 새기고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는 그 노력이 잘못 된 것이 아니라 녹음기를 믿고 방심하여 예배 시간에 조우는 태도 때문에 백 목사님이 녹음을 금지 시켰습니다. 그런데 녹음기가 소형화가 되고 참석 교인들이 너무 많아서 몰래 녹음해도 막지를 못하고 오히려 몰래 녹음을 하려다가 은혜 받는 자세가 더욱 불량해 지자 1980년부터는 녹음을 허락하게 됩니다.
그런데 녹음기를 전면 허용하자 펴놓고 교역자들이 예배 시간에 자는 경우가 생기자 녹음기에 대하여 계속 경고하면서 한편으로는 편집실을 만들어서 녹음을 따로 해서 줄 터이니 예배 때는 예배에만 집중을 하도록 가르치게 됩니다. 그래서 답변자부터 1982년 10월에 목회연구소의 전신인 서부교회 편집실 직원으로 채용 될 때 첫 임무가 원래는 대외 출간용 녹음 테이트 담당이었습니다.
2. 편집실에서 연구소로 확대 개편
1970년대 말에 백 목사님 설교 내용에 대한 가치가 하늘을 찌르며 그 필기에 집중하던 교역자들이 당시 유행하던 일제 녹음기를 사서 녹음 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필기와 녹음이 설교를 잘 파악하여 은혜롭게 사용하면 큰 선물이나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바로 우상이 될 수 있기에 목사님은 그 해악을 먼저 철저히 경계하고 조심을 시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이론이나 이견이 있을 필요가 없는 수준으로 말씀을 하셨는데, 어느 한 구석의 한 표현을 가지고 왜곡하는 현상, 늘 조심할 일입니다.
- 82.6.22.화새
...그런고로 우리는 완전이라 참이라는 그분을 향하여서 그분을 모시고 살 우리들이기 때문에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주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고 부른즉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말씀하신 이 말씀을 기억하고 우리가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고 어제 어떤 집사님이 한 20여년 지난, 20여년 전에 필기한 노트를 가지고 저한테 와서 이로 인해서 울면서 읽으셨습니다. ‘목사님이 이 설교는 한 번밖에 안 해 주셨는데 이 설교가 제게 기억이 납니다.’ 하면서 그 설교를 읽으면서 내가 밥을 먹을 때에 먹는 옆에 앉아서 설교를 읽으면서 울면서 읽었습니다.
그래 내가 들어도 참 내가 감사한 것은 ‘내가 아무 데도 배운 데도 없었는데 그때에 증거한 교리와 신조도 그는 철저하다. 일반이 알지 못하는 곳을 갔으니 주님이 가르쳐 주신 것이지 내 지능은 절대 아니다’ 하는 것을 내가 생각하면서 감사를 또 했습니다. 이러니까 그때의 설교를 들추어 볼 필요가 있다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이러니까 그때에 잘했든지 못했든지 그 필기 노트를 가지고 있는 분들은 다 그것을 가지고 오면, 같은 설교가 열 사람이나 스무 사람이나 서른 사람이나 같은 설교 필기를 모아 가지고 그것을 대조해서 쪼갱이 쪼갱이로 이래 모두 떼 가지고 이 사람은 이 설교를 맡고 저 사람은 저 설교를 맡아 가지고 그 한 설교에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지 그것을 정확한 것을 발견해 가지고 책으로 출판하려고 하는 그런 계획을 가졌는데, 내가 지금 들을 때에 찬성을 했습니다. 그분은 읽을 때에 은혜가 되어서 울고, 나는 그때 눈물이 나려 하는 것은 ‘이 더러운 죄인을 주님께서 어떻게 해서 이렇게 붙들고 쓰셨는가’ 하는 데 대해서 감사의 눈물이 나올려고까지 했지마는 눈물은 나오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노트를 좀, 잘못해도 좋아요. 잘못해도 거게서 한 마디라도 옳은 것을 기록한 것이 있을 것이라 그말이오. 또 자기가 자기 생각대로 기록한 그것은 다 제거될 거라 말이오.
박혜영 권찰님이 죽고 난 다음에 그분이 가졌던 노트를 딴데 태울 수 없으니까 여기 식당 부엌에서 태울려고 이렇게 주 모아 놓은 것을 내가 보고 ‘이 노트가 어째 나와 있느냐?’ ‘태울려고?’ 어북 태웠대요. 태우는 것을 ‘태우지 말아라. 태우지 말고 이것을 한번 들추어 상고해 봐라’ 그것을 상고해 보니까 다시 이것을 아무래도 참 책으로 출판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적실히 느껴지니까 이제 그것이 동기가 돼 가지고 지금 그거 하는 사람을 품을 주고 지금 사 가지고 이렇게 할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그 노트 있는 것을 자기 필기가 완전치 못하다고 부끄러워하지 말고 이 복음 운동을 협조하는 그런 정신에서 있는 대로 다 내어 놓도록 하십시오. 이말출 집사님이 알뜰히 했는데 태워 없애 버렸는지 혹은 아들에게로 보냈는지, 이말출 집사님 어데 있습니까?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이말출, 아들에게 보냈어? 태웠소? 태웠소? 뭐라 하노? 뭐라 해? 있어요? 그게 인제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다 태워 없애 버리는 것도 한 사상이 있겠지마는, 부민교회에서 그때 내가 증거할 때에 그 한 시간 증거한 것이 아마 한 시간이 아니고 저녁예배로 지내는 것이 한 두 시간 세 시간씩 이렇게 증거했을 것인데 그때의 필기도 다 있을 것입니다.
이러니까 그것을 참고로 삼아서 할 터이니까 노트를 다 있는 사람은 내도록 그래 하십시오.
- 87.2.13.금새
그러기 때문에, 제가 이 말 하는 것도 지금 말하는 것을 지금은 자유 있으니까 얼마든지 말하지마는 앞으로는 그것을 없앨라고 하기 때문에 이 설교록을 가지고, 내가 자꾸 사라 하는 것은 설교록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나중에 죽임을 받을란지 모릅니다. 설교록을 뒤에 가지고 보존을 못 할란지 모릅니다. 그러면 설교록 이게 숨겨지고 숨겨지고 이래 가지고라야 보관이 돼지지 그리 안하면 보관을 못 할 때도 온다 그말이오. 또 필기 이런 거 보관을 못 할 수도 있는 그런 때도 와요. 왜? 이것은 전부 이 세상과 대립되는 이 말이기 때문에.
- 1982년에
백 목사님은 자신의 임종을 고려하면서 편집실이라는 부서를 서부교회 내에 두고 책임자와 필요 직원을 대폭 확보했고 테이프 보관 보급과 설교록 출간 등의 업무를 맡겼고 1988년에는 목회연구소로 정식 발족을 시켜 자료의 연구까지 하게 만들면서 서부교회와 독립기관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 사후에 총공회와 서부교회는 노선과 교훈에서 삐뚤어 져도 이 교훈이 이 노선을 지켜 나갈 것이라고 많은 기록을 남겨 두고 있었습니다.
80.5.6.화새
교역자 몇 명 없어요. 여기 녹음기 기계만 와서 있지 교역자는 없어. 나 녹음기 보고 설교하고 있어요, 지금. 교역자들은 없고. 녹음기 그것을 금했다가 허락했더니만 녹음기 떡 틀어 놓고 ‘녹음기에 들었으니까, 녹음기에 들었으니 지금은 편히 쉬고 그때 가 가지고’ 기도실이니 핑계대고 가 가지고 녹음기나 틀어 놓고 자며 깨며 들어서 귀에만 익어서… 요새 영어 공부하는 거 뭐 한 마디, 한 단어를 5백 번만 들으면 저절로 안다고 하는 그거 이름 뭐이지, 그거? 그거 나왔데? 그 테이프 뭐 해 가지고, 그게 얼마, 10만 원이라든가, 15만이라든가? 그런데, 그거 틀어 놓으면 그저 뭐 자며 듣든지 나가며 듣든지 한 단어를 5백 번만 들으면 이제 귀에 익어서, 나도 ‘오케이’ 그거는 할 줄 압니다. ‘오케이.’ 하도 들어 쌓아서. 그게 아마 5백 번은 못 들었을 건데 그래도 외워진다 말이오. 그래 내가 그거 하나 주문하라 했습니다. 해서, 그거 해 놓으면, 그거 들을 시간이 있을는지 몰라도 그것 듣다 보면 그거보다는 좀 딴 게 중요하면 그거 들을 시간 없겠는데…
그거 모양으로 자면서 틀어 놓고 자꾸 들으니까 이제 귀에는 익어서 알기나 알고, 이거 가지고 교인들에게나 말해 주고 그러면 남의 복음으로, 듣는 사람들은 구원이 될는지 몰라도 자기(自己)에게는 구원이 안 될 것이고, 또 자기 구원 안 됐는데 그 밑에 듣고 교인(敎人)들이 구원 얻을 리는 만무합니다. 여기 모두 녹음기 모두 교역자요. 오늘 오전에도 보니까 전부 녹음기 틀어 놓고 다 누워 자는구먼.
또 실은 환난(患難)이 오면 이기겠다 싶은 그런, 내가 보기에 그렇게 보이는 사람은 한 사람도 안 보입니다. 뭐 과거에도 창기 모양으로 뭐 형편에 따라서 팔방미인(八方美人)으로 그렇게 살아왔는데 그게 그렇게 당장에 고쳐질 줄 압니까? 어림도 없습니다.
오전에 일곱 가지 말했는데, 그거 다 죽은 겁니다. 다 죽은 거. 일곱 가지 그것이, 가정(家庭)이 하나님 앞에서 진노를 쌓아 가지고 징계를 받을 때에 그 일곱 가지에서 다 끝까지 망하고 말고, 개인(個人)도 그러하고 교회(敎會)도 그러하고 시대(時代)도 다 그렇습니다. 그 일곱 가지 속에는 생명(生命)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일곱 가지를 아무리 말해도 느끼지도 아니하고, 아예 ‘녹음기가 들으니까…’ 녹음기가 무슨 감동을 받겠소? 하나님께서는 인격(人格)에게 전했고, 예수님이 복음 전할 때에는 다른 방편을 쓰지 않았습니다. 글을 안 쓰셨소. 글을 쓰지 아니하고 꼭 입으로 말씀 전해 가지고 이렇게 했는데, 녹음기 틀어 놓고 ‘녹음기 안에 있다.’ 하고 자기는 평안하게 누워 자니, 우리 서부교회에도 보면 요새 녹음기 때문에 그만 잡니다.
이거 녹음기 없을 때에는 그래도 ‘이거 기록을 해야 나중에 가서 듣기라도 하지’ 싶어서 기록을 하니까, 기록하면서 들어도 좀 뭐이 들어가는데, 실은 그것도 재미없습니다, 필기하는 것도.
녹음기도 안 하고 필기도 안 하고 꼭 들어서 그게 우리 비(碑)에 새겨져요.
81.8.13.목새
'김영웅 목사 녹음기 가지고 왔지.' '그것 꺼버려.' 자기 암만 그래도 여러분들 안 듣는데 녹음기 그것 꺼버려요. 그것 그러면 그것 여러분들 하나님 말씀 팔아먹는 아주 몹쓸 사람 됩니다. '녹음기 놓고 다 자. 이 끈을 뭐 하려고 매어 놓았어?' '이것 다 풀어 버려요.' 무릎 끊고 앉아도 소용없어. 하나님은 무릎 그것 가지고 같이 안합니다. 누워도 기도해도 하나님 기뻐하셔요. 그 녹음기 그것 없애버려요. 그것 안 돼 그것. 녹음기 가지고 여러분들 다 죽습니다. 이러니까 교회가 부흥이 안 돼. 엉뚱한 소리만 하고. 무엇 때문에 이 복음 가지고 교회가 부흥이 안 돼. 불같이 일어 날건데 이러니까 껍데기만 가지고.
장래 목사 이민영 선생도 녹음기 갖다 놓고 나는 녹음기를 믿사옵나이다. 나는 이 백 목사한데 배워 가지고는 안 되고 녹음기한테 배우겠습니다. 이러니까 그래 놓고 나서 자기는 잡니다. 여러분들, 이 진리의 말씀 이것 아는 것이 문제가 아니요. 이것은 껍데기입니다.
이 신구약 성경 말씀도, 말씀도 이는 하나의 문서계시인데 이 문서 뿐이라면 이것 다 아무 가치 없는 것이요. 이 문서계시 성경 말씀 안에 이 안에 살아 계시는 내재하신 성신의 감화가 같이 있기 때문에 그 감화를 접해야 되지. 성경으로써 감화를 접해야 되지. 내재적 영감 성경 안에 있는 영감, 따라합시다. 내재적 영감! 내재적 영감!
그 성령을 접해야 되는 것이지. 이 성경을 만 독을 하면 뭐 하겠소? 이 말씀을 들을 때에는 이 진리에 이 꺼풀 속에 들어가면 영감이 그 안에 있고 영감 속에 들어가면 하나님의 능력이 있으니 거기에 접해야 되는 것이지, 그냥 말만 들으면 앵무새 모양으로 팔아먹은데 뭐 하려고 여러분들에게 한 달에 사십 만이고 오십 만이고 삼십 만이고 월급 주면서 여러분 필요가 뭐 있어야지. 잡소리 듣지 말고 녹음기만 틀어 놓고 있지. 뭐하려고 가 있어 있기를. 녹음기만 못한 녹음기에게 배우는 그까짓 것을 목사라고 모시어. 녹음기에게 배우는 것을.
이래 놓으니까 여러분들은 안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녹음기를 믿는 우상이 여러분들이 속에 들어 있기 때문에 성령의 감화도 없고 아무 감각이 없어. 내가 여기 볼 때 여기 있는 목사들 같으면 설교할 필요가 없어. 저 평신도들, 목사들 해필 어디서 온 목사라도 녹음기 딱 가지고 와 가지고 저 뒤에도 보니까 아무 감응이 없어. 아무 감동이 없어. 감응이 안가. 이 교인들은 감동이 있는데 안 간다 말이오. 물으면 대답도 못해.
82.5.4.화전
지난밤과 오늘 아침에 말씀하신 그 말씀을 녹음한 테이프를 제가 갖다가 들어 봤습니다. 들어 보고 저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여기에서 평소 그 사이로 쉴 때도 그 녹음을 틀어 주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재독하고 재독해서 이 진리를 잡아야 합니다.
82.5.4.화후
죽고 죽이는 사랑, 살았고 살리는 사랑 이 두 사랑을 녹음을 들어 가지고 가든지 테이프를 가져 가든지 어쨌든지 이 증거를 자기가 가지고 자기 속에 불이 붙어 배암의 사랑에 분개해서 견디지 못하는 분이 타오르면 그 분이 하나님의 분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