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의 공회 교회들의 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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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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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26 00:00
1989년 8월 27일에 백 목사님이 갑자기 순교하셨고
서부교회는 순식간에 양분 되면서 남북한처럼 극단적으로 다른 길을 가며 다른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전국의 지교회들은 한 편으로 서부교회의 상황을 지켜 보며 한 편으로는 그 교회의 상황에 따라 일제히 분열의 길을 걷습니다. 약 1백여 개의 교회가 있었고 교회를 준비하던 분교까지 합하면 130여개였으며 한 교회도 빠지지 않고 이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부산의 거제동교회는 수십 년동안 서부교회에 늘 주일 오후예배와 금요일 예배를 고정적으로 참석했으니 그 영향을 가장 먼저 바로 받아야 할 교회였습니다. 박장효 장로님을 비롯하여 거제동교회는 평소 공회의 과거 가치를 견지할 중심 교회 중에 하나로 분류 되고 있었습니다. 또한 담임 목사님이었던 김삼암 목사님은 현재까지도 그 모습을 잘 보이고 있는 것처럼 부산공회에 서실 분이었습니다. 어느 교회든지 대구공회 성향 교인들은 있기 마련이나 거제동교회는 여러 면에서 부산공회가 기대하던 교회였으나 막상 노선의 분립 문제가 다가 오자 대구공회의 주력이 되었습니다.
지나 간 교역자 중에 이원일 목사님은 대구공회에 핵심에 설 인물이고 김태희 목사님은 보수적인 부산공회 중심 인물이 될 것으로 봤으나 달산교회의 범위를 벗어 나지는 못했습니다. 문제는 김삼암 목사님이 담임으로 그 교회를 대처한다면 가능성은 여전히 있었지만 김 목사님은 1989년 10월 17일의 제20회 임시총공회 때 백태영 목사님이 그렇게까지 공회를 어지럽혔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 번 한다 하면 그대로다'라는 그 정신 하나만이면 신앙의 전부인 줄 아실 정도의 분이어서 회의 후에 서부교회 이재순 서성교회 최재현 하계동교회 이진헌 목사님과 답변자 등 4명이 모인 자리에서 김삼암 목사님까지 최소 5개 교회는 이 노선을 지키지 않겠는가 라고 예측을 했으나 의외로 김 목사님은 백태영 목사님이 옳고 백영희 목사님의 후임으로 총공회장이 되었으니 순종하고 끝까지 가겠다는 입장을 요동치 않았고 3명의 목회자들이 아무리 달래도 꼼짝하지 않고 그 입장을 유지하자 그 분들이 답변자에게 설득을 부탁했습니다.
현재 총공회 전체를 통해 영력 있는 원로 지도자로 계시기 때문에 그 입장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이 자리에서는 더 이상 설명하지 못하겠으나, 문제는 상황 판단은 할 수가 없는 분이었습니다. 매일 금정산으로 기도를 가는 순생적인 사례를 들려면 얼마든지 들 수 있으나 갑자기 닥친 현실에서 신앙의 노선과 대처하는 문제를 두고는 김 목사님은 전원일치의 뜻도 모르고 계셨고 백태영 목사님 쪽의 계획 활동 목적 등에 대해 속수무책이었습니다. 현재도 김 목사님을 따르는 분들의 공통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김 목사님은 담임 목사로 재직하고 있으며 그 위치가 부산이라는 절대 유리한 입장에도 불구하고 극소수 교인만 데리고 개척을 나오게 됩니다. 거제동교회와 같은 교회는 초기 몇 마디만 잘 이해 시키면 제천의 남천교회처럼 대다수가 이 길을 걸을 수 있는 분들입니다.
답변자가 아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나머지 세미한 이야기들은 당시 간간히 들었지만 전체적으로 너무 아쉬운 일들이 많았고, 왠 만한 목사님들이면 대화하며 대처하여 그 교회가 원하는 길을 안내할 수 있으나 김 목사님의 경우는 대화를 하지 않는 분이어서 달리 길이 없었습니다.
거제동교회의 당시를 잘 아는 분들이 계신다면 여러 말씀들을 주시면 좋겠습니다.
>> 궁금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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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 소식지를 보다가 의문이 생겨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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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제동 교회 박장효 장로님의 중심이 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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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삼암 목사님이 개척한 양정동교회 소개 부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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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리과정...알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