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인지 변절인지 판단하는 것은 각자의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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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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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28 00:00
이 홈은 어떤 사안에든지 단호한 편이며 이 홈의 입장을 발표하는데 별로 주저해 본 기억이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안은 단호할 수 없고 각자의 판단에 맡겨야 할 부분도 있습니다. 김 목사님에 대하여 자세한 기록이 있으나 집중 연구할 대상은 아니고 서부교회를 거쳐 본 이들이면 누구나 기억할 수 있는 객관적 상황만 소개합니다.
원래 공회 교역자가 아니었습니다.
1989년 백 목사님 사후 노선 분립기에는 양 쪽의 대세만을 보고 중립 입장에서 지켜 보고 있었습니다. 1990년 3월의 부산공회가 출발하던 첫 총공회 가입을 거부했습니다.
1990년 4월에 이르러 서부교회를 중심으로 부산공회가 확실하게 자리를 잡는 것을 본 뒤에 부산공회로 가입을 했습니다.
공회 가입 후에 당시 부산공회의 실세(김 목사님 중의 한 분이 연구소로 와서 표현)라고 생각하여 연구부에 협조를 구했고 연구소는 생활비와 연구소의 모든 자료를 제한 없이 제공하였으며
1991년 1월 서영호 목사님이 서부교회로 오자 이 때부터 서 목사님 편에 섭니다.
이후 서 목사님의 핵심 측근을 자처하면서 김 목사님들과 총공회 정치를 시작하게 됩니다.
이 홈에 대하여
자료를 두고 보인 행태만 해도 벌써 몇 번 바뀌었는지 답변자가 기억을 다 못하겠습니다. 설교록 74호가 나왔을 때 답변자에게 직접 전화를 하여 자신은 자료 공개를 다하기를 원한다면 너무 친절하고 호방하며 티 하나 없이 모든 좋은 표현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김영환 목사님이 막무가내로 오기로 죽어도 주지 말자고 하며 전원일치의 총공회 법을 근거로 말하기 때문에 자기는 할 수 없이 줄 수가 없는 형편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1월 교역자회의가 있었던 주간에 이말출 권사님의 집안의 최고 어른께는 아주 단호하게 그 자료는 권사님의 가족에게라도 열람조차 해 줄 수 없다며 거절을 했는데, 이 권사님 생전에는 김 목사님이 그 어른 앞에 그렇게 양순한 고양이처럼 부드러웠는데 이 번에는 얼마나 호통을 쳐 놓았는지 이 권사님의 집안 어른이 다시는 이 문제를 재론하지 않도록 이 홈에 부탁을 한 정도입니다.
이 홈의 설명에 대한 진위 여부는 언제나 토론 반론을 환영하는 바인데, 서 목사님을 위해서는 삐라도 뿌리고 교역자 회의에 가서 고함도 지르고 전국에 발표문도 수 없이 내 놓으면서 하여튼 따져야 한다고 하던 분들이 단 한 마디도 말이 없습니다. 이 홈에서 수 년 전에 자료 공개를 김부호 목사님 실명을 공개하고 촉구하겠다고 했을 때 '명예훼손으로 당장에 고발을 하겠다'고 해서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습니다.
>> 걱정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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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로 님이라고 하면서 그것도 모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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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공회는 뭐고 대구공회는 뭐고 거창공회는 뭡니까?
: 누가 이름붙인 겁니까?
: 김부호 목사님은 본디 총공회에 속한 목회자였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총공회에 속한 목회자입니다.
: 위같이 말도 안 되게 하나님의 종을 허는 말을 삼가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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