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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11 00:00
: 공회 교회의 부흥의 요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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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나부터 열까지 속속들이 백 목사님의 교훈 중심으로 철저히 하라. 설교에 총공회의 것 외에는 조금이라도 섞지 말라.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가는 이 시대에 백 목사님의 노선을 선호하는 경향이 짙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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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적 동감합니다.
: 2. 백 목사님의 형식을, 외형을, 껍데기에는 힘을 쓰지만, 막상 진수를, 실질을 소홀히 하지 말라. 외형 보다는 설교에 힘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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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과 2번을 합하면 1번을 강조하신 뜻을 더 잘 알겠고 오해의 소지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 3. 현재 백 목사님의 교훈을 제대로 발휘하는 목회자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대개 백 목사님의 교훈을 10 내지 20프로 밖에는 발휘하지 못한다. 70-90을 발휘할수 있도록 하라. 타 교단에서 백 목사님이 교훈에 혹하여 왔다가 얼마 있다 보니 별로 백 목사님을 나타내지 못하여 실망하고 돌아가는 경향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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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적 수치가 아니라 말씀하신 분의 심정과 강조한 뜻을 수치로 읽었습니다. 동감합니다.
어짜피 수학적 수치가 아니니 다른 수치를 제시해도 반론이 아니라 중심으로 보셨으면.
답변자는 40 - 50도 더러 있고 때로는 60 - 70 %까지 근접한 분도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이 노선 이 교훈의 위력은 100 %에 가까와야 급격히 나타 나기 때문에 고민입니다.
: 4. 목회자의 실력은 설교가 거의 90프로를 차지한다. 설교만 백 목사님의 노선을 잘 드러낸다면 교회 부흥은 시간 문제로 성공한다. 설교를 차라리 자신 없으면 설교록을 연설할 때 처럼 미리 10-20번 읽고 저금만 슬쩍 슬쩍 보고 할 정도로 외워서 그대로 읽어라. 마치 방송앵커가 뉴스를 전달할 때 처럼 하라. 그럼 교인 들이 반드시 은혜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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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적 동감합니다. 백 목사님도 열심히 깨달아 제 것을 삼은 다음 마구 외치라고 했습니다.
말씀에서 벗어 날까 두려워 하다 보니까 소리가 줄어 들고 그러다 보니 시선이 흐트러 지며
그 흐트러 지는 교인을 의식하여 소리를 높이다 보니 설교자의 주관 감정 풀이가 됩니다.
현실적으로 거의 모든 목회자가 이 범위 내에 있기 때문에 위 글에서 탄식 권고하는 것이며
목회자 중 한 명으로 이해도 되고 탄식도 되는데 늘 걸음마 수준에서 비틀 거리고 있습니다.
이럴 때 사무엘처럼 다윗처럼 비록 어리나 이 말씀으로 치고 나오는 믿음의 용사가 있다면?
답변자는 최소한 사울처럼 그를 잡으러 다니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나팔을 불고 싶습니다.
: 5. 백 목사님이 생전에 하시던 방식이나 태도를 적은 것이라도 경히 여기지 말라. 백 목사님이 작사한 찬송가는 하나 밖에 없다. 이것을 예배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잘 안부르고 사용하기를 인색해 한다. 이런 교회는 총공회식으로는 부흥 잘 안된다. 94장은 그 자체에 특히 영감이 내재한 량이 다른 이의 찬송가들 보다 특출하고 공회의 근본 교리가 찬송으로 나타났으니 이를 부를 때마다 교인들은 힘이 난다. 이 좋은 찬송을 소홀히 하는 자는 가까이 해 줄수 없는 교역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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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의 은혜에까지 깊게 들어 가시는 이런 교인들이 계셔서 공회는 그 깊이를 더합니다.
다만 찬송의 은혜는 제법 신앙이 깊은 이들조차 그 은혜의 실감이 달라 문제가 됩니다.
백 목사님의 평생 찬송 선택을 보면 각자 어느 단계를 적용해야 할지 참고가 될 듯합니다.
: 6. 설교를 소곤거리는 식으로 하지 말라. 가능하면 큰 소리로 우렁차게 하라. 마이크 볼륨도 될 수 있는 대로 이빠이 올려라. 외형은 일반 교회를 따라가도 좋다. 겸비한다고 해서 설교가 청중의 자장가가 되지 않도록 하라. 설교를 답답하게 하지 말라. 시원 시원하게 확신있는 어조로 교단이 떠날갈 정도로 열정을 발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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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들로서는 참으로 다 동감하며 그렇게 하고 싶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공회에 오래 된 교인들은 소리 좀 지르지 말라고 짜증을 내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목회자로서 각 교회의 교인들을 살피며 각자 판단에 맡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6. 설교를 마치 대독하는 식으로 하지 말라. 총리가 대통령의 연설을 대독하는 것을 보라.
: 자기의 원고가 아니니 얼마나 힘이 없는 것을. 백 목사님의 설교를 제3자적인 입장에서 전달하는 식으로 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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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회 목회자 중에서 게으르면서도 이 복음의 깊이를 아는 분들이 대개 빠지는 함정입니다.
위 글에 전적 동감합니다. 조금이라도 긴장을 풀면 그만 공회는 다 그리 되는 것 같습니다.
: 7. 일단 교회에 단 한번이라도 나온 신자는 절대로 놓치지 아니하고 붙든다는 각오로 목회를 하라. 오는 것도 주의 뜻이고 가는 것도 갈 만한 이유가 있으니 먼산 보듯이 하면 어느 세월에 부흥이 되느냐. 새 신자에 철저히 밀착하라. 성령의 소욕대로 하는데 무슨 교인에 대한 욕심이라고 해서 경계할 필요가 있는가. 우리 공회에 혹해서 와서 막상 설교가 밖에서 소문듣던 대로 보다 미약해서 다시 돌아가는 신자가 있다면 어떻게 밥맛이 있으며 잠이 잘 오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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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을 불러 놓지 못한 목회자, 교회에 들어 온 교인을 내 보내고도 쳐다 본 목회자,
그 어느 목회자라도 그 어떤 이유를 가지고도 변명할 수 없고 탄식해야 하니, 동감합니다.
납치라도 해서 앉혀야 하는 열심과 패기와 욕심과 애착이 있어야 할 줄로 알고 있습니다.
다 그렇지는 않으나 일반적으로 서부교회 반사 출신들은 목사님 밑에 그런 면을 익혔으므로
신앙의 식구 1 명을 두고는 칼을 간다 할 만큼 그런 투지를 가진 분들이 많은 편입니다만
세월이 많이 지났기 때문에 최근에는 모르겠습니다. 위 글에 전적 동감합니다.
: 8. 공회를 알리고 소개하는 수단들에 대해 신경을 많이 써라. 홈페이지, 설교록, 테입등을 교인들에게 잘 소개해서 친근감을 갖도록 하고, 특히 새신자에게는 되도록 많이 소개하여 매체들에 대한 접근을 최대화 시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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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공회나 부공2는 적극적으로 외부 것을 도입하자, 알리자, 그러는 곳인데 이상하게도
홈 운영이나 기타 전하는 노력은 너무 부족하고 거의 다 노는 것 위주여서 탄식입니다만
부공1, 3은 근본적으로 탈선하기 어려운 구조이니 위 글 말씀을 따라 열심을 냈으면 합니다.
: 9. 결국 부흥의 요체는 다른 것 전혀 없고 교역자 자신의 믿음의 분량에 비례한다. 백 목사님의 설교에 모든 것이 들어 있다. 백 목사님의 교훈을 철저히 교역자가 믿은 후, 교인들에게 믿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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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번 아멘입니다. 옳습니다. 늘 이런 채찍을 마음에 담아 스스로 채근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 설교 세계를 모르는 이들에게는 너무 지나치다며 비판을 받게 되지만 사실은 사실입니다.
세상 사는 지혜와 인생 근본의 원리로부터 목회의 실무에 이르기까지 없는 것이 없습니다.
: 10. 요새 우리 공회를 흠모해서 제발로 찾아오는 신자들이 특히 수도권에서 점증하고 있는 현실이다. 하나님이 보내주실 때 잘 붙들도록 설교를 통해 우리 공회의 중심을 잘 소개하고 나타내로록 하라. 총공회의 본질을 잘 보여 주도록 힘쓰는데 설교가 모든 것을 차지한다. 안 되면 설교록을 20,30번 읽어서 그대로 강단에는 확대 복사하여- 큰 글씨로- 페이지를 넘겨 가며 - 넘기는 종이소리가 나도 괜찮다 - 힘 있는 목소리로 전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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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적 동의합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왜 소리를 높이느냐고 타이르는 분들도 있습니다.
조용히 전하라는 교인, 소리를 좀 높이라는 교인, 그 사이에서 남이 목회자로 나서지 않아
목회를 나온 분들은 교인들께 배우느라고 노력은 하는데 말대로 되지 않아 고통입니다.
: 11. 백 목사님의 설교는 자기를 죽이고 맨날 회개하라는 설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 성공이나 낙망시에 소망을 붙잡는 것이나 얼마든지 은혜가 무한한 설교가 많다. 회개 설교는 물론 필요하지만 너무 집중하지 말라. 예를 들어 눅 18장, 죽은 나사로의 살아나는 믿음 등 기막힌 설교가 너무 많은 데, 이런 설교류는 소홀히 하고 맨날 "내가 이런 흉칙한 죄인입니다." 되뇌이는 식의 설교만 하지 말라. 낙망에서, 실패에서, 모든 죽은 데서 살아나는 설교가 너무 많은데 왜 어려운 설교, 맘에 와 닿기가 어려운 설교에 비중을 많이 두고 즉효가 나는 설교는 홀대 하는지를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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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뜻으로 권면하시는지 잘 알겠습니다. 어린 교인을 길러 가는 과정에서 필요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교인들은 회개를 외쳐서 고장만 고치면 나머지는 저절로 된다고 지도하십니다.
과거에는 백 목사님 한 분께 배우면 비교적 단순하고 좋았는데 그 분이 가시고 나니까 이제
이 노선 거의 모든 분들이 직접 목회자를 기르고 있는 상황입니다. 모자라니 배워야 하겠으나
배우는 목회자들도 요즘 각종 공부에 내 몰리는 학생들처럼 죽을 지경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교인들도 목회자처럼 모든 자료를 다 가지고 있지, 세월이 지나면서 교인들의 실력도 목회자
못지 않고 심지어 확실하게 교역자의 실력을 넘어 서는 교인들이 적지 않은 형편입니다.
답변자 주관 생각으로는, 6 개월 정도 기간으로 각 교회의 대표적 교인들이 목회를 직접
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면 훌륭한 목회자가 발굴 되기도 하고 또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사울 같은 못 나고 잘못 된 왕이 정리 될 수 있는 기회도 올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기존 목회자의 그 동안 생활 문제도 있지 이런 제의에 악의라고 반발하면 할 말도 없지...
: * 주제 넘는 말을 하였다. 답답해서 하는 말이니 이해해 주시길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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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교인으로서 교인 자리에서 탄식과 권면도 있듯이, 목회자로서 탄식과 권면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전반적으로 이 노선을 사랑하는 교인들의 깊은 충정과 사랑과 애타는 심정이라고 읽습니다.
나쁘게 보려면 오해의 소지가 지극히 크지만 우리는 상대의 글을 좋게 볼 의무가 있습니다.
이 노선의 깊이를 아는 분이 이 노선 전체가 살아 보자며 절규하는 충정이며 사랑입니다.
인간이어서 몇 곳의 오해 소지가 있다면 그렇게 이해하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