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지방 첫 교회이며 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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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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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2 00:00
공회 교회들을 소개하기 위해 /초기화면/총공회/교회/ 게시판을 '문답' 게시판 저 밑 쪽에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 곳의 자료를 소개하며 몇 말씀 추가해서 올리겠습니다.
1. 의미
현재 우리 공회 교회들은 전국에 흩어 져 있으나 지역적으로는 편중 현상이 있습니다. 공회 교회들이 별로 없는 곳은 우리가 이 노선 교회를 세우고 이 교훈을 전하기 위해 소망을 가져야 할 지역이며, 공회 교회들이 집중적으로 모여 있는 지역은 이 노선 성장 과정에서 가장 앞 서 수고한 지역이며 다른 곳을 위한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울산 지역은 원래 지역 연고로 공회와 관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남산교회 때문에 현재 공회의 전국 몇 주요 지역이 되었습니다.
2. 남산교회의 역사
1) 개척과정
남산교회의 개척 시작은 이술이 장로님으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그 분은 개명교회의 정갑용 권사님의 아들인데 정갑용 권사님은 백 목사님의 개명교회 시절 교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교인 몇 중의 한 분이며 그 신령면과 충성면 그리고 성녀적 신앙은 공회 전체를 통해 최고 수준입니다.
이 장로님이 울산 한국비료에 근무하면서 부산 서부교회로 가기를 소원하였으나 백목사님은 울산에 개척교회를 부탁하게 됩니다. 1974년경 목회자는 김철수 조사님이셨고, 울산시 복산동 16(7) 번지 소재의 장로님 가정에서 첫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그 다음 주는 '교동교회'라는 이름으로 사택을 겸한 예배당으로 방 2칸 집을 얻어서 5-6개월 예배를 드리게 되고 당시 공회는 2백만 원을 지원했고 그 후 27-8명으로 교인이 확대 되면서 구 시청 앞 2층 전세 35평으로 이전합니다. 교인이 약 50여 명이 되기까지 6개월 정도 계속 되었고, 그후 현 남산교회 터를 구입하고 가건물로 약 3년 계속하며 김철수 조사님이 계속 시무했습니다.
조사님은 부산에서 월 사례 2만원을 받아 생활했고, 교역자회 등을 위해 부산으로 갈 때에는 시내버스 차비가 없어 기차역에서 교회까지 왕복거리 12km를 걸어서 다녔습니다. 당시 공회 교역자들 대부분은 다 이렇게 충성했고 그 결과 오늘의 공회가 섰습니다. 이런 전통은 1980년대 서부교회라는 초대형 교회에서도 남반을 심방하는 유급 권찰님들이 대신동에서 영도의 청학동까지 8키로의 거리 정도를 매일 걸어서 심방하고 돌아 올 때만 시내버스 차표 1 장을 사용한 정도입니다.
첫 교역자인 김철수 목사님은, 거창 월천 지역의 창북교회 교인으로서 학생 시절부터 공회 교인이었고 부산에서 동아대 법학과를 공부하며 교회의 중심 청년이 되었으며 이후 사명을 가지고 교역 일을 했으며 호남 지역의 공회 교회 첫 시작이 되는 묘도의 묘창 교회 출발에도 큰 역할을 했고 울산 지역에도 공회 교회를 출발 시켰으며 이후 마산의 산창교회를 개척 초기 수준에서 부임하여 대형 교회를 이루었습니다. 1987년에 공회 운영 방법이 너무 폐쇄적이라는 이유로 공회를 탈퇴하게 됩니다.
2) 부흥기
둘 째 교역자로는 김영웅 조사님이 부임하셨고 현재 사용하는 건물을 건축합니다. 이 시기에 교인이 7-80여 명으로 부흥 되고 목사 안수를 받고 이임하였습니다. 김영웅 목사님은 거창 창동교회 출신으로 거창의 위천 위산교회도 근무했고 또 여기 남산교회로 부임한 후 그 분 밑에서 많은 청년들을 길렀으며 현재 남정교회 신두범 목사님과 대구 비원교회 신길범 목사님 등이 김 목사님이 길러 낸 대표적인 청년 출신입니다.
셋 째 교역자는 손오영 목사님이며 2백 명까지 부흥 되고 이 시기 남산교회는 공회의 주력 교회 중 하나로 서게 됩니다. 교세로서는 이 시기가 제일 전성기였습니다. 이후에는 팽창하는 울산 지역의 발전에 따라 지역 내 여러 공회 교회를 계속해서 개척하고 지원하여 오늘 울산 지역 전체 교회 거의 전부의 중심 교회 역할을 하게 됩니다.
울산교회 목회자들의 충성과 개척 교인들의 수고와 함께 전국 공회 교회 중에서 울산의 급팽창에 따라 직장 문제로 모여 드는 공회 교인들은 자연스럽게 남산교회에 집결하였고 남산교회는 새 전도와 전입하는 공회 교인들을 잘 묶어 튼튼하게 발전하고 있었습니다.
이후 이동화 목사님을 거쳐 백 목사님 장례 직전에 김병춘 목사님이 부임하고 그 후 남산교회는 김 목사님은 부임하자 설교록이 출간 될 때마다 매 번 50 권씩을 구입하여 교인 전체를 말씀으로 기르게 됩니다. 서부교회를 제외하고는 전국 교회 중에 월등한 양이었습니다.
3) 노선 분립
1989년 백 목사님의 임종과 함께 김 목사님은 공회의 내부 분열에서 대구공회의 중심 인물이 되나 백태영 목사님 중심의 진보적 대구공회가 김 목사님이 생각한 방향과 다름을 알게 되자 행동으로 그 방향을 거부하게 되고 이에 따라 백태영 목사님 측의 개입으로 김병춘 목사님과 그를 따르는 교인들은 보수적 대구공회 소속인 서광교회를 개척하게 됩니다. 이후 남산교회는 백태영 목사님과 김병춘 목사님의 두 노선 중에서 그 소속을 두고 여러 차례 선택이 있었고 현재는 다시 김병춘 목사님과 같은 보수적 대구공회에 속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목회자도 여러 차례 변동 끝에 현재 황용극 목사님이 맡고 있습니다.
3. 현재 남산교회는
황용극 목사님이 담임이십니다. 부부가 서부교회 중간반 반사 출신이며 백 목사님의 장 조카인 백재인 장로님의 큰 딸 부부입니다. 1988년 전남 광양에 부임하여 2005년까지 충성하다가 남산교회로 부임했습니다.
거쳐 간 목회자나 교인들의 성향 등을 보아 현재 기준으로 대구공회 일반 교회 중 중간 정도의 노선을 가고 있다고 짐작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