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부교회에서 개척 된 교회들 2. 김영웅 목사님 3. 불신임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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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7 00:00
1. 질문하신 교회들의 연혁
- 남정교회
부탁하신 4 개 교회 교인들은 모두 1989년 8월 27일 이전 백 목사님 생전에 서부교회 핵심 교인들이었습니다. 백 목사님 사후, 신앙 노선을 과거처럼 유지하려던 서부교회에서 과거 신앙 노선을 수정하자는 20% 정도의 교인 1천 명 정도가 1990년 5월 2일에 남정교회를 개척합니다.
서부교회와 나뉠 때의 교세를 본다면, 서부교회의 전체 교인을 개인적으로 지도하고 장악하는 교회의 기본권은 구역장들인데 80% 정도가 과거 노선을 지킨다는 입장으로 서부교회를 지켰고, 서부교회의 주요 진로와 판단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실무 직원들은 전원 잔류하게 됩니다. 반면, 일반 교회의 경우에 교회 운영의 절대권을 행사하게 되는 장로님들은 목사님 생전의 16 명 장로님 중에서 13 명이 수정 노선에 뜻을 함께 했었지만 막상 개척을 해서 외부로 나가는 순간이 되자 이상원 장로님은 서부교회 잔류를 선언하고 또 한 장로님은 완전 중립으로 돌아 서게 됩니다.
- 성광교회
남정교회의 개척 당시 비록 남정교회 교인들과 섞여서 나오기는 했으나 이동근 목사님과 서봉월 권사님 부부를 중심으로 했던 교인들은 독자적 성격이 강하고 신앙의 색채도 서부교회에 그대로 잔류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정도여서 남정교회가 막상 개척을 하고 교회의 초기부터 수정 입장이 또렷하게 나타 나게 되자 남정교회가 자리를 채 잡기도 전에 바로 개척하게 됩니다.
- 서광교회
남정교회의 개척과 함께 남정교회 내에는 다른 남정교인들처럼 수정 노선에 적극적으로 나설 입장이 아닌 교인들이 또 한 그룹 있었으니 정순환 장로님과 그 주변 또는 그 비슷한 분들이었습니다. 남정교회가 분리 될 때 급박하게 진행 되는 당시 충돌 상황에서 드러 난 모습에만 휩쓸렸지 분리의 본질적 흐름을 읽지 못했기 때문에 남정교인들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남정교회가 서부교회로부터 분리 되는 과정과 그 이후의 흐름을 보면서 뭔가 잘못 된 것을 알고 바로 분리 개척하게 됩니다.
시간을 재 가며 연혁을 만든다면 서부교회로부터 남정교회가 개척 된 후에 서광교회와 성광교회의 개척을 기록해야 하지만, 내용을 아는 사람이라면 서부교회에서 남정교회와 서광교회와 성광교회 3 개 교회는 동시에 별도 분리 개척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 서정교회
서부교회에서 나온 남정교회가 서부교회 내에서부터 성향을 달리 하던 서광교회와 성광교회를 분리한 것은 너무 당연했지만, 그들을 분리한 다음에 남은 남정교회 전체 교인들은 크게 본다면 서부교회의 보수 신앙에 대하여 수정 신앙으로 정체성을 가진 교인들이었습니다. 그 남정교회 안에서 1996년에 다시 서정교회가 분리 되는데 이 문제는 교회 주도권을 본질로 하고 신앙의 색채가 배경에 깔려 있었습니다.
2. 질문 내용에서
- 서정교회와 남정교회
같은 점은, 백 목사님 사후에는 교회 운영에 있어 수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같습니다.
신앙 색채는, 서정교회는 좀 더 넓고 남정교회는 공회 정신을 좀 더 기억하는 편이며
교회 규모는, 남정교회가 좀 더 크고 서정교회가 적은 편입니다.
경제와 내실에서는, 남정교회가 좀 산만한 편이고 서정교회는 집중력이 좋은 편입니다.
소속으로는, 남정교회는 대구공회의 중심 지도 교회이고 서정교회는 서울 공회 소속입니다.
- 서광교회와 성광교회
서광교회는 이동근 서봉월 목사님과 권사님 중심으로 현재 어느 공회에도 속하지 않았고
성광교회는 정순환 장로님 박상희 류주열 집사님 등이 중심으로 시작했고 대구공회이며
두 교회는 50-100명 정도의 교인이 모이고 있다고 짐작 됩니다.
3. 김영웅 목사님
- 출신
70세 정도의 거창 창동교회 출신이며, 부친 김봉태 장로님은 일제 때부터 진주 농업학교를 졸업한 농정 공무원으로 해방 후 농촌지도소 소장을 지내며 거창 지방 전체의 곡물을 책임 진 당시 실력 있고 잘 나가는 공직자였습니다. 공회 신앙에 일찍 접하여 거창읍의 공회 초기 교인이었으므로 김 목사님은 어릴 때부터 공회 노선에서 자랐고 가정이 부유하고 공부도 잘 했으며 신앙생활도 잘 하신 분입니다.
- 청년
1960년대, 서부교회를 다니며 동아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고 이 시기 말씀의 은혜를 크게 받아 목회자를 소망했고 서부교회의 주일학교 부장을 지냈으며 목회 할 청년으로 모두 지켜 보던 분입니다. 서전교회, 위산교회, 남산교회 등을 목회하면서 크게 부흥을 시켰거나 청년들을 잘 길러서 목회자나 목회에 준하는 신앙들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세상 어디를 나가도 실력 열심 충성 인품까지 두루 갖춘 분이어서 훌륭하게 살아 가실 분인데 이 노선의 초기 어려운 시기에 목회를 출발하여 공회 목회자의 고생과 고난의 길을 겪은 마지막 세대 중 한 분입니다.
- 신앙
신앙 면에서 이 노선의 말씀에 대한 사모가 특심하여 모든 목회자들 중에서도 말씀 연구에 가장 치열했던 분 중의 한 분입니다. 서전교회에 근무하던 1980년대에는 목회를 포기하고 설교록을 출간하던 당시 서부교회 편집실 직원으로 일하기를 소원했을 정도였습니다. 이 교훈의 귀한 것이 외부로 전해 지기를 소원하는 면도 남 달리 뜨거웠기 때문에 목회에서도 늘 부흥에 진력했던 분입니다.
- 백 목사님과 관계
공회 목회자나 주요 교인 중에 목사님께서 개인적으로 챙기지 않은 분이 없었지만, 김 목사님도 친 아들처럼 늘 챙겼던 분 중에 한 분입니다. 돌아 가시기 직전에 따로 불러 부탁한 정도였습니다. 평생 사랑했던 순간들을 기억하실 것이며 특히 임종 직전에 부탁했던 그런 상황은 지금도 그 순간을 떠 올리면 김 목사님은 가슴이 용솟음치며 견딜 수 없는 감격에 휩싸일 것이고, 이런 면이 노년까지 그 분을 충성하게 만드는 데 크게 역할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 노선
백 목사님 사후에 부산공회 핵심에서 앞 서 갔으면 하고 소망했으나, 대구공회의 중심 인물이 되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만, 비록 판단은 서로 달리 했을지라도 이 노선을 사랑하는 그 중심과 충성과 열정은 지금도 우리 젊은 사람들이 부끄러워 고개를 들기 어렵도록 펄펄 끓어 넘칠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4. 불신임 당한 목회자와 교회 이동
- 원래의 시무투표
백 목사님 생전 대부분의 시기는 전국 교회의 목회자 이동은 백 목사님이 결정을 했습니다. 그러나 백 목사님은 돌아 가시기 전에 미리 공회 전체의 교역자 이동권을 각 교회 교인들이 전권을 행사하도록 해 놓았습니다. 백 목사님이 없는 상태가 되면 목사님의 후임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섣불리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고 이로 인해 공회가 공중 분해로 나갈 수 밖에 없다고 예상했습니다.
그래서 1986년까지의 시무 신임투표는 교역자의 이동을 전제로 하는 제도였지만 무조건 적용하지 않고 중요 참고 자료로 사용한 정도였는데, 1988년부터는 백 목사님 자신부터 25%의 불신임이 있다면 서부교회를 사직하겠다고 공언하고 매 2년 시무투표를 통해 각 교회 교인들이 자기 교회 후임 문제를 전적으로 결정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 현 상황
이렇게 된 상황에서 가장 당황스런 것은 목회자들이었습니다. 어느 날 교인들이 내 보내면 그 것으로 인생이 끝난다고 생각하였고 실제 그럴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대구공회와 서울공회는 백 목사님 사후 교역자들이 바로 시무투표 제도를 없앴는데 여기 대하여 교인들은 자기 권리를 알지도 못했고 그 조처에 적극 대처하지 못하여 지금까지 시무투표가 없이 운영 되어 왔습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전국의 교인들이 모를 리가 없었는데 그냥 동조하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따라서 대구공회나 서울공회에서는 목회자 이동 문제를 두고 그 어떤 상황이 생긴다 해도 각 교회 교인들은 교역자 이동 문제를 두고 공회 교역자회에 전적 일임한 상태이므로 지금 와서 다른 말을 하게 된다면 비겁한 사람들이 될 듯 합니다.
이에 반하여 부산공회는 시무투표 제도를 유지하기로 결의했고 지금까지 시행해 오고 있습니다. 다만 교역자들이 서로 동병상린의 처지가 되어 교인들을 상대로 알게 모르게 최대한 교역자들의 이권을 보호하는 쪽으로 대부분 이 제도를 운용해 오고 있습니다.
- 불신임과 공회 교회 이동 방법
총공회는 각 교회가 소속과 교역자 선택과 이동에 대한 전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 내에서만 합의를 하게 되면 공회 교회는 못 할 것이 없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제대로 된 공회 교회라면 그리고 제대로 된 평균의 공회 교인이라면 목회자 문제를 두고는 그 어떤 말이라도 입에 올려서는 안 되고 어떤 문제라도 발생하면 자기들이 스스로 선택한 결정에 대하여 자기를 비판할 일입니다. 그리고 향후 결정은 교회 내 교인들이 결정하면 되는 일입니다.
한 가지 오해하지 말 것은 있는 목회자를 내 보내는 것과 공회 소속을 결정하는 것은 자유지만 어느 교회가 어느 목회자를 오라고 할 때, 그 목회자가 오느냐는 문제는 그 목회자의 자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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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정교회와 남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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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서광교회와 성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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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김영웅 목사님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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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교회 목사님을 불신임 당하셨는데- 공회 교회를 이동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