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할 수 없는 원칙과 목회를 위해 일부를 강조하는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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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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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1 00:00
설교를 들을 때
필기하지 말고 그 시간에 은혜를 받으라 했습니다. 필기에 집중하여 은혜를 받지 못하던 시기에는 필기 노트를 다 불 사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그렇게 했습니다. 그리고 좀 세월이 지난 다음에 노트를 불 사르라는 말이 아니라 말씀 은혜에 집중을 하라 했다 하시면서 노트를 불 태운 이들을 진리 보존의 필요성과 가치성을 모른다고 책망했습니다.
재독의 경우
비디오 화면보다 녹음 테이프로 듣는 것이 낫고, 테이프보다 설교록을 읽는 것이 낫고, 그보다는 말씀을 들을 때 그 말씀으로 변화가 되어 자기 자체가 그 말씀의 사람이 되면 그 설교를 자료로 공부하는 대신 자기 입에서 나오는 말이 다 설교가 된다고 가르 쳤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다 어리기 때문에 1980년대 10 년치 테이프 5천 개를 마련하게 하신 분이 그 분이었고, 비디오 6백 개를 마련해 놓고 가신 분이 그 분이며, 마지막에는 화면이 좋아야 한다면서 서부교회 예산으로는 파격에 해당 되는 방송용 장비로 구입을 하신 분이 그 분입니다.
타 교단에서 이단이라 할 때
참으로 복이 되고 우리가 바로 믿으면 나중에 다 밝혀 지게 되니 시비하지 말라 하신 분이 그 분입니다. 그러나 책이나 출판물로 공식 정죄가 된 것은 하나도 빠지지 않고 사과를 받든지 해명을 하게 만들든지 안 되면 법적 조처를 예고하여 공증까지 하게 했습니다. 목사님 당신은 외부 비판을 초월하실 분이나 그 비판 때문에 아예 시험에 들어 공회를 포기할 어린 사람들을 막는 방법으로는 세상 조처도 불사했던 분입니다.
목사님의 기념, 추억, 회상은
과거 잘 믿었다는 것을 생각하다 오늘 현실에 불충할까 해서 공회는 지난 날 잘못 된 것은 기억하고 고치는 데 사용하나 자기의 지난 날을 기념하다 과거 잘한 것도 하늘에서 복을 제감 당하고 그보다 오늘 해야 할 오늘의 순종에 궐이 날까 떨었습니다.
바로 이런 면 때문이었으므로, 이런 면에 손해 되지 않고 오히려 이런 면에 도움이 되는 순간이 올 때는 과거를 기념했고 추억했으며 회상하기를 적극적으로 했습니다. 순교하기 1 년 전에 1970년대까지 자주 가셨고 1950년대부터 집회를 하셨던 금정산을 찾아 사진 자료까지 남기셨고, 거창 개명을 찾아 초등학교까지 살피며 과거를 더듬을 때 동행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당시 개명교회가 과거 보존을 잘못한 면을 두고 그 자리에서 크게 질책했습니다. 현재 개명교회 예배당은 과거 예배당 자리 위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과거 예배당을 과거 모습 그대로 보존하도록 조처하신 분이 바로 백 목사님입니다. 그리고 금정산과 개명 방문에서는 백 목사님이 직접 사진기를 들고 촬영하는 모습도 나옵니다.
평생 사진을 찍지 않았다고 하셨으나
답변자가 가진 사진만 해도 그 수가 엄청 나게 많습니다. 그 중에는 백 목사님이 촬영을 인지하시고 응하시며 주변 사람과 함께 찍은 것도 많습니다. 그런데도 백 목사님은 도민증 촬영할 때 한 번, 그리고 크리스챤라이프 기자의 부탁에 한 번 사진을 찍었다고 했습니다. 왜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답변자는 백 목사님이 평생 보유한 사진첩을 따로 가지고 있습니다.
백 목사님의 묘소 위치와 입관 모습
답변자는 1987년에 백 목사님의 묘소 자리가 원래 김해묘지의 제일 위에 교역자 묘역이 따로 있어서 그 곳으로 가게 되어 있는 것을 묘소 앞 부분으로 결정하도록 직접 결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의 입관 모습도 미리 말씀 드렸고 허락을 받아 두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 장례식 때 가족 대표는 가족 중에서 택하지 않고 답변자가 대표가 되어 공회와 서부교회 대표를 상대로 목사님과 가족의 입장을 대부분 반영했습니다.
일반인들께 아직은 일일이 공개할 수 없는 사연이 많습니다만, 전체적으로 백 목사님의 교훈을 넓게 자세히 살피면 그 분은 현실을 늘 초월했고 동시에 현실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그 분은 교훈과 걸어 간 길을 늘 일치 시켰습니다. 그러나 신앙 어린 사람을 위해 때로는 강하게 말씀했고 때로는 확실하게 선을 그었으며, 때로는 당신이 직접 하신 말씀을 당신이 재해석하거나 아니면 실행을 통해 그 전에 하신 말씀의 세부 설명을 하신 경우가 참으로 많습니다.
그리했기 때문에
백 목사님 밑에서 함께 배우고도 일반 교단의 넓은 길을 걸으며 신앙의 퇴락을 주장하는 분들이 백 목사님의 과거 가르 침을 그 근거로 제시하였으니 잠실동교회가 열린예배를 주장할 때 백태영 목사님은 백 목사님이 전도를 위해서는 각설이 타령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을 근거로 제시했습니다. 실제 백 목사님은 그렇게 가르 쳤습니다. 그러나 잠실동은 그 교훈을 반대로 사용했습니다.
성경을 철저히 지킨다는 목적하에 여호와증인과 안식교가 나옵니다. 그들이 성경을 구구절절이 다 인용하지만 결정적으로 한 곳을 잘못 짚고 그 것 때문에 이단이 된 것입니다. 그들이 성경 전체를 부인하여 이단 된 것이 아닙니다. 백 목사님의 교훈은 그 교훈의 일면을 깊게도 살피면서 동시에 전 생애 전체를 함께 살피지 않으면 그 교훈을 가지고 그 교훈 반대로 걸어 갈 경우는 한도 없습니다.
바로 이 면 때문에 이 홈은 그 분의 가르 친 평생 자료 전체를 전부 다 이 곳에 누구에게든지 공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 저도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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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저는 백목사님 뜻에 따라 한번도 묘소를 찾거나 기일을 기억해보지 않았습니다.
: 하나 항상 설교 녹음을 들어며,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 운전을 많이 하는 관계로 운전중에는 늘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 당신께서 살아 생전 늘 그렇게 교훈으로 말씀 하셨기에 그렇게 하고 있으며, 순교일도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 저의 선조들 그것도 모르고 살고 있으며, 세상 누구의 그날을 기억하고 지내지를 않습니다.
: 심지의 부모님의 생신에도 부모님께서 생신에 찾는것을 반대 하시어 찾아 뵌적이 없습니다.
: 백목사님의 교훈이 그러했기에 저희 부모님도 그렇게 하시고 계십니다.
: 그러나 평상시에 묘소 관리는 잘 하고 있으며, 저의 부모님 역시 그날을 기억하여 묘소를 찾거나 챙긴 적이 없습니다.
: 이것이 공회의 행정이며, 교훈이었기에 그렇게 했습니다.
: 백목사님 교훈이 살아 생전에는 누구보다 효도 하라고 하셨으며, 돌아 가신후에는 화장도 금하시고 묘소관리는 그 누구보다 잘 하라 가르치셨기에 저희 선조 묘소는 평상시에도 늘 한결같이 잘 관리 되고 있으나 그날을 기억하거나 그날을 그일 해본적은 없습니다.
: 지금도 백목사님의 교훈을 철저히 따르고자 하는 목회자나 성도들은 소리없이 그 말씀에 순종하고 묵묵히 교회에 진리에 순종하고 있으나, 그렇지도 못한자들이 그날만 되면 어찌 그렇게 그것을 좋아 하는지 참으로 한심스럽습니다.
: 빈깡통은 소리만 요란하다 했습니다.
: 진리가 무엇인지 교훈이 무엇이었는지 제발 순종하며, 그분을 욕되게는 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 참고로 정말 가족들이 다 그렇게 모여 그날을 기일 하는지 제 개인적으로 알아 보겠습니다.
: 제가 누구인지를 말 하면 그분들이 금방 저를 아실 수 있는 정도는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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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인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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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주 가지는 못해도 저도 8월 27일 순교일이 되면 묘소를 방문합니다. 묘소 왼쪽에 여반은 흰옷 남반은 검정옷을 꼭같이 맞춰 입고 좀 오래 전에는 3백명 정도가 재독예배를 드리고 요즘은 1백명 정도가 재독예배를 드립니다. 서부교회 4층 중간반에서 드리는 묘소 예배입니다. 너무 많은 분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어서 지교회 교인들은 무안해서 제대로 올라가기도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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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런데 대구사모님이 중심이 된 쪽은 묘소 건너편 오른쪽에 따로 터를 마련해서 꼭 같이 예배를 드립니다. 한가지 달라진 것은 언제까지는 두 사모님이 함께 예배를 드렸는데 몇년전부터는 나누어서 드리다가 지금은 대구사모님 교인들과 그 쪽에 가까운 분들은 하루전에 예배를 드리고 갑니다. 순교일에 맞춰서 그날에 묘소에서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공회식구들은 모를 사람이 없을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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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 분은 확실하고 나머지 분들은 해외에 계셔서 오시고 싶어도 어려울 것입니다. 그리고 한분은 늘 화환을 묘소 정중앙에 두시는 것을 봐서 추도식 예배를 드리는 것은 아닌 것같고 묘소를 가보면 주변 교역자들이 순교일 하루 전에 오셨다가 가셨다는 말씀들을 하십니다. 그래서 아마 국내에 계신분 대부분이라는 뜻으로 적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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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저도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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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확실하게 그날에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지요? 확신할 수 있으신지요?
: : : 저 또한 전화 한통화면 그분들과 통화하여 알 수 있는 사람입니다 만은 확실한 근거로 말씀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 : : 연락 하여 정말 그렇게 하는지를 알아 볼 수 있는 정도는 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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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우리가 소중하게 대할 가족들의 이름이나 구체적 거론은 특단의 상황이 아니면
: : : '불편한 대화'에서는 언급하지 않으시기를 부탁합니다. 이해하실 줄 알고 이름
: : : 또는 구체적 표현 몇 곳을 조정했습니다. - 운영자 삼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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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교역자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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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백 목사님 순교일은 8월 27일입니다. 21년째입니다. 순교일이 다른 사람에게는 사망일입니다. 돌아 가신 그 날에 예배를 드리면 추도예배가 되고, 그 날에 모이기만 해도 추모가 됩니다. 백 목사님께서 생전 설교를 통해 엄하게 금했습니다. 신앙이 어린 가정이라면 하루를 당기거나 하루를 늦추라고 시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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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우리나 목사님의 자녀분들은 그 의미를 다 알고 있습니다. 불신 식구들이나 친척이나 이웃들이 그들 생각에 기독교인들도 제삿날을 찾는다고 오해할까 해서 금한 것입니다. 그런데 백 목사님은 모든 가족 친척이 그 돌아가신 날에 모인다고 해서 제사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닌 줄을 압니다. 특히 서부교회나 공회 전체는 남달리 제사를 엄하게 금지했고 목사님은 말씀 하나에 목숨을 걸고 사셨고 결국 목숨을 걸고 마지막을 맞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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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그래서 그 순교일에 그 순교하신 당시와 평생 우리에게 가르친 것을 기억하여 오늘에 우리가 좀더 새롭게 각오를 하고 각자 신앙을 살리는데 도움이 되려고 모이는 것입니다. 백 목사님 가족들은 특별한 일이 있어서 그 날에 오지못하는 분은 계셔도 제가 알기로는 돌아가신 그날에 묘소에 와서 장시간 예배를 드립니다. 백 목사님은 당신의 생일도 모르시고 또 자신을 추억하지 말라 했으나 그건 당신이 할 수 있는 말씀이고 제자된 우리나 유족된 가족분들은 그분의 교훈의 뜻을 생각하여 그뜻을 어기지 않고 오히려 그 뜻대로 더 신앙생활을 잘하기 위해 순교일에 21년째 묘소를 찾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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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순교일에 묘소에서 진행되는 수백명 규모의 추도예배는 목사님 자녀분들이 지도하고 있는데 왠 목사님 유족을 거론하며 그분들의 행동과 반대되는 말씀을 하는지 이해가 안됩니다.
: : : : 그리고 대구공회든 부공1이든 2든 3이든 순교한 그 날에 묘소를 찾는 것은 흔한 일입니다. 다만 서영호 목사님 쪽은 서 목사님이 부임한 직후부터 하루를 비켜서 찾아야 한다고 해서 그렇게 했는데 그 날이나 하루를 비킨 날이나 본질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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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요는 제자된 우리가 미신 섬기는 것도 아니고 우리 자신을 나타내는 것도 아니라 우리가 신앙의 부모로 모시고 배운 분의 순교와 그분의 평생을 돌아보며 우리가 그때 배운 것과 그때 은혜를 새겨서 오늘에 더 바로 살아보려고 하고, 그 분의 뜻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 분 가족들이 추도식예배까지 드리고 있는 마당에 그분의 가족의 이름을 가지고 그 반대를 말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생각합니다. 가족에 대한 우회적 모독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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